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의 설레는 하루 2

열정 불사르기

by 보물상자

“그리고 팀장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현성이 잠시 머뭇거렸다.

“응. 뭔데?”

“팀장님께서는 뭔가 비법을 갖고 계실 것 같아서요.”

“비법?”

“네. 비법이요. 팀장님만의”

“그러니까 월요병 퇴치 방법정도로는 양이 안 차신다~ 이거지? 더 많은 나만의 노하우를 알려달라는 거 아니야. 그렇지?”

“아니. 그게...”

현성은 멋쩍은 표현을 지었다.

“맞아요. 제가 언제 또 팀장님을 뵐지 모르는데 이왕 뵌 김에 많이 배워가고 싶거든요.”

배트맨의 기억으로도 현성은 욕심이 많은 부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이기적인 욕심이라기보다는 늘 자기 발전에 대한 욕심이었다. 배트맨은 그런 현성이 대견했고 흐뭇했다. 할 수 있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비법을 다 가르쳐주고도 싶었다. 배트맨은 다정스러운 눈빛으로 현성을 바라본 후 말을 꺼냈다.

“우리는 ‘일을 한다’라고 하잖아.”

“네. 그렇죠.”

현성의 눈망울에 다시 광채가 일기 시작했다.

“그런데 일은 단순히 반복해서 하는 것이 아니야. 일은 매일매일, 매시간, 매 순간마다 새롭게 창조해서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창조의 연속작업이거든. 난 그런 맘으로 일해.”

현성은 말의 의미를 알듯 말 듯 했다.

“다시 말하자면 난 그제보다는 어제의, 어제보다는 오늘의 업무방법이나 태도가 1mm라도 개선되거나 진보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을 하지. 그 미세하지만 새로운 창조성과들이 매일매일 쌓여서 나 자신의 업무능력이 향상되고 회사성장에도 기여한다고 생각하거든.”

현성은 가슴 한편에 바쁘게 메모를 하고 있었다.




“창조정신없이 주어진 업무를 단순히 해치워야 할 일감으로 생각하고 내 육체와 정신들을 질질 끌고 일하다 보면 똑같은 일의 반복이라며 지루해하게 돼있어.”

“권태감에 빠지는 이유가 그런 것이었군요.”

“팀장님은 회사 일로 한 번도 권태에 빠져본 적이 없었나요?”

“나도 보통 사람일 뿐인데 왜 없었겠어. 근데 많이는 아니고 딱 한 번 있었지.”

“그래요? 그럼. 그때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뜨거운 여름날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본 것이 권태극복의 계기가 됐었지.”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요?”

“그래. 공사현장에서 말이야.”

현성은 빨리 듣고 싶어졌다.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을 보면서 난 착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지.”

“아~ 참. 그게 뭔데요?”

현성은 귀여운 표정과 애교 섞인 목소리로 핵심내용을 재촉했다.

“인력시장에 나온 사람들은 일당을 받고 일을 하잖아. 그분들은 그날 일 한만큼 보수를 받지.”

“그렇죠.”

“난 그 장면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우리 직장인들도 일당의 원리를 생각해야 되는구나. 내가 어제는 정말로 열심히 일을 했다고 하더라도 어젯밤 술을 엄청 마시고 오늘 회사에 와서 어영부영한다면?...... 오늘에 해당하는 내 일당을 못 한 거니까...... 냉정히 따지면 난 일당을 받을 자격이 없고... 그만큼 월급에서 제해야 되는구나.’라고”

현성은 방금 전의 말을 한참 동안 생각해 봤다.

“너무 야박한 소리처럼 들리나?”

“아니에요. 정말 일리가 있는 말씀인 것 같아요.”

“물론 야박한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배트맨은 잠시 말을 멈췄다.

“내가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이라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본다면 억지소리만은 아니라는 걸 누구든 공감할 수 있을 거야.”

현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도 회사에서 인정받는 인재가 되고 싶겠지?”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물론이지요.”

“앞서가는 사람들은 설렘으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해. 물론 그런 사람들은 아주 드물지만 말이야. 그들은 어제의 일은 어제로 끝난 것이고, 오늘의 일은 또 다른 새로운 오늘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그런데 어떻게 권태감이 생기겠어?”

현성은 요즘 자신의 마음가짐이나 근무태도와 비교해 보았다. 고개가 저절로 좌우로 흔들어졌다.

“그런 그들의 머리에는 업무의 효율화나 코스트 절감, 품질향상, 신제품개발, 고객만족 등 기업발전을 위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흘러넘치게 돼있어. 숫자적으로는 적지만 이런 사람들이 결국 기업도, 나라도, 세상도 이끌어가는 핵심인재가 되는 거야.”

연신 고개만 끄덕이던 현성이 갑자기 머리를 스쳐간 기억을 내뱉었다.

“어릴 적에 할아버지께서 해 주신 말씀이 생각나네요.”

갑작스러움은 배트맨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어~ 그래. 무슨 말씀인데?”

“日新 日日新 又日新이요.”

그 말에는 현성의 다짐이 들어있었다. 배트맨의 마음엔 뿌듯함이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배트맨은 적절한 화답을 준비했다.

