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정말 빠르게 지나가, 오늘은 한주대학병원 산부인과 진료 날이다. 52일 동안 세 번의 생리를 했고. 두 번의 응급실과 네 번의 진통주사, 마흔두 알의 아스피린을 먹었다. 절대 혼자 가지 말라는 서현의 권고로 며칠 전부터 서울집으로 올라와있던 엄마와 병원으로 이동 중이다. 휴대폰을 뒤적이며 잠실역에서 한주대학병원으로 가는 버스의 노선을 확인한다.
"1번 출구로 나가서 맥도널드 앞 버스정류장 241번, 125번, 172번..."
국사책을 외우듯 웅얼거리고 있는데, 옆 좌석에 앉은 엄마가 계속해서 흘긋흘긋 나를 쳐다본다. 눈은 휴대폰 화면에 집중되어 있으나, 허여사의 훔쳐보는 시선은 오롯이 다 느낄 수 있었다.
'아.. 불편하다. 그냥 혼자 올 걸..'
사골처럼 밤새 고운 소고기 미역국을 후루룩 마실 때까지 건너편에 앉아 파란색 페인트로 칠해놓은 현관문을 마뜩잖게 흘겨보던 엄마의 따가운 아침의 눈총은. 한 시간이 지난 여태까지 이어지고 있다. 누군가 제동을 걸어주지 않는 이상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 왜! 할 말 있으면 하셔! 뭐뭐! 현관문 칠해놔서 그래?"
"하얀색이나 아니면 원래 색으로 하지.. 새파랗게 그게 뭐냐?"
"알아서 하라며? 이젠 내 집이라며?"
"그래도 그렇지 시퍼렇고 흉물스러워.. 쯧"
말끝을 흐리며 혀를 차는 엄마가 한 대 쥐어박는 시늉을 한다. 잠시 후, 마른 입을 쩝쩝 다시면서 내쪽으로 다시 얼굴을 돌린다.
"그럼 혹만 떼면 생리통도 없어지는 거래?"
"뭐 확실치는 않은데. 인터넷에는 생리통 원인이 혹 때문이라니까.."
"에휴, 생리를 일찍 해서 그런가.. 왜 그렇게 유난스럽게 아픈지. 현조야 아기 낳으면 생리통 싹 없어진단다!"
"아니! 시집도 안 갔는데, 애를 낳으라고? 무슨 말 같지도 않은.."
"그러니까. 시집가라는 거지.."
"아니 생리통 없애려고 억지로 시집을 가? 그리고 작자가 있어야 결혼도 하는 거지, 엄마는 무슨 슈퍼에서 물건 사는 것도 아니고!"
"아참! 병원 갔다가 마트 가자고 꼭 말해! 집에 세재도 없고, 간장도 없고 살 거 투성이더라"
엄마와의 대화는 늘 바다에서 시작해 산에서 끝이 난다.
"그런데.."
"아 왜! 한 번에 말해! 좀!"
"수술자국은 안 남는데?"
"요즘은 기술이 좋아서 로봇수술이라고.. 서현이는 자국 없다는데?"
"그래? 로봇이 수술을 해? 수술 중에 로봇 고장 나면?"
하아... 깊은 한숨과 동시에 눈을 희번덕거리자, 본인도 어이가 없는지 실없는 웃음을 터뜨린다.
"근데.. 내가 보험을 최근에 들어서 보장이 될지 안 될지 모르겠어."
"에응 되겠지! 안 되는 게 어딨어?"
"엄마.... 안 되는 것도 있지. 가입 연도마다 다르다니까."
"그러게 왜 옛날 보험을 해지를 해가꼬서는!쯧!"
허여사의 잔소리가 돌림노래가 되기 전에 팔짱을 끼고 자는 척을 했다. 한동안 내 얼굴을 멀끄러미 바라보는 엄마의 애정 어린 눈길이 불편하고 따가웠지만. 모른 척, 감각의 코드 선을 뽑았다.
