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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비둘기 귀신

힐링장편소설(유리병 레몬사탕)

by 주양

*

“박현조 님! 눈감지 마세요! 뜨고 있어요!”

“박현조 님! 대답해 보세요!”

짙은 안개가 조금씩 걷어지면서 눈을 뜨자마자 든 생각은 ‘여기 어디지?’였다. 시공간을 넘나들다가 모든 기운이 소진된 느낌이다. 아 나는 좀 더 쉬어야겠다. 아득해지는 저 먼 곳을 향해 정신을 놓으려는 순간.

“너무 잔다! 눈뜨고 있어요! 수술 끝났어요.”

‘끝났어요? 뭐가 끝났어요?’ 물었으나, 낯선 여자는 정신 차리라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다. 눈앞에 안개가 조금씩 걷히는 순간, 깨달았다. 아 나는 자순이랑 이별을 했더랬지....... 돌고 돌아 애간장을 녹이며 마음을 축내게 만든 자궁적출 수술을 했더랬지. 그제야 현재 상황이 인지되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 드디어 끝났다. 불지옥을 견뎌냈다. 뿌듯하다. 이제는 생리통도 자궁통증도 수술에 대한 두려움도 해방이다. 이젠 쫑이다! 쫑!

‘정말 끝났어요?’

입술을 달싹여보지만 언어는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았다.

“병실로 옮길 거니까. 눈 감지 마세요.”

조금씩 정신이 또렷해지자, 다른 감각도 선명해진다. 뿌듯함이고 나발이고 더럽게 아프다. 누군가 아랫배를 불 칼로 쉼 없이 쓸어내는 것 같다. 고통을 호소하고 싶지만 말이 나오지 않는다. 말은커녕 숨쉬기도 힘들다. 이 고통을 잊기 위해 깊은 잠에 들고 싶으나 눈이라도 좀 내려갈라치면 누군가 정신 차리라고 호통을 친다. 애써 안면에 힘을 줘보지만 눈꺼풀에 철이라도 달아놓은 건지 무거워 죽을 것 같다. 뿌옇게 보이는 정면에는 동그란 불빛들이 빠르게 스쳐간다. 수많은 별들이 비처럼 쏟아지는 게 마치 유성우 같다.

“병실로 이동 중입니다. 다 끝났어요. 수고했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마음을 전하고 싶은데 입술이 떨어지질 않는다. 으윽, 앓는 소리로 고마움을 대신했다. 내가 누워 있는 이동침대를 붙잡고 달려가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이토록이나 큰 신뢰감이라니. 마치 신생아가 된 기분이다. 문득 할 수 있는 건, 우는 것 밖에 못하는 아기들에게 몹쓸 짓을 하는 인간들은 쇠꼬챙이로 꾹 찍어서 지옥불로 구워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안전하게 나를 이동시켜 주는 이에게 과격하게 고마워하고 있다는 말이다.

“보호자 분, 8인실 자리가 생기면 옮겨드리고 그때까지는 2인실 사용한다고 들으셨죠?”

‘엄마 안 돼! 2인실은 비싸! 보험도 안 된단 말이야! 무조건 8인실 달라고 해!’

외쳐보지만. 또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마취 깨는 중이고, 잠은 두 시간 후에 재우시고. 가스 나와야 식사 가능하고요. 그리고 내일부터 억지로라도 걷는 연습 합니다. 안 걸으면 장기들 유착됩니다.”

“엄마 여기 있어! 눈 떠! 애가 왜 정신을 못 차려?”

간호사가 링거를 꽂으면서 설명을 하는데, 엄마는 듣는지, 마는지, 도통 딴소리다.

‘허 여사! 설명 좀 들어! 또 엉뚱한 정보로 사람 곤란하게 만들지 말고!’

말도 못 하고 입만 뻐끔거리는데, 엄마는 뭔가를 완전히 잘못 짚은 듯, 눈물을 글썽인다.

“엄마 보고 싶었다고? 엄마 보고 싶었어? 수술실 혼자 들어가서 무서웠지?”

축축하고 맹맹한 엄마의 음성 그리고 떨리는 숨결과 동시에, 하나 둘 셋! 내 몸이 공중에 붕 떠오르다가 지상으로 착지한다. 병실 침대로 몸을 옮긴 모양이다.

“현조야! 일어나! 눈 뜨고 있어!”

“여의도 가고 싶어요......”

