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하고도 반년이 더 흘러, 나는 어느덧 스무 살이 되었다. 우울증은 내게 수건 같은 존재가 되어있었다. 늘 곁에 있어서 익숙하지만 없어도 딱히 문제 되지 않은 존재. 나를 지배한 우울은 수년 동안 떠날 생각을 안 한다. 어딜 가도 붙어있는 우울에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어서 체념했다. 이제 진료실도 집처럼 익숙해졌다. 한 달 만에 만난 주치의 선생님이 묻는다. “그동안 기분이 어땠어요?” … 어땠긴요, 당연히 우울했죠. 늘 같은 답을 하는 것도 지겨워서 침묵으로 답했다. 선생님의 시선을 피하며 창문 너무 붉게 물든 단풍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가을은 내게 설렘을 안겨주는 계절이다. 그때, 순간 밀려드는 불안감. 이 계절을 다시 보지 못하면 어쩌지. 선생님은 나의 침묵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챈 걸까.
"한 달 동안 많이 힘들었어요?" 선생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제가 단풍을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휴지를 건네주는 선생님의 덤덤한 표정에 정말로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료실의 분위기는 꽤 냉랭해졌다. 창밖으로는 바람에 단풍이 떨어지고 있다. 나의 상태가 더 악화한 것을 본 선생님은 약을 늘려 보자고 권했고, 이주 뒤에 꼭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몇 번이고 당부하듯 말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늘어난 약봉지를 보니 발걸음이 무거웠다. 이 거리를 다시 걸을 수 있을까? 이주 뒤에 선생님을 다시 볼 수 있는 걸까? 나는 언제쯤 웃을 수 있을까. 오늘을 살아낼 자신조차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내년 가을을 꼭 다시 보고 싶었다.
몇 년 전에도 검정고시를 준비했던 적이 있었다. 그땐 좁은 수강실에서 주던 압박감에 공황을 겪어 포기해야 했다. 이대로 가만있을 수 없단 생각이 들어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드디어 고사장에 들어왔다. 할 수 있어…. 침착하게 해 보자. 그렇게 1교시가 시작되었다. 4번 문항을 풀고 있는데 연필을 잡은 손이 떨린다. 집중해보려 하지만 교실에 빼곡 채운 수험자들이 자꾸만 신경 쓰인다. 가슴이 옥죄여 오고 얼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또 이런 식이라니.
결국 짐을 챙겨 집으로 가는 길, 2교시를 시작하는 종소리가 나의 마음을 세차게 울렸다. 그날 이후, 나는 지하철에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면서도 공황을 겪어야 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걸까?
그날 밤,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홧김에 손목을 그어버린 것이다. 이후, 날카로운 물건만 보면 그곳으로 손이 먼저 향했고, 어떤 날엔 푹 자고 싶어서 수면제를 털어 넣은 탓에 위 세척을 해야 했다. 그저 막막한 마음과 우울함을 다른 데로 돌리고 싶어 저지른 자해의 시작은, 이후 나를 밑바닥까지 끌어내렸다. 그렇게 도망을 쳐봐도 내가 우울한 현실이 잊혀지는 건 아주 잠깐이었기에 차라리 죽음을 원했다. 차가 전속력으로 달리는 차도에 서서 눈을 감았고, 까마득한 높이에서 떨어지면 이 세상에서 한 번에 사라질 것만 같아서 수시로 옥상 난간에 올라갔다. 하지만 꼭 다시 만나자는 선생님의 말이 귀에 맴돌아 그럴 수 없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내게 흉기였다.
그렇게 나는 결국 폐쇄병동에 입원하기로 결정했다. 이곳에 입원하기 위해서는 다소 깐깐한 절차들을 거쳐야 했다. 먼저 간호사는 나의 모든 짐을 가져갔다. 생리통약부터 엄마가 챙겨준 바디로션, 콘택트렌즈마저도. 그동안 몇 명이 입었는지도 모를 허름한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나니, 내 상태가 심각하다는 게 실감이 났다.
어느새 해가 저물었다. 코로나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오기 전까지 오늘 밤은 1인실에 꼼짝없이 갇힌 신세가 되었다. 혼자 남겨진 적막이 낯설다. 병동으로 들어오기 전, ‘언제든 나오고 싶으면 엄마한테 전화해~’ 문틈 사이로 보이던 엄마의 밝은 미소를 떠올리며 낯선 침대에 엎드려 일기장을 펼쳤다.
2022.10.28 19:00
우울하다. 이 말이 아니면 나를 설명할 말이 딱히 없다. 누구라도 좋으니 알아줬으면 좋겠다. 내가 여기까지 올 줄 몰랐는데… 날 이렇게까지 만든 사람이 누굴까. 아니. 내 스스로 잘못한 걸까? 다 내 탓이었던 걸까? 나는 그래도 잘 살려고 노력했는데 왜 이렇게 된 걸까. 나보다 더 우울한 사람이 있기나 할까? 내가 적응할 수 있을까? 무섭다.
