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개울 가는 길

윤호시점

윤호 시점 – 3화. 개울 가는 길

식사 후, 아버님은 조용히 말씀하셨다.

“정숙이가 마을 한 바퀴 안내해 줄 게야. 시간 되면 같이 나가 보게.”

나는 잠시 주춤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정숙도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을길은 생각보다 활기찼다.

서울에 비해선 훨씬 한가롭지만, 사람들은 나름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아이들은 나무 아래서 고무줄을 넘고, 집집마다 마당에 널린 빨래가 바람에 흔들렸다.

햇살은 부드럽고, 하늘은 높았다. 그 안에 정숙의 댄 머릿결이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정숙은 내 옆에서 아무 말 없이 걷고 있었다.

나는 괜스레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다, 길가의 나무를 가리켰다.


“가로수가 참 예쁘네요. 여긴 늘 이런가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여름엔 나무 그늘이 커서, 더울 땐 여기서 쉬어요.”


말이 짧고 간결했지만, 그 속엔 이 마을과 오래 지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정이 묻어났다.

나는 그 조용한 목소리에 오히려 마음이 풀리는 걸 느꼈다.


조금 걸음을 옮기니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조금만 더 가면 개울이 있어요. 참 예쁜 곳이에요.”


그 말과 함께 정숙은 나보다 반걸음 가까이 다가와 나란히 걸었다.

그녀의 치맛자락이 살짝 내 옷자락을 스치고, 뺨에선 고운 풀냄새가 났다.


나는 문득 내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졌다.

“저는 장충동에 살아요. 어릴 적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랑 조부모님 모시며 지내왔습니다. 큰아버지는 바로 옆집에서 철물점 하시고요.”


정숙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네.”


짧은 대답. 그러나 무심한 건 아니었다.

가만히 듣고 있다는 표정이 눈매에 번져 있었다.

나는 그 침묵을 불편하게 여기기보다, 오히려 말간 공기처럼 받아들였다.


한참을 걷다 보니 진짜로 작은 개울이 나타났다.

수면 위로 잠자리가 낮게 날고, 개울가 돌다리에 물살이 부딪히며 조용한 소리를 냈다.

정숙은 그곳에 서서 개울을 가리켰다.


“여기… 어릴 때 자주 놀던 데예요.

가끔은 혼자 와서, 물속에 손도 넣고, 그냥 있어요. 조용해서 좋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 옆에 섰다.

그리고 조심스레, 아주 짧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참하고, 어여쁘다.

겉으론 말수가 적고 얌전하지만, 눈매는 맑고 깊었다.

사람 앞에서는 조심스럽지만, 자연 앞에서는 한결 편안해 보였다.


그녀는 내가 본 어느 서울 사람보다도

단단하고 고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어색했지만, 나는 그 어색함이 싫지 않았다.

그날 마을을 함께 걷던 시간은, 조용한 예감처럼 내 마음 어딘가를 두드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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