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조의 여왕 이미지가 획득되었습니다.

by 블레스미

무더운 여름의 끝에

추석이 걸리었다.



한국은

추석 연휴를 준비

혹은 대비하는 이야기들로

가득했지만

그냥 이곳은

9월의 어느 하루 일 뿐인,

평범한 평일 일 뿐인 미국이었다.



하지만 나는

한국의 달력에 맞춰

이런 평범한 평일에

혼자 잔치 음식을 해 댔더랬지.



아이들이 타국에서 커 온 지라

명절에 대한 감흥이 없기에

이렇게라도 해서

한국을 전해 주고 싶었고

나 또한

맛으로 추억하는 하루를

가져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지내는 집이

우리뿐이더라.



나처럼 다들 간단히라도

명절 기분을 내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런 나를

대단한 일을 하는 듯이 여기는 분위기.



그래?

그럼 이걸로 점수 좀 따 보자!



이왕 하는 김에 왕창 만들어서

사모에게 들이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하지 않을 테니

나 혼자 단독으로 점수 확보일 테고

명절에 명절음식이니

누가 뭐라 한대도 구실이 좋잖아?



아니,

오히려 내가 상사라면

명절날 외로운 타지에서

위로받는 기분이 들어

고마울 거 같은데?!



옳다구나 싶었고

이거구나 싶었다.



그리고 생각나는 한 집.

바로 도련님 댁, 고과장네였다.



고 과장의 부인 L은

다른 여편네들처럼 또라이 같지 않아

드문드문

안부 인사를 주고받던 사이였고

발령받아 온 우릴 초대해 줬던

첫 정도 있으니

챙겨주자 싶었던 거다.



그리고

도련님이니까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나.



속물 같은 나란 인간이었지만

남편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기꺼이

내조의 여왕을 찍겠다고 마음먹었다.



올해 추석엔

뭘 해 먹을까 고민하다가

명절엔 뭐니 뭐니 해도

역시 기름냄새지 싶어

광장시장의 녹두전을 좋아하는 나는

녹두전과 고기전으로 메뉴를 정했다.



그리고 그 준비는

하루 전부터 시작이었는데

먹을 생각에 들뜬 건지

추석 바이브에 흥분한 건지

콧노래가 나오던걸?!



아시안 마트에서 어렵게 구한 녹두를

물에 불리고

지난여름 한국에서 사 온

식혜키트를 꺼냈다.



내가 사는 미국 시골에서는

구경도 할 수 없는 이 식혜를

어떻게든 먹어보겠다고

사 들고 왔었더랬지.



설명서대로

밥솥에게

밤 새 식혜 만드는 일을 맡기고

다음날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어마한 양의

전 재료를 손질하고 나니

이건 마치 영업장.



우리 식구는

부쳐가며 즉석에서 먹을 생각이라

우리집껀 일단 제쳐두고

사모네와 고 과장 네 것을

부쳐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얻은 결과물을

용기에 보기 좋게 담아내고

밥솥이 완성해 준 식혜를

큰 유리병에 따랐다.



보기만 해도 흐뭇하더라.



그리고는

두 집에 차례로 전화를 해서

잠시 들러도 되겠냐 묻고

배달을 시작했다.



방문의 목적은 알리지 않았으니

이걸 보면 얼마나 놀랄까?

서프라이즈를 할 생각에

내가 더 두근두근이었네.



역시나

반응들은 폭발적이었다.



고 과장 부인 L은

어쩔 줄을 몰라하며

연신 허리를 숙여 고맙단 인사,

잘 먹겠다는 인사를 했고



사모 또한

이게 뭐냐며 열어보더니

어머어머 소리만 내뱉으면서

이걸 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며

너희 가족이나 먹지

이걸 또 들고 올 생각을 한 거냐는

말과 함께

손으로는 녹두전을 찢으려 하길래

상무님 오시면 같이 드시라며

말렸더랬다.



이런

서프라이즈가 더 돋보이려면

생색낼 생각 말고

cool하고 빠르게 퇴장하는 것.



집에 돌아와

신문지 깐 식탁에

네 식구 둘러앉아

자글자글 맛있게도 부쳐 먹었다.



그러면서 남편에게는

사모네와 고과장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왔다는 이야길

간단하게만 전해 주었다.



내 속 깊은 곳에 숨겨둔

진짜 의도는

보여주지 않고 말이다.



아마도,

내조의 여왕이라고

보기 좋게 포장은 했지만

시커먼 속으로

밑 밥 까는 행동을 했다는 게

나 스스로도 마주하기 불편했던 거지.



하지만

불편한 마음과의 동거는

다음날 아침

남편에게서 걸려 온 전화 한 통으로

바로 쫑이 났다.



출근해서

회의 준비를 하고 있는 남편자리에

상무가 오더니

어제 받은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하더랜다.



세상에,

이 미국시골땅에서

식혜가 웬 말이냐며 웃으면서

덕분에 명절 기분도 나고

술 한잔 하면서

전도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더라는.



고 과장도 출근하자마자

자리로 찾아오더니

형수님(나) 덕분에

생각도 못한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며

아이들도 어찌나 잘 먹는지

이제

자기네들도 해 먹어야겠다는 말을

남겼다 한다.



바로 이거지!

내가 돈을 바래? 대가를 바래?



이 소리 들으려고,

이거 바라고 한 거 아니었겠나.



내 수고로

밖에 나간 남편이

기분 좋은 소릴 듣고 오면

그걸로 족한 거였고

그게 바로 최고 내조 아니겠냐고.



이 일 이후로

나는 요리 잘하고

식구들 잘해 먹이는 사람이 되었고

남편은

든든한 집밥으로

가장의 대접을 톡톡히 받는 사람이 되었다.



이미지메이킹은 한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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