병원에 도착하자, 많은 인파와 건물의 크기에 압도된 우리 모녀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진료시간이 임박한 건 아니었지만, 괜히 초조해지고 신경이 곤두서서 미간이 초승달처럼 좁아졌다.
"현조야 저기 안내하는 분 있다."
엄마는 검은색 양복을 입고 작은 데스크 앞에 있는 남자에게 내 손을 잡아끌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산부인과 진료 받아야 하는데, 처음이라서 어찌할 줄을..."
말끝을 흐리는 엄마를 향해 몸을 낮춘 안내원은 미안하리만큼 친절하게 말했다.
"저기 창구 보이시죠? 첫 번째 칸에 처음 오신 분, 이라고 쓰여 있는 곳에 가셔서 번호표 뽑으시고 기다리시면 됩니다. 접수창구는! 이쪽으로 오세요."
직접 데스크에서 나와 창구의 위치를 알려주는 목소리가 나긋한 안내원에게 엄마와 나는 몸 둘 바 몰라 연신 목례를 하며 감사를 표했다. 커피숍 맞은편에 위치한 접수창구로 걸어가면서 조금씩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왠지 여기서는 그간 산부인과에서 받아왔던 상처와 외로움은 비껴갈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들었다.
"현조야, 이 병원 참 친절하다."
"그러게... 김영한교수님 실력이 그렇게 좋다데? 나 간단하게 약물로도 고쳐진다 하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좋은 건지!"
김칫국 모녀는 금방 해해거리면서 번호표를 뽑아 대기석에 앉았다.
"어우, 커피 향 너무 좋다."
"한잔 마실까?"
"다 끝나고 마셔!"
"엄마 오랜만에 뷔페 콜?"
"그래 콜이다, 콜!"
"누가 보면 계라도 탔는 줄 알겠어!"
"현조야, 느낌이 좋아! 걱정하지 마!"
허여사를 향해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내가 갖은 번호표의 숫자가 전광판에 떴다. 엄마의 등을 장난스레 툭툭 치면서 일어나 접수창구로 걸어갔다. 데스크직원 역시 친절하게 출입증카드를 주면서 안내문을 설명한다. 직원에게 받은 서류를 보물처럼 손에 쥐고 신관으로 이동해서 접수를 하고 한참의 대기 끝에 비닐에 쌓인 치마를 받을 수 있었다. 엄마한테 대기석에서 기다리라고 말한 후에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1번 검사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어려 보이는 여자 의사가 들어와 초음파 검사를 시작했다.
"불편하시면 말씀하세요."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다. 상급병원은 초음파검사까지 친절했다. 왠지 마음이 놓였고두 달 가까이 마음을 졸이던 게 억울해졌다.
"수고하셨어요."
아닙니다. 선생님이 더 수고 많으셨습니다. 속으로 열 번 넘게 절을 하며 검사실에서 나와 옷을 갈아입고 대기석에 멀뚱하니 앉아 있는 엄마를 한번 건너보았다.
"휴대폰으로 고스톱이라도 치고 있지..."
멍하게 있는 엄마가 신경 쓰여 자꾸 대기석 쪽으로 몸이 돌아갔다. 애써 외면하고 안내문 2번 문항대로 기계에서 수납을 했다. 그러고는 김영한 교수 방앞에 도착해서 [진료진행상황]이라 쓰여 있는 전광판만 뚫어지게 주시했다. 아직 내 이름은 화면 안에 들어가 있지도 않았다. 벽에 기대어 스마트 폰으로 엄마랑 갈 맛집들을 검색하다 보니 어느새, 내 이름이 세 번째 줄에 가 있었다.
"문현조 님, 준비하세요."
간호사가 다가와 팔목에 붙어 있는 스티커를 확인하고는 안내문을 가져갔다. 곧 진료실 문이 열렸고, 교무실에 불려 가는 주눅 든 학생처럼 따라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문현조 님"
몹시 피곤해 보이는 김영한 교수에게 인사를 하고 긴장한 표정으로 그 앞에 앉았다. 여러 대의 모니터 안에는 영어로 된 글자와 초음파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화면을 응시하는 교수의 뒷모습을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딸깍, 딸깍. 마우스 버튼의 소리만이 간혹 들릴 뿐, 진료실 안은 무덤처럼 적막했다. 시간이 갈수록 입술은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심장은 터질 것만 같았다.
