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나린아 08화

8장

by 최글른

비척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꾀꼬리는 시시껄렁한 고함을 내질렀다.


“이게 도대체 무슨 영문이란 말입니까! 하늘을 이 꼴로 만들어 놓고 사라지시면 안 되지요! 나린아도, 인간도, 이기적이고 비열한 건 도긴개긴! …아, 장로님이 아직 깨어 계셨군요. 이런, 경솔했습니다. 제가 원래 좀 그렇습니다. 새대가리란 말이 왜 있겠습니까. 사과드리옵니다. 그보다 분노는 좀 사그라드셨는지요? 부디 넓은 아량과 위대한 배포로 저희를…응? 잠깐만요! 잠깐!”


모두가 어질거리고 혼미한 가운데, 그만 혼자 속사포처럼 소리를 퍼붓는 꾀꼬리. 문장 하나하나가 골을 울렸다. 눈치 빠른 참새를 시작으로, 온갖 새들이 꾀꼬리에게 우르르 달려들었다.


짓이겨지고, 마구 밟히고, 쪼이고, 노란 깃털이 열몇 가닥 뽑히고 나서야, 꾀꼬리는 부리를 닫았다.


새들의 첫 ‘공공 작업’이 산짐승도, 뱀도 아닌, 저 작고 노란 새였다는 사실에, 어처구니없다는 듯 새들은 날개를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그 소란 속에서도 장로는 어느새, 놀라울 정도로 차분했다.


눈길은 오직 한 곳—휠체어에 누운 독수리 위로 손을 얹고 다독이는 노인의 곁이었다.


그 손은 주름진 천을 덮은 듯 말없이 온기를 쏟고 있었고, 들숨과 날숨에 맞춰 부드럽게 들썩이는 독수리의 몸에 안도감을 전했다.


“남을 지키려, 제 몸을 던진 존재라니… 소중한 일이지요.”


노인의 말에, 장로의 시선은 더욱 깊이 고정되었다.


노인은 독수리를 바라보며 조용히 장로에게 말을 건넸다.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대의 하늘을 위해 날아든 이들이, 이렇게 많지 않습니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꾀꼬리는 벌떡 일어났다. 다들 이젠 말릴 생각도 없이, 꾀꼬리의 체념없는 언변을 두고만 봤다.


의지는 넘쳤지만 새들의 폭력이 남긴 기침만큼은 숨기지 못했다.


“아무렴요! 켈록…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새들이 세기의 세기를 거쳐 푸른 하늘 아래서 자라났지 않습니까? 새에게 하늘은— 카악, 투. 이거… 눈물 나게 하네요.”


꾀꼬리는 잠시 눈을 닦더니, 한 가닥 붉게 물든 깃털을 들어 보였다.


“보십시오. 개나리처럼 노오랗던 제 깃털이, 지금은 주황빛 오렌지 같지 않습니까?”


다소 진중해진 꾀꼬리의 말투에, 주변 새들도 어느새 귀를 기울였다.


“오렌지색이 나쁘다는 건 아니고요. 오렌지빛 노을을 아주 좋아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 노란빛이 좋습니다. 제 자신이 좋다 이 말입니다! 그리고 인간들 말입니다. 지금은 세상의 주인처럼 군림해도, 사실 그게 다 두려움 때문 아닙니까? 푸른 하늘 없이도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지만…천만에요. 자신들의 의지 아닌 변화에는 늘 겁을 내는 존재들입니다. 붉은 하늘 아래서 눈이 돌아 험한 일을 벌이는 자들도 나올 테고, 피 닮은 하늘에 미쳐버릴 자들도 분명 있을 겁니다. 쯧쯧쯧….”


꾀꼬리는 이어서 눈을 찡그렸다.


“제 눈 보십시오! 이거 보시라구요! 하늘을 보다 벌겋게 충혈됐습니다. 피가 날 지경입니다. 하늘의 정령님! 제발… 자비를… 자비를 베푸시어요!”


그러곤 맺힌 듯, 마지막으로 외쳤다.


“저희에게 푸른 하늘은 그저 색이 아닙니다. 삶의 희망이고, 양분입니다!”


그 소리에 잠시 멈칫하던 히비가 장로를 끌어안으며 조용히 말했다.


“인간들의 두려움도… 우리가 없앤 것이에요. 어둠이 와도, 다시 푸른 하늘이 올 것을 아니까요.”


그들의 두려움을 가려주는 존재가 아니라, 견뎌낼 힘을 주고 나아갈 길이 되어주는 존재. 누군가의 희망.


히비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각각의 빛깔을 지닌 무수한 존재들. 붉은 기운이 가라앉은 숲에는 음험한 기운이 스며 있었고, 그 안의 존재들은 조용히, 간절하게 희망을 바라고 있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제 안에 꼭 맞게 채워지는 명분. 무수한 빛깔이 어우러진, 처음 느껴보는 충만함이었다.


그때, 바람이 멎었다. 구름이 흘러가며 붉은 하늘이 또렷이 드러났다.


