그때 나는 비로소 사랑하기로 했다

by 마르치아


마음이 머무는 강에 다다랐다. 마음에서 폭풍우가 친 다음 마음이 머무는 강에 다다랐다. 그러나 내 생각과 달리 그곳에는 내가 갈망하던 고요가 존재하지 않았다. 바람 한 점 없어도 요동치는 내면, 그 물결은 외부가 아닌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 고요란 것이, 결국은 내 안에 없던 환영은 아니었을까. 나는 그동안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허상에 속고 살아온 나날들 위에, 오늘의 나를 세워본다. 그래. 어쩌면 한 순간도 고요한 날이 없었을지 모른다. 마치 평온의 외피를 두른 전장처럼, 나는 나를 달래고 다그치며 버텨왔다. 그리고 이제야, 고요가 아닌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 모순된 환영을 왔다 갔다 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툭, 하고 떨어졌다. 그 조용한 낙하음은 내 안에 작은 파문을 남겼고, 나는 오늘 그 파문에 오래 머물고 있다.


나는 그러면서 현재의 나의 존재에 대한 물음의 우물로 덜컥, 떨어져 주저앉았다. 깊고 어두운 그곳에서 나는 내 그림자와 눈을 맞춘다. 나는 이 바닥에서, 더 이상 밀려가지 않고, 내 존재에 대해 밀도 있고 심도 있게, 피하지 않고 마주하려고 한다. 누구의 간섭도, 햇살의 간지러움도, 음료의 달콤 쌉사름한 맛도 나를 방해하지 않는 적멸의 공간.


소멸과 충만이 공존하는 그 낯설고 신비한 자리에서, 나는 처음으로 나를 정면에서 들여다본다. 모든 욕망은 원래의 내 자리에서 빚어진 것일까. 내가 느끼는 이 오감은 과연 무엇을 남기고 떠날까. 인연이라는 이름의 굴레는, 나에게 무엇을 비추는 거울이었을까. 나는 그 질문들 속에서 오래도록 잠겼다. 마치 온몸이 젖어드는 듯, 나는 생각이라는 물속에 천천히 잠긴다. 때론 이런 물음 앞에 너무나도 갈증나고, 너무나도 허기진 채로 오십여 년을 살아왔다. 나는 참 질긴 영혼이었다. 얼마나 많이 부서지고 갈라졌어도 다시금 버텨낸, 낡고 강한 심장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


삶을 살아오며 채워지지 않는 충만하지 못한 물음들과, 내 삶 안에서 건져 올린 보잘것없는 수확 앞에서 나는 움츠러들고, 웃음을 잃어버린 날도 있었다. 그 웃음은 어느 순간 설핏 사라졌다. 나는 그냥, 웃어야 하는 자리에서 웃었을 뿐이었다. 상대가 내 웃음을 필요로 할 것 같은 생각에, 나는 그 시각에 웃었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웃고 있지 않았다. 나는 계속 나를 괜찮다, 괜찮다 다그치며 살아왔다. 바닥에 손을 짚고 올라오며, 다시 쓰러지고, 다시 일어섰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나의 등을 스스로 두드리며, 비틀거리며 걸어왔다. 이 채찍을, 이 끝없는 자기몰이의 고삐를 언제 내려놓고 나답게 살 수 있을까. 그런 내 삶이, 누군가의 삶보다 못한 날이 많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늘 다른 이의 삶에 더 마음이 기울었다. 타인의 슬픔이 내 것처럼 아팠고, 타인의 기쁨에 내 심장이 먼저 뛰었다. 내가 가장 나를 미뤄둘 때조차, 나는 누군가의 마음부터 헤아렸다. 그건 나의 약함이었을까. 아니, 그것은 내가 가진 가장 단단한 빛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를 탓하지 않고, 나를 몰아세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에게, 원래의 나에게 해 줄 말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그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하루하루, 내 손끝과 내 몸으로. 나는 오십이 넘어,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법을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배우고 있다.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라는 사람. 이 생명 앞에서 나는 나에게 무엇을 남기고 싶은 걸까. 세상의 평가도, 타인의 시선도 이제는 중요하지 않다. 나는 지금, 나에게 솔직하고 정직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싶다. 나는 지금이라는 시간, 이 질문들에게, 내 진실한 언어로 응답해야 한다. 많은 물음들이 나를 흐르듯 지나가고 있다. 그 흐름 속에서 나는 지금 질문의 회오리 중심에 서 있다.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잡는, 진짜 나의 존재와 마주한 채. 그 질문들의 끝에서, 나는 한 문장을 단단히 쥐고 일어나게 되었다.


"나는 오십이 넘어 나와 진정으로 사귀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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