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 감정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 하루하루 두려움에 떨었고 고등학교 입학식은 바짝바짝 다가오고 있었다. 교복을 맞추기 위해 무기력한 몸을 이끌고 교복점에 왔다. 교복을 입어 보고 있었는데, 또 다른 학생이 들어왔다. 설렘이 가득해 보이는 학생과는 달리 거울에 비친 생기 없는 내 얼굴엔 설렘 따윈 찾을 수 없었다. 이런 얼굴로 학교 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걱정만 앞섰다. 조금이라도 밝은 얼굴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매일밤 미소 짓는 연습을 하며 잠에 들었다.
어김없이 침대에서 주말을 보냈는데, 눈떠보니 벌써 월요일 오전 6시. 치이이- 늘 그렇듯 압력밥솥이 내는 소리가 나를 깨웠다. 오지 않았으면 했던 날이 오고야 말았다. 덜 뜬 눈으로 샤워를 끝내고 나면 엄마가 차려준 따뜻한 아침밥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까지 먹고 나면, 세상에 섞이기 전 내게 주어지는 준비를 마친다. 그렇게 나는, 결국 우울한 마음을 가지고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 후, 나는 우울을 감추기 위해 늘 해맑은 척해야만 했다. 수업을 듣고 있을 때나 친구랑 수다를 떨다가 갑자기 우울한 감정이 찾아오면 이유 없이 눈물이 차오르곤 했는데, 그럴 때면 하품하는 척 연기했다. 오후 아홉 시까지 체력이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친구들처럼 야간자율학습도 곧잘 했다. 친구들과 시내 가는 날로 약속한 매주 수요일엔 집에 가서 누워있고 싶었지만 늦은 밤이 되어서야 들어가곤 했다.
하루하루 정신을 붙잡으며 지내다 보니, 어느새 벚꽃이 만개한 4월이었다. 오늘도 울지 않을 각오를 단단하게 하며 신발장에서 나선다. 통학버스에 한발 올리는 순간, 나는 가면을 쓰고 본격적으로 나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한다. 버스에서 울면 곤란하니 항상 맨 뒷자리에 앉았는데 오늘은 그 자리에 같은 반 친구들이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선주, 명환, 영원이다. “승아 안녕!” 활기찬 인사에 애써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뒤에서 하나, 둘, 세 번째 자리. 텅 빈 주변 좌석을 확인한 뒤, 가방을 품에 안고 앉아 차창 너머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조용히 가고 싶었지만 곧이어 탄 긴 생머리 수민이가 내 옆에 앉는 것이 아닌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어제 시험공부했어?”라고 물었다. 친구는 할 리가 있냐면서 호탕하게 웃는다. 그 후로 몇 마디를 이어갔지만, 기력이 없어서 급하게 대화를 마무리 지었더니 정적이 흘렀다. 한껏 따뜻해진 날씨를 탓하다가 일찍 도착하기만을 바랐다. 이제껏 학교에서 울어본 적이 없었기에 늘 도착 전에 마음이 요동친다. 지금 이 정도로 느껴지는 우울이라면 무조건 울 것만 같다… '오늘도 울지 말자…. 오늘도 울지 말자….' 나만의 주문을 외우며 버스에서 내렸다. 이 거리가 오늘따라 짧게만 느껴진다. 어슬렁거리면서 땅만 바라보며 걷고 있는데 같이 버스 탄 친구들이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친구들의 대화에 애써 맞장구를 치지만, 착한 친구들이 미울 만큼 불편했다.
교실에 도착하니 먼저 와있던 친구가 사물함에서 일본어책을 꺼내고 있었다. 첫 교시가 일본어 수업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문득 주말 동안 우울함에 휩싸여 외우지 못한 히라가나 가타카나 숙제가 떠올랐다. 가방을 내려두며 일본어책을 주섬주섬 챙기지만, 우울한 감정은 내려놓을 수 없었다. 괜찮을 거라고 또 되새기며 옆 건물에 있는 일본어 교실로 향했다. 교실 문을 열었더니 험상궂게 생긴 일본어 선생님이 앉아계신다. 히라가나 가타카나 시험이 있으니 조용히 자리에 앉아서 외우고 있으라고 말하신다. 오늘따라 유독 차갑게 느껴지는 의자에 앉아 한숨을 돌리자마자 종이 울렸다. 일본어 선생님의 농담을 시작으로 수업이 시작됐다. 선생님의 재치 있는 이야기에 친구들은 까르륵 웃음을 터뜨린다.
바로 그때,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고 식은땀이 흐른다. 두 눈은 초점을 잃고 떨리는 두 손을 마주 잡으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후우- 후우- 심호흡을 해보지만, 숨은 더 가빠질 뿐이다. 선생님의 말소리와 친구들의 웃음소리는 멍멍한 소리로 들려오고 나 혼자만 시간이 멈춰진 기분이다. 이런 불안, 처음 겪어보는 느낌이다. 큰일이다. 눈물이 나오기 전에 선생님께 보건실로 가야 된다고 말해야 한다. 손을 들었지만, 이런 모습을 친구들에게 들키기 싫어서 정신을 붙들고 교탁으로 나섰다. “선생님… 나중에 다 설명할 테니…. 지금 빨리 보건실 가야 해요. 몸이 이상해요…” 나를 빤히 바라보는 선생님의 눈엔 멀쩡해 보였는지 나온 김에 히라가나 가타카나를 발표하고 들어가라 하신다. 안 되겠다 싶어 개미 목소리로 밝힌다. “제가 정신과를 다니고 있는데…” 뚝. 뚝. 고였던 눈물이 떨어지고 말았다. 결국 감당할 수 없는 불안에, 나는 결국 선생님을 원망하며 교실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복도에 나오자마자 그토록 참았던 닭똥 같은 눈물을 쏟고 말았다.
