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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패스트푸드 진단과 생리의 역사(1)

힐링장편소설(유리병 레몬사탕)

by 주양

패스트푸드 진단과 생리의 역사(1)


“자궁을 적출해야 합니다.”


비좁은 진료실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의사는 한숨을 내쉰 뒤, 감정 없는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크고 작은 근종이 너무 많고, 자궁 자체도 비정상적으로 부어 있습니다. 오늘 수술 날짜를 잡으세요.”

“근종만 떼어낸다는 말씀이죠?”


창백한 얼굴로 되묻자, 의사는 안경 너머로 시선을 흘기며 건조하게 답했다.


“자궁을 적출한다고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자궁을 적출한다고요? 앵무새처럼 의사의 말을 따라 했다. 차이점이라면, 내 말끝에는 커다란 물음표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는 것이다. 의사는 내 물음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모니터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두 번째 손가락으로 마우스를 탁, 탁, 탁, 반복해서 클릭했다. 몹시 거슬리는 소리였다.


“젊은 사람 자궁이 왜 이렇게 망가졌데.......”


혼잣말처럼 내뱉었지만, 분명히 들으라고 한 말이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그의 태도에, 유리성에 사는 박현조의 인내심은 와장창 깨져버렸다. 발끈 세포가 작정한 듯, 발작 버튼을 힘껏 눌러버린다. 그래 여기서 참으면 바보다!


“자궁이 망가진 게, 제 책임이라는 거예요?”


맹수처럼 눈을 치켜뜨며 쏘아붙이자, 안경을 콧등에 걸친 의사가 흠칫 놀랐다. 도도하고 냉정하던 그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이 보이자, 내 목소리는 더욱 단단하고 또렷해졌다. 한 번 문 먹잇감은 절대 놓지 않는 육식동물처럼 이빨을 드러내며 따졌다.


“자궁을 드러내는 게 쉬운 일인가요?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는 일이냐고요. 그리고 혼잣말이면 속으로 하시고, 전할 말이면 제 눈 똑바로 보고 말씀하세요. 앞에 사람 두고 뭐하십니까? 비웃는 것도 아니고,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정수리가 훤히 벗겨진 의사가 입매를 일자로 굳히면서 눈을 부릅떴다. 감히 의사를 가르치려 들어? 표정이 말해주고 있었다. 나의 논리 정연한 언변에 적잖이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다. 그렇다면, 작전 성공이다. 회전의자에 몸을 깊숙이 기대 화면을 응시하던 그는, 이를 악문 얼굴에 불거진 턱 근육을 꿈틀거리다가, 곧 입을 열었다. 모니터를 향한 그의 손끝이 부들거린다.


“환자님, 초음파 사진 잘 보세요!”


의사의 손가락이 가리킨 화면 속, 내 자궁은 조롱당한 채 허연 덩어리로 떠 있었다. 마치 천체망원경으로 찍은 어딘가 먼 우주의 구멍 난 달처럼 보였다.


“주먹만 한 혹이 자궁벽에 딱 붙어 있는 거, 보이시죠? 그뿐 아니라 작은 혹들이 셀 수 없이 흩어져 있고 양쪽 난소에도 각각 하나씩 있습니다.”

“그럼 혹만 제거하면 되잖아요!”

“혹만 떼어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니까? 게다가 결혼도, 임신도 계획 없다면서요?”

“결혼 안 하고 애 안 낳는 자궁은 막 아무렇게나 떼도 된다는 거예요? 뭐, 여기가 패스트푸드점이에요? 메뉴 고르듯 간단하게 수술을 결정하게?”


마지막에 말을 마친 사람이 이긴 거다. 씩씩거리면서 늙은 의사를 노려보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신경질적으로 출입문 손잡이를 비틀어 열고는 거칠게 발을 내디뎠고, 곧장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곧이어 쾅! 귀를 찢을 듯한, 문 닫는 소리가 뒤를 때렸다. 생각보다 소리가 컸다. 그러려던 건 아니었다. 집에서 이랬다면 ‘바람이 그런 거야! 바람이!’ 라고 항변했겠지만, 여기는 병원이지 않은가. 복도 대기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본다. 보는 눈들이 따갑다. 그렇지만, 소란을 피워 죄송하단 말은 싫다. 머리에 꽃 단 미친년이 낫겠다. 눈에 힘을 와뜩 주고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천하 대장군처럼 두 팔을 휘저으며 군중들 앞을 지나쳤고, 잠시라도 지체되면 진상 짓의 끝판 왕을 보여주겠다는 눈빛으로 데스크 앞에 서서, 비장하게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박현조 님, 칠만 오천 원입니다. 보험사 제출용 영수증도 드릴까요?”


