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하게

자작시

by 김가인 오로시

너는 내가 말했지

말끝까지 들어, 라고

식칼을 겨누며 쏜다

나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얼굴과 얼굴을

틈 없이 맞대고 서 있노라면

달큰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눈동자 위로 흑당이 한 겹 놓인다


너는 언제든 쏠 자세로

식칼을 든 채 나를 바라보고

나는 권총 한 자루 쥔 손으로

흑당을 질겅질겅 씹어 삼킨다



한 치도 비지 않는 거리

손목에 걸린 각도까지

항상 정확히 겨눠져 있다



사실, 식칼도 권총도

우리 손에는 없다

너무 가까워

무엇을 쥐고 있는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뿐


나는 여전히 흑당을 씹으며

밀착된 얼굴로

너를 노려본다



하늘은 푸르고 높은데

바람이 먼저 칼을 들고 덤벼들고

우리는 부둥켜안은 채

각자의 손에

각자의 무기를 쥐고 있다고 믿으며

오늘도

마주보고 있다



진하게

이전 23화냉장고 속에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