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합리화와 자기기만의 수평성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들어온 익숙한 이야기 하나쯤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의 주제인 ‘여우와 신 포도’ 이야기도 마찬가지죠. 여우는 포도를 따 먹고 싶지만 닿지 않자, 결국 “저 포도는 시어서 못 먹겠다”라고 자기 합리화를 합니다. 이 짧은 우화는 단순한 교훈을 넘어, 우리 일상 속 무의식적인 자기기만과 맞닿아 있습니다.
왜 우리는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 그것이 본래 가치 없다고 여기며 스스로를 위로할까요? 우선 이 질문에서부터 시작해 봅시다. 여기에는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수평성’의 삶이 감춰져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수평성’은 일상에서 우리를 감싸는 안정적이지만 동시에 무기력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우리에게 편안함을 주지만 정체되어 있는 삶의 차원입니다. 그리고 이 수평성 속에서 우리는 때로 스스로를 속이기도 하며, 본래 마주해야 할 삶의 수직성, 즉 삶의 깊은 부름으로서의 내 안의 목소리를 침묵하게 하고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선택을 회피합니다.
수평성의 실체: 자기 합리화라는 감옥
여우가 포도를 ‘시다’고 평가절하하는 순간, 그것은 자기 합리화이자 자기기만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바람이 가닿지 못한 것을 부정하는 태도’를 통해 현재의 상태에 안주합니다. 이것이 바로 ‘수평성의 감각’입니다. 수평성은 안정감을 주지만, 동시에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긴장으로서의 ‘나를 깨우는 순간’을 멀리하는 원인이 됩니다.
철학적으로 보면, 수평성은 우리가 ‘고유한 나로서의 세계’와 맺는 일종의 ‘평면적 관계’입니다. 하루하루 익숙한 공간과 일상, 습관 속에 머무르면서 우리는 깊은 질문, ‘나는 누구인가?’,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를 외면합니다. 여우가 포도를 부정하며 자기기만에 빠지는 것처럼, 우리는 흔히 ‘지금 이 상태로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변화의 부름을 무시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수평성이 결코 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필연적인 인간의 조건이기도 하며, 안정과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 토대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수평성에만 머무르면서 ‘내면의 부름’, 즉 내 삶이 깊어질 기회로서의 순간을 외면할 때 발생합니다.
수직성의 부재: ‘고유한 나’를 새롭게 묻는 순간의 부재
‘수직성’은 고유한 나에게 가 닿기 위한 ‘내 안의 목소리’ 혹은 ‘자기 삶을 책임지는 선택’의 차원입니다. 삶의 깊은 곳에서 자신을 향해 울리는 물음과 마주하는 순간이죠. 여우가 포도를 그냥 받아들이지 않고 ‘부정’으로 상황을 회피하는 동안, 수직성은 우리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질문하게 됩니다.
수직성은 불안, 고독, 죽음과 같은 진짜 나로서 살기 위해 거쳐야 할 것들로부터 도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와 긴장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여우가 포도를 ‘시다’고 평가절하하는 자기기만의 순간은 이 용기와 긴장을 거부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수평성은 ‘안정과 무기력’이라는 이중성을 가진 상태라고 할 수 있고, 수직성은 ‘긴장과 불안’ 속에서 진짜 나를 발견하는 삶의 층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자기기만은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 속에서의 방어기제이며, 우리가 수직성의 부름을 들을 준비가 안 되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우와 신 포도’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자기기만의 수평성에 갇혀 있음을 직시하게 하고, 동시에 그 안에서 수직성의 부름으로서의 ‘내 안의 목소리’를 어떻게 들을 것인지 질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다양한 각도에서의 수평성 탐색: 자기기만의 미묘한 층위
여우의 ‘신 포도’를 대하는 태도는 때때로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는 보호막일 수 있습니다. 무한한 욕망과 실패의 불안을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 자기 합리화는 심리적 완충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자기기만이 ‘지속적인 삶의 방식’이 될 때 삶은 정체되고, 수직성의 부름은 더욱 묵살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기 합리화가 완전한 부정이나 무관심이 아니라 일시적인 ‘쉼표’로서 기능할 수도 있습니다. 수평성은 수직성으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단계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자기기만 속에서도 우리 존재는 수직성의 문을 언제든 열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 점에서 수평성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열리는 과정’이기도 하며, 우리 삶의 다층적 차원을 이해하는 열쇠가 됩니다. 즉, ‘수평성과 수직성’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긴장하며 우리의 고유한 삶의 풍경을 다채롭게 만드는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 여우와 포도에서 배우는 우리 삶의 수평성과 수직성
‘여우와 신 포도’ 이야기는 단순한 교훈적 우화를 넘어, 우리 내면의 깊은 성찰이 필요한 ‘진짜 나로 살아감’이라는 문제를 드러냅니다. 자기 합리화와 자기기만은 우리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수평성의 자리이며, 그곳은 일상적 안정을 제공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깊은 무기력을 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수평성은 수직성의 부름과 긴장 속에서 계속 질문되고, 다시 열려야만 합니다. 우리는 수평성에 머무르면서도 언제든 수직성의 문을 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이야말로 자기 자신과 삶에 대한 진정한 각성이 시작됩니다.
여우가 포도를 ‘시다’고 말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될 때, 우리는 ‘나는 지금 무엇을 부정하고 회피하고 있는가?’를 자문해야 합니다. 그 질문 속에서 수평성의 틀을 넘어, 수직성의 부름에 응답하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끝으로,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삶의 안정과 무기력, 자기기만과 실존적 부름 사이를 유동적으로 오가는 우리 자신을 마주합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우리 삶의 수평성과 수직성’이라는 깊은 철학적 통찰을 경험하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