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호의 시점
제27화. 기차는 부부를 싣고
윤호의 시점
기차 안은 북적였다.
봄을 앞두고 사람들로 붐볐고,
기적 소리는 분명 옛날보다 커지지 않았는데
내 마음은 더 크게 울렸다.
우리는 미리 예약해 둔 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정숙은 말없이 내 옆에 앉아
양손에 꼭 이바지 음식을 들고 있었다.
작은 보따리엔
정숙 어머님이 싸주신 간단한 간식과
따뜻한 약차도 들어 있었다.
나는 그 모든 것이
기차 바닥보다, 철로보다 더 단단하게
우리 둘을 연결해 주는 끈 같았다.
나는 정숙의 손을 조심스레 쥐었다.
그녀의 손은 여전히 차분했지만
살짝 떨리는 기운이 느껴졌다.
나도 그랬다.
우리는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기차는 마을을 지나고, 강을 지나고,
산을 넘으며 점점 서울 쪽으로 나아갔다.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정숙 씨,
우리 집 얘기 조금 더 해드릴게요.
편지에 썼던 것 말고… 더 자세하게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눈빛엔
이제는 나를 믿고 의지하겠다는
담담한 결심 같은 것이 있었다.
“우리 집은 장충동이에요.
할아버지랑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큰아버지 내외가 옆집에 사세요.
큰아버지가 철물점을 크게 하셔서
우리 집도 그 덕에 여러모로 도움을 받아요.”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씩
정숙에게 천천히 소개하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조부모님의 성격,
어머니의 조용한 손길,
큰어머니의 웃음소리까지—
내 삶의 풍경을 정숙이 조금이라도 익힐 수 있도록
마음 다해 이야기했다.
정숙은 내 말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그녀가 문득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창밖 햇살이 그녀의 눈에 머물렀다.
그 웃음은 말보다 따뜻했고
나는 또다시 그 웃음에 녹아들었다.
‘그래, 이 사람과 평생 함께 살아야겠다.’
그 다짐이 기차 안에서,
출발선이자 결심점이 되었다.
손을 놓지 않은 채,
우리는 서울을 향해,
함께한 첫날의 끝을 향해
조용히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