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먹거라
밥상은 삶의 밑천
밥은 엄마가 늘 차렸다.
나는 다섯 살, 엄마는 서른셋.
할아버지는 밥상 앞에 앉아 계셨다.
엄마는 반찬을 한 가지라도 더 놓으려 애썼고,
할아버지는 그 밥을 천천히, 소리 없이 드셨다.
젓가락을 움직이는 틈에도,
어느 한 구석 흘려보내는 법이 없었다.
그런 날이었다.
된장국 김이 올라오던 그 아침,
할아버지가 내 옆에 앉아 조용히 말했다.
“경화야, 나중에 어른이 되면
이 밥상 차리는 게 네 삶의 밑천이 될 거다.
밑천이 떨어지거든 냉큼 정신 차리고
밥부터 지어라.
가장 예쁜 그릇에 반찬을 담고,
정성껏 너를 위해 사흘만 먹어보렴.
그럼 다시 살아나.
사람은 밥에서 다시 살아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이 뭔지도 모른 채 국에 밥을 말아 먹었다.
할아버지의 말은 늘 그러했다.
오래 씹어야 그 뜻이 입 안에 맴돌았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흘러,
나는 어른이 되었고.
인생은 생각보다 더 자주,
텅 빈 밥상처럼 느껴지는 날들을 건네왔다.
무너질 듯한 날들.
누구에게도 손을 내밀 수 없던 날들.
그럴 때마다 나는
말없이 쌀을 씻었다.
그릇을 고르고, 반찬을 꺼내고.
작은 상 하나라도 정갈히 차려
스스로에게 말했다.
괜찮다. 밥 먹자. 다시 시작하자.
그러면 신기하게도,
밑바닥까지 내려갔던 마음에
따뜻한 김이 돌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말씀이 맞았다.
밥상은 삶의 밑천이었다.
나는 그 밥을 먹고,
또 하루를 살아냈다.
할아버지는 그날,
마지막처럼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군가 찾아온 손님이
기운이 없어 보이거든,
삼일 동안 정성스레
밥을 차려 먹이거라.
그 사람도 다시 살아날 거다.
밥은 그렇게,
사람 하나를 다시 일으킨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