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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주양 Sep 27. 2024

2. 패스트푸드 진단

힐링장편소설(유리병 레몬사탕)



"자궁을 적출해야 합니다. 혹도 너무 많고 자궁 자체도 비정상적으로 부어있고. 수술날짜를 잡고 가세요."                   

 

비좁은 검사실에서 한숨을 폭폭 내쉬던 의사가 감정도 없이 아주 빠르게 진단을 내린다.        


"자궁에 있는 혹을 잘라낸단 말씀이죠?"        


창백하게 되묻자 무신경해 보이는 의사가 안경 너머 두 눈을 차갑게 번뜩인다.  


"환자님 자궁을 절제한다는 말입니다."               


그러고는 모니터로 얼굴을 돌리면서 두 번째 손가락으로 마우스 버튼을 틱틱 누른다.    


"망가진 자궁을 왜 달고 삽니까? 힘들게..."            


이젠 내 쪽으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무미건조한 의사를 멀뚱하게 쳐다만 볼 뿐,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젊은 사람 자궁이 왜 이렇게 망가졌어.."      


구시렁대듯 혼잣말하는 를 도저히 참아줄 수 없다며, 발끈 세포가 발작버튼을 주저 없이 누른다.      


"그게 제 책임이라는 거예요?"          


안경을 콧대에 걸친 의사가 나를 응시한다.        

  

"자궁을 드러내는 게 쉬운 일인가요?"            


격앙된 어투에 그제야 시선을 맞추는 의사가 눈치를 살피며 뭐라 뭐라 떠드는데, 자막 없이 보는 미국드라마처럼 당최 무슨 소린지 알아먹을 수가 없다.     

                 

"왜 그렇게 한심하게 보세요?"             


정수리가 훤한 남자 의사가 잠시 눈을 크게 뜨더니, 이내 입을 일자로 만들고.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더니 화면을 가리키며 애써 짜증을 억누른 어투로 입을 벌렸다.     


"환자님, 보세요!"     


자궁을 찍은 초음파 사진은 마치 천체망원경으로 촬영한 우주 한가운데 떠 있는 허연 달과 비슷해 보였다.             


"여기 주먹만 한 혹이 자궁벽에 딱 달라붙어있어요! 이뿐 아니라, 여러 개의 혹들이 난소에도 있고."       

    

"그럼 혹만 제거하면 되잖아요!"               


"혹만 제거하는 게 어려운 상태라니까요? 그리고 결혼도, 임신도 계획이 없다면서요?"     


"결혼 안 하고 애 낳을 생각 없으면 막 아무렇게나 자궁을 떼요? 강아지 고양이 중성화 수술 하는 것도 아니고! 패스트푸드도 아니고! 뭐가 그렇게 쉽고 빨라요?"           

    

"환자님 뭔가 오해를 하신 것 같은데요."               


"환자 아니거든요?"                


할 수 있는 만큼 인상을 구기면서 늙은 의사를 노려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돌아섰다. 신경질적으로 출입문의 손잡이를 비틀어 문을 열고 나와서는 온 힘을 실어 쾅! 닫았다. 대기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놀란 눈들로 쳐다본다. 아랑곳없이 양팔을 휘적이며 접수대로 가서는 신용카드를 내밀고 빨리 계산해주지 않으면 진상오브 더 진상의 끝을 보여주겠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문현조 님! 칠만 오천 원입니다."               


"보험사에 제출할 서류도 주세요!"                  


와중에도, 실비보험으로 돌려받을 금액을 계산하며 ㅇㅇ산부인과에서 나왔다. 병원 앞에 있는 놀이터로 성큼성큼 걸어가 나무벤치에 앉아서 영수증을 반듯하게 펼친 후에,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민다. 빛이 반사되지 않게 조심조심 각도를 맞춰서 찰칵! 숨 쉬는 것보다 빠르게 ㅇㅇ보험 어플로 들어가 사진을 올리고 청구버튼을 누른다.         


"미친 거 아니야? 그렇게 쉽게 자궁을 떼라고?"            

       

어릴 때부터 지긋지긋하게 나를 괴롭히는 생리통. 마흔이 코앞인 나이까지 초경을 하는 소녀처럼 월경 때만 되면 공포에 질려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자궁을 드러내라니. 혹이 있으면 혹을 떼야지! 왜 애먼 자궁을! 피부과에서 하나 뺄 때도 저 의사보다는 조심스럽게 권했다. 천불이 올라와 다시 들어가 한판 뒤집을 하다가, 한 푼 아쉬운 주머니 생각에 서둘러 생계가 달린 일터로 향했다. 파리만 날리는 나의 헌책방으로.       

