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장편소설(유리병 레몬사탕)
[2020년 1월 26일 수요일]
안녕? 자순아. 나의 소중한 자궁, 박 자 순! 오랫동안 너를 미워하고, 저주해서 병이 생긴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 사랑받지 못한 너의 울부짖음이 몸의 고통으로 이어졌던 건 아닐는지....... 이제 나는 너, 박 자순을 사랑할 거야. 외롭지 않게 하루에 몇 번씩 말도 걸어줄게. 네가 좋아할 음식, 온도, 환경을 하나하나 챙겨볼게. 그래서 다시는 너를 도려내라는 말은 듣지 않도록 할 거야.
PS : 자순이, 너 요즘 남자의 사랑이 필요하다고 속삭이더라? 미안하지만,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아. 내 인생에 이제 인간 남자는 없거든. 자순아, 너의 결핍은 나의 크나큰 애정으로 채워줄게. 이젠 그만 슬퍼하렴.
“어디 가서는 그러지 말어. 미친년이라고 흉 봐. 자궁이가 뭐냐? 남사스럽게.”
“자궁이 아니고, 자순이. 박 자 순. 자애로울 자, 순할 순. 이름처럼 자애롭고 순하게 거듭날 거야.”
“이름이 그게 뭐냐? 자영이 자두, 자람이도 괜찮네.”
“뭐 어때서?”
엄마 손에 들린 노트를 낚아채며 투덜거렸다. 안네가 일기장에 ‘키티’라는 이름을 붙여 은신처 안에서의 고독을 위로했듯, 나는 내 자궁을 ‘자순’이라 애칭하며 지독한 투병을 이겨내리라.
한 달 전, 동네 병원에서 한 번, 상급 병원에서 또 한 번, 두 차례나 자궁 적출을 권유받았다. 다행히 자궁의 근종이 악성은 아니어서 큰 고비는 넘겼지만, 그대로 두면 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결국 자궁 적출이라는 가혹한 진단을 받았고, 병명을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자궁이 없는 여자. 이상하게도 다른 장기가 없는 것보다, 자궁이 없다는 사실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사형선고처럼 느껴진다. 연애와 결혼도 실패한 여자, 그런데 자궁까지 없는 여자, 완전한 낙오자가 될 것 같았다. 결국 수술을 미루기로 하고, 한 번 맞으면 석 달 동안 생리가 멈춘다는 대포주사를 맞았다.
교수님 말로는, 혹이 줄어들 수도 있지만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 했다. 나도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다만, 자궁 적출이라는 거대한 공포를 당장 마주할 용기가 없었을 뿐이다. 그래서 앞으로 석 달 동안은 생리에서 잠시 벗어나, 심신을 돌보고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으로 삼으려 한다.
현재는 한방 병원에도 다니며 기 치료를 받고, 채식 위주의 식단을 실천하려 한다. 또 자궁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며 함께 공존하는 법도 배우는 중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이라는 거대한 힘이 내 자궁을 단번에 치유해 줄지 누가 알겠는가?
“순, 자, 옥이 들어가면 이름이 촌스러워져”
능숙하게 양파 껍질을 벗기던 엄마가 설핏 웃었다.
“허 여사 진짜 이름이 윤정이가 아니라, 영자라서?”
“이년아! 복에 겨운 줄 알아! 네 이름은 쌀 팔 돈 없을 때도 작명소 가서 지은 거야!”
스무 살이 되자마자 이름을 바꾼 허 여사는, 두 달 가까이 상주 집으로 내려가지 않고 있다. 부모님의 전원생활 로망을 위해 선택한 시골집은 경상북도 상주 하계에 붙어있다. 낡은 개인주택을 개조한 탓에, 웃풍이 심하다. 누워있으면, 코가 얼어 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아빠는 읍내에서 철물점을 하는 이웃 아저씨와 함께 단열 공사를 하고 있다. 공사가 끝날 때까지 서울에 머문다지만, 엄마가 떠나지 않는 진짜 이유는 나 때문이다.
