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장편소설(유리병 레몬사탕)
눈이 내린다. 그것도 비와 섞인 진눈깨비가. 질척이고 질퍽거린다. 11월 초에 눈이라니, 드디어 날씨가 미쳐버린 건가? 어제까지만 해도 해가 쨍쨍했는데,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오늘은 지온이가 태어난 지 꼭 백 일이 되는 날이다. 그래서 친한 이웃들을 불러 조촐한 옥상 파티를 열려 했는데, 총체적 난국이다. 날씨가 이렇게 도깨비 심술보 같은 건, 아무래도 그 꿈 때문인 것 같다. 오늘 새벽 2시 50분, ‘억!’ 하는 짧고 굵은 비명을 지르며 침대 밑으로 굴러 떨어졌는데, 아주 기분 나쁜 악몽을 꾸었기 때문이다.
꿈속에서 나는 낯선 공원에 혼자 앉아 있었다. 빽빽한 나무들에 가려 햇빛은 들지 않았고, 주위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기묘하리만치 촘촘한 나무숲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한 손에 크고 날카로운 가위가 들려 있었는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다른 손의 새끼손가락을 잘라 버렸다. 썩둑 - 잔인한 소리와 함께 새끼손가락은 반듯하게 절단되었고, 잘라낸 손가락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는 살점 하나 남기지 않고 싹싹 발라먹기 시작했다. 꿈이었지만, 미각은 또렷했다. 얼마나 달고 쫄깃한지, 맛에 취해 쪽쪽거리며 뼈에 붙은 살점을 야금야금 뜯어 먹었다. 그것도 모자라 약지 손가락까지 썰어냈다. 이번엔 먹지 않고, 수풀 쪽으로 던져버렸다. 곧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손가락을 잘라낸 사실이 들킬까 두려워 안절부절못했다. 세 개만 남은 손가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왜 자른 거지?’
그러다 비명을 내지르며 꿈에서 깨어났다. 한동안 우두커니 앉아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하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조금 진정되고 나서야, 그게 꿈이었다는 사실에 안도했고, 아기 옆에서 잠들지 않았다는 것에 천만다행으로 생각했다. 비명 소리에 아기가 놀랐더라면 어쩔 뻔했을까. 평소엔 늘 지온이 옆을 내가 지켰지만, 어제는 파티 준비로 경순에게 자리를 내줬다. 아기가 태어난 뒤로는 개꿈조차 꾸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찾아온 선명한 악몽은 유난히 낯설고 불쾌하다. 무슨 이런 빌어먹을 꿈이 다 있을까? 그것도 하필 지온이 백일에. 찝찝한 채로 손바닥을 쫙 펴본다. 다섯 손가락 다 잘 붙어있다. 아무리 꿈이라지만, 내 행동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리고 자르려면, 못생긴 엄지를 자를 것이지. 왜 하필 제일 예쁜 손가락들을 잘랐을까? 나머지 손가락은 얇고 길쭉한 편인데, 엄지만 꼭 앞머리를 싹둑 잘라 먹힌 듯 이상하게 생겼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악평 좀 듣고 살았을 생김새다. 엄지손가락을 움직여 보니, 애벌레가 꿈틀대는 것처럼 징그러웠다.
“에잇! 참 못났다.”
쫙 펼친 손가락 틈으로 보이는 뿌연 하늘을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투덜거림의 대상은 끔찍한 악몽, 꿀꿀한 날씨, 어긋난 정보를 제공한 기상청, 그리고 못생긴 엄지손가락이다. 조금씩 눈발이 세지고 있다. 내리치는 질척한 눈송이 때문에 반쯤 감긴 눈으로 골몰했다.
“저걸 다 어쩐담...”
