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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주양 Oct 07. 2024

6. 자순이의 일기

힐링장편소설(유리병 레몬사탕)


#6


[안녕? 나의 자궁아. 이젠 너를 자순이라고 부르기로 했단다. 어때, 마음에 드니? 네게도 감정이 있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됐어. 오랜 시간 너를 미워하고. 저주하고. 욕을 해서 병이 든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어. 사랑받지 못하는 네가 슬프게 울 때마다 내가 아팠던 건 아닐까? 이제 나는 너 자순이를 사랑할 거야. 외롭지 않게 하루에도 번씩 말도 걸어줄게. 네가 좋아할 음식. 온도. 환경을 만들어 줄 거야. 그래서 다시는 너를 도려내라는 소리는 듣지 않을 거야.

Ps 자순이 네가 원하는 건 남자의 사랑이라 하더라? 미안해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아, 인생에 이제 인간 남자는 없거든. 자순아! 나의 애정만으로는 부족한 거니?]


"문현조가 돌아이라는 건, 알았지 이 정도로 미친 줄은 몰랐다."


"아 왜!"


"자궁에 이름 붙여 일기 쓴다는 게, 그럼 정상인이냐? 그리고 하필 이름도 자순이가 뭐니 자순이가.."


서현이 어이없다 듯,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흔들었다. 나는 서현의 손에 들린 노란색 천으로 쌓인 일기장을 낚아채며 부어터진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우리 자순이는 요즘 안 울어?"


"응! 대포주사 효과가 좋은 것 같아!"


"생리 안 하니까, 아프지도 않아?"


"응! 나 정말 이렇게 세상이 아름다운 줄 몰랐다."


"부작용은 없데?"


"생리를 억지로 막아서 강제 폐경상태로 만드는 거니까. 갱년기 증상이 온다는데. 나는 그런 건 모르겠어. 마냥 행복해. 얼굴에 팔자주름까지 옅어진 것 같지 않아?"


"그건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우리 현조가 행복해 보이긴 하네. 혹까지 확 사라졌으면 좋겠다. 지금까지는 아파서 못했지만, 이제는 운동도 좀 하고. 유기농 채소 많이 먹고. 알았지?"


"진짜 새롭게 태어난다는 생각으로 운동할 거야! 지금까지는 조금만 걸어도 자궁에 조리를 트는 것처럼 아프니까, 못한 거지.. 나 정말 땀날 만큼 뛰고 싶었고! 수영도 하고 싶었어!"


만히 나를 바라보서현의 입가에 미소가 어려있지만, 왠지 모르는 그늘이 드리워져있었다. 뭔가 말을 하려다가 속으로 삼키는 서현을 보며 속으로 갸우뚱했으나, 이내 그녀의 우울한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건 아마도 너무 큰 희망은 거대한 실망을 안겨 줄 거라는 염려 일 것이다. 만약에를 두 가지 상황으로 연거푸 말했던 나의 엄마처럼 서현의 심정도 그러하리라.


"다음진료는 언제래?"


"3개월 뒤. 주사 효과가 딱 3개월인가 봐."


"김영한 교수님이 대포 주사로 생리 멈춰보자고 하디?"


"내가 먼저 제안했지. 자궁을 떼는 건 생각도 안 해봤다고. 내게는 좀 큰일이라 마음에 준비가 필요하다고. 허나 생리통 때문에 일상이 어려우니 대포 주사를 맞는 동안 마음에 준비를 하고 싶다고 말했어. 그러니까, 이해해 주시더라."


서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앞에 놓인 대야에서 물에 젖은 마늘 한통을 집어 깨작깨작 껍질을 벗기려 시도를 다. 나는 하려면 제대로 하라고 핀잔을 주면서 서현에게 과도칼을 건네주었다.


"마늘 까면 얼마 주는데?"


"요즘은 양파도 까니까. 한 달이면 그래도 오십만 원은 되지?"


"그걸로 생활비 되는 거야?"


"좀 부족해서 재택근무 같은 거 알아볼까 봐"


"여하튼, 마늘 양파가 어마무시하다.."


출입문 옆 데크 그득하게 쌓여있는 주홍색 그물더미에서 풍기는 매큼한 내음이 책방 안까지 들어와 코끝을 간지럽혔다. 매운 향기 때문에 열어놓은 문틈으로 차가운 공기가 스며들었지만, 화목난로에 따뜻한 온기 덕분에 춥지는 않았다.


"현아, 추워?"

"아니 더워"

"보이차 마실래?"


난로 위에서 하얀 김을 내뿜는 주둥이 긴 스텐주전자를 향해 턱짓을 하니, 서현은 화장실 가기 귀찮다고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통유리로 된 창밖을 바라보았다. 전날 밤까지 내린 함박눈으로 눈이 부셨다. 다행히 반가운 겨울햇살이 거리에 쌓인 눈을 녹이고 있어서 신발이 더러워지진 않을 것 같았다.