“허 여사 없어서 아빠 외롭겠다.”
“옆집 아저씨랑 바둑친구 되가지고. 내가 집에 있는지 없는지도 몰라.”
“그래? 이웃들이 텃세는 안 부려?”
“고향이니까, 그런 건 없지. 좀 심심하긴 해도 공기 좋고, 별도 잘 보이고, 점심엔 마을회관에 모여 국수 삶아 먹고, 밭에서 딴 야채 넣어 비빔밥 해 먹고. 재밌지. 마을 사람 중에 고추장 된장 간장까지 다 담가서 먹는 집이 있거든? 필요하면 그냥 갔다먹으라는데, 그건 미안해서 못하겠고. 장 담그는 거나 좀 배워야지.”
“사먹어. 돈도 많으면서.”
“사 먹는 거랑 같으냐? 그리고 무슨 돈이 있냐? 너 다 물려주고, 시골집 하나에 그냥 먹고살 돈 조금 저축해 놓은 것밖에 없지!”
“고생 말고 편하게 살란 뜻이야.”
“일할 때는 바빠서 늘 사다 먹었지만, 지금은 시간이 남으니 이것저것 배우고 싶어.”
“좋지, 배우는 거.......”
“별은 또 얼마나 잘 보이는 줄 아니?”
“그래? 별이 보여?”
“얘! 밤에 가로등 없어도 온 마을이 훤해!”
“동네에 가로등이 없어?”
“말이 그렇다는 거지!”
“별 말고 또 뭐가 좋은데?”
“저녁에 동네 개천으로 나가면 마을 사람 다 모여서 모닥불 피워 감자 구워 먹는데,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 하우스에서 갓 따온 수박 잘라 나눠 먹고. 요즘 엄마 아빠는 호사를 누린다.”
소녀처럼 들뜬 엄마의 낯선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나는 이내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었다. 하려던 말은 ‘나만 잘하면 완벽하겠네.’였다. 하지만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엄마 얼굴에 근심이 번질 게 뻔했다. 심란한 마음과 부모님을 향한 죄책감이 뒤섞여 어지러운 생각을 가다듬던 중, 서툰 칼질과 질긴 마늘 껍질이 결국 일을 내고 말았다. 손에서 과도가 미끄러져 나가 나무 바닥에 꽂힌 것이다. 맞은편의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있던 엄마의 눈썹이 갈매기처럼 휘어져버렸다.
“피를 봐야 직성이 풀리지?”
바닥에 꽂힌 칼을 뽑으려 애를 쓰는 나를 한심하게 노려보던 엄마는 허리를 짚더니, 새끼 강아지나 낼 법한 끄응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딸년 잘못 만나서 무슨 고생이냐.”
이내 구석에 조그맣게 난 창고로 들어가더니 뭔가를 찾는 듯 부스럭거렸다.
“어휴, 장사할 적에 여름엔 장사가 아무리 안 돼도, 마늘은 안 깠어, 마늘은. 저게 자식이야, 원수야.”
엄마의 혼잣말 공격을 못 들은 척, 한쪽 어깨를 들어 올려 간질거리는 귀밑을 문질렀다.
“박현조! 말린 홍삼 어디 있어? 감색 바구니에 든 거, 못 봤어?”
못 들은 척했다. 엄마가 찾는 홍삼은 확성기 삼총사 중, 2인자인 정육점 사장에게 원가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넘겼기 때문이다.
“박 현 조! 홍삼 어디 있어? 그거 최상급인데!”
큰일이다, 어떤 핑계를 대고 이 미로에서 빠져나갈 것인지, 열심히 대가리를 굴려본다.
“내 분명히 여기 뒀는데. 이상하네?”
“상주로 챙겨가지 않았어? 아빠 감기 안 떨어진다고 달여 먹인다고”
박수원씨 죄송합니다. 만만한 게 아빠밖에는 없어요. 나는 없는 사람을 팔며 능청을 떨었다.
