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건,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가장 은근한 방식이다. 박사장을 보지 못한 한 달 동안, 내 문장은 자주 호흡을 잃었다. 문장을 잇는 일은 그의 부재를 더듬는 일이었고, 마침표를 찍을 때마다 그가 앉아 있던 자리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기보다, 멀어진 온기를 복원하는 기술자 같았다. 그래서 전화를 걸었다. 이유는 그저, 오래 끓인 마음같은 뜨끈한 전골이 먹고 싶다는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일요일 정오, 종로3가역 6번 출구 앞. 인파가 흐르는 거리에서, 박사장이 나를 발견하자 팔을 높이 들어 흔들었다. 그 익숙한 몸짓 하나로 잊고 있던 안도가 돌아왔다. 파란 티셔츠 위에 회색 카디건, 단정히 빗은 머리. 그는 오랜만의 외출이 주는 들뜸을 숨기지 못했다.
“김사장, 이게 얼마만이야. 전화 줘서 얼마나 반가웠다고.”
“사장님, 잘 지내셨어요? 오늘 엄청 멋지신대요.”
“김사장 만난다고 하니까 윤정이가 이 옷 사 보냈더라고.”
그의 미소에는 쑥스러움과 안도, 그리고 기다림의 흔적이 엷게 섞여 있었다. 나는 그 상기된 표정을 관찰하는 게 좋았다. 우리는 나란히 전골집 문을 밀고 들어갔다. 고기 냄새와 김이 한꺼번에 밀려와 얼굴을 감쌌다. 종업원이 바쁘게 불판을 닦고, 국물을 붓는 동안 박사장은 가만히 나를 바라봤다.
“요즘 글은 잘 써져?”
“네, 사장님 생각하면서 매일 써요.”
“허허, 김사장 덕분에 기분이 좋아지네.”
한 달 전 내게 검사지를 내밀던 그 두려운 눈빛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가 병원에 다녀온 후, 윤정에게 전화가 왔다.
“우울성 가성 치매래요. 엄마 돌아가시고 받은 충격 때문에 인지 기능이 일시적으로 떨어진거로 보인대요. 약 먹고 6개월 뒤 다시 검사해 보기로 했어요. 정말 다행이에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윤정의 목소리는 울음인지 안도인지 모르게 떨렸다. 우리는 ‘좋아질 수 있다’는 말 한 줄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병이 이름을 얻는다는 건, 희미하게나마 다음으로 나아갈 길이 시작되었다는 뜻이었다. 오늘, 눈앞의 박사장은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해 보였다. 말투는 또렷했고, 웃음에는 자신감이 비쳤다.
“건강은 어떠셔요? 얼굴이 아주 좋아 보이세요.”
“괜찮아. 약 먹으니까 머리도 확실히 맑아지고, 기분도 좋아졌어. TV에서나 우울증 얘기를 들어봤지, 내가 걸린 줄은 꿈에도 몰랐어.”
그는 여전히 자신의 병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평지라고 믿었던 땅이 느닷없이 꺼졌는데, 그제야 발밑의 깊이를 깨달은 사람처럼. 안도하는 그를 직접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살아 있다는 건, 이렇게 작고 은근한 감사들이 서로 이어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주거니 받거니 서로의 그릇에 전골을 떠주었다. 어제를 견뎌낸 전우에게 작은 찬사를 보내듯이.
“아 참, 준서가 온대. 다음 주에 강연이 있다네.”
“어머, 잘 됐네요. 그동안 보고 싶으셨을 텐데.”
“응. 일주일 있다는데 이번엔 호텔 안 가고 나랑 같이 지낸다네. 나야, 좋지.”
그는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내게 물었다.
“김사장, 다음 주에 나랑 같이 강연장 갈래? 아들 강연하는 건 한 번도 못 봤네. 우리 준서, 김사장한테 소개해 주고 싶기도 하고.”
그는 보름달처럼 환한 얼굴로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같이 가셔요. 저도… 아드님이 궁금했어요.”
“하여튼 우리 김사장, 시원시원해서 좋아. 나한테 항상 잘해줘서 고마워.”
그의 말투에는 꾸밈이 없었다. 그런 사람 앞에서는 마음이 느슨해지고, 그냥 잘해주고 싶어진다.
“제가 감사해요. 우리 아버지도 사장님처럼 다정한 분이었는데, 왜 그렇게 곁을 안 드렸을까 글 쓰면서 자주 생각해요.”
“김사장이 생각이 많았겠네. 준서도 김사장처럼 나를 생각해 주면 좋겠구먼.”
그는 어색함을 깨려 국물을 연거푸 들이켰다. 얼굴이 붉어졌지만 아들이 온다는 소식에 얼어있던 마음이 이미 풀린 듯했다.
“아드님도 그럴 거예요. 자식들도 마음이 없는 건 아닌데, 어떻게 꺼내야 할지 어려울 때가 많아요.”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복지센터에서 시작한 탁구 이야기 들려주었다. 김여사는 백핸드가 예술이고, 영숙 씨는 공은 안 치고 수다만 떤다고 했다.
“왜 한 분은 김여사고, 한 분은 씨를 붙이세요?”
“그게 말이지, 누님 뻘은 여사님, 동갑이나 밑으로는 씨로 하는 게 국룰이여.”
“사장님, 국룰도 아세요?”
오랜만에 터져 나온 박사장의 너스레가 재미있어, 나도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풍물 치는 얘기며 구내식당이 맛집이라는 얘기까지 쉴 새 없이 이어가더니, “다음 주에 보자”는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식당 문을 나서자, 가을 냄새가 가득 묻은 알싸한 공기가 뺨을 스쳤다.