“그래. 저 동녘에서 떠오른 태양도 비록 어제와 똑같은 모습으로 떠올랐지만 어제의 태양은 어제로 생명을 다한 것이고, 오늘의 태양은 또 다른 새로운 생명을 가지고 살아 숨 쉬는 거야. 마찬가지로 회사에서도 내가 오늘 해야 할 일들이 어제와 똑같은 일의 반복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어제의 일은 어제로 끝난 것이고, 오늘 일은 또 다른 새로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매일매일 내가 가진 열정을 업무에 쏟아부어야 해.”

두 사람은 삼겹살집에서 나와 바로 옆 공원벤치에 앉았다. 현성은 심호흡으로 시원한 바람을 내쉬고 들어마시기를 몇 번 반복하더니 입을 열었다.

“한 가지만 더 말씀해 주세요.”

“으음...? 뭘?”

“에이~ 다 아시면서.”

“노하우 말인가?”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배트맨의 기분은 흡족했다.

“그래. 그럼 또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현성은 마음속에 넣어 둔 노트를 다시 꺼내 들었다.

“자네 좋아하는 명언 있지?”

“명언요?... 몇 개 있지요. 사람마다 좋아하는 명언이 몇 개씩 있잖아.”

“그래. 그렇지. 근데 난 좋아하는 명언이 일반인들보다 많은 편이야. 몇 년 전에 집 근처 시립도서관에 있는 명언집을 샅샅이 뒤져서 맘에 드는 명언 100개를 수집했었어. 꼭 한 달 걸리더군.”

“우와~ 100개씩이 나요?”

배트맨이 자신의 갈색가방에서 초록색 가죽수첩 하나를 꺼내 현성에게 펼쳐 보였다.

“이게 그거야. 명언수첩이지. 힘들 때, 기쁠 때, 약속장소에서 사람을 기다릴 때, 화장실 갈 때,.. 아무튼 틈나는 대로 자주 읽지.

수첩에는 1번에서 100번까지 번호가 매겨진 명언이 깔끔한 필체로 정리되어 있었다. 얼마나 자주 읽었는지 멋진 가죽표지와는 달리 종이는 누렇게 닳아 있었다.

“우와~ 정말 대단하시네요. 흠... 제가 좋아하는 명언도 제법 있는데요.”

현성은 손에 침을 발라가며 빠른 속도로 명언 100개를 훑어 읽었다.

“명언이란 게 훌륭하지 않은 게 없겠지만 그래도 무엇이든 자기 맘에 더 끌리는 게 있기 마련이잖아. 고르고 고른 끝에 힘들게 100개를 선정한 거야. 내가 선정한 명언 진액지.”

“그랬군요... 그럼 이 100개 중에서도 유난히 더 끌리는 명언이 있겠네요?”

“그럼. 물론이지.”

“그렇다면 최고로 좋아하시는 명언은 뭔가요?”

“명언 얘기를 이유 없이 꺼낸 게 아니야. 바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명언을 자네한테 말해주기 위해서였어.”

“그러셨군요. 더 궁금해지는데요? 팀장님께서 가장 아끼는 그 명언말이에요.”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다.”




“이 명언은 내가 아무리 바빠도 하루 한 번은 꼭 암송해.”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라...”

현성은 천천히 읊어보았지만 심금을 울릴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가장 아낀다는 이유가 더 궁금해졌다.

“자네가 나를 만나러 온 ‘오늘’은 하루만 지나도 우리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잖아.”

배트맨의 목소리와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오늘은 우리의 인생에서 단 하루뿐이기에 세상 그 무엇보다도 귀한 보물이지. 억만금을 주더라도 지나가 버리면 과거가 되는 오늘을 무엇으로도 살 수 없잖아. 그렇게 소중한 하루를 사람들은 너무나 헛되게 보내고 있어.

깊은 의미가 담긴 말인 것 같았지만 현성에겐 여전히 감동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돼.”

“감사하는 마음이라......”

“잠에서 깨어났다는 자체로 우리는 신으로부터 소중한 선물을 받고 있는 것이거든.”

“무슨 뜻인지......”

현성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만약에 말이야. 어젯밤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고 영면(永眠)에 빠졌다면 그게 의미하는 것이 뭐겠나?”

“...... 죽었다는 뜻 아닌가요?”

“그렇지. 죽은 거지.”

“그럼 눈을 떴다는 것은?”

“살았다는 거고요.”

현성은 뭐 이리 시시한 질문을 하나 하는 표정이었다.

“자네 지금 아침에 일어나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하루에 뭐 그리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느냐고 생각하고 있겠지?”

현성은 움찔했다.




“자. 아까 내가 제일 좋아한다는 명언을 다시 떠올려봐. 우리한테는 아무 의미 없는 일상이지만 어제 죽은 이의 입장에서 오늘을 보란말이지.”

“.........”

“어제 죽은 사람이 죽어가면서 가장 갖고 싶어 했을 선물...”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 했겠죠?”

“맞아! 그 하루야. 바로 오늘이지!”