나는 2주 전부터 치밀하고 촘촘하게 계획을 세웠다. 때마침 11월 9일은 쾌청한 날씨임을 일기예보에서 확인한 터라, 가든파티 콘셉트로 백일을 기념할 예정이었다. 헌데 지금 눈이 내리고 있다. 차라리 함박눈이나 마른눈이면 좋으련만 축축하고 질펀한 진눈깨비라니. 이름만 귀엽지, 하는 짓은 온 바닥을 진창으로 만들어서 엔간히 사람 애를 먹이는 놈인데. 약이 올라 입술을 비죽이면서 먹구름 아래로 빈틈없이 쏟아지는 것을 노려보았다. 밤늦게 까지 옥탑 외벽에 파티용 풍선과 반짝이 은박커튼, 컬링리본으로 장식을 하고, 빨랫줄과 겹쳐 색 전구를 연결해 놓았다.
이웃들과 나눠먹을 수수팥떡이랑 백설기도 맞췄고. 소갈비, 유부초밥, 미역국, 잡채도 잔뜩 마련했다. 음식이야 방에 들어가 먹어도 되지만 정성을 들여 꾸며놓은 화려한 장식은 어쩌란 말인가. 옥상을 꾸미느라 손님도 안 받았는데, 이걸 다 뜯어서 방으로 옮겨야 하나? 진심 고민된다. 와중에도 종이컵에 프린트해 붙여 놓은 지온이 사진을 보자 흐뭇한 웃음이 절로 지어진다. 스튜디오에서 다양한 콘셉트로 찍은 사진들 중에는, 천사 날개를 단 모습이 단연코 가장 예쁘다. 갑자기 행복이 북받쳐 오르며, 가지각색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에헤헤, 우히히히, 아하하하하. 귀여웡.”
나의 첫사랑, 내 인생을 바꾸러 온 작은 구원자. 백일이 지나면 기적이 일어난다는데, 날마다 배꽃처럼 웃는 아기에게 기적은 필요 없었다. 탄생 자체가 기적이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만 들어주면 울음을 딱 멈추는 여름 아기는 자면서도 생글생글 웃는다. 세 시간 간격으로 일어나 분유를 먹일 때에도, 목욕을 시키고 눕히자마자 황금 변으로 이불 위에 보물섬으로 향하는 지도를 그려놓아도, 그저 기특하고 사랑스럽기만 하다. 그러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기적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경순이와 나는 각각 5kg, 3kg이나 빠졌다. 돈 안 들이고 다이어트까지 시켜주는 지온이, 이쯤 되면 효녀 중에 효녀라 할 수 있지 않은가? 아기 생각에 달구경하는 꽃 처녀처럼 해실 데는데, 접이식 테이블이 바람에 넘어가 우당탕, 난리브루스가 났다.
“이걸 다 우째스까!!”
한데 뒤엉켜 날아가는 풍선과 종이컵을 잡으며 미친년 널뛰듯 방방 거리는데, 경순이가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입구에 서 있었다.
“거기서 뭐해? 빨리 풍선 좀 잡아봐!”
“눈은 곧 그친대.”
평소와는 달리 싸늘한 말투로 꼿꼿이 서 있는 그녀를 흘끗 보며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바닥에 떨어진 파티용 모자를 주워드는데, 경순이가 말을 걸었다.
“현조야. 나 좀 봐.”
싸늘한 게 아니라, 비장한 건가? 그래도 별일 아니겠거니 하며, 옥탑 방 지붕을 향해 천천히 착지 중인 알파벳 모양의 벌룬 풍선을 보며 탄식을 뱉었다.
“아구아구야. 아까버라, 너 뭐하냐? 물건 다 날아가는데, 돕지 않고서....”
놓쳐버린 풍선에 대한 미련을 안은 채, 노란색 식탁보를 걷어내며 탁탁 털었다. 그때, 경순이가 다시 한 번 의미심장하게 입을 열었다.
“현조야 얘기 좀 해...”
경순이 쪽을 흘깃 건너보았는데,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말끝을 뭉개고 서 있는 그 애가 이상해서 하던 일을 멈췄다. 경순이는 두 손을 맞잡은 채 눈을 질끈 감았다.
“현조야....”
그 순간, 어젯밤 꾸었던 악몽이 떠올랐다. 아찔한 공포가 뒤늦게 밀려오기 시작했고, 자궁을 도려낸 자리에서 찌릿한 통증이 밀려왔다.
