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울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by 승아

몇 년 만에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가족여행을 왔다. 오랜만에 네 식구 아니, 여섯 식구가 한 차에 몸을 싣고 달려온 애견펜션이었다. 수영장에서 한참을 헤엄치며 신나게 놀던 강아지들의 젖은 털을 정성스레 말리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늦은 저녁 식탁 앞에 마주 앉았다. 아빠와 엄마, 언니와 나. 분명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닌데, 어쩐지 공기 사이에 어색한 정적이 고요하게 깔려 있었다. 몇 년 만의 가족여행 때문인지, 아니면 햇볕 아래 강아지들과 뛰놀다 지쳐버린 탓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회와 고기가 식탁을 가득 채우고, 수저를 들기 위해 서로의 손이 스칠 때마다 묘하게 풀리는 긴장감이 있었다. 이런 날 술이 빠지면 섭섭하다며, 아빠는 능숙한 손짓으로 소맥을 맛깔스럽게 타 주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나는 그 말에 괜히 과장된 돌고래 소리를 내며 호응했고, 엄마는 “오늘 적당히 마셔라”라며 잔소리를 빠뜨리지 않았다. 그렇게 잔을 맞부딪치는 순간, 해가 느리게 가라앉는 노을처럼 우리 사이의 분위기도 서서히 따뜻해지는 듯했다. 각자의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두고, 비워져 있던 마음의 허기를 조용히 채우는 시간이었다.


식사가 중반쯤 흘러갈 때쯤, 엄마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승아야, 너 요즘 우울과 불안을 견디는 법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아서… 엄마는 그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우리 딸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릴 때마다… 엄마 심장은 천 갈래로 찢어지는 것 같았어.”


엄마의 목소리는 술기운도, 피곤함도 아닌 아주 오래된 마음의 피로가 살짝 묻어 있는 음성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무겁게 가라앉는 분위기를 피하고 싶어, 농담처럼 툭 던졌다. “엄마, 나 좀 강해졌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언니가 말을 가로챘다.

“야. 너 힘들 때, 엄마가 나한테 동생이 너무 힘들어하는데 같이 죽자고 말한 적도 있어. 언니가 그때 얼마나 속상했는지 알아?”

언니의 눈동자가 잔잔하게 떨렸다. 그 안에는 오래 참아온 무력감과 애정이 동시에 비쳐 있었다.


아빠도 가만있지 않았다.

“엄마가 밤마다 아빠 품에서 울었어. 승아 아픈 게 다 자기 탓이라며… 아빠도 사실 울음 참느라 진짜 힘들었다니까.”

말투는 농담처럼 들렸지만, 그 뒤에 눌린 진심은 가볍지 않았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내가 가장 어두웠던 시기를, 우리 가족이 어떤 마음으로 버티고 있었는지. 그 누구도 내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말해주지 않았던 사실들을, 술잔 기울어진 이 밤에서야 겨우 듣게 된 것이다.


그동안 나는 그들이 든든한 가족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 든든함이 내가 무너질까 봐 더 단단하게 꾸며낸 껍데기였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나를 지키기 위해, 나보다 앞에서 울지 않기 위해, 그들은 오래도록 숨을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또다시 입버릇처럼 그 말을 내뱉고 말았다.

“내가 아파서… 미안해.”


하지만 미안함은 돌려줄 수 있는 감정이 아니라는 걸 안다. 오래 마음이 아픈 일은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일곱 해가 넘는 시간 동안, 내가 혼자 버텼다고 믿었던 그 자리에는 언제나 가족들의 그림자가 겹쳐 있었다. 내가 쓰러지지 않도록 기울어진 마음을 붙들어 세운 것은 결국 그들이었다.


그래서 오늘 밤, 식탁 위의 창백한 조명 아래에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앉아 따뜻한 밥을 먹고, 소맥잔을 가볍게 부딪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강해서가 아니라, 가족이 내 곁에서 한 사람 몫의 사랑을 나눠 들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 사실 하나 안 것만으로도 나는 오늘을 조금 더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의 늦은 저녁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keyword
이전 17화바다가 불러낸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