“그랬나? 요즘 왜 이렇게 깜빡깜빡하는지.”
엄마가 체념한 듯 창고 문을 닫았다.
“허 여사! 생리가 멈춘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거였어?”
나는 엄마 머릿속에서 홍삼 생각은 모조리 지워버릴 작정으로 화제를 돌렸다.
“무슨....... 여자가 멘스를 해야 새 피가 돌지! 네 년이 워낙 생리통이 심해서 진저리가 나 그렇지, 여자는 자고로 멘스 할 때 제일 예쁜 거야! 늙으면 제일 먼저 멘스 뚝 끊기는 거야!”
“그럼 뭐 생리 안하면 여자도 아니라는 거야?”
“그럼 여자 아니지! 멘스를 해야 애도 낳지!”
예전부터 생리를 멘스라고 부르는 엄마는 마뜩찮은 얼굴로 주전자에 남은 보리알 찌꺼기를 툭툭 긁어내고, 새 물을 받아 부었다.
“정말 홍삼 못 봤어?”
끈질긴 허 여사....... 고개를 저으며 최상급 홍삼이 정육점 사장 남편 뱃속에 있다는 것을 절대 들켜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들키는 날에는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맞을 지도 모른다.
“대포주사가 말이지, 생리를 억지로 막아서 폐경상태로 만드는 거니까. 갱년기 증상이 온다는데. 나는 그런 건 모르겠어. 마냥 행복해. 얼굴에 팔자주름까지 옅어진 것 같지 않아?”
“그런 것도 같고. 그놈의 혹까지 확 사라졌으면 좋겠다. 치료실 잘 다니고 있어?”
성공이다. 단순한 허 여사, 이젠 홍삼으로 날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네 몸이니까. 관리 좀 해! 처녀 몸이 그게 뭐냐? 히프 짝이 남산만 해 가지고!”
“알았어! 새롭게 태어난다는 생각으로 운동할 거야! 지금까지는 조금만 걸어도 자궁에 조리를 트는 것처럼 아프니까, 못한 거지.”
호기롭게 떠드는 나를 바라보는 엄마의 입가엔 미소가 어렸지만, 그 표정 어딘가에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무언가 말하려다 삼키는 듯한, 얼굴을 보며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너무 큰 희망은 되레 더 큰 실망으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그런 염려와는 다르게, 현실을 뛰어넘는 기적 같은 기대. 이중적인 두 마음을 품은 엄마는 병원에 다녀온 이후로 줄곧 복잡한 얼굴이다. 푸른 장미를 건네던 그날, '만약에'를 앞세워 두 가지 가능성을 잇달아 말하던 그녀의 마음엔 결국 단 하나, 자식이 불행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만이 담겨 있을 것이다. 엄마의 행복은, 자식이 행복할 때 완전해 진된다는 걸. 그래서인지 때때로 슬퍼진다. 나이가 든다는 건, 아마 이런 걸 자주 느끼게 되는 일인 것 같다. 어릴 땐 내 감정만 알면 됐는데. 사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다음진료는 언제래?”
“4월. 주사 효과가 딱 3개월인가 봐.”
엄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버너위에 주전자를 올렸다. 나는 대야에서 물에 젖은 마늘 한통을 집어 깨작깨작 껍질을 벗기려 시도를 했다. 하려면 제대로 하라고 핀잔을 주면서 허여사가 과도 칼을 빼앗아갔다.
“이렇게 해서 돈은 받니? 도리어 상품 다 망가뜨려서 예영 엄마 성내겠다!”
“아니야. 고생 많다고 돈 더 얻어주는 걸?”
뻔뻔한 것도 능력이라며 허세를 부리는 내게 엄마가 무섭게 째려보면서 한손을 올렸다가 내렸다.
“돈 모자라면 적금 깨 써.”
그거 벌써 깨 쓰고 있다는 말은 차마 못 하겠다. 엄마 손에서 칼이 번쩍번쩍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다른 말로 화제를 돌렸다.