“왜 그래? 지온이 어디 아파?”
경순이가 고개를 세차게 젓는다.
“그럼 뭔데? 왜 그래? 무섭게!”
“저기....”
“말하라니까?”
“낯선 사람들이 집 주변 서성이는 것 같다고 했지?”
“그래서 경찰에 신고하려는데, 네가 말렸잖아! 수상한 인간들 맞지? 무슨 일 저지른 거야? 지온이 어디 있어?”
“지온이는 가을 할머니랑 있어. 안전해.”
정말로 며칠 전부터, 선글라스를 쓰고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우리 집 앞을 어슬렁거렸다. 처음엔 헌책방과 밀면 가게가 유명해져서 기자들이 취재를 나온 건가 싶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아 경찰에 신고하려는데, 경순이가 정색하며 나를 말렸다. 성인이 된 뒤 다시 만난 경순이가 낯선 모습을 보인 건, 방금 전 싸늘한 말투와 그 순간이 처음이었다.
“현조야. 앉아서 얘기하자.”
“왜 그래 진짜! 지금 말해!!”
진지하더라도 심각한 적은 없었던 그녀는 몹시 불안해 보였다. 불안을 넘어 공포에 질린 창백한 얼굴. 무슨 일인지 예측할 순 없으나 신경다발이 끊어질 듯 팽팽하게 조여 왔고 간담은 서늘해졌다. 경순이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바람에 나부끼는 풍선 장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는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고 경순이 손등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붉고 얇은 피부 아래 숨은 뼈들이 두더지처럼 차례대로 튀어나오다 숨어버린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비벼대다가 포개어버리는 경순이를 주시해 보지만, 짐작이 되질 않아서 숨이 막히고 속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팔딱거리는 심장을 차분히 가라앉히면서 낮은 음성으로 그녀를 달래듯 말했다.
“눈 오니까, 안에 들어가서 얘기하자.”
옥탑 방에 철문을 열어 턱짓을 했다. 그러나 경순이는 발끝을 올렸다 내리면서 동전만 한 눈물을 뚝뚝 흘려 가슴께에 얼룩을 만들고 있었다. 망부석이 된 그녀의 머리 위로 진눈이 닿자마자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다. 그런 경순을 응시하며, 계속 전날 꾼 악몽을 생각했다. 손가락이 잘려나간 끔찍한 장면을 반복해서 재생했다. 나는 왜 잘린 새끼손가락을 먹었고. 왜 또 자른 약지 손가락을 남들 모르게 던져버렸을까. 왜 그랬을까.
“지온이 친부가 왔어.”
한참을 머뭇거리던 경순은 짧고 굵게 강펀치를 날렸다. 악몽보다 더 잔인한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새벽 별을 보며 간절히 기도했던 백일의 소원이 있었다. 제발. 지온이의 친부가 나타나지 않기를. 그는 그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조용하게 살다가. 언젠가 지온이가 아빠를 찾고 싶다고 한다면, 먼 훗날 그때 만나게 되기를. 나는 아주 구체적이고 애절하게, 신께 기도를 드렸었다. 그런데 지금, 경순이는 말한다. 우리가 함께 쌓아올린 이 작은 성을 무너뜨리러 마침내 파괴자가 왔다고. 나의 소망이 진눈깨비처럼 땅에 떨어져 부서지려 한다. 성안에 행복을 지켜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파티에 초대만 한 거지? 그 인간은 자격이 없는데? 너와 지온이를 버린 인간이잖아. 그지? 그래도 애 아빠니까 초대만 한 거지? 밥만 먹고 갈 사람인거지?”
잔뜩 등이 굽어진 경순이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동시에 우리에게서 애달픈 신음이 흘러나왔다. 모든 피가 몸 안에서 순식간에 빠져나간다. 곧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이 꺾이고 말았다.
‘아....... 경순아. 경순아. 경순아. 그렇게 고개를 젓지 마. 죄스럽게 울지도 마. 무거운 짐이라도 진 것처럼 어깨를 굽히지 마. 그 사람은 다시 떠날 사람이고. 너와 지온이의 보호자는 나야. 그러니 당당하게 얼굴을 들어.’
