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장편소설(유리병 레몬사탕)
로또와 푸른 장미(1)
오늘은 한주대학병원 산부인과 진료 날이다. 엄마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병원, 한 달을 기다려 어렵게 예약한 그곳에서 드디어 진료를 받게 되었다. 진료일 까지 기다린 날짜를 손꼽아 세어봤더니, 정확히 52일이었다. 52일 동안 나는 세 번 생리를 했고, 두 번의 응급실, 마흔두 알의 아스피린을 삼켰다.
일주일 전부터 서울 집에 올라와 있던 엄마와 함께 지금 병원으로 이동 중이다. 휴대폰을 열심히 뒤적이며 잠실 역에서 내려 병원까지 가는 환승 버스를 꼼꼼히 확인한다. 병원은 엄마가 알아봐 줬으니, 이런 사소한 일쯤은 버퍼링 없이 혼자 척척 해내고 싶다. 예전부터 큰 그림은 허 여사가, 세부적인 부분은 내가 맡아왔다. 그렇게 우리는 단순한 모녀 관계를 넘어, 손발이 척척 맞는 파트너라 할 수 있다. 음식 궁합도 잘 맞고, 취미도 비슷하며, 유머 코드도 통한다. 특히나, 대식가인 우리 모녀는 음식을 주문할 때는 무조건 3인분을 시킨다. 종업원이 꼭 다시 와서, 메뉴를 확인한다.
“잘 못 시키신 거 아니시죠?”
짬뽕이 맛있는 중국집에 가면, 각자 짬뽕 한 그릇씩 시키고, 자장면 한 그릇과 미니 탕수육을 추가로 주문한다. 미니 탕수육이 없으면, 소자로 시키고 남으면 싸달라고 하는데, 거의 안 남긴다.
“들고 가기 귀찮으니까, 그냥 다 먹자.”
라고, 동시에 말한다. 회사 여직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엄마와 그렇게 많이 싸운다던데. 내게는 가장 가깝고 또 유일한 친구는 엄마다. 가끔 동창이나 회사 동료와 밥을 먹다 보면, 어김없이 엄마가 그리워진다. 보고 싶은 영화도, 가고 싶은 식당에서 양껏 메뉴를 시키는 것도, 눈치 보지 않고 다 할 수 있으니까.
엄마와 함께 있을 때 가장 좋은 건, 웃고 싶지 않을 땐 굳이 웃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물론 서로에게 짜증이 날 때도 많다. 불같은 성격의 허 여사는 화가 나면 ‘이년, 저년’ 욕설도 서슴지 않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대체로 잘 지낸다. 사람과의 관계를 피곤해하는 내 성격에 묵묵히 맞춰준 사람이 결국 엄마였다는 걸, 아마 나는 아주 먼 훗날이 되어서야 알게 될지도 모른다.
“1번 출구로 나가서 맥도널드 앞 버스정류장 241번, 125번, 172번......”
버스번호를 역사책 외우듯 웅얼거리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엄마가 흘긋흘긋 나를 훔쳐본다. 눈은 휴대폰 화면에 고정되어 있지만, 시선은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 불편하다. 혼자 올 걸 그랬다. 오늘 아침, 새알심이 들어간 녹진한 미역국 한 그릇을 다 먹는 동안, 건너편에 앉은 엄마는 내 얼굴과 파란 페인트로 칠한 현관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 마뜩찮은 눈길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누군가 제동을 걸지 않는 한,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아 왜! 할 말 있으면 하셔! 뭐뭐! 현관문 칠해놔서?”
“하얀색이나 아니면 원래 색으로 할 것이지, 새파랗게 그게 뭐냐?”
“알아서 하라며? 이젠 내 집이라며? 증여세가 아파트 한 채 값이여!”
“그래도 그렇지 시퍼렇고 흉물스러워... 쯧”
내 뒤통수에 대고 한 대 쥐어박는 시늉을 하던 엄마가, 때리지는 못하고 마른입만 쩝쩝 다신다. 딸내미가 큰 병원에 진찰 받으러 간다고, 앵간히 신경이 쓰이나 보다. 평소 같았으면 한 대 쥐어박고 말았을 텐데.
“혹만 떼면 생리통도 없어지는 거래?”
“뭐 인터넷에는 생리통 원인이 혹 때문이라니까.”
