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주양 Oct 04. 2024

5. 로또와 파란 장미

힐링장편소설(유리병 레몬사탕)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엄마보다 빠른 걸음으로 병원을 빠져나왔다. 뒤에서 따라오는 허 여사의 한숨소리가 처량하게 전해져서 울컥하는 목 끝이 따끔해졌다.


"현조야. 선생님이 뭐라 그러는데.."


인파가 잦아드는 공원으로 들어서자, 한 발자국 떨어져 걷던 엄마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그제야 잠시 막아놨던 내 울음보는 마음 놓고 터져 나왔다.


"엄마아아... 엄마아아.."


일곱 살쯤인가.. 동네에서 길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 한시도 가만있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묵동에서 태릉사거리까지 골목길이 몇 개가 되는지, 보물섬을 찾아 항해하는 해적선처럼 모험을 떠나곤 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새로 찾은 골목길에서 만세를 외치고, 붉은 벽돌집을 끼고 있는 길목을 지나 집으로 가려는데. 불량해 보이는 언니오빠들이 초입막고 있었다. 벽돌집 골목이 아닌 곳으로는 돌아가는 방법을 몰랐기에, 안절부절 발만 동동 굴리다가. 새로운 을 개척하자는 치기로 씩씩하게 팔을 흔들며 큰 거리로 나섰다. 


양품점과 번데기집 사이에 놓인 육교만 찾으면 된다. 그러나 점점 대로변은 넓어졌고, 낯선 냄새가 후각을 마비시켰다. 이내 온몸과 마음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어찌할 줄 몰라 그 자리에서 오줌까지 지리면서 엉엉 울었다. 세상이 끝나버린 것만 같은 공포감. 처음 겪는 혼자라는 외로움과 두려움.


나는 지금 길을 잃은 일곱 살 아이처럼 울고 있다. 그때처럼 완전히 혼자가 되어 버렸다. 오래도록 괴롭게  자궁은 결국 나를 미아로 만들어버렸다.


"현조야.. 왜.. 뭐라 그러는데? 응?"


"자궁 떼는 거 맞데.. 암검사도 해야 한데.. 동네병원 의사가 자궁 드러내라고 했을 때, 오진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엄마 내 자궁이 병들었데. 고장이 났데. 손 쓸 수가 없데.."


엄마가 시든 꽃처럼 아래로 풀썩 주저앉는다. 나도 따라 내려가 무릎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내 호흡보다 빠른 눈물이 숨통조여끄윽끄윽, 거친 소리를 몰아게 만들었다.


"내가.. 말로는 비혼이라 그르구.. 애 안 낳은다고 했어도.. 좋은 사람 생기면 결혼도 하고 아기도 갖고 싶었어.. 암일 수도 있데.. 검사해야 한데... 엄마아.. 나 이젠 끝났어.."


나는 한참 목을 놓았고 엄마는 망부석처럼 앉아있었다. 조금 뒤, 크고 둥그런 그림자가 머리 위를 덮었다. 이내 차갑게 얼어붙은 손 하나가 머리부터 목덜미까지 쓸어내렸다.


"괜찮아! 애 못 낳으면 입양하면 되고! 암이라도 치료받으면 돼! 요즘 의술이 얼마나 발전했는데. 걱정하지 마! 일어나!"


별안간 허윤정 여사가 억센 힘으로 내 팔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문현조! 엄마 똑바로 봐! 울지 말고!"


나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어 터져 나오는 울음을 막고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허여사의 안색은 피로 물든 것처럼 새빨갛고 입술은 내가 칠한 현관문처럼 시퍼렇다.


"암은 절대 아니야! 엄마가 알아! 자궁은 없어도 되는 거야! 네가 아프잖아! 그지?"


나는 끄윽,끄윽, 울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밥 먹으러 가자!"


일곱 살, 길을 잃었을 그때도 엄마는 날 찾아냈다. 낯선 대로변에서 울고 있는 내 이름을 크게 불렀고. 괜찮다고 말해줬고. 강한 팔로 안아줬다. 너무 울어 기진맥진한 어린 나를 둘러업고 엉덩이를 토닥이며 집으로 가는 길을 찬찬히 알려줬었다.


"현조야. 이렇게 오른쪽으로 두 발자국만 나오면 육교가 보이잖아! 육교 앞에는 뭐가 있지?"


"번데기집!"


"번데기집을 끼고 오른쪽? 왼쪽?"


"왼쪽으로 쭈욱 올라가면 묵동청물점! 우리 집!"


"그렇지!"


엄마는 늘 괜찮다고 이겨낼 수 있다고 말했다. 노을보다 더 붉게 물든 얼굴과 시퍼렇게 질린 입술로.




며칠 가게 문 닫고 청평으로 가자는 엄마의 재촉에 버스에서 내려 잠실역 환승센터로 걸음을 옮겼다. 가는 도중에 롯데백화점 앞에 있는 갑판대 옆으로 줄지은 행렬이 호기심에 불을 질렀다. 자꾸만 그쪽으로 흘긋거리는 나에게 엄마가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현조야 로또사자!"


"웬 로또?"


"주님이 건강과 자녀는 안 주셔도 물질이라도 주실지 아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엄마에게 이끌려 행렬에 맨 끝에 서서 심드렁하게 기다렸다. 날카로운 한기 때문에 코끝은 얼얼하고 아랫배는 시큰한 냉기가 흘렀다. 집에 가서 뜨거운 물로 아랫배와 허리를 녹이고 서둘러 전기장판에 허리를 지지고 싶다. 그러나 애써 기운을 주려는 엄마의 정성을 무시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아.. 그냥 혼자 올걸..'