장로는 체념도, 단언도 없이 말한다. 마치 해질녘, 집으로 돌아가자 하시던 어머니처럼—


“붉은빛을 걷어내야겠구나.”


장로는 천천히 유영한다. 그의 모습은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브리는 가만히 바라보며 숨을 고른다. 장로가 브리의 머리끝에 촉수를 대고 한 번 크게 숨을 들이쉬자, 푸른빛이 빠져나가며, 다시금 검은 머릿결이 드러난다. 당황한 브리는 어리둥절했지만, 장로와 아버지는 다정하게


브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후, 장로는 조용히 몸을 돌려 노인과 독수리 앞에 멈추었다. 동작은 여전히 고요하고 우아했다.


“행복했니?”


“그렇고말고요.”


패인 주름엔, 견뎌낸 시간의 서사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었다.


장로가 손빗처럼 촉수로 머리카락을 빗자, 희끗한 머리칼 한 가닥이 분홍빛으로 물든다. 그걸 바라본 노인은 수줍게 웃는다.


“어떤가요. 이제 저도 꽃처럼 보일까요?”


장로는 말 대신 입꼬리를 천천히 올렸다. 어색하지만, 분명한 미소였다.


‘꽃이 무어냐. 너는 그보다 더 어여쁜 사람이거늘.’


무릎 위의 독수리는 쌕쌕거리며 깊은 잠에 빠져있다. 장로는 미련 없이 떠오른다. 그건 ‘떠남’이 아니라 ‘귀향’이었다.


하늘을 뒤덮던 붉은빛도 그의 뒤를 따라 모여들기 시작한다. 별이 다시 빛나고, 달이 모습을 드러낸다. 구름도 사라졌다. 그의 몸은, 이윽고 완연한 밤의 빛깔을 닮아갔다.


“내가 떠나도 이곳의 아름다움은 변치 않겠지?”


작별의 시간이 왔음을 깨달았다. 이별 앞에서 브리와 히비는 더욱 선명해졌다.


“하늘도 계속해서 푸르겠지?”


행복에 달콤하게 절여진 오늘의 기억은 이미 머나먼 과거처럼 그립기도, 훌쩍 자라나 닿을 수 없는 미래처럼 낯설기도 했다.


히비는 촉수로 아이의 입꼬리를 치켜올려 이리저리 움직였다.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아이의 웃음을 보고 싶었다.


브리는 입안의 자그마한 이빨이 다 보이도록 호탕하게 웃어주었다. 웃음 뒤에 다가오는 끝이


슬며시 가슴을 저릿하게 때렸지만, 그럼에도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히비 역시 그 웃음을 피하지 않았다.


“브리.”


“응, 히비.”


이름의 진동이 혀끝을 간질이고 심장을 울렸다.


“네가 자라고 있는 찰나의 순간에 머무를 수 있어 좋았어.


너의 자라나는 어린 시절은 언젠가 너의 모든 순간의 이유가 되겠지. 오늘이, 내가, 너의 소중한 기억의 이유가 된다면 좋겠어. 그러니까… 한 가지 부탁이 있어.”


히비는 조용히 말했다.


“행복해줘.”


그리고 장로를 뒤따랐다.


떠오르는 나린아는 은하수를 헤엄치듯 유영했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엔 붉은 꼬리가 피어났고, 저 멀리 태양이 붉은 꼬리에 바람을 불어 빛을 내주었다.


잔디가 품은 초록빛을 한 번, 하늘에 섞인 분홍빛을 한 번, 푸른빛을 또 한 번 머금은 색들은 나린아들의 꼬리를 따라 흩날리며 밤하늘 위로 아름다운 물결을 그려냈다. 그는 하늘의 한 줄기였다. 존재의 결을 따라 풀어지듯, 그의 마지막 유영은 색이 흘러가듯 부드럽게 번져 나갔다. 그 장면은 마치 바람 위에 그린 수묵화 같았다.


그 물결들은 태양의 따스한 휘파람을 받아 찬란히 일렁였고, 은하수와 어우러진 그날의 밤하늘 황홀경에 많은 이들은 넋을 놓았다. 그의 실루엣이 지나간 자리마다 고요히, 그러나 영원히 스며들 듯 물들었다.


인간은, 그 밤하늘의 물결들을 오로라라 불렀다.


하얀 햇빛이 그리워 푸르게 푸르게 , 우리의 푸른색은 슬픈 색이 아니야 . 찬란한 꿈의 색 . 태양이 가려지지 않게 어둠 속에도 하얀빛은 소중해 . 아름다운 하늘에 빛들을 모아 받쳐 행복을바라 . 그대들의 행복을 바라 . 나아가기를 , 나아가기를 .


땅은 날마다 바뀌어 간다. 하늘에 가까워지는 잿빛 건물들, 좁아져 가는 여름날의 초록 공간.


그럼에도 하늘은 당연하다는 듯 드넓은 푸름을 자랑한다.


당신을 위한 하늘은 계속해서 푸를 것이다.


앞으로도.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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