“에휴, 생리를 일찍 해서 그런가. 왜 그렇게 유난스럽게 아픈지. 현조야 아기 낳으면 생리통 싹 없어진단다!”
“그 말, 오늘까지 일억 번은 더 했어. 그리고 시집도 안 갔는데, 애를 낳으라고? 무슨 말 같지도 않은.”
“그러니까. 시집가라는 거지.”
“생리통 없애려고 억지로 시집을 가? 작자가 있어야 결혼도 하는 거지, 무슨 슈퍼에서 물건 사는 것도 아니고.”
“아참! 병원 갔다가 슈퍼 가자고 꼭 말해! 집에 세재도 없고, 간장도 없고 살 거 투성이야.”
엄마와의 대화는 늘 바다에서 시작해 산에서 끝이 난다.
“근데 현조야.”
“아 왜! 한 번에 말해! 한 번에! 쫌!”
“수술자국은 안 남는데?”
“로봇수술이라고. 후기 보니까 자국 없다는데?”
“그래? 로봇이 수술을 해? 어휴 근데 좀 무섭다. 수술 중에 로봇 고장 나면 어쩐데?”
하아... 단전에서 올라오는 깊은 한숨이여. 허 여사, 본인도 어이가 없는지 오호호호, 경박스러운 웃음을 터뜨린다.
“입원일당이랑 간병비도 넣을 것을 그랬어.”
“간병은 내가 하면 되는데, 입원일당이 없어?”
“아니. 보험료가 너무 많이 나와서, 쓸데없는 건 좀 빼달라고 했지.”
“이 모자란 년아! 엄마가 가입한 그대로 놔두지, 그걸 왜 건드려?”
“아니, 장사도 안 되고. 생활도 빠듯하고. 설마 내가 입원하게 될 줄은 몰랐잖아.”
“수술 담보는 놔뒀지? 이 계집애야! 돈이 없으면 엄마한테 내달라고라도 하지, 그걸 왜 빼? 왜!”
허 여사의 잔소리가 돌림노래가 되기 전에, 나는 팔짱을 끼고 자는 척을 했다. 한동안 쓴 소리를 이어가던 엄마는 이내 조용해졌고, 다시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애정 어린 눈길인 줄은 알지만, 몹시 불편하다. 그래서 모른 척하며 감각의 코드 선을 뽑고 등을 돌렸다.
*
병원에 도착하자, 몰려든 사람들과 거대한 건물 규모에 압도돼 우리는 잠시 멍해졌다. 진료 시간이 임박한 것은 아니었지만, 괜히 초조하고 신경이 곤두서 미간이 초승달처럼 좁아졌다.
“현조야, 저기 안내하는 분 있다.”
엄마는 검은 양복을 입고 작은 데스크 앞에 서 있는 남자 쪽으로 내 손을 끌고 갔다.
“수고 많으십니다. 산부인과 진료를 받으러 왔는데,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자신 없이 말끝을 흐리는 엄마를 향해 몸을 살짝 낮춘 안내원은, 미안할 만큼 친절한 목소리로 답했다.
“저기 창구 보이시죠? 첫 번째 칸에 [처음 오신 분] 이라고 적혀 있는 곳에서 번호표를 뽑으시고 기다리시면 됩니다. 접수창구는 이쪽으로 오세요.”
나긋한 목소리로 직접 데스크에서 나와 창구 위치를 알려주는 안내원에게, 우리는 몸 둘 바를 몰라 연신 목례하며 감사를 표했다. 테이크아웃 카페 맞은편에 위치한 접수창구로 걸어가면서 조금씩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왠지 이곳에서는 그간 산부인과에서 받아왔던 상처와 외로움이 비켜갈 것만 같았다.
“현조야, 이 병원 참 친절하다.”
“그러게… 김영한 교수님 실력이 그렇게 좋다던데? 간단하게 약물로도 고쳐진다 하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좋은 거지!”
검사도 하기 전에 김칫국부터 마시는 모녀는 금세 들뜬 표정으로 해해거리며 번호표를 뽑아 대기석에 앉았다.
“어우, 커피 향 너무 좋다.”
“한 잔 마실까?”
“다 끝나고 마셔!”
“허 여사! 오랜만에 뷔페 콜?”