“어디 가고 싶어?”

그놈이 거기서 고백했어. 벚꽃 날리는 나무아래에서 사랑한다고 했어. 나 거기 가고 싶어. 길고 지긋지긋한 고통의 터널이 끝났다는 것과.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었던 그놈이 고백을 한 여의도가 미치도록 가고 싶다는 욕구가 혼미한 정신 속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몸에 마취기운이 남아 있으면 인간에 본능이 깨나는구나. 그래, 나는 여전히 그놈을 잊지 못했다. 미친년, 속으로 그놈이 아닌 나를 욕했다. 병든 자궁은 이젠 없어. 기나긴 고통은 끝이 났으니 이젠 파리 끈끈이 같은 그놈에 대한 기억도 지울 거야. 나는 새로 태어났으니까. 정신은 새로운 몸으로 살아갈 미래를 계획했고 입술로는 계속 여의도를 말했다.

“두 시간만 참아봐! 마취 깨야 한데! 눈에 힘줘!”

여의도 가고 싶어. 여의도 벚나무 아래에서.... 마냥, 정신없고 싶었다. 마취기운이 남아있는 육신은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고, 괜스레 기분 좋은 헛소리를 하고 싶게 만든다. 엄마에게 여의도 에피소드를 들려주고 싶어서 그 놈이....... 하려는데.

“박현조! 너 B형 아니래! AB형 이래!”

“뭐?”

엄마의 외침에 병든 닭 같던 눈이 번쩍 떠졌다. 이건 마치 ‘내가 니 애비다!’ 스타워즈 반전 저리가라 소식이었다.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막장드라마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방금 전 술 취한 놈팽이처럼 건들대던 정신이 또렷해지면서 마취기운이 일순간 사라지는 기이한 현상을 경험했다. 눈감았다 떠보니, 수술이 끝나있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므르그..느 브흥으느르? (뭐라고 나 B형 아니래?)”

붉게 물든 눈시울과 푸르뎅뎅한 얼굴을 들이밀며, 엄마가 외쳤다.

“너 AB형 이래!”

아 허무하다....... 그 순간, 자순이와 이별을 마음먹고 수술을 준비했던 과정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한 달 전, 한주대학병원에서 수술 날을 정했다. 다행히 개복수술은 자리가 많아서 늦지 않게 날짜를 잡을 수 있었다. 복강경 수술과 로봇수술, 개복 중에 어떤 방법으로 할지를 정하고 신체검사를 하는 날. 나는 김영한 교수로부터 또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난소는 살리고 자궁을 반만 절제하기로 했는데. 이왕 수술하는 거 그냥 깔끔하게 난소부터 나팔관 자궁을 다 드러내는 게 어떨까 싶어요. 결정은 본인이 하는 건데, 다 절제하면 다시는 산부인과 와서 검사하고 이러는 일없이 자궁 쪽으로는 신경 안 쓰고 사는 거예요. 기존대로 수술하게 되면 6개월에 한 번 추적검사하고, 약물치료 따로 하고, 만약 혹이 또 생기면 재수술하고, 번거롭잖아요?”

큰 마음먹고 산 하나를 넘었더니,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체념한 듯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수술방법이 두 가지가 있어요. 로봇수술하고 복강경 수술은 자국이 안 남고 통증이나 회복이 빠른데 비싸요. 보험에 따라 적용이 되는지 확인하세요. 개복수술은 가격이 저렴하고 자국은 당연히 남겠죠.”

“개복은 몇 센티 정도 자르는 거예요?”

“10에서 15센티 정도?”

“아플까요?”

“배를 가르는 거니까, 아프죠. 담당자랑 잘 상의해 보고, 보험사에도 알아보세요.”

조금 주저하다가 100만 원짜리 개복수술을 80프로 보험적용을 받는 걸로 선택했다. 비록 십 센티 넘는 칼자국이 남고 생살을 잘라 장기를 드러내는 것이라 회복도 더디지만. 뭐 비키니를 입을 일도 없고. 흉터자국은 배꼽 한참 아래니까 상관없는 일이지 않나? 통증은 좀 무섭지만, 천만 원이 넘는 수술비가 더 무서웠다. 입원실도 제일 저렴한 8인실로 계산해 보니, 자기 부담금은 아무리 떡을 쳐도 30만원은 넘지 않겠다. 돈은 문제없고. 마음은? 그까짓 마음, 굳게 먹고 나니 자순이와 작별하는 것이 그닥 애달프지 않았다. 차라리 속이 다 시원했다. 다만 수술 날까지 피를 묽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진통제를 먹지 못하는 것이 복병이었다. 병원에서 말하는 성분이 안 든 진통제를 골라먹었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자궁의 통증을 약 없이 생으로 견뎌야 했다. 그저 빨리 수술하기를 바랐다. 수술을 기다리는 한 달 내내 자궁의 통증도 힘들었지만, 악몽과 망상으로 시달리는 게 제일 견디기 힘들었다.

