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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주양 Oct 31. 2024

16. 담배를 이해했다.

힐링장편소설(유리병 레몬사탕)


#16


지혜롭고 따뜻한 아기 지온이는 싱그러운 계절, 7월에 태어났다. 경순이가 산후조리원에 있는 동안 이층 살림집은 아기맞춤용으로 대대적인 수리에 들어갔다. 수술받 탄 보험금을 다 쏟아부었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오래된 방충망을 모조리 뜯어내고 초미세먼지까지 걸러내는 고급방충망으로 화장실에 난 창문까지 교체했다. 옥탑방에 박혀 있던 못쓰는 물건은 내다 버리고, 안방에 있는 부모님 가구를 옥탑으로 옮겼다. 창고처럼 쓰던 옥탑을 쓸만한 방으로 꾸몄다. 부모님이 서울 오시면 편안하게 쓰시도록 말이다. 그리고 안방은 지온이 맞춤용으로 대변신을 했다. 노란색 친환경 도배지와 커튼부터 아기용 침대까지 모두 오가닉 제품이다.


"현조야.. 이러지 않아도 돼.."


경순이는 만류했지만, 지온이를 향한 나의 열정은 선풍기 앞에서도 꺼지지 않았다. 부모님이 청평으로 가면서 방치되어 있던 옥상 화단도 가을이 할머니 도움으로 기사회생되었다. 상추, 깻잎, 방울토마토, 고추, 가지, 애호박, 오이, 블루베리가 심긴 옥상은 비밀의 정원이 부럽지 않은 수준이다. 헌책방 앞에서 올려다보면 초록 모자를 쓴 것처럼 자연으로 풍성해진 옥탑은 흡족함을 넘어 대만족이다. 지온이가 걸음마를 할 쯤이면 체험학습장으로 활용할 생각이다. 그러나 나는 식물계의 마이너스 손이다. 내 손만 닿으면 죽어버린다. 그래서 가을이 할머니가 도와주기로 했다. 가을이 할머니는 아파트에 살아서 식물을 키워봤자, 화초정도라. 잎채소와 과일나무를 키워보는 게 소원이란다. 그러니 얼마나 좋은가. 옥탑 식물들은 내 손이 안 닿아 좋고. 가을이 할머니는 꿈을 이뤄 좋고.


"가을 할머니, 이제는 봄이 할머니로도 불러야 하나요? 아니면 가을봄할머니?"


성인 얼굴만 한 호박잎을 솎아내는 가을 할머니를 도우면서 능청을 떨었다.


"호호호! 가을봄할머니 좋네. 가을할머니라고만 하면 집에 있는 봄이가 섭섭하니까."


나비의 세 마리 새끼 중에서 한 마리를 입양한 가을할머니가 흙이 묻은 손으로 우아하게 입을 가리며 웃었다.


"경순이가 젖이 안 나와서 지온이 분유 먹이는데 잘 안 맞나 봐요 변 색이 안 좋아요. 맘카페 보니까 무슨 독일 분유가 좋다는데. 그걸 먹여야겠어요."


"아주 경순이보다 현조대모가 더 유난이야! 극성대모야! 극성대모!"


상추, 깻잎을 잔뜩 따놓은 바구니에 호박잎 몇 장을 얹으면서 이마에 줄줄 흐르는 땀을 훔쳤다.


"가을봄할머니, 너무 더워요! 적당히 따고 이층 내려가요. 경순이가 수정과 만들었는데 맛있어요."


"호박잎은 8월 가기 전에 따야 해.. 아니면 질겨 못 먹어."


"그럼 조금만 하고 내려오세요. 저 먼저 갈게요. 지온이 목욕시켜야 해서요."


"그려~ 극성대모님!"


방실거리는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이층 살림집 현관문 도어록을 열면서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나의 공주님이 맘마 고 계시려나? 혹시나 분유를 먹던 지온이가 잠에 들었을까 싶어 조심조심 도어록의 비번을 누르고 까치발로 들어갔다.


"현조야! 땀 좀봐! 너 수술하고 그렇게 무리하면 못써."


주방에서 젖병을 닦고 있던 경순이가 미간을 좁히면서 성난 음성으로 말했다.


"많이 움직이랬어!"


"어우, 선풍기 앞으로 어서 가!"


"지온이는?"


"일어났어. 목욕물 받으려고."


"아니! 내가 받을게. 온도계로 체크해야지!"


공중에서 흔들리는 나비모빌을 보며 꼼지락 거리는 지온이를 향해 까꿍! 광대짓을 하는 나를 물끄러미 보던 경순이가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짓다가 못내 웃어버린다.


"현조야, 나 책방 내려갈게. 지온이 밥 주려고 급하게 오느라. 나비 책방에서 자고 있는데 문 닫아놓고 올라왔어."


"날 선선해지면 지온이 데리고 내려갈게."


