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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네 살 아버지

by 송지영

준서를 다시 본 건, 그의 출국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늦가을 빛이 낮게 누운 오후, 나는 박사장이 사는 동네 카페에 약속보다 조금 먼저 도착했다. 준서를 기다리며, 먼저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 박영수.

“여기 누르시면 강연이 나와요. 한번 해보세요.”
나는 박사장의 휴대폰 첫 화면에 준서의 강연 파일을 옮겨두었다. 그는 투박한 손끝으로 화면을 눌렀다.
“허허, 맞네. 우리 준서 목소리.”
그는 몇 번이고 멈췄다 다시 틀며, 작은 액정 속 아들의 음성을 오래 붙잡았다. 그 눈빛에는 그리움만큼,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이 더 짙게 고여 있었다.


그때, 문이 열렸다. 찬바람과 함께 말끔한 정장 차림의 준서가 들어왔다. 박사장의 시선이 곧장 그를 향했다. 준서는 잠시 멈춰 서서 아버지와 나를 번갈아 본 뒤, 고개를 짧게 숙였다.

“준서 왔냐. 인사는 다했어?”

“네. 아버지 와 계셨네요. 오래 기다리셨어요?”

박사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들에게 길을 내주며 말했다.

“아니야. 김사장 왔다길래 잠깐 얼굴 보러 봤지. 나는 갈 테니 얘기 나누고 와.”
“네. 윤정이 다 왔대요. 먼저 올라가 계셔요.”

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았다. 아버지는 아들의 어깨를, 아들은 아버지의 옷깃을 가볍게 만졌다.

“사장님, 녹음 열심히 들으세요. 또 연락드릴게요.”
박사장은 가볍게 눈을 찡긋한 뒤 손을 흔들었다. 그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준서는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 갓 내린 커피의 김이 둘만 남은 서먹한 공기를 부드럽게 덮었다.


“무슨 녹음인가요?”
“아... 비밀이에요. 아버지 공부 시작하셨어요.”
내 농담을 알길 없는 준서는 얇은 미소를 지으며 잔을 들었다.

“일은 정리되셨어요? 마지막까지 바쁘셨죠.”

“네. 아버지와 시간을 좀 보내고 싶었는데 일정이 많았어요. 오늘 저녁엔 동생네 가족이 와서 함께 식사하기로 했어요.”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문장 끝마다 가느다란 피로가 매달려 있었다.

“아버지랑 이렇게 같이 지내신 건 오랜만이죠?”
“처음이에요. 단둘이 시간을 보낸 건. 첫날은 좀 어색했어요. 남자 둘이서 엄마 없는 집에 있으니까. 제가 다정하지 못해… 죄송하죠.”
“박사장님은 엄청 좋으시대요. 매일 준서 씨를 볼 수 있어서.”
“네. 아버지가 아침을 차려주셔서 저도 깜짝 놀랐어요. 같은 집인데, 다 새로워요. 엄마만 없을 뿐인데.”

준서가 ‘이제 집이 없다’고 했던 날이 떠올랐다. 그 말을 내놓던 박사장의 허공에 걸린 눈빛까지. 다시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엄마가 서 있던 자리도, 저녁 냄새가 스며 있던 부엌도 필름을 거꾸로 감듯 오래된 장면 속에 정지돼 있었다. 엄마의 부재는 공간을 비워내는 일이 아니라, 관계의 지반을 흔드는 일이었다.


“두 분의 새로운 시작 같아요. 내년에 한국 오신다고 들었어요.”
“네, 원래는 모교에 자리 나길 기다렸는데, 아버지 얘길 듣고 우선 교환교수로 들어오게 됐습니다."

단단하던 그의 표정에 기대와 머뭇거림이 동시에 어른거렸다.

“한국으로 오는 결정… 쉽지 않으셨을 텐데요.”