“그래, 콜이다, 콜!”
“누가 보면 계라도 탄 줄 알겠어!”
“현조야, 느낌 좋아! 걱정하지 마!”
엄마를 향해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내가 뽑은 번호표의 숫자가 전광판에 떴다. 엄마의 등을 장난스럽게 툭툭 치며 접수창구로 걸어갔다. 데스크 직원도 친절하게 출입증 카드를 주며 안내문을 설명해 주었다. 직원에게 받은 서류를 보물처럼 손에 쥐고 신관으로 이동해 접수를 마친 뒤, 한참의 대기 끝에 비닐에 쌓인 치마를 받을 수 있었다. 엄마에게는 대기석에서 기다리라고 말한 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1번 검사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어려 보이는 여자 의사가 들어와 검사를 시작했다. 초음파 검사는 아무리 해도 늘 낯설고 불편하다.
“불편하시면 말씀하세요.”
다정한 말에 뻐근하던 감각이 조금씩 풀려갔다. 두 달 가까이 조마조마했던 시간이 무색할 만큼 마음이 편안해졌다. 딸깍, 딸깍, 초음파 화면을 캡처하는 인턴의 진지한 눈빛에 나도 모르게 두 손을 가슴께에 모아 올리며 어깨를 움츠렸다.
“끝났습니다. 천천히 나오세요.”
나는 긴장된 미소를 지으며 치마를 내린 뒤 몸을 일으켰다. 검사실을 나와 탈의실로 걸어가며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숨 끝에 물기 어린 떨림이 전해졌다.
‘후우, 산하나 넘었다.’
아직 결과가 나온 건 아니었지만, 검사를 마쳤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놓였다. 오래 미뤄두었던 큰 숙제를 끝낸 듯한, 홀가분한 기분이랄까. 다음 산인 검사 결과를 넘기 위해 탈의실 문을 열고 나오면서, 대기석에 멀뚱히 앉아 있는 엄마를 건너보았다.
‘휴대폰으로 고스톱이라도 치고 있지.’
멍하니 앉아 있는 엄마가 괜히 안쓰럽고 신경이 쓰였다. 자꾸만 대기석 쪽으로 시선이 돌아갔지만, 애써 외면하며 안내문 2번 항목대로 기계에서 수납을 마쳤다. 이제 하나만 남았다. 조여 오는 심장을 부여잡고 김영한 교수 진료실 앞까지 걸어갔다. 벽에 걸린 [진료진행상황]이라 적힌 전광판을 말없이 응시했다. 아직 내 이름은 화면 어디에도 없었다. 한쪽 다리를 떨며 스마트 폰을 꺼내 들었다. 엄마랑 같이 갈 맛 집을 검색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내 이름이 어느새 전광판 세 번째 줄에 올라와 있었다.
“박현조 님, 준비하세요.”
간호사가 다가와 팔목에 붙은 스티커를 확인하더니 안내문을 건네받아 갔다. 곧 진료실 문이 열렸고, 나는 교무실에 불려가는 주눅 든 학생처럼 조심스레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박현조 님?”
피곤해 보이는 김영한 교수에게 인사를 건넸다. 교수는 고개를 한 번 들더니 이내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굳은 얼굴로 조심스레 그 앞에 앉았다. 여러 대의 화면 속엔 낯선 영어 문장들과 초음파 사진들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었다. 교수는 말없이 화면을 바라보았고, 나는 그의 뒷모습을 숨죽여 지켜봤다. 마우스 버튼을 누르는 소리만이 진료실 안을 간헐적으로 가르며 울렸다. 무덤처럼 고요한 침묵 속에서,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입술은 바짝 말라갔고, 심장은 당장이라도 터질 듯 쿵쾅거렸다.
“생리통이 많이 심하세요?”
침묵을 가르며, 김영한 교수가 물었다.
“일상생활이 힘들 만큼 심하고. 이제는 생리를 안 하는데도 통증이 있어요. 그래서 매일 진통제를 먹어야 해요. 심할 때는 응급실행이구요.”
교수는 유심히 내 말을 듣더니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회전의자를 내 쪽으로 돌렸다.
“지금 자궁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혹이 크고, 양쪽 난소에도 혹이 있어요. 그 때문에 통증이 생기는 거고요. 일단 혹을 제거한다고 해도, 이 상태로는 임신이 가능한 자궁은 아닙니다.”
