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아 거울아, 지금 잘 보여주고 있는거 맞아?

by 블레스미



인사과 박 디랙터가

사회를 보기 시작했다.




간단한 인사말을 하더니

참석한 직원 가족들을

소개하겠다면서

이름을 부르면 해당 가족은 일어나서

인사를 하라네?!




파도타기를 하듯

내 테이블 반대편 끝 쪽부터

시작되었고

곧바로 우리 차례가 되어

직급과 이름이 불리자

아이들과 다 같이 일어섰다.

남편은 간단한 인사 후

자리를 마련해 주신 사장님께

감사드린다는 마무리를

잊지 않았지.




모두가 쳐다보는 시선이

온몸으로 느껴지더라.

하지만 절대 쭈뼛거린다던가

부산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살짝 미소를 띤 얼굴을

빳빳이 들고

시선을 한 곳에 정해 놓고

있었더랬지.




애들도 잘 챙겨 입혀 오길 잘했구나

싶었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인사가 한 바퀴 돌고

사장님, 부사장님의

한 말씀도 들은 뒤 식사가 시작되었다.




미리 정해진 메뉴가

식전 요리부터 일괄적으로 서비스되고

그에 맞는 와인도

종류별로 세팅되는 동안

사장님은 남편에게

예전 주재원 생활과 비교해서

어떠하냐 물으셨고

나에게도 아이들과 지낼만하냐며

말씀을 건네셔서

가볍게 농담 섞인 대답을 해 드렸더니

허허 웃으시며

다 같이 와인 한 잔 하자 말씀하시더라.




그때

맞은편 대각선에 앉았던 이 차장이

화이트 와인을 잡더니

소리 내어 라벨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 와인에 대해

진짜인지 아닌지 아무도 모를 특징을

줄줄 읊으며

꽤나 잘 아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그 말 끝에 사장님은

이 차장의 부인, 거짓말쟁이 J에게

살기 괜찮으냐 물으셨고

J는 살짝 찡그려 보이며



"아유~~ 그럼요 사장님.

한국에선 못살겠더라고요.

저희는 미국이 맞는 거 같아요"



하면서 손을 내 젓더라.




네가 한국을 못살게 굴었는지

한국이 널 못살게 굴었는지.

그래도

사장님 앞에서 그렇게 대답할 일인가.




그렇게 각자의 식사가 시작되었고

아이들의 음식을 챙겨주고 있는데

앞에 앉은 S가 말을 걸었다.




"아이들이 영어도 대화하네요?"



"네? 아, 네.

저희랑은 한국말하는데

둘은 서로 영어 쓰는 게 편한가 봐요"



"영어 잘해서 좋겠다.

저희는 힘들거든요.

보니까 책도 잘 읽던데.."



"아~

가면 심심할 거라고

책 가져간다고 해서~"



당시 우리 집 아이들은

두 번째 미국살이라서

영어에 어려움은 없었고

핸드폰은커녕 태블릿도 없는

4학년이었기에

어딜 가기만 하면

주구장창 책만 들고 다녔더랬다.




그날도

어른들만 한 가득인 데다가

다들 점잔만 떨고 있으니 심심하다며

고개 숙여

테이블 아래로 책만 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말을 걸 정도로 신기했나?

하지만

이내 고개가 끄덕여지더라.




염차장 다음으로

딸 둘을 앉혀 놓았었는데

그 둘은 끊임없이 투닥거렸다.

서로 주고받는 디스전을

혹시나 바로 앞에 계신 사장님이

듣고 계실까 싶어

내가 눈치가 보일 정도였지만

S는

옆에서 애기짓하는 막내를 모시느라

아예 막내 쪽으로 몸을 돌리고

바쁜 칼 질 중이었다.




남의 집 딸들을

내가 단속할 순 없으니

나는 가운데 놓인 음식을 들이밀며

먹어보라는 말로

그 둘의 투닥거림을 끊어 놓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러다 메인 음식으로

스테이크가 서브되었고

사장님은

레드와인으로 바꾸길 원하셨다.