고개를 끄덕이며 급하게 신을 고쳐 신고 나가는 경순이를 배웅하고는 목욕물이 담긴 아기욕조를 낑낑거리며 마루로 옮겼다.


"쪼니야, 물놀이 할까? 하!하!하!"


지온이가 좋아하는 너털웃음을 만들자 숨이 넘어가도록 까르륵, 웃는다. 귀여운 두 볼이 통통하게 올라오자 내 심장은 살을 뚫고 해처럼 솟아난다.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굴리며 감탄을 했다. 혹여 지온이가 놀랄까 봐, 나지막한 탄성을 내지르며 입을 막았다. 겨우 참아낸 감정은 목언저리를 간지럽힌다.


"지온이~ 사랑받기 위해~태어난 아기~"


음치실력으로 노래를 부르면서 유튜브로 배운 아기 목욕을 시작했다. 한 손으로 목을 받치고  손수건으로 살살 마사지. 놀라지 않도록 조심조심. 감기 걸릴까 싶어 후다닥 마치고 싶은데, 어색한 손은 덜덜 떨리고 맘처럼 움직이질 않는다. 지온이는 나를 보며 생글거리고 내 등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렇지만 이런 행복한 노동은 백번 천 번도 더 할 수 있다. 물에 젖은 천으로 얼굴을 닦이려는데, 좀 전까지 참방참방 물장난을 치던 지온이가 꾸벅꾸벅 졸더니 이내 잠에 들고 말았다. 물속에서 졸고 있는 아기가 왜 이리 짠하고 안쓰러운지 가슴이 미어져 소리 없이 흐느꼈다. 나를 믿 물속에서도 잠에 들 수 있는 지온이를 조심스러운 손길로 씻기면서 주책없이 울었다. 요즘 나는 지온이를 보면 바보처럼 울거나 모지리처럼 웃거나. 중에 하나는 반드시 해내고 다.


"쪼니야.. 흑흑.. 쪼니 우리 예쁜 아기야. 흐극.. 대모가 너를 위해 목숨도 버릴 수 있어! 맹세!"


작고 어여쁜 나의 지온이. 지혜롭고 따뜻한 나의 천사. 정말이다. 나는 너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칠 것이다. 다만 너의 친부가 나타나지 않기를 밤마다 기도하는 나를 용서해 주겠니. 만약에 친부가 나타나 너와 경순이를 데리고 떠나버린다면 나는 견딜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다. 그래서 요즘 안 하던 기도를 하고 안 가던 교회를 가고 있다.


'하나님 제발 지온이 친부가 나타나지 않게 해 주세요. 경순이와 지온이가 평생 내 옆에 있게 해 주세요. 제발 이 기도만은 들어주세요! 만약 고쳐주지 않았던 자궁처럼 지온이와 경순이를 내 몸에서 떼어간다면, 나는 반드시 기필코 죽어버릴 겁니다!'


집착이라고 흉을 봐도 상관없다. 흐르는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미소를 지으면서 소중한 아기순면 타월에 머리까지 감싸 이불 위에 눕혔다. 엉덩이에 분을 바르고 마사지를 해주는데. 창가에 스며든 햇살이 목욕물에 내려앉아 물결이 찰랑일 때마다, 천장으로 반사된 빛이 반짝거렸다.


"쪼니 깰 때까지 목욕물 그냥 둬야겠다. 천연 모빌이 따로 없네?"


지온이가 일어나면 보여줘야겠다. 일부러 목욕물을 흔들어 천장에 별빛이 더 반짝이게 해야지. 그러면 나의 아기가 까르르 웃겠지? 방안 가득 은하수가 흐르면 지온이가 웃고. 나는 행복에 겨워 눈물을 흘리겠지. 담장 너머 여름장미가 한가득 피어난 계절에 태어난 지온이는 자면서도 배냇짓을 하며 웃는다. 배꽃처럼 예쁘게.




무더웠던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그래도 한낮의 태양은 아직 여름의 햇살에 가까워서 유모차에 덮개를 반만 내리고. 미세먼지와 벌레 차단용 그물망이 드리워진 유모차를 끌고 고수부지로 나왔다. 당연히 유모차 안에는 나의 지온이가 타고 있고, 옆에는 도시락과 돗자리가방을 한쪽 어깨에 맨 경순이가 있다. 추석연휴라 책방 문을 닫았다. 아기 때문에 멀리는 못 가고 한강으로 소풍을 나왔다.


"하늘 엄청 예쁘다. 구름 한 점 없는 저 푸르름. 하늘을 하늘색으로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게 원통하다. 뭔가 더 칭찬해주고 싶은데, 나의 한계야."


"경순아, 너 검정고시 준비 해봐."


"에잉 다 늙어서 무슨... 돈 벌어서 지온이 키워야 하는데. 뭐 해 먹고살지 막막하다."


"뭘 막막해. 이렇게 계속 나랑 살면 되지! 지금처럼 책방 해서 돈 반반 나누자니까?"