다행히 간호사는 센스있고 친절했다. 나는 금세 얼굴을 풀었다.


“네 감사합니다.”


찡그렸던 미간을 풀며 억지로 웃었다. 짜증과 미안함이 뒤섞인 얼굴로 실비 계산을 대충 해 본다. 오만 원일까, 육만 원일까. 이왕이면 칠만 원쯤 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 간호사가 고개를 들었다. 묵묵한 얼굴이었다.


“박현조님, 영수증 나왔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딱 봐도 병원 밥 좀 먹어 본 듯한 그녀, 미친년 어르고 달래 빨리 떨궈버릴 심산인 듯 상당히 친절한 음성으로 빠르게 작별을 건넨다. 나도 안다. 주먹만 한 돌멩이들이 휙휙 날아다니는 세상에서 버틸 방법은 최대한 허리를 낮춰야 한다는 것을. 그래 간호사가 무슨 죄냐, 최대한 ‘나는 당신을 물지 않아요.’ 표정을 지으며 정중하게 목례를 하고, 병원 밖으로 빠져 나왔다. 그러고는 곧장 병원 앞 놀이터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텅 빈 놀이터 낡은 벤치에 앉아 영수증을 반듯하게 펼쳤다. 잠시 숨을 고른 뒤 휴대폰 카메라를 꺼내, 빛이 반사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각도를 맞췄다. 그리고 ‘찰칵!’ 숨 쉬는 것보다 빠르게 보험사 어플을 열어 사진을 업로드하고 청구 버튼을 눌렀다. 곧 접수 완료 문자가 도착했다. 사나흘이면 보험금이 들어올 것이다. 효자손 같은 실비보험은 취업하자마자 나의 엄마, 허 여사 성화에 못 이겨 억지로 가입했던 건데, 매달 빠져나가는 보험료가 아까워 수백 번은 해약을 고민 했었으나, 돌이켜보니 인내심 있게 유지한 건 참 잘한 일 같다. 허리띠를 졸라매며 보험료를 부은 자신을 칭찬하려던 찰나, 진료실에서 들었던 의사의 말들이 불현듯 머릿속을 스쳤다.


- 망가진 자궁, 자궁 적출 수술


이런 심란한 단어들이 선명해질 때마다 방치된 놀이터의 낡은 그네를 눈으로 좇았다. 혹시라도 저걸 타다 뉘 집 아이가 다치진 않을까? 그런 쓸데없는 걱정으로 애써 생각을 돌려보려 했지만, 기억은 자꾸만 진료실 안으로 되돌아갔다.


“그래도 그렇지, 너무하잖아. 얼마나 긴장했는데, 거기다 대고 소금을 뿌려?”


기계처럼 무심히 진단을 내린 의사에게, 험한 말들이 미친 듯이 쏟아져 나왔다.


“싸가지 더럽게 없어. 우라질! 염병하네!”


듣는 귀를 보호 받아야 할, 대한민국의 보석들이 놀이터에 없는 게 다행이라 여기면서 험한 말로 랩을 뱉었다. 하지만 곱씹어보면, 그도 그저 자신의 일을 했을 뿐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게 오진이 아니라면 말이다. 오진.......정말 오진일까? 허약하고 병든 자궁은 삼십 년 가까이 극심한 생리통으로 내 몸을 끊임없이 괴롭혀왔다. 그날만 되면 나는 속으로 이를 바득바득 갈며 이렇게 외친다.


“이놈의 생리 년아, 작작 좀 해라!!”


그래... 마흔이 코앞인 나이에도, 초경을 앞둔 소녀처럼 월경이 다가올 때마다 공포에 떨곤 하지만, 그렇다고 자궁을 드러내라니. 혹이 있으면 혹만 떼면 되지. 왜 애먼 자궁까지 건드리려는 걸까? 피부과에서 점 하나 뗄 때조차 그 의사보다 훨씬 조심스럽게,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좀 전 산부인과 의사는 분명 무례했다. 부글부글, 화가 치밀어 오른다. 병원 안으로 다시 들어가 한판 크게 뒤엎고 싶은 충동이 치솟는다. 엉덩이에 스프링이라도 달린 듯, 몸이 자동으로 튕겨 올라왔다.