도저히 목소리가 나오질 않아 속으로 비명 같은 말로 소리를 질렀다.
“유부남인 줄 몰랐어. 알고 보니 가정이 있는 사람이었어. 그래서 헤어지려 했는데. 지온이가 생겼어. 그걸 알게 된 그쪽 부모님이 찾아왔어. 아내 되는 분도 찾아왔어. 머리채라도 잡고 뺨이라도 때릴 줄 알았는데. 무릎을 꿇고 아이를 낳아달라고. 자신들이 키우게 해 달라고. 그러면서 울었어. 진심으로 울었어.”
묻지 않아도 넘치도록 자신을 보여주었던 경순에게도 비밀은 있었다. 경순은 하늘에서 내리는 눈처럼 쉬지 않고 말하다가 이내 거칠어진 호흡으로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헐떡이는 숨을 붙들고 간신히 말을 이었다.
“아내 되는 분이 아이를 못 낳는데. 정말 간절히 아이를 원한데. 목숨처럼 아껴준데. 외롭지 않게 해주겠데. 그래서 난 허락을 했어.”
“경순아! 아악! 경순아!”
“다음날 도망쳤어. 복실이 때처럼... 그렇게 도망쳐 버렸어. 그래서 그랬어....”
눈과 손과 다리와 뼈와 심장과 창자와 육신을 만든 모든 세포들이 사시나무처럼 떨려왔다. 눈 밑은 전기에 오른 것처럼 파르르 떨리고 머리는 핑 돌았다.
“그렇지만, 현조야! 돈 때문에 싸인 한 거 아니야! 아파트도 돈도 받을 생각 없어! 그저 아기를 외롭지 않게 해주겠다고 했어. 그래서 한 거야.”
경순이가 붉고 푸른 얼굴을 들며 머리를 흔들었다.
“변호사를 구하자! 변호사는 어디서 구하는 거지?”
다급하게 휴대폰을 찾고 있는 내 앞으로, 경순이가 다가와 덥석 손을 잡았다.
“아니면. 도망가자! 지온이 데리고 상주로 가자!”
경순이는 끝까지 말을 잇지 못한 채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현조야. 내가 복실이를 죽였어.”
“복실이가 왜 죽어? 네 가슴에 살고 있는데?”
경순이는 대답 없이 고개를 숙였다. 굳게 다문 입술 틈으로 눈물이 우물처럼 고이다가 턱 끝에서 떨어져 어딘가로 흘러가버렸다. 그녀의 눈물처럼 나의 지온이가 어딘지 모를 곳으로 흘러가 사라질 것 같은 공포가 엄습했지만, 강하게 부정하며 간신히 이성의 끈을 꽉 붙들었다. 절대 나의 아기를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일념뿐이다.
“좋은 분들이야. 나 만나고 난 그날로 아기 방부터 꾸몄데. 복실이처럼 바다에서 혼자 살게 하지 않을 거야. 내 욕심 때문에 죽었어. 젖도 다 먹지 못하고 죽었어. 목사님 말씀처럼 입양 보냈으면. 복실이는 한 살이 되고 두 살이 되고 지금은 스무 살이 되었을 거야. 지온이만큼은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다 있는 집에서 크게 할 거야. 나처럼 외롭게 하지 않을 거야.”
분명 너는 행복하다고 했잖아. 외롭지 않다고 했잖아. 모든 것이 감사하다고 했잖아. 거짓말이었니?
“나도 할 수 있어! 막노동이라도 해서, 지온이 남부럽지 않게 키울 거야! 경순아! 내가 할 수 있어! 아빠도 돼주고 엄마도 돼주고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다 돼줄 거야!”
“현조야. 지온이 때문에 희생한다는 말 하지 마. 지온이 위해서도 보내줘야 해.”
“나는? 나는! 이 미친년아! 내가 못 산단 말이야!”
할 수 있는 만큼 발악을 했다.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주저앉았다. 있는 대로 소리를 지르고 발을 버둥거렸다. 뭐라도 해야 한다. 뭐라도.
