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로 육아를 한다는 건

여적여

by 원빌리

육아의 형태와 상황이 모두 다 다르기 때문에 조부모 도움 없이 '부부'가 온전히 돌보는 경우에는 한마디로 'DOG'힘들다고 정의하고 싶다.


단순히 자녀의 기질이 유별나서 힘들다라기보다는 회사에서의 상황이 나를 힘들게 한다.


내가 막 임신을 한상태로 업무에 복귀했을 때 같이 일했던 여자 동료들이 내게 한말이 있는데,


"언니가 임신해서 내가 연차도 못 쓰고 잔업까지 해야 돼?"


정말 거짓하나 보태지 않고 저렇게 말했다. 임신한 게 잘못이라는 그 말투와 차가운 시선.



저 말을 듣고 그날 부정출혈이 생겨 유산기가 있다는 진단서를 받았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가를 제출했다. 다시는 이 부서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바로 휴직을 썼다.


다행이게도 무사히 출산하였고, 둘째를 바로 가져야 하나 고민이었다. 전 부서의 행태를 봤을 땐 복직해서 도중에 임신을 하면 저 상황을 또 겪어야 했다.


"자기야 어차피 낳을 거라면 연년생으로 낳자"



남편도 동의 하에 우리는 14개월 차이 연년생을 낳을 수 있었다. 계획대로 낳았지만 주변에선 한소리씩 꼭 거들었다.


"대체 어쩌다.."

"계획 임신이었어요?"


같은 무례한 오지랖들이었다. 일일이 설명도 대꾸할 힘도 없었다. 연년생을 낳은 내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 365일 감기를 달고 살았고, 살찐 몸은 보잘것없었다. 거울을 안 보니 씻지를 않았다. '이게 우울증인 건가?' 라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렇게 둘 다 어린이집을 가게 된 시점이 되니 식단도 조금씩 하고 운동도 했다. 구축이라 헬스장도 없어서 계단을 타거나 매일 분리수거를 하러 나갔다. 정말 신축에 살고 싶었다.


그렇게 둘째가 3월에 입학하고 복직하는 6월이 됐다. 전 부서에서는 나만 기다렸다며 돌아오라고 애걸 복걸 했지만 절대 싫다며 극구 거절했다. '다시 돌아가서 무슨 꼴을 보라고' 그 결과 다른 부서로 전배 갔고, 장거리가 됐지만 자율 출퇴근제라는 근무 형태를 하게 됐다.


몇 년 만에 화장을 한 건지 칙칙하지만 쌩얼보다는 나았다. 그렇게 복직하고 몇 개월간 장거리가 힘들다는 표현이 무색하게 바로 적응하며 잘 다녔다.


행복은 참 짧았다. 내가 복직하기 무섭게 첫째며 둘째며 누가 먼 저랄 것 없이 열이 나고 아프고 입원하고 반복했다.


첫째가 수족구에 걸리면 다 나을 때쯤 둘째가 걸렸고, 코로나에 걸리면 다 나을 때쯤 옮았다. 22년 9월 10월은 출근 날짜가 14일도 안 됐다.


회사 사람들에게는 미안하다며 연신 굽신거렸고, 내 연차 남편 연차는 눈 녹듯 녹아버렸다. 미혼일 때는 연차가 매번 남아 연차비를 돌려받았는데 이젠 나를 위한 연차도 못쓰지만 연차비도 없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힘들 줄 몰랐다.


자녀에게 못할 짓을 하는 거 같아 휴직을 써야 하나 고민하며 매일 밤 울었다.


자녀가 아파서 등원을 못했는데 남편도 회식이라 집에 늦게 오는 날, 면역력이 떨어진 건지 급성 질염이 심하게 발생해 진짜 죽을 뻔했다. 애는 안 자지 병원은 못 가지 밑에는 가렵고 아파 죽겠지.. 서러워서 애들을 재워두고 또 울었다.


그냥 맞벌이 육아는 이런 거 구나 하며 체념하는데 몇 년이 걸렸다.


아픔의 총량이 정해져 있는지 이제 전염병이 아니면 자녀도 아픈 날이 거의 없었고 대부분 주말이나 공휴일에 아파서 병원진료를 한 번만 보면 대부분 바로 나았다. 효자 녀석들.

근무 중에 진료 보기가 힘들기에 금요일에 아파서 병원을 갔으면 월요일에 가야 하지만 일요일에 가서 약을 또 받았다.


그렇게 나는 맞벌이 워킹맘으로 이제 힘든 건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게 문제였다.


나는 25년이 된 지금 까지도 애가 아프거나 경조사가 아니면 연차를 써본 적이 없는데, 같이 일하던 40대 노처녀 동료가 나에 대해서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다녔다. 애가 아프다고 연차 썼으면서 연차가 많이 남은 게 말이 안 된다는 이유였다.


아니 남편이랑 돌아가면서 쓰니까 당연한 거 아닌가? 그리고 내 연차가 몇 개 남았는지 세고 있단 소린가? 대체 왜?


40대 노처녀만 내 얘기를 하고 다닌 게 아닌 나랑 동갑인 워킹맘도 가세해서 동료들을 이간질시키고 있었다.


동갑인 그 사원도 나와 처지가 비슷했는데, 장거리였고 자녀 나이가 비슷했다. 근데 나에게 자격지심이 있었던 거 같다. 이유는 아직까지 모른다.


그냥 그렇게 화가 났지만 내 인생에선 더 이상 휴직도 퇴사도 없다. 도망가기 싫었다. 어차피 내가 더 오래 다닐 건데 무슨 상관인가 싶었다. 그렇게 내가 보기가 싫었는지 동갑인 사원은 휴직을 썼고, 40대 노처녀는 나와 업무가 분리 됐다.


같이 일하던 남자 동료들은 상황을 알게 됐을 때 '너는 휴가철에 휴가도 안 가고 환절기에만 써서 애가 아픈 거 맞는데 왜 그러냐들'이라며 위로해 줬다.


아이러니하게도 '애는 여자가 봐야지'라는 말을 했던 남사원이었다.


나는 회사를 다니며 점점 선이 생기고 벽이 생겼다. 어차피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나를 싫어할 사람은 이유를 만들어 내서라도 싫어하기 때문이다. 빌런을 원하는 것 같으니.



내가 빌런이 되어주마.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