나를 괴롭혔던 꿈속 악몽은. 수면마취 도중에 깨어나는 것이다. 그것도 정신만. 육신은 수술대 위에 시체처럼 누워있고 정신만 말똥 해져서, 배를 자르는 서걱대는 소리와 장기를 뜯어내는 그 고통을 온전히 느끼는 것. 육신에 갇혀서 정신은 또렷한 채로 배를 가르고 장기를 뜯어내는 그 악몽을 매일 밤 꾸고 있었다.

“현조야 의사 선생님들이 어련히 잘 알아서 해 주실까. 믿어봐”

“못 믿는다는 게 아니라, 수술 중에 마취에서 깨어날까 봐 그래. 최악은 정신만 깨어나는 거야. 수술 중에 그 고통을 다 느끼는데 몸만 잠들어 있으면? 내 몸을 찢어 장기를 꺼내는데 잠을 잘 수가 있어? 깨면 어쩌지?”

“선생님이 그럴 일은 없다고 했잖아.”

“잠든 동안 내 정신은 어디 있는 걸까?”

“뭔가 조치를 취해주겠지”

“의사들이 내 정신까지 어떻게 보겠어. 육신만 볼 줄 아는데. 경순아 수술하는 그 몇 시간 동안 내 영혼은 어디에 가 있는 걸까? 아무리 봐도 내 영혼은 쉽사리 잠이 들 것 같지 않아 그래.”

경순이를 한 달 가까이 달달 볶고, 들들 지지고, 푹푹 삶아 으스러뜨렸다. 그리고 오늘 수술 당일 날 새벽, 택시를 타고 가라는 경순이의 말을 무시하고 캐리어를 끌고 낑낑거리며 기어코 버스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다.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엄마를 끌고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검사를 받고 입원수속을 했다. 복잡한 대학병원에 절차를 해결하며 종종걸음 치는 나를 도와주지 못하는 엄마가 초조하게 뒤따르면서 마른세수만 했다. 나도 신경이 있는 대로 날카로워져서 엄마가 말이라도 붙일라치면 뾰족하게 반응했다. 드디어 모든 절차를 끝내고 대기실에서 환복을 하고 기다렸다. 그런데 아침부터 너무 바쁘게 뛰어다닌 탓인지. 열이 떨어지질 않았다.

“박현조 님, 열이 안 떨어져서 수술이 불가합니다.”

이런 말을 듣고 싶었는데, 간호사는 포기하지 않고 열이 떨어질 때까지 체온계를 들이밀고 얼음주머니를 이마에 얹어주었다.

“엄마 집에 가고 싶어....”

라는 말을 백번은 넘게 한 것 같다. 드디어 열이 떨어졌고. 안내에 따라 마취센터로 들어갔다. 마취센터 부터는 보호자 없이 혼자 가야 한다. 그 길은 정말 길었다. 죽어서 저승길이 이렇게 고독하려나? 눈물이 울컥, 쏟아질 만큼 무서웠지만, 꾹 참고 마취센터로 들어갔다.

“박현조 님, 생년월일이요.”

재차 본인확인을 하고 링거를 꽂아 주는 젊은 인턴에게 수술 중에 깨어나면 어뜩하냐고 물었다.

“만약에 깨어나면 다시 잠들게 해 줄게요.”

육신은 잠들었는데, 영혼이 깨어나면 어찌 하냐는 질문은 차마 하지 못했다. 조용히 입을 다문 채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곧 누군가 뒤에 와 손잡이를 잡더니, 휠체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휠체어를 밀던 직원은 속도를 높이더니 이내 달리기 시작했다. 마치, 자전거 바구니 속에 들어앉아 달을 향해 날아가는 외계인 ET가 된 것만 같았다.

‘아 이대로 우주 너머로 사라졌으면.......’

