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있는 한 칸을 채워주세요.
참 뭐랄까, 질문을 던진 건 저자인 나지만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사람마다 인생이라는 단어에 대한 깊이에서차이가 있듯이 연인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깊이감은 다를 것이다. 깊은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도 어려운 질문이다. 이 질문을 받은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진다. 일단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이번에도 한 번 읽어봐 주길 바란다.
또 한 번 덜어내는 시간이다. 머릿속으로는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 복잡한 문장을 이뤄냈지만 막상 적어내려니 내딛는것조차 어렵게 느껴진다. 그래서 갑자기 툭 떠오르는 단어로 나열하려고 한다. 나에게 연인은 함께 나아가고 밀어주는 동반자이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건전지 같은 존재이고 때로는 하루를 나누고 덜어내며 회고하는 일기장이다. 오늘도 잔상처럼 보이지만 매번 꿈꾸던 이상을 적어본다. 어렸을 때는 이런저런 이상형을 말하며 연인을 만나왔다. 키가 아담하고, 머리는 단발머리 그리고 쌍꺼풀이 없는 그런 사람. 이왕이면 담배를 멀리하는 사람이었으면 하는 바람도 품었다. 이랬으면 좋겠고 저랬으면 좋겠고 정작 나는 잘난 것도 없으면서 바라는 건 참 많았었다. 어린 시절에만 가능했던 투정이었나 보다. 이렇게 사랑 이야기를 나눌 때 종종 떠오른다. 가진 것이 없었을 때 따듯한 시간을 보내준 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어느 곳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던 행복했으면 한다. 용기 없는 사내는 글을 빌려 살며시 마음을 전해본다.
서른에 가까워질수록 현실적인 조건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어쩌면 당연한 것 같다. 안정적인 직장, 주말에는 쉬었으면 하고 소득 수준이 비슷한 사람 등 여러 조건들이 동반된다. 자영업을 준비하는 나에게는 너무 먼 이야기였다. 키가 큰 사람, 설렘을 주는 사람, 곰 같이 덩치가 큰 사람 이런 수식어들도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채워지지 않을 조건들을 나열하니 더 이상과 멀어졌다.
그렇게 나는 내가 가진 것이 아닌 내가 품은 것을 바라봐주는 사람을 원하고 있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까지 멀어지려고 한다. 이상을 이루기 위해 이상을 품고 더 멀어지는 날이다.
동반자로서의 연인
같이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을 그려본다. 하루를 살아감에 있어 같이 나아가고, 밀어주고 때로는 꾸중을 주고받아 서로에게 응원과 영감을 교류하는 동반자를 그려보고는 한다. 이런 마음을 품어보니 나는 멋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멋있는 사람을 좋아했고,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멋있다는 표현을 불러주고는 했다. 자기 분야에서 머무르지 않고 꾸준하게 발전하려는 모습이 너무 매력적이다. 고민하며 적어보고, 뚝딱거리며 만들어보고 멈추지 않고 나아가려는 사람. 그런 사람과 함께 나아가는 삶을 그려보곤 한다. 멋있는 사람을 좋아하기에 나도 멋있어지려고 움직인다. 아직은, 아직은 부족해도 나아간다. 조금 더 멋있는 사람이 될 때 다시 한번 품어보고 싶다. 여전히 멋있는 사람을 추앙한다. 멋있는 사람과 함께 멋있는 일상을 그려본다. 저 멀리에서. 떠오르는 노래 한 구절을 남긴다.
김필 <어느 날 우리> 中,
"어느 날 우리 한 번쯤 우연히 만나요 눈이 부시게 이별했던 그날처럼
어느새 우리 서로가 몰라본대도 낯선 발길로 지나쳐도 그냥 그렇게 두어요"
건전지 같은 사랑을 그린다.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장난감 로봇 뒷면을 열어보면 건전지를 넣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었다. 건전지 세 개를 다 채워야 불빛과 함께 소리를 내는 친구였다. 세 개의 건전지를 채워 넣어야만 움직이는 로봇임을 알지만 건전지가 하나 부족해 소리를 내지 못하면 어린 마음에 로봇에게 미운 마음을 주곤 했다. 어린 시절의 작은 투정이었지만 이제야 느껴지는 마음이 있다. 사실 로봇은 두 개의 건전지로도 불빛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모든 마음을 다 채워 나에게 불빛을 내고 싶었을 것이다. 부족한 마음으로는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남은 모든 사랑을 주고 싶은 로봇의 마음이었나 보다. 오늘의 나를 움직이는 건전지는 여전히 부족하다. 일에서의 마음도, 운동에서의 마음도 그리고 사랑을 하겠다는 마음도 여전히 부족하다. 부족한 마음으로는 마음을 전하고 싶지 않다. 언젠가 채워질 내 마음을 위해 열심히 애쓰는 일상이다. 나에게 부족한 마음을 채워주고 더해줄 수 있는 건전지 같은 사랑을 바란다. 건전지 같은 사람을 바란다.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린다.
돌아보는 하루, 돌아보는 한 주. 일기장 같은 사람.
기록을 습관처럼 해오며 살아왔다. 기록에 의미를 두지는 않았지만 돌아볼 때를 생각하며 여러 방법으로 기록을 하고는 했다. 지금도 그런 순간이다. 사진을 남기고, 캘린더에 일정을 적고 지금처럼 글로 남긴다. 매일 똑같은 일상을 보내더라도 남기고는 한다. 사진을 남기면 그날의 장면이 생각나고, 캘린더에 일정을 적으면 그날을 준비했던 마음이 떠오르고 이렇게 글을 남기면 그날의 마음이 떠오른다. 기록은 나에게 이런 의미였다. 요즘은 기록만큼 모든 걸 돌아보려고 생각한다.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이번 주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이번 달에는 무엇을 더 낭비했나, 올해 상반기는 무엇이 부족했나. 계속 돌아보고는 한다. 그렇게 회고의 마음을 가졌다.
앞으로 나아가려고만 했지 정작 뒤돌아보려고는 하지 않았다. 돌아보니 부족한 순간이 많았고 그렇게 부족함을 토대로 채워나갔다. 그렇게 일상을 채워나갔다. 오늘 나를 찾은 손님에게 무례하지는 않았는지, 한 주를 보낸 나에게 숨을 돌리게 하였는지, 한 달을 보낸 나에게 선물은 하였는지. 조금 더 나를 돌아보고 채웠다. 그렇게 나만의 일기장 만들어 나간다. 기록도 기록만큼, 회고도 회고만큼 일기장을 채웠다. 언젠가 일기장을 공유하는 일상을 보내게 될 것이다. 그런 일상을 품는다. 당신의 일기장을 될 수도 있고 또 누군가의 일기장이 될 수도 있다. 써본 사람이 더 잘 안다는 말처럼, 언젠가 당신의 일기장이 되겠다. 예상치 못한 비가 내리는 밤이다.
이렇게 또 두서없이 덜어냈다. 당신이 생각하는 연인이 있듯이 내가 생각하는 연인은 이렇다. 바라며 살지는 않지만 꿈꾸며 살아간다. 연인을 그리며 나에 대해 정리하며 덜어냈다. 여전히 비어있는 공간을 등에 지고 나를 키우며 내딛는다. 다시 시작한 한 주도 애써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