이른 아침, 휴대폰 소리에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아직 일곱 시도 되지 않았다. 화면에 ‘박영수 사장님’이라고 떠있었다.
“김사장, 나는 아무래도 안 가는 게 낫겠어. 내가 들어도 모르고, 괜히 준서 신경 쓰이게 할까 봐. 김사장은 다녀와서 얘기 좀 해줘.”
분명 밤새 고민하다, 날이 밝자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전화를 끊고 한동안 멍하니 창문을 바라봤다. 희미한 아침햇살이 커튼 틈으로 번졌다. 나도 가지 말까, 마음이 기우는 순간 이상하게도 박준서를 만나야겠다는 충동이 더욱 또렷해졌다.
늦가을 오후, 교정은 고요했지만 공학원 건물 앞은 북적였다. 정장 차림의 사람들 사이로 젊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걸었다. 입구 위에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미시간대학교 박준서 교수 초청 특강 : 차세대 연료전지〉
공학원 1층, 우남홀. 나는 강연장 맨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무대에서 가장 멀고, 가장 높은 자리였다. 정각 네 시, 사회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어서 미시간대학교 박준서 교수님의 발표가 있겠습니다. 오늘 강연 주제는 ‘차세대 연료전지의 효율과 지속 가능성’입니다.”
박수 소리가 길게 퍼졌다. 단상 아래에 앉아 있던 준서가 옆 교수들과 인사를 나눈 뒤 무대 위로 올라섰다. 남색 양복 차림, 서늘한 눈빛. 절도 있는 걸음. 조명이 그의 얼굴을 비추자, 강연장의 공기가 미세하게 달라졌다. 그는 유창한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강연을 시작했다.
“차세대 수소 에너지의 효율은 결국 촉매와 계면 공학이 결정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안정적이었다.
“고온형 고체산화물 전지의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선 크롬 중독 억제 기술이 필요합니다. 또 저온형 전해질 전지에서는 백금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반응 속도 제어가 핵심이죠.”
화면에는 복잡한 그래프와 화학식이 번쩍였다. 청중의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조용히 이어졌다. 나는 녹음 버튼을 눌렀다. 두고두고 이 목소리를 들을 박사장을 상상하면서.
무대 위의 준서는 더 이상 박사장의 아들이 아니었다. 국내외에서 손꼽히는 수소 에너지 전문가, 수백억 원 규모의 연구를 이끄는 과학자. 그 빛나는 장면 한가운데서, 나는 이상하게도 박영수의 얼굴을 떠올렸다. 누군가의 자부심은, 때로 가장 깊은 그리움의 다른 이름이 된다.
강연이 끝나자 청중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뒤에도 나는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무대 뒤편으로 향하는 통로를 따라 걸었다.
준서는 몇몇 교수들과 명함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흩어지길 기다리며 기둥 옆에 섰다. 그의 어깨선, 말할 때 살짝 올라가는 입매, 눈가의 표정. 어딘가 낯익은 결들이 겹쳐졌다. 잠시 후, 그가 혼자 남았을 때, 나는 숨을 고르고 걸음을 옮겼다.
“박준서 교수님.”
시선이 내게 잠시 머물렀다. 그의 표정에는 놀람보다는 호기심이 먼저 비쳤다.
“안녕하세요.”
나는 다른 교수들이 하듯 출판사 이름이 박힌 흰색 명함을 내밀었다.
“당이출판사 김민주입니다. 박영수 어르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작가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도, 윤정이도 작가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해서 인사드리러 가려던 참이었어요.”
예상과 달리 그는 나를 알고 있었다. 지나치게 공손했고, 반가운 표정으로 나를 대했다.
“도움은요. 박사장님이 워낙 좋은 분이시잖아요. 저희 친해요.”
친하다는 말에 그도 나도 웃었다. 바빠 보이는 그를 오래 붙잡을 수 없어, 우리는 걸음을 맞춰 대화를 이어갔다.
“책이 나온다고 아버지가 엄청 기뻐하시더라고요. 어떤 글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내가 바라던 질문을 그가 먼저 물었다. 그는 시간이 없었고, 나는 본론을 던졌다.
“지극한 사랑 이야기예요. 한 인간이자, 한 아버지로서의.”
준서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보았다. 눈매에서 아버지의 선한 눈길이 처음으로 느껴졌다.
“윤정이 말로는 유서 같다고 하던데요.”
“가족 이야기가 담긴 소설이에요. 마지막에 편지를 남기고 싶어 하시는데 그건 말 그대로 편지일 거예요. 저도 아직 마무리는 못해서... 준서 씨를 만나 뵙고 싶었어요.”
입구 쪽에서 준서를 기다리는 교수들이 손짓했다. 더는 지체할 수 없다는 듯 준서가 내 명함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작가님과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은데, 지금은 시간이 좀 촉박해서… 다시 연락드려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연락 주세요.”
“감사합니다, 작가님.”
준서는 무슨 말을 더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이다가, 고개를 숙이고 일행 쪽으로 향했다. 그 뒷모습에, 어쩐지 어린 준서의 그림자가 겹쳐 보였다. 그 아이에게 다가가면, 내 안을 가득 채운 어떤 응어리의 이름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은 떠난 뒤에야 이해되고, 어떤 마음은 글로 써야만 되살아난다. 이야기가 완성되는 건 언제나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때다. 나는 준서를 향해, 그리고 나 자신을 향해 조금 더 걸어가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