휠체어는 착한 외계인이 사는 행성이 아닌, 수술 방으로 날아가는 거겠지?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뜨지 못할 만큼 무서웠다.

“도착했습니다.”

차갑고 시원한 밀실에는 초록색 도포를 껴입은 의사들이 수술을 준비하고 있었다. 눈을 반쯤 만 떠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대충 그런 것 같았다.

“박현조님 생년월일 대세요!”

떨리는 음성으로 답하며, 드높은 수술대 위로 몸을 옮겼다. 이젠 무섭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냥 백지다.

“박현조 님 자궁, 나팔관, 난소 모두 제거라는 걸로 되어 있는데, 맞으시죠?”

“네. 김영한 교수님이 그러신다고.”

“난소까지 다 제거하면 폐경이 되는 건데. 아시는 거죠? 아직 젊으신데. 난소는 살리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여자 의사가 걱정 어린 음성으로 물었다.

“그런데 교수님이 다 깔끔하게 수술 하는 게 좋다고...”

“아직 젊은데. 아까워서 그래요.”

“저는 잘 모르는데요. 교수님이 그렇게 하신다고. 저는 모르는데요. 정말 모르겠어요. 으아아아앙”

내 울음소리다. 갓 태어난 신생아도 저렇게는 안 울 것이다. 정말 내가 이럴 줄은 몰랐다. 나보다 더 어린 인턴들에게 둘러싸여서. 얇은 수술복 안에 부끄러운 나체로 그렇게 통곡을 할 줄은 정말 몰랐다. 내 울음보에 수술실은 소란스러워졌고. 의사들에 당황하는 동작들이 감은 눈꺼풀 위로 어른거렸다. 그때 생년월일을 수시로 물어보던 남자가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외친다.

“박현조 님! 생년월일 대세요!”

에이아이도 저것보단 감성 돋겠다.

“시끄러워! 박현조님! 850105******!”

연신 내 가슴을 토닥이던 여자의사가 성질을 버럭 내면서 대신 외쳐줬다.

“지금 교수님 통화했는데, 일단 개복해 보고 난소를 살릴 수 있으면 살리기로 했어요.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알았죠? 우리 믿고 진정해요.”

눈물 콧물 질질 흘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는데, 무서워서 쪽 팔리는 줄도 몰랐다. 누군가 손을 잡아줬고. 헐떡거리는 내 가슴에 손을 얹었고. 연신 쉬이... 쉬이.. 소리를 내면서 진정을 시켰다.

“이젠 푹 자요. 하나 둘........”

다정한 음성에 맞춰 온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꿈속에서 어딘가를 헤매고 다닌 것도 같고. 잃어버린 신발을 찾아 발을 동동 굴린 것도 같고. 폭죽이 터지는 그 밤에 세상에서 내가 제일 예쁜 여자가 된 것처럼 사랑을 받았던 것도 같고. 정말 찰나였다. 아득한 정신이 조금씩 또렷해지면서 누군가 나를 깨웠다.

“박현조 님! 일어나요! 너무 잔다! 눈뜨고 있어요!”

나를 괴롭혔던 악몽과 망상은 무색하기 짝이 없었다. 눈 한번 감았다 떠보니, 수술은 끝이 나 있었다. 지레 겁을 먹고 괜한 힘을 뺀 것이 억울해진다. 그리고 지금은 안락하고 편안한 2인실에 누워서 초강력 진통주사를 시간별로 맞고 있다. 간호사가 수시로 들어와 통증의 강도를 물어본다.

“지금 통증을 1부터 10까지 숫자로 표현한다면, 어느 정도인가요?”

“20이요.”

아랫배는 불 칼로 쓸어내는 것처럼 아프고. 숨만 쉬어도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만 같은데, 20이라 외쳐도 약하지. 그건 그렇고, 내 태생의 비밀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거란 말인가. 분명 나는 37년을 예술 감각이 뛰어나고 매력적인 B형으로 알고 살아왔는데. 이게 무슨, 식스센스 브루스 윌리스가 사실은 귀신이었다는 반전 같은 소리냐고.

“그럼 팔목에 찬 밴드에 적힌 알파벳은 혈액형이고. 그 옆에 큰 숫자는 뭔데?”

혼잣말 같은 내 물음에 링거를 확인하던 간호사가 말했다.

“그건 몸무게예요.”