배트맨이 기다렸다는 듯 현성의 등을 강하게 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가 매일 맞이하는 하루가 죽어가는 사람들한테는 세상에서 가장 갖고 싶었던 선물일 거란 말이지.”

“결국 산다는 건 오늘이라는 선물을 매일매일 받는 셈이군요. 아! 그런 뜻이었구나.”

현성은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런데 우리는 이해하지 못할 행동들을 해버리잖아.”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신가요?”

현성은 얼굴을 배트맨의 눈에 밀착시켰다.

“선물은 단어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지. 게다가 실제로 선물을 받으면 그 행복은 더 커지게 마련이고.”

“그렇죠. 선물 받고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근데 우리는 죽도록 싫어하잖아!”

현성은 갑작스럽게 변한 배트맨의 강한 말투에 깜짝 놀랐다.

“하루라는 소중한 선물을 그것도 매일매일 받는데 우리는 그 귀한 선물을 눈을 뜸과 동시에 힘들고 짜증 나는 것으로 간주해 버리지.”

현성의 눈은 배트맨의 몸뚱이를 삼켜버릴 기세였다.




“직장인이든, 학생이든, 군인이든... 누구든 아침이 되면 ‘오늘을 어떻게 때우나’하며 그 선물을 빨리 처치해 버리지 못해서 안달이 나있잖아.”

“하루에 그렇게 소중한 의미가 담겨있는 줄 정말 몰랐어요. 그토록 소중한 하루를 무의미하게 흘려보내기에만 급급했으니 저도 참....”

현성은 요즘 본인도 그렇게 살았음을 인정했기에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은 바로 오늘이야! 난 과거에 얽매여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바보지만 지나치게 미래지향적으로 사는 사람도 어리석다고 생각해.

“.........”

“물론 과거는 추억도, 반성의 교훈도 주는 고마운 존재이고, 미래는 꿈이라는 희망을 심어주는 존재지만 과거와 미래의 역할은 그것으로 충분해.”

“과거는 그렇다 치더라도 심지어 희망의 미래에도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의미인가요?”

“과거는 오늘이 걸어온 흔적들이고, 미래는 오늘을 깎아서 만들 조각품이야. 미래가 무엇을 깎아야 할지 안내는 해주겠지만 결국 완성될 조각품의 가치는 오늘을 어떻게 깎느냐에 달려있는 것이지.”

“전 지금까지 오늘보다는 미래를 보고 산 것 같아요. 그래야 되는 줄 알았어요. 팀장님 말씀대로라면 미래는 오늘의 성과물인데 저는 오늘은 소홀히 한 채 미래의 환상만 보고 살아왔네요. 오늘을 잘 살면 자연히 미래가 밝아지는 것도 모르고요.”

말뜻을 알아들은 듯한 현성의 말에 배트맨은 흡족했다. “그렇지! 오늘을 열심히 잘 살면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모두 잘 사는 거야. 오늘은 어제에서 보면 미래이고, 내일에서 보면 과거니까 과거, 현재, 미래를 다 잘 사는 것이지.”

“그렇군요.”

“그런 사람이라면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는 거야. 지금까지 하루하루의 삶에 열정을 다해 살아왔고, 매일을 선물이라 여기며 감사하며 살아왔기에, 한편으론 내일은 선물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각오로 살아왔기에, 그래서 더욱더 혼신의 힘을 다해 하루를 일구며 살아왔기에,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초연한 마음으로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는 거야.”

현성의 심장이 요동쳤다. 벅찬 기분을 참아내느라 애를 써야만 할 정도로.

그러는 사이 배트맨은 무언가 결정적인 표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성에게 강력한 톤으로 메시지를 날렸다.

“과거를 거울삼아,

미래를 희망 삼아,

열정으로 현재를 일구어라.

어제는 거름이 되고,

오늘은 씨앗이 되어,

그대가 꿈꾸던 미래에 풍성한 결실을 거두리라.”


집에 돌아온 현성은 마음속에 적어둔 메모를 컴퓨터에 옮겨 적기 시작했다.


p45,70,100,149. 컴퓨터 모니터 그림.jpg


* 월요병은 내가 만들어 낸 마음의 병

↳ 처방: 즐겁고 행복한 연상으로 치료

* 일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창조의 연속작업

↳ 매일 조금씩이라도 창조를 통해 개선해 나감

↳ 세상을 이끄는 인재로 성장

*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은 오늘

↳ 오늘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

↳ 오늘을 잘 살면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잘 사는 것


어제와 내일 그리고 오늘

떠난 님 그대는 누구신가요

추억도 상처도 주고 간 그대는 누구신가요

슬픔은 더 이상 부질없기에

나만의 눈물을 이제 거두렵니다

오신다던 그대는 어디쯤 인가요

부푼 꿈만 주시고서 어디쯤 오시나요

오실 날도 오실는지도 기약이 없기에

나만의 기다림을 이제 멈추렵니다

맘속에 설렘 없던 그대가 내 님인가요

아침이면 어김없는 그대 진정 내 님인가요

보고도 몰랐었던 내님 이제 찾았기에

나만의 내님을 소중히 모시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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