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은 감기 같은 게 아니었어

by 승아

자퇴 후, 겨울이 찾아왔다. 오늘도 어김없이 잘 준비를 마치고 수면유도제를 포함한 항우울제를 먹기 위해 캄캄한 부엌으로 나왔다. 식탁 위에는 보리차가 담겨있는 물병이 약봉지와 함께 꺼내져 있었다. 아무래도 엄마가 꺼내놓은 듯하다. 보리차를 컵에다가 콸콸 따랐다. 약봉지를 뜯어보려 하지만, 손에 힘이 없어 이마저도 쉽지 않다. 가까스로 뜯어 탈탈 털었더니, 내 손바닥 위로 알약이 쏟아져 나왔다. 지금껏 먹어본 약이라곤 감기약뿐이라서 약의 색이 이렇게까지 다양할 줄 몰랐다. 타원형의 하늘색, 원형의 분홍색과 노란색, 가장 큰 흰색 알약… 손 안을 가득 채운 알약들은 나와는 다르게 저마다 다양한 색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스로 생각하는 나는, 무난하고 재미없는 무채색이 분명하다. 이따위게 내 우울을 사라지게 해줄까? 과연… 날 살려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늘 그렇듯 약을 삼켰다. 어차피 나을 수 없다면, 차라리 나를 영원히 잠들게 해주길.


겨울이 오기 전, 나는 뭐라도 해야 하는 사람처럼 초조했다. 당장 어떻게 해야 이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가야겠다고, 운동을 시작해야겠다고, 취미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나라 땅을 밟으니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았고, 일주일에 세 번 꾸준히 요가를 하니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또 라탄 공예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등나무 줄기를 엮으면 실타래처럼 엉킨 생각들이 풀리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하루빨리 검정고시를 합격해야 한다는 마음에 학원도 다녔다.


이러면 우울과 불안이 금방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잠시뿐이었다. 수속할 때는 설레었지만 여행지에서도 우울한 것은 마찬가지였고 요가를 끝낸 후 뿌듯함은 몇 시간채 되지 않아 사라졌다. 되려 쓸모없는 걱정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무기력과 우울, 불안은 점점 나를 잠식해 갔다. 그렇게 반년이 흘렀다. 그동안 하고 있었던 건, 노력이 아니었다. 외면이었던 것이다.


“일어나~ 밥 먹자.”

엄마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눈이 떠졌다. 어…? 내가 언제 잠들었지. 그 순간 엄마가 커튼을 걷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1시를 가리키고 있다. 아… 내 하루는 또 이렇게 의미 없이 흘러가고 있구나. 오늘도 역시 깨어나지 못했으면 했는데 눈이 왜 또 떠진 거야. 도대체 왜. 들어오는 쨍한 햇살에 정신이 들었다. 가슴이 답답해지며 숨 쉬는 것이 힘들다. 그러니 다시 잠에 들어야만 한다.


“아니, 왜 깨워!”

“좋아하는 미역국 끓여놨어. 밥 말아서 조금이라도 떠먹고 다시 자.”

엄마는 근심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알았어…. 좀 이따 먹을게….”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엄마에게 괜한 소리만 치고 말았다. 사실은 나도 언제 침대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말했다. 우울증은 감기처럼 왔다가는 거라고. 그러니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라고. 그럴 리가. 우울증은 약이나 주사 따위로 나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온마음 다해 노력해 보아도 결국 제자리니까. 구렁텅이에 빠져있는 기분. 어쩌면 영영 나갈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


우울증은 잠시 지나가는 감기가 아니다. 오랫동안 아파야 하는 불치병 같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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