만약 엄마 없이 혼자 왔으면, 지금보다 더 많이 울고. 카페에 앉아 멍을 좀 때리다가 생각 좀 정리하고. 서현이와 통화를 하면서 다시 한번 더 울고. 쏟을 만큼 다 쏟아서 눈물이 매 말랐을 때, 그때서야 엄마에게 전화를 했을 텐데.. 그랬으좋았을 텐데..


"얘 현조야! 로또는 이렇게 사는 거야!"


앞줄에 한 사람이 남아 다음 순서가 되자, 엄마가 목청을 높이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매대 안에서 "자동이요 수동이요"라는 목소리가 들리자, 엄마가 "자동 다섯 개"라고 대답했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엄마가 신기해서 피식 웃어 보였다. 점원이 건네는 작은 종이를 한번 들여다 보고는 잠시 기도하는 손을 하더니. 로또 종이를 내 호주머니에 쏙 넣어주면서 엄마가 말했다.


"엄마가 꽃도 사줄게! 지하에 꽃가게도 있더라고."


"웬 꽃..."


지하 쇼핑센터 안에 꽃가게가 있는 건 언제 봤는지. 엄마는 파란색으로 염색한 장미를 사서 내게 건넸다.


"꽃집 아가씨가 그러는데. 파란 장미 꽃말이 기적이래! 너 시퍼런 거 좋아하잖아!"


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신기하게 푸르른 장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레 입술을 열었다.


"엄마.... 친구가 그러는데.. 생리를 멈추게 하는 주사가 있데. 그것도 근종을 줄이는 치료법인지는 모르겠는데. 그거 맞고 근종이 없어졌다는데, 나도 그 주사 맞으면 안 되냐 물어볼까? 혹시 생리가 멈추면 혹도 줄어들고. 그러면 자궁도 괜찮아질 수도.."


숨을 죽여 듣던 엄마가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래! 그럼 그 주사 놔달라고 해! 그러면서 한의원에서 침도 맞아보고! 식이요법도 해보고! 엄마가 해볼 건 다 해볼게! 새벽기도도 나가고! 일단, 지금 다시 병원 가서 맞고 오자!"


"무슨! 진료도 예약하고 두 달이나 걸렸는데. 왜 이래! 허여사?"


"그래 그렇지. 대학병원이지..."


엄마가 혼잣말을 하면서 마른 손을 연거푸 비벼댔다. 그런 혀여사의 팔짱을 끼고 푸른 장미로 턱끝을 톡톡 건드리면서 크고 넓은 지하쇼핑센터를 구경했다. 눈물 젖은 로또와 파란 장미가 행운과 기적을 불러다 주기를 바라면서... 아무 일 없었고. 별일 아니라는 듯. 엄마와 수다를 떨면서 아이쇼핑을 하고. 할인하는 마스크팩을 잔뜩 사고. 어묵과 꼬마김밥을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질 거야..'


순간순간 심장이 밑으로 쿵 떨어질 때마다, 속으로 반복해서 괜찮아질 거라는 말을 주문처럼 되뇌었다.


"현조야 만약에.."


엄마는 내게 일어날 두 가지의 미래를 반복해서 말했다. 만약에 생리를 멈추는 주사가 기적을 만들어낸다면, 우리 여행을 가자. 따뜻하고 햇살이 선명한, 하늘이 바로 머리 위에 있는 그런 나라로.


"그렇지만, 또 만약에" 


자궁을 적출해야 한다면. 입양을 하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를 가슴으로 낳아서 사랑으로 키워보자. 두 개의 만약에.. 그 말에 담긴 엄마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알았으니 그만하라 성질을 부리지 않고. 잠잠히 듣고 또 들을 수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은 베이비박스 봉사 가볼래?"


"좋지.."


힘없이 대답하면서 청평으로 가는 고속버스 시간표를 확인하고. 환승센터 앞 대기의자에 앉아서 백화점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데, 유모차를 밀고 가는 젊은 부부가 해사하게 웃으며 지나갔다. 멀뚱하니 바라보던 엄마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빠르게 시선을 돌렸다. 왜 그러는지 알 것만 같아 다시 목 끝이 따가워졌다. 그때 엄마의 휴대폰에서 녹턴 벨소리가 울려 퍼진다. 한참을 가방 속을 뒤적뒤적하던 엄마가 묵직한 장지갑 같은 휴대전화를 들어 보였다.


"어"


"......."


"지금 나오는 길이야."


"......"


"아우! 집에 가서 얘기해!"


"......"


"현조 청평으로 데려가려고! 아니 집에서 말한다니까 왜 그래?"


누군지 뻔히 알겠는 대상에게 연거푸 짜증을 내던 엄마가 별안간 울음을 터뜨렸다.


"현조아빠.. 내 잘못이야.. 어릴 때 모유를 안 먹여서 그래.. 분유라도 좋은 거 먹일걸. 왜 아기 때 두유를 먹였는지 몰라. 콩에 여성호르몬이 있다잖아. 내가 그땐 뭘 알았어야지.. 그래서 현조가 아픈가 봐! 억지로라도 젖을 물릴걸.. 내 탓이야, 내 탓.."


한번 터진 엄마의 서러움은 쉽게 멈출 것 같지 않았다. 습자지처럼 엄마의 눈물에 내 몸이 젖을까 봐, 그러면 정말 속수무책일 것 같아서. 전화기를 붙들고 어린애처럼 엉엉 우는 엄마를 버려두고 슬며시 일어나 화장실 옆에 작게 나 있는 구석으얼굴을 숨겼다. 엄마가 앉아있는 곳에서 한참을 떨어진 것 같은데.. 흐느끼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나의 엄마는 아주 한참 동안 달을 보며 한을 토하는 슬픈 짐승처럼 울고 또 울었다.





다음 편 6화, 자순이의 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