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장편소설(유리병 레몬사탕)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엄마보다 빠른 걸음으로 병원을 빠져나왔다. 뒤에서 따라오는 한숨 소리가 처량하게 전해져 목 끝이 울컥했다. 인파가 잦아든 공원으로 들어서자, 한 발자국 떨어져 걷던 엄마가 조심스레 물었다.
“현조야. 왜 그러는데.”
그제야 막아놨던 울음보가 마음 놓고 터져 나왔다.
“엄마아아....... 엄마아아......”
여섯 살쯤인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에서 길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
한시도 가만있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박현조는 묵동에서 태릉사거리까지 골목길이 몇 개가 되는지, 보물섬을 찾아 항해하는 해적선처럼 모험을 떠나곤 했다. 그날도 새로 발견한 골목길에서 만세를 외치며, 붉은 벽돌집을 끼고 있는 길목을 지나 집으로 가려 했다. 하지만 불량해 보이는 언니 오빠들이 골목 초입을 막고 있었다. 벽돌집 골목이 아닌 다른 길로는 집으로 가는 방법을 몰랐기에, 안절부절 못하며 발만 동동 굴렸다. 결국 새로운 길을 개척하겠다는 결심으로 팔을 힘껏 흔들며 큰길로 나섰다. 양품점과 번데기 집 사이에 놓인 육교만 찾으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점점 대로변은 넓어지고, 낯선 냄새가 후각을 마비시켰다. 온몸과 마음은 금세 공포에 휩싸였다. 어찌할 바를 몰라 그 자리에서 오줌을 지리며 엉엉 울었다. 세상이 끝나버린 듯한, 공포감. 처음 경험하는 완전한 고독과 두려움이었다.
지금 나는 성인이 되었어도 길을 잃은 여섯 살 아이처럼 울고 있다. 그때처럼 완전히 혼자가 되어 버렸다. 오래도록 내 몸을 괴롭힌 자궁은, 결국 나를 미아로 만들어버렸다.
“현조야........ 아....... 현조야....... 왜 그래. 응?”
“자궁 떼는 거 맞데. 암 검사도 해야 한데. 오진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내 자궁이 병들었데. 고장이 났데. 손 쓸 수가 없데.”
엄마가 시든 꽃처럼 아래로 풀썩 주저앉는다. 나도 따라 내려가 무릎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내 호흡보다 빠른 눈물이 숨통을 조여서 끄윽끄윽, 거친 소리를 연신 몰아쉬게 만들었다.
“내내가 말말로는 비혼 이라 그러고, 애 안 낳는다고 했어도... 좋은 사람 생기면 결결혼도 하구. 아기도 갖고 싶었는데... 근데 엄마....... 암일 수도 있대. 검사해야 한 대.”
숨을 들이쉬는 것도 버거워 잠시 말을 멈췄다. 떨리는 입술 사이로 다시 가느다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엄마아........ 나, 이젠 끝났어.”
나는 한참 동안 목 놓아 울었고, 엄마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체, 말이 없었다.
“엄마아아아아.......... 나 어떡해....”
조금 뒤, 크고 둥그런 그림자가 머리 위를 덮었다. 차갑게 굳은 손 하나가 조심스레 내 머리에서 목덜미까지 쓸어내렸다.
“괜찮아! 애 못 낳으면 입양하면 되지! 암이라도 치료받으면 돼! 요즘 의술이 얼마나 발전했는데. 걱정하지 마!”
엄마가 별안간 거친 손으로 내 팔을 잡아 억센 힘으로 일으켜 세웠다.
“박현조! 엄마 똑바로 봐!”
나는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쏟아지려는 울음을 겨우 붙잡은 채, 고개를 들었다. 엄마의 얼굴은 피로 물든 듯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입술은 푸른 달처럼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 얼굴에 새겨진 절박함과 사랑은 나를 죄인으로 만들었다.
“암은 절대 아니야. 엄마가 알아. 자궁은 없어도 되는 거야. 중요한 건, 네가 안 아픈 거야. 그치?”