“계모 밑에서 크는 거야! 계모라고! 계모! 몰래 때리면? 교묘하게 괴롭히면 어쩔 건데? 그런 상상을 하면서 어떻게 살아. 나는 못 살아. 나는 못 살아.”
경순이 다리를 붙들고 무릎을 꿇었다. 어린애처럼 엉엉 울면서 그녀의 바짓가랑이를 흠뻑 젖혔다.
“현조야. 너는 너의 인생을 살아! 결혼도 하고! 사랑하고 사랑받아. 너의 시간을 살아.”
차분하다 못해 차가운 눈빛으로 내려다보는 경순에게 나는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경순아 나는....... 나는....... 애를 못 낳잖아.”
곧 경순이가 시든 풀처럼 아스라졌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다른 소리로 울었다. 나는 통곡을 했고. 경순이는 숨을 죽여 흐느꼈다. 그러나 몸의 떨림은 똑같았다. 전구 선들은 다 떨어져 바람에 휘날리고, 벽에 붙어있던 풍선과 장식들이 설한풍에 하나둘씩 떨어져 재 각기 다른 색으로 표표히 날아가 버렸다. 불현 듯, 아기를 품에 안고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잠식했다. 벌떡 일어나 계단을 향해 내달렸다. 그러다가 신발 밑창에 박힌 눈덩이에 미끄러져 넘어졌지만 상관없이 일어나 뛰어 내려갔다. 일층 현관에 도착해서 유리문을 밀고 나가보니 가을이 할머니가 두 손을 모으고 서 있었고, 그 앞에는 검은색 세단이 문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할머니 우리 아기 어디 있어요?”
차오르는 눈물을 삼키면서 가을할머니를 향해 비척비척 다가섰다. 할머니는 체념한 얼굴로 울고 있었다. 모두 같은 표정들이다. 쉽게 포기가 되는 얼굴들이다. 다들 딱 그 만큼만 지온이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 누구도 나만큼 사랑하지 않는다. 그래. 아기와 함께 도망쳐야겠다.
“어디 있어요?”
이를 악물고, 눈에 붉은 핏대를 세웠다. 애써 힘을 준 몸이 버티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려오지만, 다리에 힘을 꽉 주었다. 가을 할머니는 사시나무 떨리듯 흔들리는 내 어깨를 잡아 주었다. 그때 집 앞을 가로막고 서 있던 고급승용차에 뒷문이 열리더니 국화꽃처럼 생긴 여자가 내렸다. 뒤를 돌아 그 여자를 노려보았다. 여자의 눈시울이 붉다.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온다. 그러더니 등이 훤히 보일 만큼 허리를 굽혔다.
“우리 아기 어디 있어요?”
여자에게 따져 물었다.
“잘 키우겠습니다. 정말 사랑하겠습니다.”
잔뜩 고개를 숙인 여자의 떨리는 음성은 빗발치는 진눈깨비 사이를 뚫고 귓전에 내리 박혔다.
“지온아! 지온아!”
나는 여자의 어깨를 밀치며 소리쳤다. 잠시 후, 앞좌석에서 신사 모자를 쓴 점잖아 보이는 노인이 문을 열고 나왔다. 노인이 시선을 피할 만큼 노려보았다. 눈발은 더 거세졌고 숨도 쉬지 못할 만큼 얼굴을 덮쳤다.
“내가 키웠어요. 이름도 내가 지었고. 매일 목욕도 시켰고. 세 시간마다 우유 먹였고. 변색이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새벽이라도 병원으로 뛰어갔어요. 지온이 옆에서 자는 것도 나예요! 지온이 숨소리가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벌떡 일어난 것도 나에요!”