“허리를 쭉 펴고 다니니까 키도 커진 것 같아.”
장난스럽게 상체를 흔드는 나를 힐끗 보던 엄마는, 부르르르 뚜껑을 흔들며 성을 내는 주전자를 턱 끝으로 가리킨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껐고, 은은한 열기를 내뿜는 난로 위로 주전자를 옮겼다.
“엄마 뭐 마실 건데?”
“됐어! 오줌 마려워서 시져!”
“아니 그럼 물은 왜 끓였어?”
“너 수시로 뜨거운 물마시라고! 둥굴레랑 홍삼 좀 넣고 끓일랬더니, 뭐 아무것도 없어. 쯧!”
아아아, 감탄사를 내뱉으며 유리잔에 뜨거운 물을 따라 티백을 우려냈다. 예전 같으면 왜 내 의견도 묻지 않고 물을 끓였냐, 난동을 부렸을 텐데. 생리를 준비 하지 않는 자궁은 긴 휴가를 떠난 모양이다. 생리통의 괴롭힘에서 벗어난 박현조는 참 순하고 여유 있다. 내 자궁도 이름처럼 자애롭고 순해져야 할 텐데. 가끔 자궁과 난소에 붙어있는 혹들이 싸악 사라지는 기적을 망상한다.
“박현조님! 자궁과 난소에 혹이 싸악 사라졌습니다. 의사생활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학회에 보고할 희귀케이스군요! 박현조님의 자궁을 연구해볼 기회를 주시지 않겠습니까?”
찔러도 피 한 방울 안날 얼음인간 김 교수가 방방 뛰면서 저런 대사를 치는 장면을 상상하면, TV에서 나오는 드라마가 시시하게 느껴진다. 내 인생에도 드라마 같은 일이 한 번쯤은 일어나지 않을까? 다시 상상의 날개를 달아 망상의 나라에서 헤엄을 치고 있는데, 허여사가 앉은뱅이의자를 툭툭 치며 일어나란다. 꼼지락 엉덩이를 떼자, 쑥 방석을 깔아주고는 전기코드에 플러그를 꽂았다.
“나 요즘 성격도 참 좋아지지 않았어?”
엄마는 코를 찡긋하며 웃어 보였다. 그러고는 뭔가 말하려다 이내 입을 다물었다. 아마도 어제부터 내게 권했던 말을 다시 꺼내려는 건 아닐까 싶다. 아, 홍삼보다 더 무서운 대화였는데. 어제 일이 떠오르자, 자순이가 짜증세포를 흔들어 깨우려 한다.
엄마는 어제 이촌동 건물을 정리하고 상주로 내려가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내가 시골에서는 못 살겠다고 하자, 시내에 나가면 있을 건 다 있다며 끈질기게 설득했다. 무엇보다 친해진 이웃의 아들이 농장을 하는데, 아직 장가를 안 갔다고 한다. 알고 보니 나를 상주로 끌어들이려는 이유가 있었는데, 바로 마음에 드는 사윗감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나보고 농사지으라고?”
“과수원이야! 얘! 그리고 너 일 안 시키지! 인부가 몇인데! 너는 그냥 사모님 되는 거야!”
“싫어!”
어제 누군가 우리 집 앞을 지나갔다면, 저 집에는 쌈닭 두 마리를 키우나 보다, 오해를 했을 것이다. 엄마와의 논쟁은 새벽까지 이어졌고. 늘 그렇듯 허여사가 이년저년, 욕을 하면서 한발 물러서는 것으로 끝이 났다.
“현조야 엄마는 말이야.”
아 어제 그 뫼비우스 띠 같은 대화가 다시 시작되는 건가? 엄마가 작정한 듯 내 앞으로 다가온다. 스킨십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우리 모녀가 얼굴을 마주할 때는 이렇게 누구 하나가 누구 하나를 복종시키려 할 때이다.