"올해는 눈이 많이 왔어"

"그러게"


서현이 콧등을 몇 번 찡그리다가 어설픈 솜씨로 마늘의 살을 절반이나 깎아대며 물었다.


"하루에 손님 얼마나 와?"


"한 명도 없을 때도 있고, 헌책 팔러 오는 사람은 종종 있는데.."


"그럼 책값 줘야 하잖아! 버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은 거야?"


"무슨.. 책이 들어오잖아, 그리고 거의 새책 수준인걸? 헌책 무시마지 말자.."


"암튼, 책욕심은.."


"어쨌든 보물창고 같아서 앉아만 있어도 좋아"


"그냥 서점을 하지 왜 하필 헌책방이야?"


"음.. 헌책에는 사람냄새가 난다고나 할까? 소유했던 이의 마음이 묻어있는 것 같아."


"뭐래.. 다 떠나서 현조야! 온라인으로 운영하라니까?"


"어떻게 하는지 몰라, 귀찮아.."


"야! 이왕 하는 거, 잘해봐야지.."


"나 지금 자순이 때문에 여력이 없어! 닦달 좀 하지 마!"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애교랍시고 앙탈 비슷한 걸 부리자, 서현은 룩이는 입술에 힘을 주면서 한동안 나를 장난스럽게 흘겨보았다.


"어머니는 뭐라시고?"


"우리 엄마? 엄청 좋아하지! 혹도 싸악 사라지면 좋겠다고. 요즘 새벽예배 가서 기도한단다! 그리고 일단 암은 아니라서 너무 기뻐하지.."


"네가 암 검사 받았다고 해서 솔직히 나 울었다."


서현이 말끝을 흐리며 얼굴을 떨구그녀의 하얀 피부 위에 오렌지색 노을이 내려앉았다. 나는 괜스레 미안해져서 서현을 향해 입술을 쭈욱 내밀면서 콧소리를 내었다. 걱정해 줘서 고맙다는 의미라는 걸 서현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말라비틀어진 저 꽃은 뭐야?"


"아.. 파란 장미? 그날 병원서 엄마가 선물한 거. 파란 장미 꽃말이 기적이라면서.."


"와아 어머니 역시 낭만적이셔!"


"내가 복을 부모님 잘 만난 걸로 몰아 받은 것 같아.. 엄마가 미역국 한솥 끓여놓고 갔어! 이따가 밥 먹고 가."


"참! 그 친구는 어딨어?"


유리구슬처럼 반짝이는 서현의 눈동자가 내게 고정되었다. 나는 선뜻 입이 떨어지질 않아 시선을 피하며 머뭇거렸다. 그러고는 대답대신 출입문 쪽을 흘긋거리며 만화책으로 한 면을 차지한 책장을 응시하다가. 데스크 위에 올려둔 자명종 시계에서 시선을 멈췄다.


"어딨냐니까?"


서현이 높은 음으로 재차 물었다. 나는 어린 도둑처럼 화들짝 놀라면서 입술만 벙긋거렸다.


"왜? 네가 생각해도 황당해?"


서현이 피식 웃으며 말하자. 나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에 네 전화 받고 깜짝 놀랐다. 까칠 보스가 미쳤나 싶었어. 길에서 만난 초등학교 동창이랑 같이 산다니.."


"남편이 찾으러 올 동안 잠시만 있는다니까.."


"남편 어딨다는데?"

"몰라.."


"결혼 언제 했데?"

"몰라.."


"임신 몇 개월 이래?"

"몰라.."


"드디어 미친 거니?"


  전, 병원에서 3개월간 생리를 멈추게 하는 대포주사를 맞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평일 낮임에도 지하철승객으로 수두룩 빽빽이었다. 오래 걸었던 터라, 하복부가 묵질 하니 찌르르해서 앉을자리가 너무도 간절했다. 그러나 만원

지하철은 한 자리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게 왜 그렇게 서러웠는지 울컥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손등으로 뺨 위에 흐르는  닦아내고 지하철 차창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응시하며 울음을 삼켰다. 그러다가 혹시 다른 칸에는 자리가 있을까 싶어 두꺼운 쇠문을 열어 옆 칸으로 불편한 몸을 옮기던 그때, 저 멀리 비어 있는 좌석 하나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오 지져스.."


아랫배를 양손으로 움켜쥐면서 찬 걸음을 옮겼다. 보는 눈만 없다면 춤이라도 출 판이었다. 그러나 목표 지점으로 다가서는 내 얼굴은 점점 일그러졌다. 알고 보니, 그 빈자리는 핑크색 임산부 좌석이었기 때문이다. 아.. 찰나에 달콤함으로 기쁨주고 순식간에 빼앗아 이내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얄궂은 분홍색 희망이여.. 눈물이 솟구치고 약이 올랐다. 허리는 쑤시고 밑은 빠질 것처럼 아팠다. 육신에 괴로움을 떠나 영혼이 서러웠다. 이제 나는 결코! 핑크색 의자에 앉을 일은 없을 것이다. 자궁에 아이가 아닌 혹이 든 젊은 여자는 국가로부터 어떤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순간 부아가 치밀었고, 앞뒤 생각도 없이 임산부석에 털버덕 앉아버렸다.


