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가를 처음 접한 것은 열일곱 살 무렵, 우울증을 앓기 시작했을 때였다. 세상과 단절된 듯 어둡고 무거운 시절이었다. 잠시라도 마음을 달래고 싶어 단순한 스트레칭쯤으로 여겨 요가원을 찾았다. 문을 열자 낯선 향기가 내 코끝을 스쳤다. 인센스의 짙은 향이었다. 처음 맡아보는 향이었지만 묘하게 익숙했고, 그때의 공기와 온도, 그날의 내 마음까지 함께 봉인된 듯 지금도 그 냄새만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요가는 내가 상상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 단순한 스트레칭이 아니라, 이해하기 어려운 동작과 버티기 힘든 자세의 연속이었다. 다리를 들어 올려 목덜미를 감싸야했고, 두 팔로만 지탱해 거꾸로 서야 했다. 몸은 금세 흔들렸고, 내 마음도 따라 흔들렸다. 수련 내내 ‘내가 지금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수없이 되뇌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수련하러 가는 발길은 멈추지 않았다.
반년쯤 지났을 무렵, 요가는 어느새 내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었다. 무엇이 나를 붙잡았던 것일까. 동작을 해냈을 때 찾아오는 강렬한 성취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꾸준히 다니다 보니 밥 먹는 일처럼 당연한 습관이 되어버린 것일까. 마음이 안정되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일곱 해가 지난 지금도 저녁 일곱 시가 되면 내 발걸음은 나도 모르게 요가원으로 향한다는 사실이다.
“무릎을 조금 더 접어 발끝을 머리 쪽으로 당겨올게요. 코어에 힘주고, 겁먹지 마세요. 잘하고 계세요~”
후— 후— 숨을 뱉으며 나는 몸을 내맡긴다. 선생님의 손길에 의지했지만, 결국 나는 내 힘으로 버티고 있었다. 마침내 버킷리스트에 적어 두었던 1)브르스치카아사나를 해낸 것이다. 그 순간은 파도에 몸을 던지는 것 같았다. 차갑고 거센 물살이 나를 덮치는 듯 두려웠지만, 한순간 짜릿한 전율이 온몸을 감쌌다. 힘든 과정을 지나온 끝에 찾아온 해방감이었다. 웃음이 절로 터졌다.
“이제 천천히 들이마시고, 내쉬며 팔다리를 길게 뻗어 힘을 빼볼게요.” 수련의 마지막 피날레인 2)사바아사나. 매트 위에 등을 붙이고 눈을 감는 순간, 친구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승아야, 너 참 신기하지 않아?
몇 년 전만 해도 금세 무너질 듯 보였는데, 시간이 지나자 아무 일 없었던 사람처럼 다시 웃더라.
지금도 힘들어 보이지만, 넌 결국 또 일어날 거야. 내가 알아. 어쩌면 넌, 정말 강한 사람일지도 몰라.”
요가를 하다 보면 자주 비틀거리고 넘어지곤 한다. 팔에 힘이 풀려 버티지 못하거나, 호흡이 끊겨 자세가 무너질 때도 많다. 그러나 다시 몸을 일으켜 동작을 이어가다 보면 어느새 그 자세는 조금 더 익숙해지고, 마침내 내 것이 된다.
삶도 그렇다. 우리는 쉽게 흔들리고 자주 무너진다. 그러나 중요한 건 넘어지지 않는 완벽함이 아니다. 다시 시선을 한 점에 고정하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일어서려는 태도다. 그렇게 다시 버티고 또 일어서다 보면 어느 순간, 삶의 동작 하나하나가 내 것이 된다.
나는 아직 모든 아사나의 이름을 외우지는 못한다. 그러나 오늘, 바라고 바랐던 1)브르스치카아사나를 해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어쩌면 친구의 말처럼, 나는 이미 강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실을, 요가 매트 위에서 비로소 깨닫는다.
1) 브르스치카아사나(전갈자세)는 팔꿈치와 손바닥으로 바닥을 지지하며 다리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는 고난도 요가 자세로, 전갈이 꼬리를 아치형으로 들어 올려 공격하는 모습에서 이름이 유래했습니다.
2) 사바아사나(송장자세)는 요가 수련을 마무리하는 자세로, 죽은 사람처럼 힘을 완전히 빼고 누워 눈을 감은 채 모든 움직임을 멈추는 것이 특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