“엄마 아빠가 너보다는 일찍 죽잖니? 그렇다고 네가 형제자매가 있니? 친척이 있니? 부모 돌아가시면 이 세상에 너 혼자 되는 건데. 안 무서워?”
생각해봤다. 아주 깊고 오래도록. 부모님이 없는 철저하게 혼자 남은 세상은 어떨까? 사무칠 것이다. 어쩌면 엄마아빠를 따라 죽고 싶어질지도 모르지.
“그렇다고 네가 활달해서 친구라도 많아? 그렇지도 않으면서, 비혼 이니 미혼이니 떠들어대는 너를 서울에 혼자 두고 우리가 상주에 있으면 마음이 편하겠니? 우리 죽고 나면, 현조는 어쩌나.... 그런 걱정이 절로 들지.”
어느새 눈망울이 촉촉해진 엄마가 몸을 숙이며 손을 잡았다. 순간, 그녀 눈이 번뜩이는 것을 포착했다. 시꺼먼 속을 내가 모를 리가! 조금만 더 동정표를 던지면 넘어올 거라는 확신에 찬 저 눈빛. 곧 엄마는 눈물을 짜내려고 애를 썼다. 마치 마른 우물에 마중물도 붓지 않고 펌프질을 하는 꼴이다. 엄마는 나를 설득시키려 할 때 발 연기를 하는데, 그게 아주 가관이다.
재수 시절에 겨우 두 군데 붙은 대학 중 유아교육과와 문예창작과 사이에서 후 자를 선택했을 때도. 기껏 고집 부려 들어간 과가 나와 맞지 않는다며 대학을 중퇴했을 때도. 억지로 나간 맞선 자리에서 돌아와 맞선 남에 에프터 신청을 거절했을 때도. 엄마는 저렇게 발 연기를 펼쳤다. 그럼 모전여전이라고, 나도 감정을 다듬으며 엄마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내가 이 나이에 누굴 만나 사랑을 하겠어? 그리고 나는 애도 못 낳을 건데. 흠 있는 여자 누가 좋아하겠어.”
자학과 동정을 섞은 내 대사의 엄마 눈빛이 심하게 흔들린다. 아무래도 내 연기는 엄마와 다르게 명품인가보다. 인물만 받쳐줬으면 연극 영화과를 갔을 걸.......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는 동안 엄마와 내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자궁, 임신. 이런 단어는 엄마를 무기력하게 만든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좀 심했나? 그깟 말씨름에서 이겨보겠다고 부모 마음에 스크래치를 낸 건가? 후레자식이 된 것 같은 몹쓸 기분이다.
“엄마 친구 딸도 혹 떼어내고 임신했다니까? 그리고 지금 그 주사가 효과가 있다면서. 수술 안하고도 혹이 사라질 수도 있잖니?”
엄마 말엔 대꾸 하지 않고, 쓸쓸하고 공허하며 상처받은 표정을 그려냈다. 한번 시작된 나의 명품 연기는 감정이 착착 잡혀드는지, 왼쪽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리게 만들었다. 마치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말이다. 배우들이 작품이 끝나도 한동안 배역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던 말이 이런 거였나?
“괜찮아. 괜찮아. 울지 마! 왜 울어! 엄마 속상하게!”
돌연, 엄마가 나를 덥석 끌어안더니 울기 시작했다. 얼떨결에 품에 안긴 채, 마른 콧물을 크-읍, 하고 들이마셨다.
“그래 어쨌든 네 인생이고. 부모가 강요할 순 없지. 그렇지만 너도 지금 당장 편한 것만 생각 말고. 먼 미래를 그려. 그지 같은 신랑이어도 혼자보다는 나은 거야. 친구들 중에 결혼 안한 애는 너밖에 없지? 친구들 모임에 나가, 안 나가? 못나가지? 결혼을 안 해서 그러는 거야!”