'하아... 편하다..'


절로 탄성이 새어 나왔지만 안락함 뒤에 도덕적인 양심이 폐부를 찔렀다. 살짝 실눈을 뜨고 주변을 살폈다. 다들 스마트폰을 보거나, 눈을 감고 있었다. 핑크색 임산부석에 앉은 나에게 관심을 두는 이는 없었다. 그럼에도 코트로 몸을 감싸고 가방으로 아랫배를 가리면서 임산부인 척 눈을 감았다. 두꺼운 코트 아래 숨긴 것이 아기일지, 병든 자궁일지, 알게 뭐람.


그렇게 편안하게 눈을 감은 지 오분이나 지났을까? 누군가 얇은 손가락 끝으로 내 손등을 톡톡톡 건드렸다. 나는 깊은 잠에서 깬 사람처럼 일부러 머리를 흔들면서 와짝, 눈을 떴다. 방어기제로 인상을 구기면서 앞을 가로막은 실루엣을 올려보았다. 부스스한 머릿결, 창백한 피부와 허옇게 부르튼 입술. 계절과 맞지 않는 가을 스웨터를 입은 여자가 꼬질꼬질한 에코백에 달린 핑크색 열쇠고리를 당당하게 검지로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여자가 손짓하는 열쇠고리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동그란 고무판에 핑크색 테두리. 하얀 원형 안에 배가 나온 여성의 그림. [임산부 먼저], 하트밑에 쓰여있는 문장이 눈 안에 들어오자, 정신은 아득해지고. 가슴은 쿵닥거렸다. 뭔가 아주 큰 범죄를 저지른 것 만 같았다. 벌떡 일어나 사과를 하고 좌석의 주인에게 내어 주는 게 맞는 이치임에도. 엉덩이가 요지부동 움직이지를 않았다. 병든 나의 육체는 임산부석을 지키며 오기를 부렸다. 임산부키링을 가방에 매단 여자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싱긋 웃었다.


'뭐야? 임산부라고 뻐기는 거야?'


나는 속으로 비아냥거리며 한동안 심술을 부리다가, 퍼뜩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박차고 다른 칸으로 성큼성큼 큰 폭으로 걸었.


'내가 진짜 임산부면 어쩌려고 저렇게 당당하게 비키래?'


중얼중얼, 아랫배를 움켜쥐며 앞칸의 무거운 철문을 밀어젖혔다. 그러다가 문득 께름칙한 기분에 뒤를 돌아보자. 아뿔싸! 임산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다가오고 있는 게 아닌가? 바로 양보 안 했다고 따지려는 건가? 나는 머릿속으로 임산부에게 자리를 안 비켜줬을 때 받는 벌금이나 처벌 같은 게 있는지 떠올려봤다.


"그런 건 없어.."


얼거리면서 덜컹거리는 지하철의 사이문을 지났다. 잰걸음을 재촉하다가 혹시나하고 뒤를 돌아보, 가방에 달린 핑크색 키링을 발랄하게 흔드는 그녀가 계속해서 쫓고 있었다.


"뭐야? 미친 거야?"


둥근 지구에 사는 나, 문현조는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날 요량으로 앞으로 앞으로 도망을 다. 세 번째 칸으로 이동할 때쯤 슬쩍 뒤를 돌아보니, 미친 여자 같으니라고.. 이제는 환한 미소와 함께 손까지 흔든다. 공포영화가 따로 없었다. 마침, 안내방송이 흘러나왔고, 지하철에 문이 열렸다. 목적지는 아니었지만, 재빨리 내렸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개찰구를 빠져나와 역사 계단으로 껑충껑충 뛰어올랐다. 신경을 콕콕콕 건들며 때마다 통증을 일으키던 자궁도 급박한 상황임을 인지했는지, 잠잠해졌다. 이때다 싶어 다리에 힘을 실어 속도를 높이려던 그때.


"너 현조지? 문현조! 나 경순이야. 이경순!"


경순이? 낯익은 이름에 우뚝 걸음을 멈춘 나는 목소리가 들리는 으로 천천히 얼굴을 돌렸다. 


이경순?

이경순... 

이경순!


저 생경한 여자에게서 이경순이라는 이름이 선명해질수록. 지우고 싶은 기억들이 짙은 단어가 되어 바다 위에 부표처럼 동그마니 떠올랐다.


국민학교?

헌 옷...

유리병 레몬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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