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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겨서 죄송합니다.

by 송지영

12시, 유유전자 본사 지하 리프레쉬 라운지. 스크린에는 ESG, 혁신, 글로벌 비전 같은 단어들이 끊임없이 회전한다. 김치 냄새와 세계경영이 같은 공간에서 뒤섞여 숨 쉬는 회사. 그 불협화음이 이제는 내 호흡처럼 익숙하다.

스물다섯 해째, 나는 같은 궤도를 돈다. 점심시간이면 정해진 순서로 밥을 퍼 담고, 오늘도 식판 위에 하루의 질량을 차곡차곡 쌓는다. 사람들은 가끔 외식하며 바람을 쐰다지만, 나는 언제나 배식대 앞에 선다. 변주 없는 반복이 내겐 안정이었다. 대단히 빛나지 않아도 오래간다는 것, 그게 내 방식이다.

웰니스 바에는 샐러드를 원하는 젊은 직원들이 줄을 선다. 나는 야채로 의지를 증명하는 사람이 아니다. 현미밥, 순두부찌개, 김치 세 조각, 고등어 한 토막, 곤드레나물, 요구르트를 식판 가득 담는다. 내 몸은 곡기와 국물로 작동하고, 허기를 다스려야 마음이 단단해진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사람들을 지나, 늘 앉는 구석 자리로 향한다. 등을 벽에 붙이면 세상의 시선이 절반쯤 줄어드는 느낌이 든다. 사람들은 점심에도 세상의 이슈를 씹는다. 조직개편, 코인, 부동산, 자녀 교육, 뒷담화까지. 나는 고등어의 잔가시 발굴에 집중한다. 혀끝으로 뼈를 골라내는 동안 세상은 잠시 조용해진다. 낮은 음량의 삶, 그것이 내 생존 방식이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책상들은 아직 비어 있다. 양치하고 습관처럼 주식창을 연다. 붉은 장대 막대 하나가 눈에 꽂히자, 빠르게 매도를 건다. 주식을 처음 시작한 건 입사 후 종잣돈이 조금 모였을 때였다.
열아홉 겨울 입사 교육 첫날, 최 과장이 내 앞에 서서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영주 씨는 참 푸근해서 좋아.”

칭찬인지 비수인지 모를 그 말이 내 얼굴에 붙은 첫 라벨이었다. 그날 바로 다이어트를 시작했지만, 결과는 요요였다. 얼마 뒤, 그는 주식 폭락으로 낯빛이 잿빛이 되어 다녔다. 사람들이 “지금이 사 모을 시기”라며 농담할 때, 나는 진짜로 사 모았다. 그가 본전 근처에서 손을 털었다는 소문이 돌던 날, 회식 자리에서 나는 안경을 고치며 말했다.
“저는 파월컴 삼십 퍼센트 먹고 나왔어요.”

누군가의 얼굴평이 아닌 숫자가 나를 인증하던 순간, 뼈 깊숙한 희열이 스쳤다. 내 방식의 복수는 시끄럽지 않았다. 그날 밤, 최 과장은 술에 절어 이대리 팔에 매달려 나갔다. 나는 잔을 비우며 생각했다. 사람들은 내가 둔하다고 했지만, 둔한 것과 끈질긴 것은 다른 종이다. 느리게 이기는 판도 있다. 주식도, 회사도. 남이 지쳐 돌아갈 때까지 버티는 능력. 그것이 나의 유일하고 확실한 재능이었다. 대단한 야망은 없었으나, 남의 기대보다 오래 살아남는 것에는 자신 있었다.


나른한 오후, 메일 알림음이 짧게 울렸다.
<인사총무실> 미래역량 전환 설명회 안내
마우스 위의 손가락이 잠시 흔들리다, 결국 눌렀다.


안녕하세요, 임직원 여러분.
회사는 글로벌 사업 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장기적 경쟁력 강화를 위해 조직 체계를 재정비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구성원 역량 개발과 자발적 커리어 전환을 지원하기 위한
미래역량 전환 프로그램 설명회를 진행합니다.