연기는 발로 하지만, 엄마의 근성은 강했다. 청소부에서 건물주가 된 여인이라는 걸 내가 간과했다. 왁, 하고 짜증을 내고 싶은데 자궁이 편해서 그런지 짜증을 어떻게 내는지 까먹어버렸다. 미간에 힘을 빡 주고, 허 여사! 높은 음 자리로 소리 한번 냅다 지르고 싶은걸 참으며 엄마 품에서 얼굴을 떼어냈다.
“그래 우리 현조 잘 될 거야! 기도하자!”
다시 나를 덥석 끌어안는다.
“주여! 아버지! 우리 현조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잘 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자궁도 싹 낫게 해주시고. 좋은 배우자 만나 믿음의 가정도 이뤄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아....... 허 여사, 이번에는 기도 공격에 들어 가셨다. 출입문 앞 테크에 그득하게 쌓여있는 주홍색 그물더미에서 풍기는 매큼한 냄새가 책방 안까지 들어와 코끝을 간질였다. 매운 향기 때문에 열어놓은 문틈으로 차가운 공기가 스며들었지만, 화목난로에 따뜻한 온기 덕분에 춥지는 않았다. 먼데를 바라보며 딴청을 부리는 사이, 목청껏 기도하던 엄마도 지쳤는지, 주여~~~~~~~를 외치다가 삑 사리가 났다. 권사 짬밥으로도 안 되겠는지, 캑캑 거리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를 마쳤다.
“어우 열 불나.”
“허 여사, 차 마실래?”
주둥이 긴 스테인리스 주전자가 난로 위에서 하얀 김을 마구 내뿜었다.
“상주 내려갈 거야.”
엄마는 토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조금 더 있다 가라는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
“내가 빨리 갔음 싶지?”
“응.”
“딸 년 키워 봤자 소용없어!”
우리는 동시에 통유리로 된 창밖을 바라보았다. 전날 밤까지 내린 함박눈으로 눈이 부셨다. 다행히 반가운 겨울햇살이 거리에 쌓인 눈을 녹이고 있어서 신발이 더러워지진 않을 것 같았다.
“올해는 눈이 많이 왔지.”
“그러게”
엄마는 기동력이 떨어졌는지 콧등을 몇 번 찡그리다가 마늘의 살을 절반이나 깎아댔다.
“하루에 손님 얼마나 와?”
“한 명도 없을 때도 있고, 헌책 팔러 오는 사람은 종종 있는데.”
“그럼 책값 줘야 하잖아! 버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은 거야?”
“책이 들어오잖아, 그리고 거의 새 책 수준인 걸? 그게 헌책방의 재산이여! 알지도 못하면서. 어쨌든 보물창고 같아서 앉아만 있어도 좋아.”
“가만 보자! 너 헌거는 다 싫어하잖어? 누가 입다 물려준 옷만 봐도 지랄발광를 하는 것이, 책은 왜 헌책을 팔아?”
“비밀!”
“염병! 그건 그렇고, 요즘은 인터넷으로 다 산다는데? 헌책도 온라인으로 판다더라?”
“어떻게 하는지 몰라, 귀찮아.”
“이왕 하는 거, 잘해봐야지.”
“나 지금 자순이 때문에 여력이 없어! 닦달 좀 그만해!”
목청을 높이며 머리를 세차게 흔들자, 똥 머리로 질끈 올려 묶은 머리카락이 흘러나왔다.
“야 그러니까 꼭 백정 같다!”
엄마는 씰룩이던 입술을 꾹 다문 채, 한동안 장난스럽게 나를 흘겨보았다. 더 이상 싸우지 말자는 신호였다.
아침에 감은 머리칼에 마늘 냄새가 배는 게 내심 신경 쓰였지만, 손 씻을 기운조차 없었다. 마늘 까던 맨손으로 머리채를 잡아 질끈 묶었다. 이미 베린 몸, 마늘 냄새쯤이야..... 그때, 허 여사가 문밖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참, 그 친구는 어디 있어?”