당신들은 모른다. 지온이의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릴 때는 소변을 보는 중이라는 걸, 미간 사이가 붉어졌을 때는 너무 깔깔거리며 웃었다는 걸, 그럴 땐 쉬이, 쉬이, 흥분을 가라앉혀줘야 한다는 걸. 고양이만 보면 파닥파닥 작은 날개 짓을 한다는 걸. 하하하, 웃음소리를 내면 까르륵 따라 웃는다는 걸. 분홍색 혀를 귀엽게 내밀 땐 창밖을 보여줘야 한다는 걸. 그러면 동그랗고 맑은 눈동자로, 세상을 여행하기 시작한다는 걸. 당신들은 절대, 절대 모를 것이다.
“아악! 지온아! 지온아! 어디 있어!”
나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머리를 흔들고 발을 쿵쿵 내려치면서 고함을 질렀다. 구경나온 이웃들이 쳐다보며 수근 거려도 창피하지 않았다. 오로지 나의 아기를 안고 도망쳐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그때, 뜨거운 손길이 내 어깨를 꽉 붙잡았다.
“지온이 출생신고도 못했어.”
“엄마 혼자라도 할 수 있어!”
“지온이 등본은 텅 비게 두지 않을 거야.”
단호한 그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물기를 머금은 드센 진눈깨비가 시야를 가려 아릿해졌다. 그저, 두 주먹만 꽉 쥐고는 바들바들 떨 수밖엔 없었다.
“인사하고 보내주자.”
떼를 쓰다 지친 어린애처럼 경순이 손에 잡혀 차 앞으로 끌려갔다. 열려있는 창문 사이로 히터의 훈풍이 불었다. 슬쩍 내려다본 뒷좌석에는 연세 지긋한 노년의 여성이 곤하게 잠든 지온이를 안고 있었다. 나의 아기가 낯선 사람 품에 안겨있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
“아아아.. 지온아, 이리와 지온아........”
심장을 망치로 내려치는 것 같고, 창자는 찢어질 듯 고통스럽다. 분명, 내 몸에는 자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아랫배가 찢어지게 아팠다. 쏟아지는 눈물을 연거푸 닦아내면서 흐려지고 겹쳐 보여 아렴풋해지는 나의 아기를, 아까운 나의 여름 아기를 눈에 담으려 욕심을 부렸다. 눈물이 물같이 흘러내린다. 닦고 또 닦아 보아도 쉬지 않고 흘러내렸다. 조금이라도 더 보아야 하는데. 아까운 나의 아기를 눈에 담아야 하는데. 키울 자격도, 능력도, 힘도 없는 무능한 눈물만 나의 지온이를 가렸다.
“나 아직 못 엎어줬는데....”
내 말에 경순이가 매정한 눈을 돌렸다.
“지온이 머리끝까지 카디건으로 덮고 업어줘야 하는데. 내 등 위에서 햇살 모래 콕콕 찌르며 놀게 해줘야 하는데. 나 아직 지온이 못 업어 봤는데...”
봄빛이 스미고, 바람 끝이 말랑해질 즈음엔 말이야. 얇은 카디건으로 너의 머리끝까지 감싸고 등에 업은 채 동네를 함께 걷고 싶었어. 내 등으로 햇살이 스며들면, 카디건 안에 포근히 업혀 있는 너에게 모래 햇살이 장난을 칠거야. 그럼 너는 내 등을 콕콕 찌르다가 까르륵 웃겠지. 그런 너를 상상하면서 봄이 오기를 기다렸어.
“지온이 감기 들겠다. 응?”
경순이가 재차 작별을 권했다.
“너는 거짓말쟁이야! 너는 사기꾼이야!”
경순이의 가슴팍을 밀쳐내면서 빽 소리를 지르고, 책방으로 들어왔다. 목 밑으로 밀어내는 울음이 역류하며 솟구쳤다. 카운터 밑으로 등을 지고 쪼그려 앉아 지독한 절망을 토해냈다. 누군가 목을 꽉 조르는 느낌이다. 숨이 쉬어지질 않아 한참을 헐떡였다. 그때 문 밖에서 부릉, 시동 걸리는 소음과 함께 아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기가 나를 부른다.
“지온아!”
