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biaco

푸른 눈동자의 진실

by 마르치아


이태리 여행 중 도비아코에 다다랐을 때 나는 이상한 기분에 잠시 숨을 멈췄다. 지도 위로는 처음 밟는 땅이었고, 계획에도 없던 여정의 한가운데였지만 어딘가 익숙했다. 어, 데자뷰인가. 나 여기 와본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내 안에 묻혀 있던 감각이 깨어났다. 이 풍경을 정확히 기억하진 못하지만, 마음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수면 위에 드리워진 산의 실루엣, 투명할 정도로 고요한 물빛, 그리고 낯선 바람의 방향마저 이상하게 낯익었다. 나는 분명 이곳을 모르는데, 이곳은 오래전부터 나를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 낯선 친밀감이 서서히 온몸에 스며들었다. 우리가 조용히 내려서 걸음을 옮기자 물가로 길게 펼쳐진 오솔길이 천천히 우리의 발끝을 받아주었다. 신기하게도 아무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나무들은 속삭이지 않았고, 물결은 소리 없이 움직였으며, 바람은 스쳐갔을 뿐인데도 우리는 무언가를 듣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의 언어가 필요 없는 공간. 존재의 언어로만 들리는 호수. 나는 오래전부터 이 풍경 안에 있었고, 이 호수는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정리되었다. 불필요한 감정이 가라앉았고, 떠오르지 않아도 좋을 질문들이 조용히 물속으로 사라졌다. 그와 나 사이에는 말보다 더 선명한 리듬이 있었고, 걷는 발자국의 속도와 숨소리의 간격이 서로를 닮아갔다. 사랑이라는 감정조차 너무 명명해버리면 깨질 것 같아서 아무 말 없이 그 곁에 머물렀다. 손을 잡지 않아도 가까웠고, 눈을 맞추지 않아도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다.


호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대신 많은 것을 들려주었다. 물빛은 대답 같았고, 잔물결은 이해 같았다. 모든 감정이 이 고요 속에서 반사되어 되돌아왔고, 그 조용한 반복 안에서 나라는 사람의 윤곽이 또렷해졌다. 마치 이 호수는 내 안에 있었던 누군가를 다시 비추어주는 거울 같았다. 잃어버렸던 감정이 그곳에서 되살아났고, 잊으려 했던 기억이 용서처럼 스며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건 데자뷰가 아니라, 아주 오래 전부터 내 마음에 머물러 있던 장소였다. 이름 없이 간직했던 풍경. 언어 없이 기억되었던 고요. 그와 함께 걷는 지금이 비로소 그 기억을 현실로 데려온 순간이었다. 모든 것이 처음인데도, 모든 것이 이미 지나온 것처럼 익숙한 이 감정. 나는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되뇌었다. 나, 여기 와본 적 있어요. 아주 오래 전,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시간이 흐른 지금, 도비아코의 푸른 눈이 그립다. 그 물빛 안에 비치던 내 얼굴과 그의 걸음이 그립다. 호수 위에 조용히 떨어지던 달 그림자도 그립다. 그날은 하현달이 떠올랐다. 물결 위로 흩어지듯 번지는 은빛, 그 빛이 스치자 나뭇잎 하나도 쉼 없이 숨을 고르는 밤이었다. 바람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그 대신 공기는 숨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세상의 모든 속삭임이 그 호수 위에 잠긴 듯 조용했다.


우리는 함께 그 달을 바라보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눴다. “혹시 그거 알아요?” 내가 말했다. “사랑은 달빛 아래서 속삭이면 안 된다는 그 말.” 그는 고개를 천천히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왜요?”


“너무 아름다우면 오래 못 간대요. 달빛이 증인이 되면… 그 기억은 달에게 먼저 가버린다네요.” 그는 말이 없었다. 대신 아주 오래,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눈동자엔 달빛이 흔들렸고, 그 흔들림은 우리 둘 사이의 거리만큼 조심스러웠다.


그 밤은 너무 고요해서 감정이 더 선명했고, 너무 아름다워서 사랑을 말할 수 없었다. 나는 하현달이 떠오르는 밤이면 이 도비아코와 그의 눈이 오버랩된다. 말하지 않았기에 남겨진 문장들이 마음속에서 오래 반짝였고, 그리움은 빛보다 천천히, 그러나 더욱 깊이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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