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듯 먼 그대

by 블레스미

S를 모르는 척하는 J의 행동이

여러모로 이상했다.




그날 이후로

이게 뭔가의 힌트이지 않을까 싶어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고

J의 표정이

정지화면으로 머릿속에 박혀

찜찜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시간은 흘렀고

사모와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나는 여전히 케어를 하는 중이었다.




다행인 건

사모를 대하는 게

예전보다는 많이 편해졌다는 거다.




성격이나 취향 면에서

공통점도 있었기에

그런 주제로의 대화는 즐거웠으며

알면 알수록

생각과 배려심 깊은 면이

있다는 것에

마음이 열리고 있었고

고운 외모로 곱게 자란 줄 알았던

사모의 고생스토리를 들은 땐

존경심도 들었다.




사모 역시

내가 승무원 출신이라는 거에

선입견이 있었는데

검소한 차림에 알뜰하게 살림하고

악착같이

삼시세끼 집밥 차리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하며

그 점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서로에게 진심을 보이는 관계로

업그레이드되고 있었던 거다.




"블레스미가 나한테 그랬었잖아!

'저도 죽기 전에

사모님 소리 한 번 들어 볼 수 있을까요?'

라고!"




"네??? 제가요?????

언제요??????

그럴 리가 없는데???!!!!!"




"아니야! 나한테 그랬었어.

난 그 말 듣고

얘가 되게 솔직한 애구나 싶어서

네가 맘에 들더라고!

다들 나한텐

맘에 없는 소리들만 하거든.

근데 블래스미는 그렇게 말해서

내가 똑똑히 기억하는데?!"




절대

내가 뱉은 기억이 없는 말이었다.




그리고

내가 계속 아닐 거라고 부정한 이유는

아무리 친해졌다 해도

할 소리 못 할 소리는 구분하는

나 자신이었는데

면전에서

내가 감히 그런 말을 했다고??




듣는 입장에 따라선

나랑 맞먹으려 하나 싶고

내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네라고

생각할 수 있는 말인 거 같아서

나도 모르게

죄송하다는 말이 연신 쏟아졌더랬다.




그걸 보고는

웃으면서 아니라고,

난 네가 솔직해서 더 좋았다고

말해주는 사모.




잘 보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뭔가

돈독해지는 느낌이 들어 좋았고

다들 도끼눈을 뜨고 있는

이 미국 깡시골에서

그래도 조금은

맘 붙일 사람이 생긴 기분이 들더라.




그렇게 되면서 사모와 나는

서로 고민과 걱정,

지난날들의

에피소드들을 공유하는

관계가 되기 시작했더랬지.




물론

긴장을 유지하고

주의를 하면서 말이다.




시간이 흘러

사장님과의 저녁 식사가

코 앞에 놓이고 있을 때

부사장님까지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관련된 직원들과 수행원들까지 해서

판이 커졌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 집,

지금 난리도 아니잖아!"




부 사장님은 재무 쪽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 미국땅에

재무 쪽 직원 출신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이 대렉터.




주재원으로 나왔다가

영주권으로 돌린 케이스로

현지 직원으로 바뀌면서

본사에서는

그에게

디렉터의 직함을 달아 줬더랬다.




아무래도 돈줄을 쥔 재무 쪽인데

노란 머리들 사이에서

디렉터 정도는 달아야

본사 이미지도 살지 않겠느냐는

계산이었다고 한다.




이 디렉터와 부인 H는

뻔뻔한 부부였다.




안하무인의 성격으로

강약, 약강인 이 디렉터.




영주권 취득 후

본사의 한국 직원들에게

이제 본인에겐

영어로 이멜을 쓰라했던 이 디렉터.




자격미달인지 알면서

유럽으로 발령받고 싶어

윗사람들 초대해다가

피아노까지 쳤던 이 디렉터.




동네

미국 대학에서

석사를 하고 있던 부인 H




내가 다니는 어덜트 스쿨에 대해

난민이니 수준이니를 따졌던

부인 H




사모가

그 어덜트 스쿨을 다니겠다고 하자

찬양 보내던 부인 H




그 부부가

부사장님도 오신다는 소식에

난리 부르스라고

사모가 말해줬다.




이미지 관리 실패로

미운털이 박힌 이 디렉터는

같은 계열 출신이었던

부사장이 온다는 소식에

지금이다 싶었던 건지

본인의 집으로 초대를 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듣도보도 못 할 상황.




어느 기업의 부사장이

임원도 아니고 일 개 평직원과

저녁을 한 단 말이냐.

그것도 그 직원의 집에서!




하지만

이곳은 주재원 부족 마을이니

그 특수성은

부사장도 받아들였나 보다.




대단한 욕망 부부.




나와 내 남편은

그럴 생각을 꿈에서나 할 일인데

이걸 배워야 할까??




그 부인 H는

저녁 메뉴 때문에

사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사모는

식품 쪽으로 전공을 했고

석사까지 밟았으며

요리 쪽으로는 일가견이 있는 여자.




H는

부사장님이 좋아한다는

중식으로 정했고

메뉴선정과 요리법에 대해

사모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했다.




"H 참 대단해~

지금 내가 정해준 메뉴 연습한다고

매일 그거 요리하고 있어!"




실수 없이 맛을 내겠다며

며칠째 같은 요리를

반복해서 하고 있다 하더라.




그러면서

대학원 다니기도 바쁠 텐데

저렇게 지 남편 잘 되라고

열심히라며

계속 추가되는 칭찬 세례.




그렇다.

사모는 항상

나에게 H를 가져다 댔었다.




의도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사모 본인에게

무엇을 얼마나 잘하는지를

나에게 말하며

경쟁심을 부추기고

내 속을 슬슬 긁었더랬지.




얼마나 욕망에 가득 찼는지를

잘 아니

더 이상 그 소릴 듣고 싶지 않아

말을 돌였다.





"아, 저 그 여자 본 거 같아요.

염차장 부인이요"




그러면서

대충의 인상착의를 알려줬더니

맞다고 하면서

어찌 봤냐 묻더라.




쇼핑 갔다가 본 이야기를 해 줬다.




함께 들어갔던 J가

모르는 척을 하더라는 얘기까지.




힌트를 얻고 싶었다.

사모라면

뭔가를 알고 있거나

생각해 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힌트는커녕

처음엔

사장님과의 식사 자리에

입을 옷이 없어서

그거 사러 갔나 보다 하던 사모도

표정이 어떻더냐,

또 무슨 말을 하더냐

꼬치꼬치 내게 물으며

점점

흥미롭게 듣는 모습이었다.




"아니,

궁금하면 나한테 전화를 할 것이지!

걔 나한테 전화 한 번을 안 하잖아!"




"통화 안 하세요? "




"안 한다니까!"




허허..

지금 보면

저 때 그만했어야 했다.




아니,

아예 말을 꺼내 지 말았어야 했네.




뭐가 됐든 간에

어쨌든 뒷담화 아닌가..




나 혼자 봤으니

나만 알고 말았어야 했거늘

그걸 왜 사모와 공유했을까.




난 그저

사모와

이제 조금은 스스럼없는 사이,

이제 조금은

서로 의지하는 사이라고

여겼던 거뿐인데

되돌아보니

후회되는 것들 중 한 가지였고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들 중

한 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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