준서가 식은 커피를 천천히 들이켰다. 눈길이 잠시 창가로 멀어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어릴 땐 가족이 중력 같았어요. 멀리 가고 싶은데 계속 붙잡히는 기분. 그런데 막상 나를 조건 없이 품어주던 유일한 존재가 사라지니까… 순식간에 세상이 텅 빈 것 같았어요. 엄마가 없다는 게 이렇게 외로운 일일 줄은 몰랐습니다.”

‘엄마’에서 그의 음성이 잠시 멎었다. 카페 스피커의 음악만 시간이 흐른다는 걸 알려주었다.

“그제야 보였어요.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 중 미국에 남은 건 저뿐이란 게. 조건은 제가 제일 열악했었는데……”

말이 느리게 이어졌다. 오래 눌린 마음이 길을 트고 있었다.

“장례식 두 달 뒤에 둘째가 태어났어요. 그날부터 아버지가 자주 생각났어요. 스물넷에 부모가 되었으니그 어린 나이에 자식 키우느라 자기 인생을 다 갈아 넣었겠구나… 부모님이 버틴 시간들이 처음으로 보였달까요."

스물넷. 그 작은 숫자가 가슴 안쪽에서 불을 밝혔다. 우리 아버지는 그때 몇 살이었더라. 늘 일터에 있었고, 늘 구부정했고, 늘 고단해 보였던 그 모습을 나는 한 번도 제대로 보려 하지 않았다. 정리되지 못했던 감정이 준서의 목소리를 타고 형체를 얻었다. 그는 내 눈시울이 붉어진 걸 알아차리고는 잠시 머뭇거렸다.

“작가님… 괜찮으세요?”

“네. 저는 … 가난이 무서웠어요. 제가 흔들리면 모두가 무너질까 봐, 그냥 견뎠죠. 지금 생각하니, 그 버팀이 저를 여기까지 데려온 건지도 모르겠어요.

익숙한 가면을 벗고 오래 잠겨 있던 마음이 조금씩 움직였다. 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결핍과 내 공허가 서로를 알아보는 듯했다.

“처음엔, 아버지 글에 제 얘기가 나온다고 해서 불편했어요. 근데 작가님 만나니까… 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잘 써주세요. 아팠지만, 잘 자란 우리로.”

나는 보일락 말락 한 미소를 지었지만 목 끝이 메었다. 준서의 시선이 느껴지자 괜히 커피잔을 만지작거렸다.

“저 이만 가볼까 봐요. 더 있다간 진짜 울지도 모르겠어요.”

무거워진 공기를 풀려고 급하게 일어서느라, 정작 하고 싶은 말을 끝내 입 밖에 내지 못했다.

'글을 쓰는 시간이 내게는 일종의 위로였어요.'

그 감정이 식기 전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글이 나를 재촉했다. 박영수와 박준서의 이야기는 이제 완성될 것이다. 내 안에 길을 잃었던 나의 이야기 또한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노을빛이 짙게 번진 언덕길을 영수는 올랐다. 검은 배낭을 메고 한참을 헤맨 끝에, 부암동 산길 끝의 오래된 이 층집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심연사.

간판 위 글자가 바람에 흔들리며 희미한 빛결을 흩뿌렸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층 난간 위에서 이현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가 계단을 내려오자 은빛 머리칼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드디어 오셨네요.”
“잘 지내셨어요? 용기를 내는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렇게 오셨는걸요. 그때 부인께 글을 남기고 싶다고 하셨죠?”
“네, 그런데.. 바꿔도 될까요? 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럼요. 누구에게라도 괜찮아요.”

그날의 머뭇거림을 기억하던 이현이 의자 하나를 내밀었다.

“그런데 … 제가 글에는 도통 자신이 없어서 … ”

이현이 그의 마음을 아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상으로 남기셔도 괜찮아요. 이곳은 글이든, 음성이든, 마음이 닿는 방식이라면 무엇이든 됩니다.”

그녀가 창가 쪽을 가리켰다. 그곳엔 카메라와 조명이 준비되어 있었다.

