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놓고 감정으로 연결되다
아침 햇살이 커튼 사이로 스며들었다. 거실은 고요했고, 부엌 시계는 이미 열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커피를 내리다 말고, 살짝 한숨을 쉬었다. “또 늦잠이구나.” 딸은 여전히 침대 속이었다. 늘 그렇듯, 이불 속 세상이 더 편한 아이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랬다. 아침마다 전쟁이었다. 알람을 열 번은 꺼야 했고, 등교 시간보다 늦게 일어나는 날이 더 많았다.
그땐 몰랐다. 그 아이가 게으른 게 아니라, 잠이 그 아이의 방어막이었단 걸. 나는 그저 잔소리했다. “언제까지 잘래?” “습관 좀 들여야지.” “세상은 기다려주지 않아.” 그 말들이, 딸의 마음을 눌렀을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일찍 못 일어났어.” 그 무력감을, 내가 매일 덧칠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딸이 워킹홀리데이로 1년을 외국에서 보냈을 때, 그 늦잠과의 전쟁도 잠시 멎었다. 그곳에서 딸은 스스로 일어나고, 스스로 밥을 해 먹었다. 사진 속의 아이는 활짝 웃고 있었다. ‘아, 잠보다 삶이 더 궁금한 얼굴이구나.’ 나는 그때 알았다. 잠은 게으름이 아니라, 아직 살아낼 힘을 찾지 못한 마음의 신호였다는 걸.
귀국 후 다시 반복된 풍경 속에서 나는 다짐했다. 이번엔 다르게 해보자고 쿠팡에서 주문해 둔 ‘환영합니다’ 플래카드를 꺼냈다. 아이의 방문 앞에 조용히 서서, 딸이 스스로 눈을 뜰 때까지 기다렸다. 문이 살짝 열리고, 부스스한 얼굴이 나타났다. 나는 곧장 플래카드를 펼쳤다. “환영합니다! 오늘도 일어난 걸 환영합니다!”
딸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엄마, 왜 이렇게 텐션이 높아?” “그냥, 네가 일어났다는 게 기쁘다.” 그날 점심, 딸이 만들어준 양배추 참치 덮밥은 유난히 맛있었다. 밥 한 숟가락마다 묘하게 따뜻했다. 아침부터 내가 ‘덕’을 쌓은 덕분일까. 나는 알았다. 가족에게도 반복되는 부정적패턴’이 있다는 걸. 한쪽이 다그치고, 한쪽이 움츠러드는 패턴. 그걸 멈추는 순간, 공기가 달라진다는 걸. 물론 한 번으로는 안 바뀐다. 수많은 날의 인내와 연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그날 이후, 나는 잔소리를 대신해 인사를 건넸다. “오늘도 일어난 걸 환영해.” 그 말은 단순한 환영이 아니라, “네가 네 리듬대로 살아도 괜찮다”는 허락이었다. 사랑이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겠다는 의지다. 나는 이제야 그 말을, 진짜로 이해했다.
취준생 엄마의 마음을 널리 알려진 시조에 빗대본다.
아침이 밝았느냐 알람 소리 울려온다
딸은 여전히 꿈결 속에 몸을 누이고
먼 길 갈 그날 위해 언제 일어나려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