“강승아 님?”
간호사의 목소리에 흠칫 눈을 떴다. 벽지도, 이불도, 커튼도, 주변이 모두 새하얗다. 순간 내가 죽어서 천국에 와 있는 줄 알았다. 어제는 정신이 없어 주위를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어제 코로나 검사는 음성 나오셨고, 지금 아침 식사하러 가실게요-.”
간호사를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주위를 살피며 괜한 손톱만 만지작 거렸다. 데스크를 지나 탁 트인 공간에 놓인 10인용 테이블 세 개가 보인다. 주변으로 둘러싸인 병실 문을 보니, 아마 이곳은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인 것 같고… 테이블 옆에 내 키를 훌쩍 넘기는 배식 차가 서있다. 병원복을 입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걸 보니 이곳이 식사하는 곳인가 보다.
백발의 할머니,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애와 환자복 대신 몸빼바지를 입고 있는 중년 아줌마, 떡진 머리를 질끈 묶은 젊은 여자. 사람들을 살피던 그때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여자. 그녀의 눈이 유난히 날카로웠다. 왠지 무서워서 눈을 재빨리 피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모두들 평범한 모습이었다. 그저 환자복이라는 단체 티셔츠를 맞춘 것처럼 보였달까? “앞으로 함께 지내게 될 분입니다~” 간호사는 짧은 말로 나를 소개하곤 배식 차로 향했다. 모든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나는 이를 꽉 깨물며 미소를 짓고 고개를 숙인 채 재빠르게 줄을 섰다. 제발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으면… 조용히 있다가 하루라도 빨리 퇴원하고 싶은데…
2022.11.01 10시
세찬 비가 쏟아졌다. 비가 와서 기분이 좋았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고 우산을 펴지 않았다. 빗속으로 들어갔다. 그랬더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눈물은 비와 함께 섞였다. 비는 나를 위로해 준다. 그리고 발밑에 있는 물웅덩이를 발로 차면서 괜한 화풀이를 하다가도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우울도 그곳으로 빠져서 사라져 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2022.11.09 21시
여기서 몇 밤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나를 잃어가는 걸까. 나를 지키고 싶은 마음에 발버둥을 쳐보지만 그대로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까지 힘들어야 하는지 이해해보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다. 이제 나올 눈물도 많지 않은 것 같다. 물을 많이 먹어둬야겠다.
아침이 밝았다. 밥을 먹기 위해 줄을 서있는데 누군가 내게 ‘승아 씨?’하고 말을 걸어온다. 돌아보니 큰 눈이 날카롭게 생긴 그 여자였다.
“어제는 잘 잤어요?”
“네? 네…!”
그녀의 말투는 다정했다. 무서운 사람이라고 괜히 오해한 것 같아서 미안했다.
“혹시 흡연하세요? 저희 하루에 딱 두 번. 아침 9시, 저녁 6시에 다 같이 흡연실에 가는데, 간호사가 직접 불을 붙여줘요.”
이 외에도 그녀는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예를 들면 샤워실엔 샤워기 호스가 없다는 것, 공중전화는 이른 아침이나 2시가 되면 사람이 없으니 괜히 줄 설 필요가 없다는 것. 고마웠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우리는 서로를 몰랐지만, 함께 밥을 먹고 웃음을 공유하며 하루를 이겨내곤 잠에 들었다. 정해진 시간에 약을 먹고 심리 상담과 음악치료, 미술치료 등 다양한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우울과 불안으로 요동치던 나의 마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잔잔해졌다. 새벽마다 종종 들려오는 누군가의 괴성이나, 딱 한 번 응급 상황을 알리려 울리는 사이렌 때문에 잠에서 깼던 날을 제외하면 꽤 평범한 하루하루가 흘러가고 있었다.
2022.11.29 9시
아침이 밝다. 내 마음도 밝다. 아침부터 일기를 쓸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늘 하루가 밝았으면 좋겠다. 그동안 어두웠으니깐 오늘 하루만큼은 밝아도 되지 않을까. 내가 좋아하는 가을이 지나갔다. 우울도 같이 지나갔나? 지금 이 기분 그대로 하루를 보내고 싶다. 나는 그럴 자격이 충분하니까.
2022.12.02 16시
세상 밖이 그리워졌다. 여행을 가고, 운동을 하고, 한적한 카페에서 책도 읽고 싶다. 평범한 일상이 그리워졌다. 무엇보다 엄마밥이 먹고 싶다.
어느새 쇠창살 너머, 첫눈이 내리고 있다. 나의 스무 살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세상에 나갈 용기가 생긴 걸까. 나는 공중전화 앞에 서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