내용: 자발적 전환 제도 안내 / 조직 재설계 방향 / 역량 강화 프로그램 / 커리어 지원 절차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인사총무실 드림


문장들은 부드러웠지만 그 끝자락은 날카로웠다. 삼겹살에 그은 칼집처럼. ‘자발적’이라는 단어가 두 번 보였다. 그 단어는 언제나 불길하다. 스스로 다짐할 땐 한 번이면 족하다. 두 번이면 선택지를 포장한 통지문이다. 메일창을 닫았다. 손바닥이 차게 젖어 있었다. 흔들렸다고 말하기엔 애매했으나, 키보드 위에서 손끝이 오래 멈춰 있었다.

옆자리에서도 자판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다들 고개를 낮춘 채 같은 문장을 읽고 있을 것이다. 각자의 마음속 계산기를 두드리며 숫자와 생존의 조건을 조용히 추산하면서.

복도의 공기가 아주 미세하게 달라졌다. 누군가는 기회라 했고, 누군가는 정리라 했다. 회사는 해마다 어려웠고, 감원·긴축·쇄신 같은 단어가 사내 게시판을 점령했다. 언론은 반도체가 다시 오른다고 떠들었지만, 복도 공기는 늘 그보다 먼저 식어 있었다.


나는 소문 대신 팩트를 기다리는 편이다. 궁금증은 동요가 갈아입는 옷일 뿐이다. 알아도 달라질 건 없다면, 모르는 편이 멀쩡하다. 그래서 설명회에도 가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늘 무력했다. 소식은 언제나 가장 쉬운 문으로 당당하게 들어온다.
“금차장, 우리 커피 한잔 할까?”

강 부장이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나를 불렀다. 그 한마디로, 퇴사 통보보다 더 명확한 예감이 찾아왔다. 복도 끝 회의실, 햇빛이 낮게 깔린 창가 자리. 강 부장이 뜨거운 커피를 후루룩 소리를 내며 마셨다.
“요즘… 회사가 좀 시끄럽지. 인사팀에서 상담 한번 받아보래.”

“제가요?”
질문이었지만, 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만 45세 이상, 고과가 B 아래면… 이번 대상이래.”

말끝이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그 조심이 오히려 상황을 더 선명하게 했다.

“아... 그럼 저네요.”


내 방식은 가늘고 길게, 얼음 위를 디디듯 버티는 생존이었다. 언젠가 물러날 순간이 오리라 알고 있었지만, 그 시점은 오십 대 중반쯤일 거라 믿었다. 십 년이 통째로 지워졌다. 마치 보고서에서 한 줄을 삭제하듯 아무 말 없이. 분노, 허탈, 그리고 기묘하게 희끗한 해방감이 얇은 필름처럼 포개져 묘한 균형을 만들었다.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얼굴, 그게 지금의 나였다.

인사팀 미팅 일정이 잡혔다. 동료들이 힐끗힐끗 나를 훑는 시선이 공기 속 잔먼지처럼 흩어졌다. 그 시간을 기다리며 마음 한쪽에서 저울이 흔들렸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버텼는데’ 하는 끈질긴 생존의 떼와 ‘그래, 이제 족하다’ 싶은 피로한 체념. 두 마음이 스파링을 뜨는 장면을 가만히 지켜본다. 패배도 승리도 아닌, 단지 끝을 예감한 무대를.


퇴근길, 회사 앞 호프집을 지나쳤다. 거품 둥둥 뜬 잔들과 떠다니는 웃음들. 그 풍경을 유리창 너머로 오래 바라본 건 처음이었다. 남의 장면이었다. 나는 저 세계에 속한 적이 없다. 얼굴도 못생긴 데다, 태도까지 뻣뻣하다고 수군댔다. 사람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나는, 늘 환영의 바깥에 있었다. 일에선 실수 없이 버텼지만, 관계에서는 늘 여분이었다. 빛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늘, 그림자였다.

