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위로
텐션이 떨어지는 아침 나는 영락없이 들깨밥을 앉힌다. 볶은 들깨와 다시마 하나를 얹고 밥을 앉히면 입안에서 벌써 들깨 향이 폭죽처럼 터져 버린다. 들깨의 작은 알알이 입안에서 제각각의 작은 위로를 건넨다. 밥이 되어가는 동안 잘 달궈진 팬에 밥에 얹어 먹을 냉삼겹살을 구워내야 한다. 달궈진 팬에 고기를 넣고 마늘 청주 간장 마늘을 넣은 소스를 부어 한쪽에서 태우듯 불맛을 뽑고 고기가 어느 정도 익을 즈음에 양념을 고기에 합친다. 고기가 다 익으면 조선 호박을 채 썰어 잠시 설컹할 정도로 익혀둔다. 고기랑 씹힐 밸런스를 생각해두면서 너무 익히지 않도록 한다.
드디어 밥이 다 되고 퍼지는 들깨 향내에 이 아침이 얼마나 행복한지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음미한다. 치익치익 밥솥 추가 돌아가는 소리는 잠시 나를 어디론가 데려간다. 밥이 다 되면 예쁜 그릇에 밥을 담고 한쪽에 고기와 호박을 볶은 것을 소복히 얹은 후 계란 노른자를 태양처럼 얹고 달래를 다져서 쪼로록 담아낸다. 그 뒤에 참기름 한 방울 두르고 깨를 바수어 뿌리면 오늘 아침 식사가 완성된다.
단정하게 아침을 먹는 날엔 서두름도 조급함도 없어지는 것을 수만 번의 경험을 통해 안다. 그래서 누군가 지쳐서 오거나 어깨에 메고 온 짐이 너무 무거워 보일 때 나는 그를 위해 아침을 정성스럽게 지어 먹이고 싶다. 이상하게 누군가 찾아오면 내 머릿속엔 온통 냉동고와 냉장고 속에 있는 재료들이 조합되고 끓여지고 다져진다. 얼만큼 그 사람을 이해해야 될까 마음속에는 들끓는 위로가 넘쳐난다. 그러면 나는 거창한 조언과 내 경험으로 그를 위로하지 않는다. 말은 줄이고 먼저 그의 뱃속부터 데워야 한다는 것을 오랜 경험과 가르침으로 알아간다. 말보다 행동이 머뭇거림보다 빠른 결정이 어떨 땐 상대를 더 깊게 이해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나는 누군가에게 밥 먹자고 말할 때 그 말이 얼마나 따뜻한 초대인지 얼마나 나를 내어주는 일인지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상하게도 그 한 끼의 온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차갑게 밀어내고 모른 척하고 마치 그 따뜻함이 부담이라도 되는 것처럼 뚝 잘라낸다. 그리고도 자기가 왜 그랬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사람은 누군가의 마음을 거절할 때 사실 가장 먼저 자신의 빈자리를 드러내는 법이라는 걸. 그래서 나는 이제 그런 거절 앞에서 상처받지 않는다. 그가 나를 밀어낸 것이 아니라 그가 품지 못한 마음의 온도가 너무 낮았던 것뿐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아니까. 누군가 건네는 따뜻한 밥 한 숟가락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허기조차 스스로 채우지 못한 채 오래 헤맨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밥을 짓는다. 들깨를 볶아 넣고 호박을 썰어 올리고 고기의 온도를 살피고 달래를 다진다. 누군가가 내 앞에 앉는다면 나는 그에게 묵묵히 그릇을 내어준다. 말보다 먼저 밥을 내어놓고 그 사람이 젓가락을 드는 순간 나는 그제야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내게 위로란 거창한 말로 건네는 것이 아니라 들깨 향처럼 은근히 스며드는 것이어야 한다. 밥은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한다. 따뜻한 밥 한 숟가락 앞에서는 누구든 조금은 솔직해지기 마련이고 조금은 눈가가 젖어지고 조금은 더 살고 싶어진다.
나는 오늘도 생각한다. 아침의 단정함이 하루를 지탱한다는 것을. 들깨의 고소함이 마음의 쓴맛을 덮어준다는 것을. 고기가 구워지는 소리가 삶의 전투력을 되찾게 한다는 것을. 달래의 향이 작은 희망을 불러낸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나를 위해 밥을 짓고 누군가를 위해서도 밥을 짓는다. 밥은 결국 마음의 온도이자 내가 세상에 내어놓는 유일한 오롯한 진심이다. 밥을 짓는 나의 손놀림이 누군가의 하루를 붙들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아침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오늘 아침 나는 들깨 향을 머금은 밥을 한 숟가락 떠먹으며 문득 생각한다. 사람을 위로한다는 것은 어쩌면 누군가의 빈 속을 먼저 채워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허기가 채워지면 마음이 조금은 말랑해지고 말랑해진 마음에는 위로가 닿기 때문이다. 들깨 밥 한 그릇의 고요한 위로가 오늘 하루 나를 살릴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지쳐 오는 누군가에게도 같은 위로가 되리라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