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남자에게 위험한 향기를 뿌린 게임
"너네 집에 컴퓨터 게임하러 가봐도되?"
90년대초반 핸드폰도 인터넷보급도 원활하지 않았고 가정에 컴퓨터있던 집이 많이없던시절 컴퓨터가있는 친구집에 놀러가는건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지금 보면 무슨 이런컴퓨터로 게임을 하냐?싶겠지만 그때 당시 컴퓨터의 작은 모니터속안의 게임세상은 정말 황홀했다.
당시엔 턴제형식의 롤플레잉 게임이 많았는데 처음엔 재미가있었으나 대부분 게임의 전투장면이 뭔가 임팩트없었고 비슷비슷했다.
짤뚱한 도트 그래픽의 캐릭터가 몬스터에게 그냥 방망이나 검같은걸로 휙휙 휘두르거나 불 마법이라도 쓰면 그냥 빨간 도트가 펑하고 터지는 정도가 끝이였다. 물론 그런게임이 재미없었던건 아니였지만 액션장면에선 어린마음에 내심 아쉬운게 컸었다.
그렇게 친구와 같이 게임을 하던도중 친구가 멋진게임을 보여주겠다며 다른 게임을 켰다. 나는 잔뜩 기대하며 게임을 봤는데 기대감은 바로 실망으로 바뀌었다. 게임을 켜서 들어가고나니 아니나다를까 짤뚱한 도트캐릭터가 나와서 천막쳐진 상점에들어가 이것저것 무기사고 도구사고 전투준비만 왠종일하고있었다.
........
"별로 멋없는데? 그냥 다른게임 하자."
나는 이내 심드렁 해져서 다른거하자고 친구를 졸랐다.
그런 나를 보면서 친구는 한쪽 입꼬리만 스윽올리고는
"보여줄게, 있어봐"
라며 비릿한미소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다시금 기대치를 올린후 나는 전투에 들어가면 뭔가 다를까 싶어서 지켜봤지만 역시나 여타 다른게임과 다를건 없었다. 짤뚱한 캐릭터 여러개 그리고 똑같은크기의 몬스터들이 여럿나와서 싸우기위해준비하고있었다.
더욱더 심드렁해져서 '뭐 보나마나 짤뚱이들이 휘적휘적거리겠지' 라며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친구가 나에게말했다.
" 요기 주인공팀중에 마음에드는 애 골라서 공격해봐"
흠.. 마음에 드는건 딱히 없지만 그래도 해보라고하니 주인공팀중에 창을 들고있는 남자캐릭터가 마음에들어서 그 캐릭터로 적을 공격해보았다.
그순간 화면이 휙 바뀌더니 나는 그만 바지가 축축해져옴을 느꼈다.
짤뚱한 캐릭터들이 칼로 휘적대는것만보다가 저런 박력있는 전투씬을 본 나는 이미 그게임에 매료되고말았고, 본격적으로 아버지와 어머니께 컴퓨터를 사달라고 떼를 한번써보고 바닥에 누워보는 계기가되었다.
90년대 초반엔 인터넷의 보급은 있었으나 하기엔 엄청난 전화요금에 인터넷을 하긴 힘들었고 오롯이 디스켓게임에 의존했던 어린 나에겐 게임의 정보는 한정되어있었고, 저런 박력있는 전투씬은 처음접해보는 그래픽 이였기에 더욱더 빠져들수밖에없었다.
위의 사진을 보고 단번에 알아채신분도있으실거다. 나를 밤새도록 머리쓰게 만든 그게임
용의기사2 황금성의 전설
이다!
용의기사2
대만의 한당 이라는 게임회사에서만든 SRPG 게임이다.
한글번역이되어서 국내출시를 했지만 번역을 너무 엉망으로 한탓에 욕을 많이먹기도했었다.
하지만 당시어린 나에게 그냥 글자를 알아만보면됬기에 전혀문제가되지않았고 전투가중요했지 스토리는 그리중요하지않았기에 게임을 즐기는데에는 번역이잘됬건 잘 못됬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향후 성인이되어서 추억도 되살려볼겸 용의기사2를 스토리를 진득하게 읽으면서 시작해보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스토리를 가지고있었다.
스토리의 시작을 대략적으로 설명하면 용의기사2역시 전형적인 왕도물장르이긴하나 이야기가진행되면서 그 스케일이 커진다.
게임의 주인공인 '사울' 은 왕위계승을 하라는
아버지의 말에 친구 '아레스'와함께 고민하며 숲속으로가서 무술연습을 하러가게된다. 아레스와함께 도착한 숲속엔 기절한 여자한명과 기계로봇이 있는데 그여자이 이름은'유니'
유니는 기억을 잃었다고하고 로봇인 '카일'은맹목적으로 유니를 보호한다. 이에 사울은 유니의기억과함께 고향을 찾아주기위해 친구 아레스와함께 모험을 떠나게된다.
모험을 하며 많은 동료들을만나게되는데 동료들이 은근히 입체적인 자기만의 스토리를 가지곤있으나 아쉽게도 옛날게임특성상 그 스토리들이 풀리진않는다. 매우아쉬울따름이다.