오늘도 편의점 불빛이 내 앞길을 밝혔다. 4캔 만 원. 할인 스티커가 붙은 맥주는 나를 반겼다. 원플러스 원 삼각김밥 두 개까지 보태면 모자란 저녁은 아니었다. 진열대 불빛이 쓸데없이 다정했다. 가방에 맥주와 김밥을 쑤셔 넣자, 짐이 아니라 내 마흔다섯이 들어찬 느낌이 들었다. 가방끈이 어깨를 누르는 건지 나를 누르는 건지 짓눌렀다. 사람들은 퇴근 후 저녁 있는 삶을 시작한다는데, 나는 퇴근과 삶 사이 어딘가에 매달린 채 걷고 있었다.




그날이었다. 금영주가 편의점 쇼핑으로 묵직해진 가방을 어깨에 걸친 채 내 앞에 나타난 것이. 퇴근길의 공기가 아직 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제 이야기 써주세요. ”

감정의 높낮이가 없었다. 보고서를 읽는 듯한 말투, 그러나 묘하게 긴장된 어조였다.

“퇴사 결정까지 한 달 남았어요. 작가님과 얘기하다 보면… 뭐라도 잡힐 것 같아서요.”

그녀는 앉자마자 회사 이야기를 쏟았다. 성과, 인사평가, 오래 쌓인 억울함과 체념. 목소리는 또렷했지만, 자주 리듬이 끊겼다. 단단하게 밀어붙이다가, 문득 숨이 빠지는 형식. 나는 그 틈에 귀를 기울였다.
“영주 씨가 정말 쓰고 싶은 이야기는 뭐예요?”

그녀는 무언가를 들킨 사람처럼 얼어붙었다. 잠시 뜸을 들이다 내뱉었다.

“못생겨서 죄송합니다요.”

“…네?”

영주는 고개를 기울였다. 표정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가장 오래, 많이 되뇌어온 문장이에요. 얼굴 때문에 늘 불편했고, 그 불편이 제 몫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좀 벗어나고 싶어요.”

어색한 침묵이 둘 사이에 흘렀다.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이 금영주잖아요. 어려서부터 금복주라 불렸어요. 소주 캐릭터 닮았다고...”

입꼬리를 들었지만 웃음은 없었다. 그제야 나는 그녀를 제대로 보았다. 작은 키에 검은 롱스커트, 굽 높은 운동화. 부드러운 곡선이 반복되는 짧은 파마머리에 둥근 검은 뿔테 안경. 꾸미지 않은 듯 보이지만, 손을 놓은 얼굴도 아니었다. 처음엔 그냥 스쳐갈 얼굴 같았는데, 다시 보니 지우기 어려운 인상이었다.


밖이 어둑해졌다. 반사된 조명이 그녀의 안경 위에 얇은 링을 얹었다.

“작가님, 저는요. 예쁘고 사랑받는 주인공 말고, 구석에서도 살아남는 인간 얘기였으면 해요. 울퉁불퉁해서 비켜지는 사람, 눅눅하다고 치워지는 사람. 그런데도 어느새 틈을 비집고 자라는 존재요. 곰팡이 같은.”

그녀는 말을 멈췄다가 낮게 덧붙였다.

“사람들이 싫어해도, 그 자리에서 싹이 나거든요.”

영주는 가방을 다시 다부지게 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소리가 멀어질수록, 그녀가 쏟아둔 말들이 천천히 자리를 잡았다. 나는 노트북을 켰다. 금영주의 이야기는 ‘못생겨서 죄송합니다’에서 시작하지만, 그 문장은 곧 다른 방향으로 기울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 단어를 되뇌었다.

죄송합니다.

잠시 바라보다가, 지우고 다른 단어를 쳤다.
존재합니다.

그녀는 이제, 새롭게 쓰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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