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내 곁에 있어줘

by 승아

퇴원 후,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 행복한 순간들은 늘어가고 소중한 추억들이 쌓여갔다. 한편, 우울과 불안은 마치 나를 떠날 채비를 하는 것처럼 가끔 찾아왔다.


“브이 좀 치우고 자연스럽게 웃어봐~!”

지수가 어이없다는 듯 깔깔 웃으며 목청을 높였다. 발이 모래에 빠지는 것도 모르고 나를 찍기에 몰두한 지수의 긴 생머리가 춤을 추듯 찰랑인다. 끼룩거리는 갈매기 소리와 거친 파도 소리가 내 귀 안을 파고들면서 마음을 울렁이게 했다. 가슴에 온기가 번진다. 괜한 부끄러움에 팔을 휘저으며 “이제 됐어-!”라고 소리치지만, 고마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지수와는 중학교 동창이다. 내가 깊은 우울함에 빠져 집에만 있을 때, 지수는 날이 좋다며 산책하자고, 입양한 고양이를 보러 오라는 둥 수시로 나를 집 밖으로 불러냈다. 내가 우울증을 겪던 6년을 늘 곁에서 지켜본 지수는 말로만 나를 위로하지 않았다. 대신 그네에 나란히 앉아 새벽까지 수다를 떨어주고, 내 앞에 앉아 술잔을 채워주며, 나의 보폭에 맞추어 산책을 해주었다.


“승아, 이 정도면 많이 찍었다. 이제 한잔하러 갈까?” 지수는 광안리에 오면 꼭 가고 싶었다는 맛집을 내게 보여주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지수의 발은 유난히 가벼워 보였다. 지수와 나는 걷는 속도가 비슷하다. 늘 나의 보폭에 맞춰서 걸어주는 지수의 따뜻한 마음을 알기에 웃음이 난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횟집. 간판만 봐도 맛집이 확실하다. 우리는 바다가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여기 소주 한 병 먼저 주세요-!” 늘 그렇듯 안주를 고르기도 전에 술을 시켰다. 쨍한 노을빛은 지수의 얼굴에 비추어 눈이 부셨다. 나의 술잔을 채워주는 지수의 모습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어 빤히 바라보았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수는 술잔을 비우곤 말했다.


“와…. 우리 안 지 벌써 8년 된 거 알아?”

“십 년만 더 친구 해줄게.~”

“됐고, 더는 우울하지나 마.”

“…”

나는 아직도 친구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떠한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우린 서로를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지수는 내가 자퇴하던 날, 내 책 속에 ‘나는 너 응원해.'라는 쪽지를 넣어두었고, 정신병동에 입원하던 날에는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적어두는 친구니까. 지수는 늘 내게 든든한 친구였다.



나는 사소한 순간에도 행복을 느낀다. 수면 위로 반짝이는 윤슬을 보았을 때. 산책하다가 우연히 장미 넝쿨을 보았을 때. 그리고 폴짝거리는 강아지를 보았을 때. 어느 날 카페에서 펼친 책 위로 내려앉은 햇살을 마주할 때. 아침 9시, 나를 깨우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우울함에 휩싸이고 나서야 나는 이런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깨달았다. 그래서 요즘 사소한 순간에 느끼는 행복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랬더니 무언가로 꽉 차 있던 머리와 마음이 평온했다. 이 행복이 늘 내 곁에서 유영하길 바란다. 우울함이 찾아왔을 때, 이 힘으로 금방 털어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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