터질 것 같은 슬픔을 억누르니, 목이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래, 괜찮아.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여섯 살, 길을 잃었을 그때도 엄마는 날 찾아냈다. 낯선 대로변에서 울고 있는 내 이름을 크게 불렀고. 괜찮다고 말했고. 강한 팔로 안아주었다. 너무 울어 기진맥진한 어린 나를 둘러업고 엉덩이를 토닥이며 집으로 가는 길을 찬찬히 알려줬다.
“현조야. 이렇게 오른쪽으로 두 발자국만 나오면 육교가 보이잖아! 육교 앞에는 뭐가 있지?”
“번데기 집!”
“번데기 집을 끼고 오른쪽? 왼쪽?”
“왼쪽으로 쭈욱 올라가면 철물점 지하실, 우리 집!”
“그렇지!”
엄마는 늘 괜찮다고 이겨낼 수 있다고 말했다. 노을보다 더 붉게 물든 얼굴과 시퍼렇게 질린 입술로.
*
며칠 책방 문을 닫고 시골에 내려가자는 엄마의 재촉에 못 이겨, 버스에서 내려 잠실 역 환승센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 롯데백화점 맞은편 갑판 대 앞으로 길게 늘어선 줄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궁금해 자꾸만 그쪽으로 시선이 쏠리자, 옆에서 엄마가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현조야, 로또 사자.”
“웬 로또?”
“주님이 건강이랑 자식은 안 주셔도, 물질은 주실지 모르잖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어이없어 웃었지만, 엄마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채 내 팔을 이끌었다. 결국 우리는 줄 끝에 나란히 섰고, 나는 심드렁한 얼굴로 기다렸다. 날카로운 겨울바람에 코끝이 얼얼했고, 아랫배에는 시큰한 냉기가 감돌았다. 빨리 집에 가서 뜨거운 물로 아랫배와 허리를 녹이고, 전기장판 위에 몸을 누이고 싶었다. 하지만 기운을 북돋아보려는 엄마의 정성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하아… 그냥 혼자 왔으면 좋았을걸. 엄마 없이 혼자 왔다면, 아마도 지금보다 더 오래 울었을 것이다. 카페 구석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가, 생각을 하나씩 정리하고. 한 번 더 울고. 쏟아낼 만큼 다 쏟아내어 눈물샘이 말라붙었을 즈음, 그제야 슬픈 소식을 전했을지도.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얘, 현조야! 로또는 이렇게 사는 거야!”
앞사람이 빠지고 우리 차례가 되자, 엄마는 괜스레 어깨를 으쓱이며 목청을 높였다. 매대 안에서 들려오는
“자동이요, 수동이요?”
하는 목소리에, 익숙한 듯
“자동 다섯 장이요!”
하고 답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로또를 사는 모습이 신기해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종업원이 건넨 작은 종이쪽지를 바라보던 엄마는 잠깐 두 손을 모아 기도하듯 눈을 감았다. 그러곤 로또 용지를 내 코트 호주머니에 쏙 넣어주며 말했다.
“꽃도 사줄게! 지하에 꽃가게 있더라.”
“웬 꽃?”
엄마는 대답 대신 내 손을 끌고 지하 쇼핑센터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고는 작은 꽃집 앞에 진열된 파란색으로 염색된 장미 한 송이를 골랐다.
“너 파란색 좋아하잖아, 시퍼런 거.”
조용히 장미를 내려다보았다. 선명하게 물든 푸른 꽃잎은 아름다웠다. 포장지 옆, 조그만 스티커에 적힌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당신에게, 기적이]
나는 그 문장을 오래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인터넷에서 봤는데, 생리를 멈추게 하는 주사가 있대. 그게 꼭 근종을 줄이는 치료법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주사 맞고 근종이 사라졌다는 사람도 있더라고. 나도 그 주사 맞아보면 안 될까? 혹시 생리가 멈추면 혹도 좀 줄어들고. 그러면 자궁을 적출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숨소리조차 죽인 채 듣고 있던 엄마가 두 눈을 반짝이며 말을 받았다.