"내가 뭘 했다고 반을 받아. 먹여주고 재워주고 지온이까지 나보다 더 잘 봐주는데. 염치없는 거지"


"아니라고. 너 없으면 이젠 책방 망하는 거야! 계속 이러고 살자! 나중에 지온이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식 할 때, 혼주석에만 앉게 해 줘!"


"현조야. 너도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고 가정 이루어야지... 너 자꾸.."


"아니! 요즘 자꾸 담배냄새가 올라오는 거 같지 않아?"


나는 급하게 경순이의 말을 막았다. 혹시라도 애아빠를 만나면 지온이와 떠나야 한다는 말이 나올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


"집에 있을 때 담배냄새 안 나?"


"잘 모르겠는데.."


경순이가 송아지 같은 눈을 껌뻑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건널목 공사장 아저씨들이 담배 피우는 게 우리 집까지 올라오는 것 같아. 명절 지나면 가서 한마디 할 거야! 우리 쪼니 몸상하면 어쩔 건데!"


"에잉 그러지 마.. 냄새난다 싶으면 창문 닫으면 되지."


"매번 어떻게 그래. 그리고 너는 잘 맡지도 못하잖아. 나 없을 때 담배냄새 들어와서, 쪼니 호흡기 망가지면 어쩔 거냐고! 가서 진짜 한마디 할 거야!"


유모차를 꽉 쥐고 끌고 가면서 길길이 날뛰는 나를 멀거니 바라보던 경순이는 가을 햇살이 아름답게 내려앉은 한강의 윤슬로 눈을 돌렸다. 한참을 말없이 강물을 따라 걸었다.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코스모스 위로 잠자리가 여유롭게 유영하다 내려앉았다.


"현조야.. 내 두 번째 사랑이었던 남자 있잖아. 공사장에서 일하다가 죽었다는 착한 남자..."


아련한 눈빛으로 강물을 바라보는 경순이가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은 고아원에서 자랐데. 나이가 차서 원에서 나오고 막노동판을 돌아다녔다는 거야.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하다 보니까 익숙해졌데. 그리고 처음 배운 일이라 그런지 공사판에서 돈을 버는 게 마음 편했다는 거야. 그 사람이 담배를 피웠거든? 뭐 내 앞에서 피지는 않았고. 공사장에서 일하다 피운 거겠지? 어느 날 내가 그랬어. 아저씨 담배 몸에 안 좋데요. 일찍 죽으면 나 혼자되잖아요. 그랬더니 아저씨가 막 웃었어."


경순이는 잠깐 말을 멈추고 옅은 한숨을 깊이 내뱉으면서 호수처럼 맑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느 날, 도시락을 싸가지고 아저씨 일하는 공사장으로 갔는데. 점심시간이라서 시꺼먼 땀으로 얼룩진 인부들이 삼삼오오 흙바닥에 앉아서 빵을 먹고. 집에서 싸 온 차가운 도시락을 먹고 라면을 호호 불어 먹기도 하고. 우리 아저씨는 어디 있나 한참 찾았는데. 저기 구석에서 담배 피우는 무리에 끼어서 부러운 눈으로 구경만 하는 거야.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피식 웃으면서 다가갔는데. 아저씨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인부들의 표정을 나는 그 자리에서 펑펑 울고 말았어."


"왜.. 왜 울어? 담배를 피우는데 인상을 구겨야지. 왜 울어? 화를 못 내서 운 거야?"


"아니..."


온화하게 미소 짓는 경순이가 내 볼을 톡 치면서 말을 이었다.


"노동에 기운을 빼앗겨 껍데기만 남은 것 같은 육신을 하고서는. 손가락보다 얇은 담배 한 개비를 소중하게 쥐고 공중으로 연기를 날리고 있는데. 모든 시름을 연기 속에 털어버리는 행복한 얼굴들인 거야. 그게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몰라. 손발이 얼어붙을 만큼 추운 계절에 무거운 짐을 지고 험한 건물을 오르는 사람들이. 고작 담배 한 개비에 가난함을 잊어버리는 그 소박함이. 나는 슬펐어."


말을 마친 경순이는 등을 지고 강물을 응시했다. 그리고 나는 경순이가 돌아보기 전까지 뒤에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마 울고 있을 것이다. 바보 같은 이경순. 지는 더 가난하면서. 지는 더 고단하면서. 지는 더 외로우면서. 천치맹꽁이 경순이는 항상 남을 위해 울어준다. 경순이의 작은 등을 보면서 묻고 싶었다. 왜 너는 한 번도 너를 위해 울지 않는지. 왜 너의 슬픔을 이야기할 때는 웃으면서 말하는지. 어떤 단어와 어떤 문장을 조합해서 질문을 던질지 고민하고 있을 때. 경순이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돌아보며 말했다.


"현조야 그래서 나는...  아저씨한테 공사장에서 쉴 때는 담배 피우라고 했어."


"흠..."


덜떨어지고 바보 같은 이경순은 그렇게 담배를 이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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