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골목은 어디로 갔을까
덩그러종. 골목 어귀에서 울리는 종소리가 마당 안까지 스며들었고 마루 끝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조용히 말씀하셨다.
“경화야, 두부 사 오너라.”
그리곤 작은 동전을 손에 쥐어주셨다. 그 손엔 언제나 말이 있었다.
“돈은 꼭 두 손으로, 눈을 보고 건네는 거다. 사람은 물건만 받는 게 아니야. 너의 마음도 같이 받는 거니까.”
노란 리어카를 끌고 온 두부장수 아저씨는 물이 담긴 대야 앞에서 김을 타고 선 채 푸근한 손으로 두부 한 모를 건져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주셨다.
나는 두 손으로 돈을 건네며 할아버지의 말대로 고개를 들고 말했다.
“아저씨 고맙습니다.”
그 짧은 말은 내가 아는 가장 정직한 말이었고 내 마음을 함께 담은 고마움이었다.
아저씨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고마워. 조심히 가렴.”
그때의 나는 그 말이 나를 한 뼘 더 자라게 한다는 걸 알지 못했다.
조심조심, 물이 떨어지지 않게 두부를 들고 계단을 올라왔다. 두 손이 저려왔지만 그 무게는 참을 만했다. 왜냐하면 그건 단지 두부가 아니라 내가 정직하게 건넨 마음의 무게였으니까.
집에 돌아오자 할아버지는 마루 끝에서 기다리셨다. 그는 내 손에서 두부를 받아들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셨고, 그 짧은 눈빛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잘했구나, 우리 경화.”
나는 그날 처음으로 내가 사람 구실을 해냈다는 뿌듯함을 느꼈다.
그날 밤, 국어공책을 펼쳤다. 외워야 할 단어 중 하나는 ‘염치’였다.
“할아버지, 염치가 뭐야?”
나는 물었고, 할아버지는 조용히 연필을 들어 공책 가장자리 아래에 이렇게 적으셨다.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그 아래엔 작게 덧붙은 문장이 있었다.
‘이건 살아보면 안다.’
나는 그 옆에 ‘고마움’과 ‘정직’도 스스로 써보았다. 뜻을 다 알지는 못했지만, 그날 두부 한 모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던 내 발걸음 안에 그 말들이 함께 있었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어른이 되었고, 지금은 누군가의 밥을 짓는 사람이 되었다. 어느 날 도마 위에 두부 한 모를 올려놓다가 문득 멈춰섰다. 물기 어린 흰 두부를 바라보는 순간, 나는 다시 다섯 살이었다.
두 손에 비닐봉지를 조심히 받치고 “감사합니다.” 하고 눈을 보고 말하던 어린 내가, 그날 골목 끝에서 사람을 처음 배워가던 그 작은 내가, 그대로 내 안에 살아 있었다.
나는 칼을 들지 못한 채 한참을 두부만 바라보았다. 그 무게를 안다. 그 마음을 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그때처럼 사람을 대하고 싶은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