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과 서울병우유

사랑의 한 모금

by 마르치아


병우유가 매일 집으로 배달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서울우유, 유리병에 담긴 그 우유를 마셨다.


그날도 평소처럼

집 앞에 놓인 병우유를 들고 오다가

대문 앞에서 그만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


병우유는 데구르르 굴러갔고

나는 당황해서

울음을 터뜨렸다.


동네 개가 왈왈 짖었고

놀란 엄마는

행주치마에 젖은 손을 급히 닦으며

대문 밖으로 뛰어나오셨다.


엄마는 나를 번쩍 안아

꼭 안아주셨다.


골목 아래까지

데굴데굴 굴러가던 병우유는

엄마가 나를 안아준 그 순간

소리를 딱 멈췄다.


나도 울음을 멈추고

골목 아래를 바라보았다.


엄마도 나를 바라보셨다.


우리는 눈이 마주쳤고

같은 생각이 들었다.


“경화야,

우유가 어디서 여행을 멈췄나

우리 가서 살펴보자.”


나는 엄마 손에 이끌려

천천히 골목길을 따라 걸었다.


엄마 손은 그날따라 유난히도 따뜻했고

간간히 나를 쳐다보며

미소 지어주셨다.


길 끝에 다다랐을 때

보도블럭 사이

이제 막 피어난 제비꽃 앞에

우유병이 멈춰 있었다.


엄마는 말했다.


“어머나, 제비꽃이

우리 경화 우유를 불러내렸구나.


우유가 제비꽃 만나려고

목숨 걸고

저 위에서 데굴데굴 굴러 내려왔구나.”


엄마는 행주치마로

우유병을 조심스레 닦으셨다.


비닐을 벗기고

종이 뚜껑을 따신 엄마는

내 눈높이로 쭈그려 앉아

제비꽃에게

우유를 몇 방울 따라주셨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엄마, 나도 목말라.”


엄마는 나를 바라보셨고

햇살 속 그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했다.


“그럼,

제비꽃한테 먼저 주고

우리 경화도 한 모금 마시자.”


엄마는 우유를 따라 내게 건넸고

나는 아주 조심스레

제비꽃이 마신 그 사랑을 이어받듯

하얀 병을 들어 올렸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안다.


사랑은 말보다 먼저 흐르고

어떤 우유병도

길을 잃는 법은 없다는 걸.


엄마는 그날

나의 마음 한가운데

꽃 한 송이와

하얀 우유 한 모금을

조용히 심어두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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