그렇다면

화이트 와인을 먹던 잔은

당연히 새 걸로 바꿔야 한다.




하지만 내 남편을 포함해

그걸 생각한 남자 직원들은 없었고

사장님은

살짝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이시길래

새 잔을 찾으시는구나 싶었다.




나는


"사장님, 새 와인잔 드리겠습니다.

잠시만요"




그러고는

룸 구석에 있는 스테이션

(여분의 접시들과 와인잔, 냅킨,

물이 세팅되어 있음)에 가서

잔을 들고 왔다.




승무원으로 양식에 익숙했던

내 전직과

비서로 의전하던 내 전직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조아써!

혼자 한 건 했다 뿌듯해하며

식사를 이어나갔더랬지.




후식이 이어졌고

어른들이 차를 마시는 동안

염차장과 S의 두 딸들은

투덜대기 시작했다.




음식도 다 먹었겠다

이제 할 게 없어 심심하니

핸드폰 와이파이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처음엔 조용한 투덜거림이었는데

그에 맞게

선제 진압이 없어서 그런 건지

그 딸의 목소리는

아예 어른들의 대화소리와

같은 데시벨이 되었다.




정말 이해되지 않았던 건

염차장과 부인 S의 태도.




염차장은 팔짱을 낀 자세로

옅은 미소를 띠며

투정을 부리는 아이를 보고만 있었다

s는 여전히 막둥이 보필 중이었고.




염차장의 그 미소가

민망해서 짓는 멋쩍은 미소였던 건지

아니면

딸의 귀여운 투정으로 본 미소였던 건지

지금도 모르겠다.




다만,

상무와 사모 집에서

그 아이가 섹시댄스를 췄을 때도

가만 보고 있었다던데

저런 표정이었겠구나 싶었다.




그 부부는

딸에게 단호하게 말하지 않았고

집에 가서 하라는 말로 말리려 했다.

근데 그게 먹힐 아이가 아니더라

먹힐 애였으면

시작도 안 했겠을 아이던데?!




17살이라는 아이가

테이블 밑으로 가볍게 발을 구르며

왜 지금 하면 안 되느냐

불평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하필이면

사장님과 남자들의 대화가

조금씩 끊기던 타이밍이었던 지라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사장님은

분명 다른 대화를 하고 계셨었는데

이 아이의 투정을

처음부터 듣고 계셨던 걸까?




"자, 이거 아저씨 꺼 줄게.

이걸로 연결해서 써~"



하시며

작은 공유기를 꺼내 주셨다.




그땐 지금과 다르게

모바일 핫 스팟이라는 건

대중적인 기능이 아니었고

데이터 사용비 또한

어마무시하던 때였다




그래서 해외에 나갈 땐

에그라고 불리는

작은 와이파이 공유기를

빌려 나가던 때였지.




"고맙습니다!"




활짝 웃으며 바로 받아 드는

그 집 큰 딸.




이거 괜찮은 건가...?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더라.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어떤 자리인지 빤히 알 만한

17살 아이가

저런 행동을 보인다는 거.

그걸 염차장과 부인 S는

그냥 바라만 보고 있다는 거.




사장님이 나서서

공유기를 준다 할 때 라도

아니라고, 괜찮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말 없이 기다렸다는 듯 받아다

전달해 준다는 거.

그걸 받아 들고

키득거리며 연결하는 딸들을 보며

미소 짓고 있다는 거.




와...

어디서부터가 잘못인 건지

짚어 낼 수 조차 없네.




지금 생각해도

말문이 막히는 상황이었고

혹시나,

설마,

사장님께서

저 집 식구들의 행동을 보시고

다른 집들도 그렇겠다 생각하실까 봐

걱정이 되고 창피했다.



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가.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데

특징 없이

조용해 보이는 저 부부가

그렇다고?

진짜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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