"생리통이 많이 심하세요?"
고요를 깨고 감영한 교수가 내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 일상생활이 힘들 만큼 심하고, 이제는 생리를 안 하는데도 통증이 심해요."
유심히 듣던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 쪽으로 회전의자를 돌렸다.
"문현조 님, 지금 자궁상태가 좋지는 않아요. 혹이 크고 난소 양쪽에도 있어서 통증이 있는 거고. 일단 혹을 제거한다고 해도. 이런 상태면 임신할 수 있는 자궁이 아니에요. 확실한 치료법은 자궁과 난소 나팔관을 다 절제하는 것인데. 미혼이라고 하시니. 난소는 살리고 큰 혹이 붙어 있는 이 아래쪽 자궁을 반만 잘라내는 걸 권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호르몬은 정상적으로 흐르고 생리는 안 하기에 통증에서 자유로울 수 있죠."
"반이라고 하신다면, 어쨌든 자궁을 절제하는 거죠?"
김영한 교수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머릿속이 온통 하얘져서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다. 한동안 나는 침묵했고. 김영한 교수는 조용히 기다려줬다.
"바쁘신데 죄송해요. 일단 제가 아직 마음에 준비가 안 된 거 같아요. 자궁을 떼는 건 생각도 안 해봤거든요."
눈물을 꾹 참으려고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의심되는 부분도 있어서. 암검사도 해봐야 하니까, 오늘 피검사 받고 일주일 뒤에 다시 말해보는 걸로 하죠."
알겠다고 하고는 서둘러 진료실을 나왔다. 내 팔을 부드럽게 잡은 간호사가 데스크로 데려가면서 가만히 등을 토닥여줬다. 눈물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막고 턱관절에 힘을 주었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은 오직 그 말뿐이었다.
'엄마한테 뭐라고 말하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채혈실 앞이었다. 피를 뽑고 다시 수납을 하고 잠시 석상처럼 굳어 있다가 산부인과 대기석으로 맥없는 몸을 돌렸다. 사형선고를 받은기분이다. 52일 전, 동네 산부인과 앞에서 단언했던 것들이 와르르 무너졌다. 모래 위에 지은 기대감이라서 힘없이 내려앉는가 보다. 눈물이 가득 차 있어서 앞이 보이질 않았다. 아무리 참으려고 숨을 막아보아도 고장 난 하수처럼 솟구쳐서 한참을 혼이 났다. 줄줄 흐르는 눈물과 콧물을 소맷귀로 훔치며 진정하자. 진정하자.. 속으로 읊조렸다.
'그냥 혼자 올 걸..'
저만치 멍한 얼굴로 앉아 있는 엄마의 실루엣이 아른거린다. 부쩍 늘은 흰머리와 볼륨 없이 축 늘어져 풀린 펌. 손쓸 수도 없이 망가져버린 내 자궁처럼 엄마의 젊음도 찰나에 빼앗겨버렸나. 서러움이 멈추질 않아서 미쳐버리겠다. 후우. 후우. 홍수가 난 것 같은 가슴을 쿵쿵 내리치면서 걸음을 옮겼다.
"엄마.... 빨리 나가자."
얼굴을 푹 숙인 채 다가가 엄마를 재촉했다. 허 여사는 눈만 동그랗게 뜬 채로 벌떡 일어나 내 뒤를 부리나케 따른다.
"현조야.. 뭐래?"
엄마.. 나가자.. 나가자.. 작은 목소리로 같은 말을 반복하며 창가에 커튼을 치듯 머리카락으로 눈을 가렸다. 우두커니 서서 나를 살펴보는 엄마가 말없이 들고 있던 패딩코트를 펼쳐서 어깨에 둘러주었다. 등 뒤에 닿은 엄마의 손끝은 한겨울의 가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