         

작년 봄, 귀농한 부모님이 물려준 이층에 살림집이 달린 스무 평 남짓한 작은 가게는 본래 아버지가 삼십년 넘게 건어물을 팔았던 터전이었으나. 내 소유가 되면서 가감 없이 헌책방으로 바꿨다. 엄마의 예상대로 책방은 잘 되지 않는다. 월세가 나가지 않아 망정이지 전기세와 건물에 남은 대출이자와 반년에 한번 내는 재산세 또 등등의 생활비는 옆집 김치가게에서 마늘을 까주는 소일거리로 메꾸고 있는 참이다. 어쨌든 오래전부터 로망이었던 헌책방은 지갑을 두둑하게는 못해주나 만족감은 백 프로 채워준다.


"이 돌팔이 놈아! 오늘 운 좋은 줄 알아라!"                     


병원 쪽으로 냅다 고함을 지르고는 별안간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목이 몹시 타고 있다는 걸 이제 깨달았기 때문이다. 냉장고에서 레몬탄산수를 집어 계산을 하고 나와 부리나케 뚜껑을 돌려 벌컥벌컥 목구멍으로 들이붓는다. 톡 쏘는 탄산에 두 눈을 질끈 감고 몸 한번 부르르 떨고는 ㅇㅇ산부인과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우두커니 서서 유리벽에 붙어 있는 활자들을 눈에 담는다.                 

       

[자궁암, 자궁경부암, 자궁 내막암, 난소암]                   


암 검사도 따로 해봐야 한다는 싸가지 없는 의사에 말이 시린 겨울바람과 함께 안면을 때린다. 순간 아랫배가 찌르르 아파온다. 아 차가운 탄산수.. 괜히 먹었네, 가방을 뒤져 파란색 액상 진통제를 찾으며 다시 들어가 생수 한 병을 계산했다. 말랑말랑한 알약을 입속으로 던지면서 생각했다. 물건 살 때도 여러 군데 둘러보고 사는데 병원도 마찬가지지. 오진도 많고.


'그래! 오진이야! 오진!'


머리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며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편의점을 나서면서 단짝친구에게 근심을 털기 위해 휴대폰을 들었다. 전화번호부를 뒤적뒤적, 통화내역까지 샅샅이 찾아보는데 서현의 이름을 찾을 수가 없다.


'어제도 통화했잖아?'


애먼 휴대폰 액정을 쏘아보다가 동작을 멈추고 크게 심호흡을 한다.     


들숨! 오 사삼이 일, 후우~     

날숨! 오 사삼이 일, 후우~


"문현조! 왜 그래? 이런 일로 당황한 거야? 침착해! 아무 일도 아니야! 오진일 거야!"


지그시 감은 눈꺼풀 위로 행인들의 움직임이 어른어른 감지된다. 길 한복판에서 양손을 올렸다 내리며 혼자 떠들고 있는 여자를 정상은 아니라고 생각하겠지. 그럼 알아서들 피해 가라고! 심박 수가 안정적으로 뛰는 것을 확인하고 즐겨찾기에 등록된 [고딩칭구 이서현]을 클릭한다. 약간의 착신음이 흘렀고 서현의 음성이 들리자 괜스레 눈물이 핑 돌았다.                 

        

"서현아...."                         


"왜 그래? 병원에서 뭐라 그랬어?"      


"다짜고짜 자궁을 떼라잖아...."         


"미친 거 아니야? 뭐라고 진단이 나왔는데?"        

     

"혹이 크고 여러 개라는데..."       


"그럼 혹을 뗄 것이지 왜 자궁을 뗀데?"           


"뭐라 뭐라 떠드는데..."                   


"애초에 상급병원으로 가라고 했잖아! 김영한 교수님으로 예약해! 인터넷으로 무조건 빨리해! 지금 해도 두 달은 대기탄다. 별일 아니야! 간단하게 로봇수술로 근종만 뗄 거니까. 자국도 안 남아! 아니 그 의사 미친 거 아니야? 갑자기 뭔 자궁적출?"           


"그렇지? 의사가 돌팔이 맞는 거지?"                


"현조야! 신경 쓰지 말고. 빨리 예약이나 해!"     





다음 편 3화, 생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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