보조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엄마가 엉덩이를 들썩이며 깔깔거린다. 나도 웃긴데 웃을 수가 없다. 웃으면 너무 아프다.

“음므.. 읏즈므....(엄마 웃지 마)”

“그러니까, 살 좀 빼! 다이어트해서 예쁜 옷 입고 여행 가자!”

나는 힘겹게 눈을 깜빡이는 것으로 대답했다. 조금 뒤, 김 교수가 들어와 자궁과 나팔관 난소까지 모두 제거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배를 열어보니 자궁상태가 심각했다고 한다. 자궁이 다른 장기와 딱 붙어서 다른 과와 협업해야 하는 일곱 시간에 대수술이었다고 한다. 김 교수의 회진이 끝나고 하얀 재킷을 멋지게 입은 간호사가 들어와 입원하는 동안 병원생활에 대해 간략히 설명을 해줬다. 간호사의 말이 끝날 무렵 옆에서 조용히 듣고만 있던 엄마가 수줍게 미소를 지으면서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저기. 선생님. 그럼 우리 딸은.......”

“네 어머니 말씀 하세요.”

“우리 딸은......”

허 여사, 왜 저러지? 어디서나 위풍 당당 여장군이 말끝을 흐리다니.

“우리 딸은....... 임신은 못 하는 거죠? 으아아앙.”

아, 이번에는 엄마의 울음소리다. 모녀가 쌍으로 주책이다. 수술실에서 나도, 지금 허 여사도 저렇게 울지는 몰랐을 것이다. 엄마가 운다. 나 때문에 또 운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울음소리가 참 닮았다.

“어머님! 따님 분은 저렇게 씩씩하신데. 울지 마세요. 따님 힘들어요.”

간호사는 엄마를 안아주었다. 어린 간호사의 품에 안겨 엄마가 처량 맞게 흐느낀다. 나는 마음으로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엄마. 기억나? 쑥뜸이 생리통에 좋다고 대야에 쑥 피워서 그 위에 앉아있게 했잖아. 온 방에 쑥 연기로 가득 차서 실신할 뻔했던 거? 기억나? 그때 정말 웃겼는데. 우리 눈물콧물 다 쏟으면서도 생리통 없어지라고, 자궁 튼튼해지라고. 연기 참다가 질식할 뻔했잖아. 엄마 이젠 그런 거 안 해도 돼. 다 지나갔어. 슬퍼하지 마. 생리통으로 앓을 때마다 총 맞은 짐승처럼 엄마 품에 안겨서 그냥 죽고 싶다고 했었잖아. 만날 울었잖아. 나는 하나도 안 슬퍼. 요란스럽게 이별 준비를 해서 그런지 몰라도 속이 다 시원해. 그러니까 엄마 울지 마. 나 때문에 슬퍼하지 마.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남들처럼 평범하게 못 살아 미안해. 장모님 소리 한번 못 듣게 해 주고. 예쁜 한복 입고 결혼식장에 서 있지도 못하게 하고. 꼬물거리는 아기도 안겨주지 못해서. 진짜 진짜로 미안해. 엄마.’

신생아처럼 울고 있는 허 여사에게 나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못된 내 입에서는,

“나 숨쉬기도 힘들어. 울려면 그냥 집에 가.”

그런 말로 엄마의 눈물을 막았다. 움직일 수도 없는 몸 때문에 얼굴만 돌려 눈을 감았다. 간호사는 엄마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서 한참을 달래주었다. 똬리를 틀고 있던 눈물덩어리가 가슴을 타고 목으로 기어오르려 한다. 나는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려 눈물을 밀어냈다. 그러다가 잠이 들었다. 내가 잠에 빠진 건 정말 아주 찰나였다.

나는 꿈을 꾸고 있다. 여기는 꿈속인 것 같다. 방금 전, 긴 수술을 마치고 병실에 누워 있었는데, 어느 순간 꿈속에 들어와 버린 것이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느닷없이 비둘기 한 마리가 내 앞을 서성인다. 별안간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날아와 비둘기목을 잘라버렸다. 곧 목이 잘린 비둘기가 몸은 몸대로 머리는 머리대로 각자 움직인다. 이상하고 괴기하지만, 나는 상관없이 뒤돌아 갔다. 그런데 몸통 없는 비둘기 머리가 나를 쫓아온다. 내 걸음보다 속도를 내어 쫓아와 결국은 뒤꿈치에 부리를 꽂았다.

