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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누게 될 대화 속으로

"아,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구나."

by 노아의 독백

상상도 하지 않았었던 이십 대의 후반기를 보내면서 지난날과 달라진 대화 습관이 있다. 입을 덜 열고 귀는 더 열었다.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이야기는 더하지 않고 내가 더할 수 있는 이야기는 더하지 않았다. 대화를 나누는 걸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고 대화만큼 매력적인 채널은 없다고 생각해 왔지만 더 매력적인 대화를 위해 변화하고자 한다. 조금 더 무거운 입을, 더 넓은 귀를 가지기로 했다. 매 순간을 그렇게 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그러려고 한다. 지내는 일상에서의 찰나의 여유와 틈이 없다 보니 생각할 시간이 많지 않았고 생각의 축소는 내면의 깊이를 얕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조금 더 여유가 생기고 숨을 돌릴 때쯤에는 내 이야기를 더 많이 해보려고 한다. 다만 좋아하는 건 꼭 하고 싶은 나여서 이렇게나마 종종 글로 수다를 떨어본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무거운 입과 넓은 귀는 필요 없을 것이다.

사람을 마주하면서 머리와 가슴으로 생각하는 문장이 있다.


"아,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구나."


이 문장을 새겨야 상대를 이해하기 쉬웠고 다가감에 있어 거리낌이 덜했다. 나와는 다른 생각과 시선, 가치관과 비전이 있어도 이런 마음가짐이면 조금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오히려 내 시야가 더 넓어진다. 각자가 살아온 삶의 터전이 다르기에 쉽게 조언을 하지 않는다. 네가 그렇게 살아왔는데 내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겠나 하는 마음으로 조언과 충고는 하지 않는 편이다. 꼭 필요로 하는 순간에는 습관처럼 문장을 붙여둔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내 의견이라 듣고 흘려도 된다. 그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대화를 나눔에 있어 이렇게까지 조건을 걸게 되면 상대방도 편하게 내 이야기를 듣고는 한다. 편하게 듣게 만들어주면 나에게 더 집중할 수 있다. 상대방에게 내 이야기에 빠지게 만드는 하나의 기술이다. 의견을 고집하지 않고 주장을 더하지 않는다.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일 뿐이고 여기서 잡아채는 건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그들에게 전적으로 선택권을 건넨다.

지금 나의 일상에서 대화를 나누는 대상들은 대부분 이십 대 초반의 친구들이다. 나이에 걸맞게 어린 친구도 있고 나이와 맞지 않게 어른스러운 친구도 있다. 때로는 어두운 새벽을 보내지 않을까 궁금했던 한없이 밝고 긍정적인 친구도 있고 너무 많은 잡념과 고민으로 헤매는 친구도 있다. 어떤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눈빛이 멍한 친구도 있다. 이런 친구들과 함께하고 있고, 이런 친구들과 일상을 채워나가고 있다. 언제나 생각하고 있는 사실이지만 유치원생한테도 배울 점이 있다. 나이는 그저 지나가는 숫자에 불과할 뿐 발을 담그는 곳에 만족하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친구들과 함께하면서도 많이 배우고 녹여낸다. 대화를 나누며 일상에서 틈을 만들고 여유를 품고는 한다. 종종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물어보는 친구도 있고,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묻고는 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그냥 이거밖에 없었다.

"다짐과 이유만 있으면 누구든지 다 할 수 있다."

그저 마음먹는 사람이 적을 뿐이고, 그저 생각만 할 뿐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적을 뿐이다라고 웃으며 대답만 할 뿐이다. 이렇게 이야기해도 알아들을 사람은 깨닫고 넘길 사람은 그저 흘릴 뿐이다. 군살 없는 대답만을 전할뿐 이렇게 사는 진짜 이유는 장황하기 따로 없고 겪지 않은 사람은 깊이 이해하지 못할 것 같기에 굳이 나열하지 않는다. 글을 내리다 스쳐 지나간 글귀들을 옮겨본다. 머릿속에 생각이 많은 이유는 생각을 글로 적지 않기 때문이고, 불안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매일 해야 할 일을 미루는 이유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기 때문이고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이유는 생각을 제대로 정리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생각을 옮길 행동이 필요하고 행동을 할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한다. 어쩌다 보니 친구들과의 대화도 점차 줄고 있다. 먼저 연락하지 않으려 하고, 먼저 만나려 하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그럴 에너지가 없다. 숨 돌리기도 힘든 삶이라 여유가 없다. 여유의 결핍은 동그라미도 각지게 보이며 나 역시 길게 곧은 소리만을 할 것 같다. 아직 가진 것도 없고 체급도 낮지만 이제 굳이 입에 바른말은 못 하겠다. 누구나 일상이 힘들고 고민으로 둘러쌓은 밤을 보내고 있겠지만 아마 이십 대 후반을 보내고 있는 동지들은 아직 어두운 새벽을 보내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 그렇고 너 역시 그렇지 않나.

빠더너스 BDNS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 김창완 편 中

모든 일상을 끝내고 여전히 울리지 않았던 핸드폰을 보면 괜히 또 미뤄둔 생각에 잠긴다. 조용한 핸드폰에 어울리는 노래를 더해 고요한 머릿속을 채운다. 고독에 고독을 더하니 그저 고독하지만은 않다. 버스 가장 뒷좌석에서 바깥을 바라보니 여전히 축축하며 습하다. 이 또한 지나가는 여름인가 보다. 올해 여름은 꽤나 길게, 나긋이 지나가고 있다. 해가 비출지 비가 내릴지 여전히 맞추지는 못 하지만 당분간은 또 날씨를 따라가지 않으려 한다. 품어둔 선선한 바람이 그리운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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