“그래! 그럼 그 주사 맞아보자! 그러면서 한의원도 다녀보고, 식이요법도 해보고! 엄마가 해볼 건 다 해볼게! 새벽기도도 다시 나가고! 일단, 지금 다시 병원 가서 주사부터 맞고 오자!”
“아, 무슨 소리야. 진료도 예약해야 하고, 대학병원은 두 달씩 기다려야 한다고. 그리고 일주일 뒤에 암 검사 한 거 나오잖아.”
“암은 절대 아니야!”
“엄마가 어떻게 알아?”
“기도했는데, 주님이 아니래.”
허허, 허탈한 웃음을 뱉으며 엄마에게 퉁박을 주려는데, 주름진 손으로 심각해진 얼굴을 연신 비벼대고 있어 말문이 막혔다. 갑자기 왜 저렇게 늙은 건지, 짜증이 치밀었다.
“허 여사! 핸드크림 좀 발라! 선크림은 바르는 거야?”
멀뚱하게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팔짱을 끼고 화장품 가게로 들어가, 제일 비싼 영양크림과 선크림을 사서, 가방에 넣어 주었다.
“아끼지 말고, 발라. 덕지덕지 바르라고!”
그러고는 푸른 장미로 턱 끝을 톡톡 건드리면서 크고 넓은 지하쇼핑센터를 구경했다. 눈물 젖은 로또와 파란 장미가 행운과 기적을 불러다 주기를 바라면서. 아무 일 없었고. 별일 아니라는 듯. 엄마와 수다를 떨며 아이쇼핑을 하다가, 할인하는 마스크 팩을 잔뜩 사고 어묵과 꼬마김밥을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질 거야.’
순간순간 심장이 밑으로 쿵 떨어질 때마다, 속으로 괜찮아질 거라는 말을 주문처럼 되뇌었다. 그리고 엄마는 내게 일어날 두 가지의 미래를 반복해서 말했다.
“현조야 만약에....”
만약에 생리를 멈추는 주사가 기적을 만들어낸다면 우리 여행을 가자. 따뜻하고 햇살이 선명한, 하늘이 바로 머리 위에 있는 그런 나라로.
“그렇지만, 또 만약에”
자궁을 적출해야 한다면, 입양을 하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를 가슴으로 낳아 사랑으로 키워보자. 그 두 가지 ‘만약’에 담긴 엄마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나는 더 이상 성내지 않고 잠잠히 듣고 또 들을 수 있었다.
“베이비박스 봉사 가볼래?”
“좋지.”
힘없이 대답한 나는 고속버스 시간표를 확인하고는, 환승센터 대기 의자에 앉아 백화점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침 유모차를 밀며 해사하게 웃는 젊은 부부가 지나갔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엄마와 눈이 마주치자 우린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의 눈을 피해 시선을 돌렸다. 목 끝이 다시 따가워지려 한다. 그때, 잔잔한 녹턴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참을 가방 속을 뒤적이던 엄마는 묵직한 장지갑 같은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
- 지금 병원에서 나오는 길이야. 집 가서 얘기해! 현조, 상주로 데려가려고! 아우! 집에 가서 말한다니까?
누군지 뻔히 알겠는 대상에게 연거푸 짜증을 내던 엄마가 별안간 울음을 터뜨렸다.
- 현조 아빠..... 내 잘못이야. 어릴 때 모유를 안 먹여서 그래. 분유라도 좋은 걸 먹일걸. 그래서 현조가 아픈가 봐. 억지로라도 젖을 물릴 걸..... 내 탓이야, 내 탓.
한번 터진 엄마의 서러움은 좀처럼 멈출 기미가 없었다. 습자지처럼 그 눈물이 내 몸에 물들까 봐, 그러면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전화기를 꼭 쥔 채 어린아이처럼 엉엉 우는 엄마를 버려두고 화장실 옆 작게 난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그런 그녀와의 거리는 꽤 멀어졌음에도, 흐느끼는 소리는 바로 곁에서 들리는 것처럼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나는 있는 힘껏 숨을 멈춰 울음을 막았고, 나의 엄마는 달을 바라보며 한을 토하는 슬픈 짐승처럼 그렇게 한참을 울고 또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