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시설에서는 공부 못 하면 그냥 무시하며 일을 시켰어요.
우리가 청소, 밥, 농사 다 했었거든요.
한 번은 중학교 시절 봉사라며 순대 공장에서 일하고 한겨울에 추모공원 눈 치우고 그랬는데 순대 공장에선 일하고 순대랑 문화상품권 주곤 했는데 그게 진짜 봉사인지 아직도 의문이에요..
원장님이 목사님이셨는데, 일요일마다 예배를 드리면 "너네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냐, 집에 보내줄까?" 이런 말을 자주 하셨죠.
애들은 집이 더 싫으니까 안 간다고 하고요.
그러면서 "너네가 다른 시설에 갈 줄 아냐, 다른 시설도 티오가 없어서 못 가고, 너네 이렇게 말 안 들으면 시설이 문 닫는다, 그럼 너네 다 흩어져야 된다"라고 하셨어요.
특히, 저는 동생이랑 같이 있었으니까 "동생이랑 같이 와서 이렇게 받아주는 데가 있겠냐"라고 하셨죠.
저는 그 당시 더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어렸고 집은 무섭고 싫고 쉼터에서 남동생이랑 같이 갈 수 있는 데가 너무 없어서 뺑뺑이 돌았던 경험이 있으니까요.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혼나곤 했었는데 그 당시에 제가 진짜 말을 안 들어서 혼나기도 많이 혼났어요.
애들 중에 늦게 와서 머리가 좀 컸던 것도 있고,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으니까요.
그래서 많이 혼나기도 혼났죠.
지금 생각해 보면 잘못한 것도 있기는 했어요.
솔직히 그 안에서 하지 말라는 것만 안 했어도 괜찮기는 한데, 그 나이 때 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다 못 하게 했으니 반항심이 많았었죠..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시설에서는 공부나 그런 훈육 같은 건 제가 왔을 때는 좀 사라진 상태였어요. 공부를 시켰는데 안 되는 애들이 많으니까 포기하신 것 같았죠.
근데 제 위에 언니가 공부를 잘하니까 계속 공부를 시키고 있었고, 처음엔 저도 와서 잘 따라가냐 하면서 공부를 시키고 인터넷 강의도 들었어요. EBS 강의, 에듀윌 강의 같은 거요. 근데 저는 진짜 지금도 수학이 약한데 그때도 수학이 약했어요. 수학은 초등학생 때 실력 그대로죠.
쨌든 그때 당시에 첫 시험을 봤는데, 저는 학교도 왔다 갔다 하고 학교 공부를 제대로 한 게 없어서 집합만 맞고 다 틀렸어요.
당시 수학 10점 맞고 다른 과목은 그래도 80에서 90 몇 점 받았는데, 수학 10점 맞은 게 컸나 봐요. 저보고 뭐라 하고 멍청하네, 다른 건 암기 과목이니까 저렇게 했네 뭐네... 뭐라 하더라고요. 그냥 그 뒤론 전 무시당했죠..
그래서 뭐.. 전 중학교 당시에는 살림만 한 기억이 나요
제가 주방 담당이었거든요.. 하하
공부로 평가받고, 어른들의 말에 복종해야 했던 시설에서의 시간.
하지만 저는 이곳에서도 저만의 방식으로 버티고, 또 다른 길을 찾아 나섰어요.
사실, 중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의 복잡한 관계를 알게 되고, 세상이 저를 불쌍하고 안타까운 아이로 보겠구나라고 느꼈었어요..
그렇게 '아, 나를 살릴 수 있는 건 나밖에 없겠구나.' 그때부터였어요.
저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철이 들기' 시작했죠.
무시받아 안 했던 공부를 다시 시작했고, 그 노력 덕분이었을까요?
중학교 3학년 때는 그전까지 평균 40~50점대였던 성적을 80점대로 끌어올릴 수 있었어요.
그렇게 학교는 저에게 단순한 의무가 아닌, 저의 존재를 증명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되어주었어요.
그리고 저는 이곳에서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하게 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