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장애는 과도하거나 지속적인 불안, 걱정, 공포를 특징으로 하는 정신질환으로, 일반적 상황에서도 비정상적인 불안을 느끼거나, 실제 위협이 없음에도 위협을 느껴 심리적·신체적 고통을 겪는 질환이다. 지난 2023년 나는 불안, 우울, 공황장애를 진단받았다. 기저에 있는 불안이 심해지며 우울이 생겼고, 불안을 느끼는 방식 중 하나로 공황이 심해지며 이 모든 질환을 가지게 되었다. 즉 나의 모든 정신질환의 기저에는 불안장애가 있던 것이다.
불안장애를 진단받은 때로 돌아가보자. 그 당시 대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생각과는 다른 대학생활, 대인관계에 대한 어려움 등으로 제대로 된 생활이 어려웠다. 수업을 받던 중 숨이 가빠오고, 눈앞이 흐려지며 공황이 오는 일이 생겼다. 밖에 나가면 불안이 심해지고 또 어디선가 공황이 오지 않을까 걱정하며 일상이 무너졌다.
이러한 생활이 반복되면서 정신과에 방문하게 되었다. 처음 정신과에 방문할 때는 걱정이 되었다. 우선 부모님께도 말하지 않았고, 나조차도 정신과에 대에 편견이 있어 막연히 두려워했다. 그 당시 병원에 전화를 거는 것조차 어려워 카톡으로 연락을 하고 다행히 2일 뒤에 초진을 잡을 수 있었다. 정신과 초진은 다양한 검사를 진행했다. 우울, 불안, 알코올 중독, 섭식 장애 등에 대한 설문지를 작성하고, 손목과 발목에 기계를 사용해서 진행하는 검사를 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울, 불안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고, 기계를 사용한 검사에서 교감 신경과 부교감 신경의 불균형이 보였다. 그 당시 하루에 2-3시간 밖에 못 잘 정도로 불면이 심했고, 심장이 빨리 뛰며 왼쪽 팔의 저릿함까지 있었다. 공황에 대한 약과 수면에 대한 약을 처방받아먹으며 2학년 2학기 학교 생활을 버티며 해나아 갔다.
하지만 약만으로는 내 불안과 공황을 다 잡을 수는 없어 점점 학교생활의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다음 학기를 다니기는 어려울 것 같아 휴학을 하기로 결정하고 부모님께 내 현재 상태를 말씀드렸다. 엄마, 아빠가 걱정하실까 봐, 나의 불안과 힘듦을 본인의 탓으로 생각하실까 봐 말씀드리기를 꺼렸지만 도저히 학교를 다닐 상태가 아니라 생각해 부모님께 전화를 했다. 최대한 덤덤히 말을 하려 했지만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다행히 부모님은 정신과에 대한 부정적 생각도 자신에 대한 자책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냐며 남은 학교생활 마무리하고 집에서 함께 쉬어가는 시간을 가지자고 말씀해 주셨다. 그 후 나는 당당히 병원에서 엄마카드를 쓸 수 있었다.
병원을 다니고 점점 나한테 맞는 약을 찾아가며 2학년 2학기를 버티고 휴학 신청을 했다. 집에 있다 보니 확실히 증상이 많이 나아졌다. 외부에 나가는 일도, 낯선 사람을 만나는 횟수도 적어지며 점점 회복했고, 이제는 알바는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본가에서 알바를 찾았다. 또 본가에서 정신과를 찾아 진료를 받았다. 하지만 본가에서 시작한 알바와 정신과는 나에게 또 다른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정확히 어느 카페라고 말하진 않겠지만,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알바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재미있는 사장님과 나이가 비슷한 동료 알바생들 덕분에 즐거운 알바 장소를 찾아 좋아했다. 하지만 다양한 일을 진행하고, 사람을 만나는 일이 나에게는 아직 버거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카페 마감 시간의 알바를 했는데, 혹여나 내가 빼먹고 가는 마감은 없는지, 히터나 에어컨은 끄고 왔는지, 청소는 잘 되어 있는지, 불은 껐는지, 문은 잠갔는지 등등 모든 일 하나하나가 내 머릿속을 돌아다니며 나를 괴롭혔다.
또 재미있다고만 생각했던 사장님과의 관계에서도 어려움이 생겼다. 평소에는 너무나도 친밀하게 다가오던 사장님은 내가 마감 중 하나라도 하지 않은 날은 전화를 통해 혼이 나고, 혼나는 중 내 인격에 대한 모욕적인 말 또한 들었어야 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들을 때는 그냥 듣고 넘길만한 말일지 모르지만, 나는 자존심에 타격을 입고 나를 모욕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모든 것이 겹치며 알바를 가는 것조차 너무나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며 불안이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알바면 그냥 그만두면 되는 것 아니야?'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이상하리만큼 많은 책임감과 주변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던 나는 그만두겠다는 말도 못 했다. 결국 6개월을 채우고 그만둘 수 있었다.
또 다른 나의 스트레스, 바뀐 정신과의 선생님이었다. 정신과 선생님은 나이가 지긋하신 남자 선생님으로 말이 많으셨다. 선생님은 나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많은 말을 하시는 스타일이셨다. 그런데 그 많은 말들은 나에게 잔소리로 들릴 때가 많았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선생님은 내가 기독교라는 것을 알고는 항상 설교말씀을 해주셨다. 물론 나를 걱정해 주신다는 마음은 좋았지만 나와는 잘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항상 상담을 하기보다는 그냥 약만 받아가는 날들이 많았고, 혹여나 잡혀서 또 잔소리를 듣지는 않을까 병원에 가는 일이 귀찮아지기도 했다.
그래도 본가에 있는 나날들은 행복하고 안정적이었다. 언제든 집에 가면 가족들이 있고, 단조로운 하루하루가 내 불안을 조금은 없애주었다. 그래서 1년을 쉰 후, 이제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겠다. 하는 생각을 하며 복학 신청을 했다. 복학하고 한 학기가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불안 그리고 공황과 함께 하고 있다. 이제는 불안과 공황을 극복하고 완치해야 하는 것으로 보기보다는 나와 함께 살아가며 내가 조절해야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앞으로 내 불안에 대한 이야기를 쓰며 불안과 함께 하는 삶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