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당무 연애사
나는 연애를 하면서 단 한 번도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라는 확신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은 함께하다가도 ‘결혼은 좀…’이라는 생각이 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가 먼저 이별을 고했다. 아마 내 마음이 표정이나 행동에서 드러났던 모양이다.
그는 달랐다. 취향이 잘 맞은 것도 컸지만, 무엇보다 모태솔로인 그에게서 풍기는 순수함이 좋았다.
첫눈 같은 사람.
그래서 더 오래 바라보고 싶었다.
연애 경험이 없던 그는 서툴렀다.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 차근차근 알려주고, 또 다독이며 관계를 이어갔다. 그런데도 일주일이 다 되어가도록 사귀자는 말이 없었다. ‘이대로라면 1년 내내 썸만 타겠구나’ 싶어 내가 먼저 물었다.
“오빠, 우리 언제 사귀어?”
“지금.”
순간 그의 손이 내 손을 꽉 잡았다. 대답은 단호했지만 얼굴은 홍당무처럼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 모습이 싫지 않았다.
그는 의외로 매력이 많은 사람이었다. 정장을 입으면 쭉 뻗은 다리가 돋보였고, 교정으로 가지런히 자리 잡은 치아가 웃을 때마다 반짝였다. 좁은 어깨였지만 내가 기대면 언제든 내어줄 줄 아는 어깨였고, 손을 잡거나 눈을 마주치는 순간마다 얼굴을 붉히는 모습은 나를 자꾸 웃게 했다.
이후 나는 그에게 부모님을 소개했다. 혹시 반대하실까 걱정했는데, 부모님은 오히려 마음에 들어 하시며 빨리 결혼하라 재촉하셨다.
바로 다음 주에는 나 역시 시어머니를 처음 뵈었다. 짧은 만남이라 걱정이 앞서셨는지 2년 뒤 결혼을 권하셨지만, 양가 의견을 조율해 결국 다음 해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상견례가 끝난 뒤 우리는 아파텔을 얻어 함께 살기 시작했다. 맞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도 했지만, 큰 문제없이 잘 지냈다. 결혼 준비는 대부분 내가 맡았지만 남편은 언제나 기꺼이 따라와 주었다. 덕분에 예식장, 예물, 신혼여행 준비까지 큰 어려움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허니문 베이비가 찾아왔다.
마치 축복처럼 원하던 자녀 계획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불과 3년 사이에 연애, 결혼, 출산까지 이어진 삶은 실감조차 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권똥이 엄마, 권꿀이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낯설게만 느껴졌다.
나이를 먹는 건 생각조차 못했는데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모습을 보며 기쁨과 걱정이 함께 늘어난다.
엄마라는 역할도 여전히 서툴지만, 언젠가는 익숙해지겠지.
앞으로 어떤 일이 찾아올지 알 수 없지만, 오늘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내는 것, 그것이 나의 매일의 목표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글들을 조잡한 능력으로 적어봤습니다. 기승전결도 많이 부족하고 글 쓰는 능력도 미숙합니다. 이런 저에게 구독자가 무려 7명이라니 감격스럽습니다. 다음번엔 다른 글로 체계적으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