엄마의 물음에 선뜻 입이 떨어지질 않아 시선을 피하며 머뭇거렸다. 그러고는 대답대신 출입문 쪽을, 만화책과 소설책으로 한 면을 차지한 책장을, 데스크 위에 올려둔 자명종 시계를, 차례대로 응시했다.
“옥탑은 안 춥데? 내려와 지내라고 해.”
“극구 싫다는데.”
“몸조심해야 하는데, 괜히 계단 오르내리다가 다칠까봐 걱정이네. 젊은 처자가 어쩌다가....쯧쯧”
엄마는 내 표정이 점점 굳어지는 걸 알아채지 못하고 혼잣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그 친구가 복이 많은가보다. 어린 얼굴이 다 없어졌을 텐데, 너를 알아보고 말이야. 헌데 까칠 공주님이 어떻게 그런 기특한 생각을 다 했어?”
엄마의 물음에 못 들은 척, 질긴 양파껍질을 벗겨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남편은 어디 있데?”
“몰라.”
“결혼은 언제 했데?”
“몰라.”
“임신 한 지는 몇 개월 이구?”
“몰라.”
결국 참고 참던 허 여사 주먹은 내 뒤통수를 씨게 후려갈겼다.
*
몇 주 전, 병원에서 3개월간 생리를 멈추게 하는 대포주사를 맞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평일 한낮이었지만 지하철은 사람들로 빼곡했다. 무리해서 걸은 탓인지, 하복부가 묵직하게 저려왔다. 앉을 수만 있다면 뭐든 다 내줄 것 같았다. 하지만 만원 지하철 안에 빈자리는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괜스레 서러움이 북받쳐 울컥 눈물이 터져 나왔다. 손등으로 뺨을 연신 훔치며, 창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풍경으로 시선을 돌렸다. 울음을 삼키느라 목 안이 뜨겁게 울렁거렸다.
‘앉고 싶다....... 눕고 싶다.......’
혹시 다른 칸엔 자리가 있을까? 기대 반, 체념 반으로 무거운 몸을 끌고 두꺼운 쇠문을 밀었다. 옆 칸으로 비틀비틀 옮겨가던 그때, 저 멀리 환한 조명 아래 딱 하나 비어 있는 좌석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오오, 지져스......”
아랫배를 양손으로 움켜쥐면서 벅찬 걸음을 옮겼다. 보는 눈만 없다면 춤이라도 출 판이었다. 그러나 목표 지점으로 다가서는 내 얼굴은 점점 일그러졌다. 빈자리는 핑크색 임산부 좌석이었기 때문이다. 아. 찰나에 달콤함으로 기쁨을 주고 순식간에 빼앗아 이내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얄궂은 분홍색 희망이여....... 다시 눈물이 솟구친다. 허리는 쑤시고 밑은 빠질 것처럼 아팠다. 육신에 괴로움을 떠나 영혼이 서러웠다. 이제 나는 결코! 핑크색 의자에 앉을 일은 없을 것이다. 자궁에 아이가 아닌 혹이 든 젊은 여자는 국가로부터 어떤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순간 약이 올랐고, 앞뒤 생각도 없이 임산부석에 털버덕 앉아버렸다.
‘하아.......편하다.’
절로 탄성이 새어 나왔지만 안락함 뒤에 도덕적인 양심이 폐부를 찔렀다. 살짝 실눈을 뜨고 주변을 살폈지만, 다들 스마트 폰을 보거나 눈을 감고 있었다. 핑크색 임산부석에 앉은 나에게 관심을 두는 이는 없었다. 그럼에도 코트로 몸을 감싸고 가방으로 아랫배를 가리면서 임산부인 척 눈을 감았다. 두꺼운 코트 아래 숨긴 것이 아기일지, 병든 자궁일지, 알게 뭐람. 그렇게 편안하게 눈을 감은 지 오 분이나 채 지났을까? 누군가 얇은 손가락 끝으로 내 손등을 ‘톡 톡 톡’ 건드렸다. 나는 깊은 잠에서 깬 사람처럼 머리를 흔들며 눈을 부릅떴다. 방어기제로 인상을 구기면서 앞을 가로막은 실루엣을 올려보았다.