“썩을 의사 놈! 가만 안 둬!”


분노에 찬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순간, 두려움이 따라와 욕설을 막았다. 대신 혼잣말을 크게 내뱉었다.


“박현조 잠깐만! 정말로 보통 일이 아닌 거면?”


그렇게 빠른 진단이 나올 만큼 심각한 상황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잠시 감정을 가라앉히고, 산부인과 쪽으로 몸을 돌렸다. 유리벽에 붙은 활자들이 눈에 박혔다.


[자궁암, 자궁경부암, 자궁 내막 암, 난소암]


보기만 해도, 무서운 단어들. 피할 수 없는 무언의 경고 같은 것, 알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일지도. 마치 바위덩어리를 삼킨 듯, 무거운 기분이다. 혹시 모르니, 암 검사도 해봐야 한다고 했었는데....... 휘잉, 찬 겨울바람이 예고도 없이 안면을 가격하자, 이마와 두 볼은 얼얼할 정도로 감각이 무뎌졌고 동시에 아랫배에서는 바늘로 콕콕, 찌르는 통증이 시작된다. 요즘은 생리 때가 아니어도, 아랫배가 욱신거린다. 24시간 중 18시간, 30일 중 25일은 아프다. 특히 공복이 길어지거나, 걷거나, 오랜만에 운동을 할 때면 골반은 불쾌하게 조여 오고. 허리는 끊어질 것처럼 아프다.


“내가 이래서 다이어트를 못 하지!”


굽은 등으로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가면, 엄마가 혀를 차면서 마른 쑥을 넣은 전기장판 두 개를 가져온다. 하나는 허리에, 하나는 배 위에 올려놓고 익숙한 손길로 온도를 조절한다. 이런 일들은 어릴 적부터 빈번해서, 내가 허리를 굽히고 손을 아랫배로 가져가면 엄마는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처럼 필요한 물건들을 재빨리 준비한다. 쑥뜸, 부황, 수지침, 옥장판, 전기장판, 그리고 또 다른 수많은 것들까지. 늘 변해가던 엄마의 전투 장비들은 옥탑 방에 한가득 이다.


“약이 어디 있었는데.”


중얼거리며 복잡한 가방을 뒤져 파란색 액상 진통제와 반쯤 비어있는 생수병을 찾아냈다. 다시 놀이터 벤치에 앉아 말랑말랑한 알약을 입속으로 던지면서 생각했다. 물건 살 때도 여러 군데 둘러보고 사는데 병원도 마찬가지지.


“그래! 오진이야! 오진! 들숨! 후우~ 날숨! 후우~”


지그시 눈을 감고 양손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내리며 스스로를 다스려본다. 조금씩 심박 수가 안정권에 접어드는 것을 느끼던 그 순간, 가방 속에서 처량한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왔다. 깜짝 놀라 눈을 와짝 뜨고, 다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제야 깨닫는다. 나비 흉내를 내며 내 안에 성난 짐승을 달래는 것보다 더 필요한 건, 대화할 누군가라는 걸. 바르르 떨리는 손끝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고, 엄마의 음성이 들려오자 눈물이 핑 돌았다.


“허여사아아앙......”

“왜 그래? 병원에서 뭐라 그랬어?”

“다짜고짜 자궁을 떼라잖아.”

“뭐? 뭐라면서 떼라는데?”

“혹이 크고 여러 개라는데.”

“그럼 혹을 뗄 것이지 왜 자궁을 뗀데? 그러니까 엄마랑 같이 가쟀지?”

“자궁 떼라는 소릴 들을 줄은 몰랐지....”

“영희 딸은 너보다 더 심했는데 로봇수술인지 뭔지 해서 혹 싹 떼고 이번에 임신도 했다지?”

“그럼 나 어떡해?”

“일단 끊어봐. 영희한테 전화해서 물어보게. 너 어디야?”

“놀이터...”

“빨리 들어 가! 청승맞게 돌아다니지 말고.”

“심난해....”

“걱정하지 마! 어디 시집도 안 간 처녀한테 지랄이야? 가만 안 둬! 돌팔이 우라질 놈! 놈이야? 년이야?”

“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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