소스라치게 놀라며 아기의 이름을 불렀다. 책방 문이 부서질 만큼 밀치고 나갔다. 승용차는 지온이를 안고 저 앞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난 계절에 태어난 여름 아기를 향해 뛰었다. 몇 번을 미끄러져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 달려갔다. 곧이어 주춤주춤 차의 속도가 느려졌고, 이내 멈췄다. 뒷좌석 문이 열리더니 그 여자가 내렸다. 나의 여름 아기를 안고서.
“잠깐만. 아....... 잠깐만요. 지온아. 지온아........”
눈물로 범벅이 된 입술을 간신히 달싹이며 어기적어기적 다가섰다. 여자는 내 품에 아기를 안겨줬고 머리 위에 우산을 씌어줬다. 지온이가 울음을 멈추고 나를 보며 방긋 웃었다. 손싸게를 한 작은 손을 휘저으며 내 눈물을 닦아주려 한다. 끙끙 거리는 강아지 소리로 사랑을 고백하는 아기를 향해 애써 만든 미소를 지어 보이며,
“하! 하! 하!”
소리 내어 웃었다.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인 지온이가 까르륵 웃는다. 볼이 통통하게 솟아오르자, 고였던 눈물이 복숭아 같은 뺨을 타고 사르륵 흘러내렸다.
“쪼쪼니야 마많이 사사랑해, 마많이 사사사랑해...”
막아도 막아도 솟구치는 울음이, 아기에게 남기는 마지막일지 모르는 고백을 흐느낌으로 뭉개버렸다. 여름 장미처럼 붉은 입술과 배꽃처럼 하얀 얼굴을 눈으로 저장하고 가슴에 담았다.
“나는 어떻게 살지? 너를 보내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르겠어. 좀 알려줘 지온아.”
뜨거운 눈물이 아기의 뺨 위로 떨어졌고, 지온이는 놀라서 눈이 동그래졌다. 우산을 씌어주던 여자가 아기 얼굴에 차가운 눈발이 닿지 않도록 손으로 가렸다. 여자는 매우 곱고 작은 손을 가지고 있었다. 흔한 반지 하나 끼지 않았고, 맨 손톱은 정갈하게 잘려있었다. 나는 눈을 들어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의 눈과 어깨와 등과 머리가 잔뜩 젖어있었다. 나는 다시 지온이를 향해 짓무른 눈을 돌렸다. 그리고 아기의 가슴에 아로 새기듯 모든 간절함을 모아 말했다.
“내 이름은 박현조야. 너는 지혜롭고 따뜻한, 나의 지온이. 부디 절대 잊지 마. 제발, 기억해줘. 잊으면 안 돼. 나는 박현조, 너는 지혜롭고 따뜻한 지온이.”
여름 아기는 마치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동그란 눈으로 내 입술을 응시했다.
“대모 말 알아듣겠어? 우리 쪼니는 똑똑하니까, 기억할거야.”
그러고는 아기를 손이 곱고 단정한 여자 품으로 돌려줬다. 더 안고 싶었지만, 눈발이 더 거세졌고, 내 품은 눈물에 젖어 더 이상 따뜻하지 않았다. 여자가 건네 준 우산을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그녀의 품에 안긴 아기를 바라보았다. 자꾸만 멀어지는 지온이를 좀 더 자세히 보려고, 숨을 막아 눈물을 붙잡았다. 차에서 내린 노인이 아기를 안은 여자에게 우산을 씌어줬고. 여자는 자박자박한 걸음으로 차 안으로 들어갔다. 곧 문이 닫혔고, 차에 시동과 함께 지온이가 크게 울었다. 동시에 내 심장은 갈기갈기 찢어졌다. 하지만 나는 바보처럼 우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주홍색 불빛이 얼굴만 하다가 주먹만 해졌고,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지온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내 이름은 박현조야! 너의 이름은 지온이야. 잊지 마. 잊지 마. 잊지 마....”
허공을 향해 외치고 주저앉아 가슴이 저미도록 울었다. 진눈은 싸라기눈이 되더니 어느새 함박눈으로 변해 거리 위에 소복하게 쌓였다. 여름 아기를 태운 자동차가 남긴 두 개의 선을 응시하면서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나는 너를 키우고 싶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