이 불안은 학교 밖에서도 나를 괴롭혔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역에 갈 때나 장을 보러 마트에 갈 때도 찾아오는 이 불안함이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분명 무엇이 나를 옭매이는데, 숨을 못 쉬겠고 손이 떨리며 식은땀이 났다. 이명까지 들릴 때면 나를 걷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길바닥 모퉁이에 꾸부려 앉아서 천천히 호흡해야만 그나마 괜찮아졌다. 사람이 많은 곳과 시끄러운 곳을 열심히 피해 다녀봤지만 피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이 불안이 열 번 정도 반복됐더니 밖으로 나가는 것이 무서울 지경까지 이르렀다. 결국 내 발로 병원을 또다시 찾아왔다. 나의 주치의는 예정된 내원일보다 열흘이나 일찍 온 나를 걱정스러운 얼굴로 보며 물었다.
“어디가 불편했나요…?”
“학교에서 이 기분을 처음 느꼈는데 이젠 밖에서도 그래요.
정신이 혼미해지고 식은땀이 나면서 숨이 잘 안 쉬어져요. 미칠 것 같아요."
주치의 선생님이 권유한 검사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동안 걱정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예측하는 병명이 맞을까? 우울증이 더 심해지면 어떡하지? 내가, 이 상태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날 밤도 역시 편하게 잘 수가 없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복잡한 머리로 병원에 내원했고 주치의 선생님은 결국 내가 예상한 병명을 말씀하셨다. 공황장애였다.
금요일 아침, 꽉 끼는 교복 셔츠를 입고 밥을 대충 떠먹은 후 평소와 다름없이 통학버스에 올랐다. 오늘도 불안한 마음으로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교실에 들어와서 자리에 앉았다. 어제 본 드라마에 관한 이야기가 불거지고 있는 친구들 사이에서 잘못 없는 손톱만 만지작만지작. 애써 불안한 마음을 숨기고 있다. "승아. 혹시 지금 힘들어?" 짝꿍이 흔들리는 나의 눈동자를 봤는지 말을 걸었다. 저번 일본어 시간 이후로 친구들은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듯했다. 마치 나의 부모님처럼 내 눈치를 살폈고 수시로 괜찮냐고 물어봐 주었다. 나는 이 감정을 괜히 친구들에게 옮길까 봐 더욱더 꽁꽁 감추려고 애썼다. 하지만 우울함과 수시로 찾아오는 공황은 점점 심해져만 갔고 하루하루 견디기 벅찼다. 더 이상 해맑은 척할 수도, 눈물을 참을 수 없었기에 긴 고민 끝에 내린 결심은 자퇴였다. 4교시가 끝나는 종소리가 울린다. 몇 명의 친구들은 급식실로 뛰어가고 나랑 항상 같이 먹던 지혜가 내 자리로 다가왔다.
“승아. 뭐 해! 빨리 가자.”
“어... 점심에 엄마 오기로 해서 먼저 먹어.”
“왜...?”
“어차피 알게 될 테니까… 나 자퇴해.”
“어…?”
친구는 나의 자퇴 소식을 듣고선 놀라워했지만, 이해 가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들이 모두 나가고 텅 빈 교실에서 혼자 멍하니 창문 너머를 바라보고 있다. 넓은 운동장 옆길로 친구들이 장난을 치며 걸어가고 있다. 친구들의 그림자마저 사라질 때 수많은 생각이 스쳤다. 지금이라도 자퇴를 안 한다고 할까? 아니야. 이 상태로 학교에 다니기 힘들 거야… 그래도… 자퇴하고 친구들과 멀어지면 어떡하지…? 그리고... 검정고시는 한 번에 통과할 수 있을까...? 과연 자퇴하고 나서도 잘 지낼 수 있을까…? 나의 자퇴 소식이 전교에 퍼졌는지 반 친구들은 물론이고 저 끝 반인 8반 친구들까지 나에게 달려왔다. 오히려 나보다 더 걱정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친구들의 시선에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나는 멋쩍은 웃음으로 친구들에게 괜찮다고 안심시키며 엄마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교무실에 도착했다는 엄마의 문자는 구원이었다. 머리가 휘날리도록 교무실을 향해 달려갔다. 헐떡이며 교무실 문을 열자 저 멀리, 선생님들만 앉던 의자에 우리 엄마가 앉아 있다. 이 서러움은 대체 뭐지. 엄마를 보자마자 눈물이 차올랐다. 하지만 마지막 날에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괜한 교복치마만 만지작거리면서 눈물을 참았다. 담임선생님이 들고 오신 자퇴 신청서에 성명과 생년월일, 주소, 번호, 사인까지 적은 후에야 실감이 났다. 아, 오늘이 교복을 입을 수 있는 마지막 날이구나...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고 사 개월간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교무실에서 나온 후,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위해 선생님과 반으로 가고 있는데,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는 선생님의 인자한 미소는 당장이라도 자퇴 신청서를 찢고 싶게 만들었다. 교실 문을 열었더니 나를 향해 바라보는 수많은 눈동자가 전부 슬퍼 보인다.
“그동안 힘들었지? 꼭 잘 지내야 해!”
“강승아 최고다~!”
"정말 많이 수고했어 승아."
내가 먼저 입을 열기도 전에 울먹이는 목소리로 위로해 주는 친구들이 그지없이 고마울 뿐이다. 내가 우울과 불안 속에서 학교생활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이 친구들 덕분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모습은 더 밝게 보이고 싶었다. 함박웃음 지으며 손을 힘차게 흔들었다. "안녕!"
그토록 햇빛이 쨍한 2019년 6월 21일, 고등학교 자퇴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