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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리병의 프롤로그

힐링장편소설(유리병 레몬사탕)

by 주양

프롤로그

유리병 레몬사탕

담임선생님은 늘 교탁 위에 레몬 사탕이 담긴 유리병을 올려두었다.

창가로 스며드는 햇살이 볼록한 유리 표면에 닿으면, 노란 레몬 사탕은 보석처럼 반짝였다.

왕이나 여왕, 왕자님이나 공주님만 쓸 수 있는 왕관처럼, 유리병 안의 든 레몬 사탕은 특별한 아이들만 받을 수 있었다. 반장이나 부반장, 공부를 잘하거나, 혹은 집에 돈이 많거나.


“한강 국민학교 5학년 7반, 모두 주목! 자선단체에 물품을 기증할 거야. 집에서 쓸 만한 물건 꼭 챙겨 오고, 우리 윤혜랑 민영이는 안 입는 옷 있으면 가져오도록!”


다음 날, 칠판 아래에는 책이며 장난감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교탁 위에는 다양한 헌 옷들로 작은 동산이 솟아 있었다.


“이경순, 박현조 나와서 받아 가!”


담임선생님은 부모 없이 할머니와 사는 이경순과 반에서 투명인간처럼 지내던 나를 교탁 앞으로 불러 세웠다. 그러고는 빛바랜 블라우스와 유행 지난 원피스를 하나씩 들려주며 뿌듯하게 웃었다.

찰리 채플린이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말했던가. 나는 그의 철학을 열두 살 나이에 깨달았다. 그날 담임선생님의 구제는 멀리서 보면 자비 같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자기만족에 불과한 가식이었다. 이어서 오른손에 풀로 붙인 듯 늘 쥐고 다니던 고동색 나무 교편으로 교탁을 탁탁 내리치던 교실의 여왕은 큰 소리로 말했다.


“헌 옷이라도 누군가에겐 소중한 새 옷이 될 수 있어. 윤혜랑 민영이는 앞으로 나와서 사탕 받아 가세요. 참 잘했어요!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을 본받읍시다! 모두 함께 박수!”


반 아이들은 헌 옷을 든 이경순과 나, 그리고 레몬 사탕을 손에 쥔 소윤혜와 전민영을 번갈아 바라보며 박수를 쳤다. 박수 소리는 뺨을 내려치는 듯 아팠고, 이미 붉어진 내 뺨은 더욱 달아올랐다.

벽에 걸린 선풍기가 덜덜거리며 칠판 쪽으로 바람을 보낼 때마다, 정돈되지 않은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던 이경순에게서 시큼한 냄새가 났다. 가난한 그 아이와 같은 취급을 받고 싶지 않아, 슬그머니 전민영과 소윤혜 쪽으로 몸을 기울였던 비굴한 기억이 있다.


강제로 불우이웃이 된 채 조급하게 숨을 몰아쉬던 나의 모습과, 가진 자의 베풂이 얼마나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지 잘 알고, 영악한 표정을 짓던 소윤혜의 코웃음이 선명하게 대비되던 교실 앞 풍경. 그 장면은 촉촉한 풀내음이 감도는 계절이 되면, 노크도 없이 불쑥 들어와 내 염장을 지른다.


나는 그저, 열두 살 이후로 레몬 사탕을 입에 대지 않는 것으로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하아… 담임.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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