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득 찬 컵에서 흘러내린 물로 베풀어라
우연히 보게 된 드라마 속 한 마디가 미동 없던 내 마음을 오랜만에 두드렸다. 섬세하지만 무게감이 느껴지는 울림이었다. 조금 더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갖추려고 한다. 나의 인생 깨달음이다.
"가득 찬 컵에서 흘러내린 물로 베풀어라."
겉모습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단어가 아니며, 익숙한 단어들로 구성된 문장. 속을 들여다보니 나는 이렇게 들렸다.
"스스로 먼저 사랑하고
그다음에 그 사랑을 나누어라."
내가 먼저 채워지지 않았는데 감히 누구를 먼저 사랑한다 말하고, 누구를 더 아낄 수 있을 것인가. 스스로를 먼저 아끼고, 가꾸고 또 채워야지만 그 마음으로 다른 이들에게 애정을 나눌 수 있다. 그래야만 스스로가 아프지 않을 수 있다. 그러면, 나는 그렇게 살아왔는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가? 일단 나는 그렇지 못했고,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픈가 보다. 어떤 것이던 단정 짓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고찰이 머리와 마음에 고정되는 것을 싫어했다. 처한 상황과 담긴 환경에 따라 무엇이던 변할 수 있다고 믿어왔었다. 그래서 인생 영화, 인생 책, 인생 음악 그리고 인생 깨달음은 나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언제든지 내 주관에 따라 변할 수 있게 마음속에 여지를 남겨두었다. 이번에도 역시 하나의 가지를 키우려고 한다. 지금까지의 방향과는 다르지만 가득 찬 컵에서 흘러내린 물로 베풀기 위해 '나'라는 컵을 채우는 삶을 살고자 한다.
잠깐 옛 생각을 들여다보니 언제나 나누는 걸 좋아했고 내 마음을 받은 사람들이 기뻐하는 걸 좋아했다. 내 사람들이 웃는 모습이 좋았다. 가진 게 넉넉하지 않아 많은 걸 주지 못 했지만 나에게 남은 걸 털어 전했던 것 같다. 그렇게 혼자 만족해 왔던 것 같다. 그런 삶을 살고 있었고 그런 삶을 살고 있다. 이름을 불러주면 기억해 주었다는 사실에 미소를 띤 사람이 있었고 이름과 고향을 일러주면 감동을 받는 사람이 있었다. 또 이전에 나눈 대화를 살짝 던져주면 나라는 사람을 좋아해 주었다. 작은 신경과 관심을 주어 애정으로 돌려받아왔다. 군대에 있을 때도, 지금 일을 하면서도 나만의 관행이 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내 사람들에게 더 베풀었다. 간식을 사 먹으라고 카드를 전해주고 디저트를 좋아하는 동생에게는 선뜻 권하고는 했다. 처음에는 다들 갸우뚱하며 거절을 하지만 받아주어야만 내 기분이 조금 나아지니 나누면서도 작은 부탁을 권했다. 나중에는 그들에게 똑같이 권하면 내 기분이 좋지 않음을 알아챈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작은 행동을 눈치챌 수 있었다. 꼭 언성을 높이고 쓴소리를 내지 않아도 서로 기분 좋게 서로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 된다. 우리는 어른이다. 이렇게 나누어야만 마음의 짐이 한결 가벼워졌다. 물론 그들이 쌓고 간 짐은 아니지만 아무렴 뭐 어떤가. 한걸음 더 가벼워지려는 나만의 노력이다.
컵을 채우기 위해 이렇게 살아왔었다. 돌이켜보면 컵을 채우기 위함은 아니었고 그냥 그렇게 기분을 채워왔던 것 같다. 가득 찬 컵을 채우기 위해 무엇을 해야 될까,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해답을 못 찾고 있다.
- 좋아하는 음식만 먹으면 될까
- 즐겨하는 취미를 계속 즐기면 될까
- 사고 싶은 옷을 사면 될까
-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로 떠나면 될까
-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나면 될까
하나씩 적어 내리며 상상해 봤는데 썩 채워지지가 않는다. 이제는 내가 그런 시기에 살고 있음으로 정했다. 무엇을 해도 채워지지는 않는다. 어떤 수단으로 채우려고 하면 안 될 것 같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가 애써 정답을 만드려 하지 않고 지금 내가 사는 모습을 가시화했다. 역시 정답은 정해져 있었다.
- 스스로 성장할 수 있게 움직여라.
- 처음에 세운 뜻을 끝까지 밀고 나가라.
초지일관(初志一貫)
- 남들이 한 번 노력할 때 나는 백번을 더 노력한다.
인일기백(人一己百)
더 치열하게, 더 바쁘게, 더 가득 차게 살면 작은 움직임이라도 내가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 오며 살아가고 있다. 스물일곱의 절반이 지났다. 남들은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조금 더 가득 차게 살아가고 싶다. 서른이라는 숫자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지만 서른에 도달하기 전 이루고 싶은 목표를 세웠다. 그날까지는 도무지 멈출 자신이 없다. 이렇게 나아가기로 정한 이상 불가피하게 미뤄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수면과 휴일, 여행과 여가, 사람과 연인 그리고 행복. 조금은 멀리 두기로 하였다. 지금 이 모든 걸 이루며 살려고 하면 왠지 내가 세운 목표와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 컵을 가득 채우기 위해 이번 주도 달려왔다. 컵을 가득 채우려고 아득히 살아가는 당신에게 오늘도 힘내라는 말보다는 고생했다는 격려와 다음 주도 지지 말자는 응원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