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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의 거리

감정을 놓고 감정으로 연결되다

by 은혜


1년 만에 딸이 호주에서 돌아왔다. 입국장 문이 열리자, 먼저 보인 건 거대한 캐리어 3개였다. 그 뒤를 따라 걸어오는 딸은, 그 가방에 매달리는 게 아니라 가방을 끌고 가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표정도, 몸짓도, 어딘가 더 커진 것 같았다. 나를 보자 손을 흔들고, 몸을 기울여 내 볼을 맞췄다. 1년 전엔 절대 안 하던 제스처였다. “엄마, 나 배고파. 국밥 먹자.” 당당한 목소리, 농담 섞인 말투, 그 모든 게 새로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딸은 말했다.

“나, 빨리 취업해야겠어. 특히 기술 배워야 돼. 호주에선 기술 있는 애들이 진짜 잘 벌더라. 요리, 용접, 미용 이런 애들. 진짜 부러웠어. 사람은 기술이 있어야 하더라.”

그 말에서, 나는 딸이 이제 더 이상 내가 돌봐야 할 아이가 아니란 걸 알았다. 딸은 자기 삶을 스스로 살아내기 시작했다. 엄마의 눈치를 보던 아이가 아니라, 세상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어른이었다.


그 순간, 나는 기뻤고, 한편으로는 낯설었고, 아주 잠깐—외로웠다. 하지만 그 낯섦마저, 반가운 감정이었다. 딸이, 자기 삶을 산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리고 이제, 나도 내 삶을 살 시간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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