교수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설명을 이어갔다.
“확실한 치료는 자궁과 난소, 나팔관을 모두 절제하는 겁니다. 하지만 미혼이시니까, 난소는 최대한 살리고, 큰 혹이 붙은 아래쪽 자궁만 반쯤 절제하는 수술을 권하고 싶어요. 그렇게 하면 호르몬은 정상적으로 유지되고, 생리는 멈추기 때문에 통증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반이라고 하신다면, 결국 자궁을 절제하는 거죠?”
교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애써 덤덤한 표정을 지으려 했지만, 가슴 깊은 곳에 작은 블랙홀이 생겨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것 같았다. 나는 한참 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고, 교수는 조용히 그 시간을 기다려주었다.
“바쁘신데 죄송해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것 같아요. 자궁을 떼어내는 건, 생각해본 적 없거든요.”
눈물이 차오르는 걸 애써 삼키며,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어느새 손이 오그라들어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난소에 있는 혹 모양도 안 좋아서, 암 검사도 받아야 하니까, 오늘 피검사 하고 일주일 뒤에 결과 나온 걸로 다시 얘기해 보는 걸로 하죠.”
고개를 끄덕이며 울컥하는 마음을 꾹 눌러 삼키고, 서둘러 진료실을 나왔다. 내 팔을 부드럽게 잡아준 간호사가 밖으로 데려가면서 조용히 등을 토닥였다. 눈물이 터지려는 걸 간신히 막아내며, 턱관절에 힘을 주었다. 사무치는 마음을 붙잡고 깊게 숨을 들이쉬는데, 머릿속에 한 단어가 울려 퍼졌다.
‘엄마.......’
아.... 엄마한테 뭐라고 말하지? 그런 생각에 잠겨 있다 보니 어느새 채혈 실 앞에 서 있었다. 피를 뽑고, 다시 수납을 마친 뒤에는 석상처럼 굳어 한참 앉아 있었다. 맥없이 몸을 돌려 대기석으로 걸어갔다. 마치 사형선고를 받은 기분이다. 52일 전, 동네 산부인과 앞에서 자신 있게 내뱉었던 말들이 모두 무너져 내렸다. 모래 위에 쌓아 올린 기대였기에, 힘없이 무너지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눈물이 가득 차 앞이 흐려졌다. 참으려 애써 숨을 막아 보았지만, 고장 난 하수구처럼 눈물이 솟구쳐 한참을 다스려야 했다. 줄줄 흐르는 눈물과 콧물을 소맷자락으로 연신 훔치며 마음을 다잡았지만, 멈추지 않아 혼이 났다.
‘진정하자....... 후우. 진정하자....... 후우.’
속으로 되뇌었다. 퉁퉁 부은 내 눈을 보면 허 여사 심정은 더 무너질 텐데, 이럴 줄 알았으면 혼자 왔을 걸... 후회가 밀려온다. 슬픔 바이러스를 엄마에게까지 전염시키고 싶지 않다. 엄마가 우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저만치 멍한 얼굴로 앉아 있는 엄마의 구부정한 실루엣이 아른거렸다. 부쩍 늘어난 흰머리와 볼륨 없이 축 늘어진 머리카락. 손쓸 수도 없이 망가져버린 내 자궁처럼, 엄마의 젊음도 찰나에 빼앗겨버린 걸까. 서러움이 멈추지 않아 미쳐버릴 것 같았다. 홍수가 난 듯한, 가슴을 쿵쿵 내리치며,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속삭이듯 말했다.
“엄마..... 빨리 나가자.”
울음을 참으려 얼굴을 깊이 숙인 채 걸음을 재촉했다. 엄마는 눈만 동그랗게 뜬 채 벌떡 일어나 내 뒤를 부리나케 따랐다.
“현조야. 뭐래?”
엄마....... 그냥 나가자. 나가자. 아주 작은 음성으로 같은 말을 반복하며, 창가에 커튼을 치듯 머리카락으로 눈을 가렸다. 우두커니 서서 나를 살펴보던 엄마가 들고 있던 패딩 코트를 펼쳐 내 어깨에 둘러주었다. 등 뒤에 닿은 엄마의 손끝은 한겨울 가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