“편히 앉으세요. 빨간 불이 들어오면 말씀하시면 됩니다. 기록은 형식보다 진심이 더 중요하다는 것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영수는 어깨의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았다. 이현이 그의 옷깃에 마이크를 달아주고, 카메라 앞으로 돌아가 각도를 맞췄다. 조명이 켜지자, 영수는 당황해 몸을 움츠렸다. 카메라에 불빛이 들어오자, 그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오래 미뤄둔 말들이 드디어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준서야.

수훈이가 그린 크리스마스 카드 잘 받았다.
살짜리 손끝이 만든 색이 어쩜 그리 고운지,
그 야무짐이 네 어릴 적을 꼭 닮았더라.

애기가 보내준 따뜻한 코트도 잘 받았다.


아버지는 평생 받기만 했지, 정작 너한테 편지 한 장 줘본 적이 없구나.

먹이고 입히는 일 말고는, 마음을 표현할 줄 몰랐다.

그게 지금에 와서 제일 마음에 걸린다.

그 시절의 아비들은 사랑보다 생계를 먼저 배웠다.

나는 어느 것도 잘 해내지 못했다.

너는 내게 늘 넘치는 존재였다.

허름한 내 생이 너를 통해 한 줄기 빛을 얻었다.

나와 달리 뭐든 잘하는 네덕에 나는 어디서도 기죽지 않았다.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르다는 말을 너를 가지고 알게 되었다.

엄마도 그랬다.

가진 게 없어도 너를 보면 부자가 별거 아니구나 싶다고.
우린 가난했지만, 세상 누구보다 부자였다.

기억나냐. 중학교 때 세 들어 살던 고깃집 2층.

돈을 억수로 벌던 집주인이 늘 우리를 부러워했지.

“어떻게 애가 이렇게 반듯하냐”라고 물을 때마다, 세상 어떤 칭찬보다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이제 와 돌이켜보니, 아버지는 너에게 받은 게 더 많았다.
응당 부모가 자식에게 주어야 하는데, 나는 늘 모자랐다.

네가 하고 싶었던 공부를 밀어주지 못한 게 지금도 한이 된다.
그때 무능한 나 자신이 미워 몇 달을 술로 보냈다.
그런데 네가 과외로 번 돈을 엄마에게 손에 쥐여주던 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식이 아비보다 낫구나.’

그 한마디가 나를 부끄럽게도, 다시 살게도 했다.

그래도 말이다, 준서야.
젊은 날엔 하루 벌어 하루 살기 바빠 사랑한다는 말을 차마 못 했지만,
단 한순간도 너를 아끼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나는 매일 네가 사랑스러웠지만, 그걸 말하면 안 되는 줄 알았다.
아버지는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엄마가 떠난 뒤로, 나는 매일 마음속으로 너에게 말을 걸었다.
‘아들아, 잘 지내냐. 엄마 없다고 울지 마라. 아부지가 있다.’
이제 보니, 너도 같은 마음이었더구나.
그걸로 됐다. 그걸로 충분하다.


이제 나는 마음을 놓는다.

너는 나보다 단단한 어른이 되었다.
그 시절 나는 서툴렀지만, 너는 그 모든 부족함을 견디며 잘 자라났다.

나는 네가 교수가 된 것보다 수훈이와 수민이의 아빠가 된 것이 더 자랑스럽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네 눈빛이 내 젊은 날의 미숙함을 다 덮고도 남는다.

너는 언제나 나를 넘어선다.


너로 인해, 지리멸렬했던 내 인생도 견딜 만했다.
너로 인해, 내 청춘도 썩 괜찮았다.

너는 내게 그런 존재다.

사랑한다, 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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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사가 궁금하다면 7화로-

박영수의 이야기는 8화부터 시작입니다.


박영수와 박준서 부자와는 이렇게 작별이네요. 다음 화는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로 새 주인공과 함께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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