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의 북미 사업은
이 기업의
캐시카우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다른 쟁쟁한 계열사들을 제치고 말이다.
발판을 마련한 임원은
사장자리에 올랐고
사업 밑작업에 열과 성을 다한 직원은
상무가 되었지.
어찌 보면
그 판이 커지고 커진 덕에
우리도 미국으로
주재원을 나올 수 있었던 거였으니
감사한 일이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사장님은
미국 주재원들을 각별히 애정하신다.
사장님은 한국계 미국인인지라
상하관계에 있어서
오픈마인드가 있는 편이었고
이 회사에서
임원의 직급으로 시작이었지만
본인도
월급쟁이로 들어왔다가
사장의 자리에 오른 입장이라
일반 임직원들과의 사이가 좋았다.
편안한 인상에 허허거리는 태도가
아랫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럼없이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드는
포인트였지.
(처음 주재원할 때 뵌 적이 있다)
이러한 사장님이
미국 주재원들을
각별히 애정하시는 이유는
본인의 사업구상에 맞춰
최 일선에서 일을 하는 직원이라
여기셨기 때문이다.
미국에 살기 좋은 도시도 아니고
4월까지 눈이 내리는
척박한 깡시골에
(미국인들도 고개를 내젓는 곳)
가족 모두를 이끌고 들어와
고생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하셨거든.
그런 사장님이
10월에
미국을 방문하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냥 일반 출장은
자주 나오셨었는데
이번엔
주재원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식사자리를 마련하란 주문을
넣으셨다고 했다.
무료하기가 짝이 없는
이 지긋한 시골 바닥에
그 식사 자리 소식이 들리자
각 집의 여편네들은
묘하게들 설레는 듯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 보는 사이들도 있을 것이고
아무래도
얌전 떨어야 할 자리일 테니
거기서 오는 불편함과
오랜만에 얼굴 찍어 바르고
구두도 신어 볼 수 있는 날이
생겼다는 거에서 오는
반가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들 앞에서
행동 조심, 말 조심 할 생각을 하니
한숨이 나오다가도
아니,
어느 일반집 여자가
기업의 사장과
함께 밥을 먹어 보겠나 싶어
이게 웬 떡이냐 반겼더랬지.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누더기 벗어던지고 나갈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나오더라.
상무님이 사장님과 각별했기에
사모 또한 그러했다.
(그래서 주재원 부인들이
더 사모에게 달려든 거지)
사장님이 출장을 나오실 때마다
집에서 식사 대접을 하기도 하고
밖에서 식사하는 자리가 있을 땐
잠시 들러
함께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시더라.
사모와 대화를 하다 보면
어쩌다가 그런 자리의 후기가
입에 오르기도 하는데
들어보면
사모는 내 생각과는 달리
사장님을 꽤나
어렵고 깍듯하게 대하는 듯했다.
그렇게 10월에 있을
빅 이벤트를 기다리며
하루하루 보내던 9월 어느 날,
괜히 기분 좋은 금요일에
동네 TJ Maxx(아줌니들의 쇼핑 방앗간)나
구경 가 볼까 싶어 집을 나섰다.
나와 같은 기분으로 나온 아줌니들이
많은 건지
입구 가까이엔
주차 자리가 하나도 없길래
할 수 없이
저 멀리 주차를 하고 걸어가고 있는데
어라??
J 아냐???
내 오른편 쪽에서
검은 머리의 한 여인이
주차된 차들 사이에서 나와
앞에 걸어가고 있었는데
옆으로 돌린 고개 덕에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 쫓아가서 인사를 해? 말아??
왜 하필 저 여자냐... '
생각하며 고민하는 사이에
내 왼편 주차된 차들 사이에서
또 다른 검은 머리의 여자가
걸어 나왔다.
J는
그 여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던 거였고
그 둘은
서로 걷는 속도를 맞추더니
서서히 가까워져
TJ Maxx로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서로 쳐다보며
뭐라 뭐라 대화도 하던데
너무 멀어 들리지는 않았지만
여러모로 누가 봐도 일행인 뒷모습.
아, 저 여자가 S인가?
J와 비슷한 시기에 주재원을 나온 S.
미국에 집 보러 왔다가
사모집에서 밥 먹고 간 S.
딸의 섹시댄스를 재롱잔치로 생각한 S.
날 피해
어덜트 스쿨 오후반을 다닌다는 S.
사모집에서
다 같이 대면하기로 한 날
오지 않은 관계로 얼굴은 모르지만
J와 친해져 맨날 붙어 다닌다는
사모의 힌트가 있었기에
단번에 그 여자임을 직감했다.
키가 나와 비슷해 보였고
무척이나 수수한 차림이었다.
그 둘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관계는
사모의 말 대로
무척이나 친해 보였고
내가 뒤에 있다는 걸 모른 채
그대로 들어가더라
굳이 인사하진 말자 싶었다.
정면으로 맞딱들이거나
J가 먼저 알고 다가오기 전까진
모르는 척하자 생각하며
쓸데없는 두리번 거림 자제하고
고개 숙여 옷만 쳐다봤더랬다.
하지만 아무래도 한계가 있지.
모퉁이에서 J와 마주쳤고
나는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어머나~ 안녕하셨어요~~
여기서 뵙네요!"
"어?!
블레스미씨! 잘 지냈어요?"
자연스럽게 대화를 텄다.
나에게 뭐 하고 지냈냐며 묻더니
바로 사모의 안부를 묻더라.
"언니는 잘 있죠? 집에만 있나 봐??
언니는 요새 뭐 하고 지내요??"
순간,
그걸 왜 나한테 묻지??????
별일 없이 잘 지내시는 거 같다
대답은 했지만
이건 뭐지 싶은 기분.
내가 사모랑
한 집에 사는 것도 아니고
매일 붙어지내는 것도 아닌데
나한테 물을 일인가?
그리고
본인이 나보다
사모와 각별한 사이 아니었던가?
둘이 연락을 안 해???????
심지어 말투와 표정이
인사로 안부를 묻는 게 아니었다.
마치 나를 통해
염탐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달까
그래서 더 이상했던 거다.
그런
꿍꿍이 있는 듯한 모습의 J를 보니
나도 도발 한 번 해 보자 싶더라
마침
내 위치에서 S의 모습이 보이길래
"어?!
저분 혹시 염차장님 댁 아니에요?"
아~~ 두 분이 같이 오셨나 보다~~"
그러면서 넘겨짚어 물었다.
그랬더니
J가 모르는 척을 하네???!!!!
"어?! 저 집도 왔네.
나중에 가기 전에 인사나 해야겠다~"
이건 무슨 상황이냐.
내가 기대한 대답은
맞다, 저 사람이 S다.
같이 왔는데 인사시켜 줄까? 였고
그렇게 얼굴을 터서
S가 왜
날 피해 어덜트 스쿨 오후반을 가는 건지
알아내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왜 모르는 척을 하지?
둘이 같이 들어오는 걸
내 눈으로 직접 봤는데 말이지.
전혀 생각지 못한 반응을 내놓네!
뭐지??
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