부스스한 머릿결, 창백한 피부와 허옇게 부르튼 입술. 계절과 맞지 않는 얇은 스웨터를 걸친 여자가 꼬질꼬질한 에코 백에 달린 핑크색 열쇠고리를 당당하게 검지로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그 여자가 손짓하는 열쇠고리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동그란 고무판에 핑크색 테두리. 하얀 원형 안에 배가 나온 여성의 그림.
[임산부 먼저]
하트 밑에 쓰여 있는 문장이 눈 안에 들어오자, 정신은 아득해지고. 가슴은 콩닥거렸다. 뭔가 아주 큰 범죄를 저지른 것 만 같았다. 벌떡 일어나 사과를 하고 좌석의 주인에게 내어 주는 게 맞는 이치임에도. 엉덩이가 요지부동 움직이지를 않았다. 병든 나의 육체는 임산부석을 지키며 오기를 부렸다. 그러자, 임산부 키링을 가방에 매단 여자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싱긋 웃었다.
'뭐야? 임산부라고 뻐기는 거야?'
기분이 잔뜩 상한 나는 여자를 한 번 노려보고, 내 배에도 무언가 들었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러고는 나도 앉을 자격이 있지만 양보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임산부석에서 일어났다. 배를 움켜쥐고 다른 칸으로 성큼성큼 옮겨 걸었다.
‘내가 진짜 임산부면 어쩌려고 당당하게 비키래?’
중얼거리며 앞 칸의 무거운 철문을 힘껏 밀어젖혔다. 문득 께름칙한 기분이 들어 뒤를 돌아보니, 좀 전 자리를 비켜달라던 그 여자가 퀭한 눈을 번뜩이며 다가오고 있는 게 아닌가? 바로 양보 안 했다고 따지러 오는 건가? 임산부에게 자리를 바로 비켜주지 않았을 때 벌금이나 처벌이 있는지 생각해봤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런 건 없다. 그저 도덕적인 비난을 받을 뿐이다. 조급한 머리를 이리 저리 굴리며 덜컹거리는 지하철 사잇문을 지나쳤다. 잰걸음으로 앞서가다 다시 뒤를 돌아보니, 가방에 달린 핑크색 키링을 발랄하게 흔드는 임산부, 여전히 나를 쫓아오고 있다.
‘뭐지? 옷차림새도 그렇고, 표정도 그렇고, 혹시 그 유명한 꽃을 단 여자인건가? 동네 하나씩 있다는 광녀가 심심해서 마실 나온 건가?’
내 뒤를 쫓는 임산부가 정상은 아니라는 확신이 든 순간, 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둥근 지구에 사는 박현조는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날 요량으로 계속해서 앞으로, 앞으로, 도망을 쳤다. 긴장감에 배가 아픈 줄도 몰랐다. 세 번째 칸으로 이동할 때쯤 슬쩍 뒤를 돌아보니, 미친 여자 같으니라고....... 이제는 반갑게 손을 흔든다. 공포영화가 따로 없었다. 때마침, 안내방송이 흘러나왔고, 지하철에 문이 열렸다. 목적지는 아니었지만, 재빨리 내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개찰구를 빠져나와 역사 계단으로 껑충껑충 뛰어올랐다. 신경을 콕콕 찌르며 통증을 일으키던 자궁도, 급박한 상황임을 알아챘는지 잠잠해졌다. 이때다 싶어 다리에 힘을 주고 속도를 내려던 찰나.
“현조야! 나 경순이야!”
경순이? 낯이 익은 이름에 우뚝 걸음을 멈춘 나는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천천히 얼굴을 돌렸다. 저 생경한 여자에게서 ‘이경순’이라는 이름이 선명해질수록. 지우고 싶은 기억들이 짙은 단어가 되어 바다 위에 부표처럼 동그마니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