허나 용의기사2가 나를 밤세우게한건 스토리가아닌 전투였으니 수많은 동료들 그리고 각각 매력있는 전투애니메이션은 전투를 즐겁게해주었다. 많은 동료들이있다는건 더많은 적군들이있다는것이다. 그 많은 적군들을 이기기위해선 직업별 그리고 포지셔닝이 매우중요하다. 용의기사2는 밸런스가 좋은게임이아니고 친철한게임도 아니다. 아무것도모르고 그냥 덤볐다간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어려워져서 머리가 지끈거려지는 사태가 발생하게된다. 물론 그렇다고 못깰건없긴하지만 혹시나 처음으로 접해보는 유저가있다면 반드시 공략을 보면서 진행하는걸 추천한다.
용의기사2는 매니아층이 두터워서 용의기사 카페가 운영중에있으며 각종 유저 패치파일과 공략들이 즐비하다. 아무래도 캐릭터들이 많다보니 주류캐릭들만 살아남고 크지 못하고 도태되는 캐릭터들이 있는데 도태된 캐릭터들을 주류로 키워보고 승리해나가는 재미또한 쏠쏠하다.
90년대 어린남자에게 멋진도복과 장풍은 뭐.. 거의 여왕벌의 페로몬마냥 어린남자아이를 게임속으로 이끌어버린다. 머릿속에 계속 게임속 전투애니메이션이 생각나서 참기가 힘들다.
지금봐도 멋있다.
용의기사의 장점이라면 장점이고 단점이라면 단점인것이 각각의 캐릭터들마다 얻는조건들이 있는데 그 조건들이 충족되어야지 동료로 영입되는 시스템이라서 멋모르고 하다간 좋은캐릭터들을 다 놓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하고 또한 용의기사2에는 전직이라는 시스템이있는데 이게 또 사람 미치게만든다.
주인공인 '사울'을 예로 들어보면
기본적인 전투 애니메이션은 이렇게 칼로 휙! 하고 긋는 모션이다.
그렇게 레벨업을 하다가 특정레벨에 진입했을때 '전직'이라는 시스템이 생기는데 아무 준비없이 그냥 전직하면 '검성' 으로 전직하게된다.
이렇게 검성으로 전직하게된다. 전직후의 사울은 그 전투애니메이션부터 확 달라지며 멋드러지게 공격한다.
이런 전직 시스템으로 루즈해지는 게임을 전투애니메이션의 화끈한 변화로 다시한번 어린남자이에게 페로몬을 뿌려주니 정신못차리게된다.
하지만 이것뿐만이 아니였으니 이건 일반적으로 전직했을때의 모션이고 용의기사2에는 맵마다 숨겨진 비밀상자또는 아이템을 얻을수있는 트리거들이 곳곳에 숨겨져있는데 이것을 충족하게되면 색다른 전직아이템을 준다. 만약 이 색다른 전직아이템을 얻어서 전직하러들어가게되면 일반적인 '검성'으로서의 전직이아닌 '영웅' 이라는 적직이름으로 바뀌게된다.
영웅으로 전직해서 다시 전투를 하게되면
이렇게또한번 아예색다른 전투애니메이션으로 남자 꼬꼬마들의 코피를 쏟게 만든다.
이것은 주인공에게만 한정되지않고 게임내 동료로 얻을수있는 캐릭터들 대부분에게 적용이된다. 그래서 캐릭당 2개의 전직 갈림길이 존재하는것이다. 그렇다고 특정조건으로 전직하는캐릭터가 무조건 좋은가? 그건또 아니다. 각각의 장단점이 명확하기에 키우는 재미마저 쏠쏠한것이다.
용의기사2를 해본사람은 이렇게 생각할것이다.
"아닌데? 유니는 안그런데? 소환사 말고는 성능 완전구린데?"
유니는 논외로치자.
적다보니 초등학생들에게 상당히 해로운 게임인거같다. 청소년정도는 괜찮을수도.
요즘 게임시장의 그래픽은 이미 한계점에 도달했고 배보다 배꼽이 더커버리는 사태에 도달했다.
게임본연의 재미는 사라지고 그래픽만 높히다보니 돈은 어마어마하게 들어갔는데 게임자체는 재미없어지는 사태가 발생한것이다. 그러다보니 다시금 도트그래픽 게임시장이 도래하고있다. 나역시 도트그래픽을 싫어하지않는다.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은 레트로를 찾게되고 게이머역시 옛날 고전게임들을 이따금 찾게된다.
게임들의 무한경쟁 시스템에 지쳤다면 조용히 맥주한캔 또는 학생들은 음료수하나 책상위에 올려두고 전략도짜고 멋진 전투애니메이션도 보면서 용의기사2를 즐겨보는건 어떨까 싶다.
그리고 이런 게임의 가장큰 장점이 뭔지아는가?
바로 와이프가 부르거나 다른 큰일이 생겼을때 ESC누르고 튀어나갈수있다는것이 가장 큰 맹점이다.
비가 촉촉하게 내리는날 컴퓨터방 커튼을 살짝걷히고 그틈새로 비로인해 한껏 가라앉은 회색빛깔 햇빛을 느끼면서 레트로한 도트그래픽과 8비트의 배경음을 들으며 맥주한잔 털어넣고 용의기사2를 한다면 우린 잠깐이나마 과거로 돌아가 그 향수를 느껴볼수있지 않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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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게임 은근히 BGM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