“으윽.......”

악몽에서 깨어 눈을 떠보니, 엄마가 말간 얼굴로 병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다시는 슬퍼하지 않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 유난히 밝은 얼굴이다.

“음므. 나 끔끄뜨 브들그그슨 끔끄뜨 (엄마 나 꿈꿨어 비둘기 귀신 꿈꿨어.)”

“얘가 뭐라는 거야?”

아무래도 자순이가 비둘기 귀신이 되었나보다. 죽어서 한이 맺혀 내 발 뒤꿈치를 쪼았나보다.

“현조야! 경순이가 온다는데. 엄마가 너랑 시간 보내고 싶다고 오지 말랬어. 코로나 때문에 면회도 안 되니까.”

허 여사는 내 눈을 보지도 않고 말한다.

“어머! 비가 오나보네? 현조 좋아하는 비가 내린다. 여기 티브이도 없는데, 창밖이나 구경하자!”

허여사의 시선을 따라 차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토도독, 창가에 부딪치는 빗방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방울방울 맺혀 있다가 유리알처럼 도르르 흘러내린다. 비는 참 여러 형태로 자신을 보여준다. 사랑처럼 말이다. 소나기처럼 퍼붓는 사랑. 보슬보슬 수줍은 사랑. 머뭇머뭇 가랑비 사랑. 울어주는 사랑. 웃어주는 사랑. 슬퍼하는 사랑. 슬픔을 숨기는 사랑. 엄마는 얼마나 다양한 형태로 나를 사랑하고 있을까. 이런 엄마의 사랑과 비슷한 모양에 경순이가 보고 싶어 졌다.

“경순이가 일어나면 꼭 전화하래.”

나는 힘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숨을 쉬기만 해도 수술부위가 찢어지게 아프고. 경순이 음성을 들으면 난 울어버릴 거고. 내가 울어버리면, 엄마의 슬픈 둑이 무너져버릴 것 같아서. 그럼 병실은 물난리가 날것이 뻔하니까.

“물 먹고 싶지? 조금만 참아.”

연두색이 진한 초록색으로 바뀌어가는 청춘들의 계절에 나는 오래도록 아파했던 자순이와 이별을 했다. 자순이는 어디에 버려졌을까.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 싶은데. 자순이의 시체를 달라고 하면 미친년이라 하겠지? 어쩌면 쓰레기통에 버려졌을지 모를 나의 자순이를 위해 잠시 애도를 했다. 자순아, 아기 한번 품지 못하고 숨을 거두게 해서 미안해. 이젠 아프지 말고 잘 지내. 다음에는 건강한 주인 만나서 예쁜 아기 많이 낳아. 그동안 못난 주인 만나 고생 많았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모든 계절은 그저 아무 일없이 지루할 만큼 평범하게 흘러가기를 기도했다. 가슴이 뻥 뚫린 것 같다. 구멍이 난 곳으로 물이 스며들어 바다가 고이는 것 같다. 엄마에게 자순이가 비둘기 귀신이 된 것 같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대신 이렇게 말했다.

“엄마, 가슴속에서 파도소리가 들려.......”


# 9화의 작은 조각

다음 날, 다행히 가스가 나왔다. 방귀하나 뀌는 것이. 소변 줄 없이 스스로 소변을 누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지 절실히 깨달았다. 방귀뀌고 오줌 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최선을 다해 세상을 살고 있는 거다. 그러니 무언가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한탄할 필요는 없다. 오늘 하루 방귀 잘 끼고 오줌 잘 누었다면, 성공한 인생이다. 이렇게 또 방귀철학을 배워간다. 내일이면 자기연민에 찌질이처럼 굴지라도 오늘은 배출하는 힘에 위대함을 가슴팍에 아로새긴다. 어쨌든 미약하지만 풀피리 같은 방귀에 성공한 나는 휠체어에 몸을 싣고 허 여사와 함께 병원 아래층 쇼핑몰로 내려갔다. 우리는 빵이며 떡이며 온갖 음식을 다 살 작정으로 신나게 쇼핑을 했다. 마침 회진 중이던 김영한 교수님은, 음식을 한 아름을 안고 낄낄대며 돌아오는 우리 모녀를 발견하더니, 간호사에게 조용히 말했다.

“박현조 환자, 식사 나갈 때 소화제 좀 챙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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