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놓고 감정으로 연결되다
남편과는 여전히 자주 부딪힌다. 말보다 한숨이 먼저 나오고, 감정보다 눈치가 앞선다. 예전 같았으면 그 한마디에 등 돌리고 며칠씩 말 안 하고 버텼을 거다. 그게 우리 부부의 오랜 방식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 침묵이 오래가지 않는다. 감정이 아예 없어진 건 아니다. 그냥, 이제는 거기에 오래 끌려가지 않을 뿐이다.
그날도 남편과 함께 외출을 나섰다. 늘 그렇듯, 그는 내 앞서 성큼성큼 걸었다. 그 뒷모습. 그 뒤통수가 자꾸 나를 건드렸다. “따라오든가 말든가.” 말은 없었지만, 등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손이 나갔다. 맹세컨대, 우발적이었다. 툭— 가볍게 밀었을 뿐인데 남편이 돌아보며 불같이 화를 냈다.
“뭐야, 왜 사람을 밀어!”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괜찮았다. 오히려 그런 감정 반응이 반가웠다.
‘어라, 이 사람 아직 화도 낼 줄 아네? 살아있네?’
예전 같았으면 그 불꽃 튀는 말에 나도 같이 욱해서 한바탕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괜찮았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고, 그 사람의 반응을 조금은 멀찍이서 바라볼 수 있었다. 그 뒤통수를 향해 내 감정을 아주 조금, 되돌려준 느낌. 그걸로 충분했다.
물론 여전히 욱하는 순간은 있다. TV 소리가 크다고 한마디 했다가 “뭘 또 내가 잘못했냐”는 말이 돌아오면 속에서 열이 확 치밀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은 안다. 그게 남편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오히려 내 안에 아직 말하지 못한 감정들이 때를 놓친 채 굴러다니다가 툭 튀어나오는 거란 걸.
그래서 이제는 싸움이 생겨도 감정에 오래 끌려가지 않는다. 조금씩 거리를 둔다. 그러면, 좀 덜 욱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