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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OH Oct 21. 2024

제2세션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두 주간 잘들 보내셨나요? 얼굴들 뵈니 괜찮으신 것 같은데요? 저도 이런 소규모 세션을 장기간 가져가는 프로그램은 처음이라 많이 긴장하고 떨렸던 것 같습니다. 지난 세션은 제게 앞으로 여러분과 함께 할 시간을 소중하고 귀한 경험으로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불어넣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께서 진정 원하는 미래를 정하는 것으로 시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구부터 시작해 볼까요?     

 

에? 보니까 다들 저번하고 똑같은 자리에 앉으셨네요? 우리가 그래요, 그죠? 한 번 맡게 된 자리로 왠지 자기 자리가 고정되는 느낌, 그런 것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예전에 독서실에서 공부할 때도 그랬어요. 고정석이 아님에도 늘 같은 자리 앉고, 어느 날 제 자리에 누가 앉으면 좀 많이 불쾌하고 비껴달라고 하고 싶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제가 좀 옆길로 새 버렸군요! 이번에는 시계방향으로 돌아서 이연자 씨부터 시작해 볼까요?    

 

 김경열 박사의 말에 이연자는 가방에서 곱게 싼 A4 종이를 조심스레 펼치기 시작하였다. 한눈에 보아도 여러 번 공을 들여 쓴 것 같았다. 이연자는 종이를 보면서 말하기 시작하였다.     


“박사님,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처음 말씀드렸던 우리 아이들 대학 잘 가는 것, 그것밖에 없어요. 정말 온몸으로 진심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큰 애 서울대 의대, 작은 애도 서울대, 과는 상관없어요, 그냥 살짝 마음을 내려놓고, 호호호, 무조건 가면 좋겠어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전력을 다해서 저의 미래를 적어 보았어요!”     


 이연자가 펼쳐 보인 종이에는 빼곡하게 글이 쓰여 있었다. 요약하면, 큰 애의 서울대 합격 통보를 받고 온 가족이 기뻐한다, 그래서 고급 음식점에 가서 밥을 먹고, 주위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돌린다. 대망의 서울대 입학식 날 자신은 머리를 드라이하고 옷은 자기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는 소리를 듣는 자주색 원피스를 입는다. 신발은 새로 산 굽 5센티미터 정도의 검은색 구두이고, 여기에 숄을 두른다. 남편 및 작은 아이와 함께 자신들 네 가족은 기쁜 마음으로 서울대 정문에 선다. 양재 화훼 시장까지 가서 산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아들이 서 있다. 자신은 정말이지 날아갈 것 같다.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러나 이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다….   

   

 이연자가 이어서 저희 둘째는요 하면서 뒷장을 펼쳐 보이며 이야기를 계속하려고 했다. 김경열 박사는 잠시만요 하듯이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이야기가 하염없이 계속될 것 같았고, 나머지 세 사람도 살짝 지겨워하는 눈치를 챈 것일까.     


아, 좋습니다. 이연자 씨, 정말 세세하게 미래를 기억하셨군요? 아주 잘하고 있습니다. 다른 분들의 미래도 들어보아야 하니 일단 연자 씨의 미래는 여기까지 볼까요? 다음 분 말씀해 주시죠.     


 이연자는 한껏 펼쳐진 자신의 미래에서 쫓겨난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니, 우리 둘째도 지금 막 서울대 가야 하는데? 박사님, 저는 아직 둘째의 미래는 보여드리지 않았잖아요 하는 서운함과 불쾌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이연자는 김 박사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어떠한 응답이 없는 것을 보고는 입술을 샐쭉하며 다음으로 발표하는 서수지를 바라보았다.     


“아, 박사님! 저도 엄청 준비 많이 해 왔어요! 함 보실래요? 저번에 말한 에르메스 버킨백을 제가 어깨에 메고, 아, 오른쪽으로 맸어요, 여의도 더 현대 꼭대기 층에서 친구랑 차를 마시고 있어요. 친구는 부러움 반, 시샘 반으로 저를 쳐다보구요, 저는 이 백에 잘 어울리는 새하얀 원피스를 입었어요. 이것도 에르메스 것이어요. 저는 이 에르메스 버킨백에 어울리는 여자가 되어 있어요. 속으로는 가슴이 터질 것 같지만, 저는 친구가 부러워서 가방 가죽을 손으로 훑어보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고 있어요. 뭐 대수롭지 않다, 그렇게 당연하다는 듯 말이지요! 아 생각만 해도 날아갈 것 같아요!”     


 서수지는 실제로 핸드백을 들고 있는 것처럼 눈을 감고 배시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얗다 못해 창백해 보이는 얼굴에 긴 생머리, 서수지는 젊음에서 오는 힘과 타고난 미모를 그냥 자연스럽게 분출하고 있었다. 마냥 이 사람을 보호해 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 절로 들게 만드는 미소였다.    

  

“예, 알겠습니다! 저는 사실 서수지 씨의 가방에 대한 열정을 잘은 이해를 못 합니다만, 제가 의대를 가고 싶어 했을 그때의 마음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미래를 이렇게 구체적으로 기억하니 앞으로의 여정에 서광이 비치는 것 같군요!”     


 들뜬 모습의 서수지와 이연자, 그리고 김 박사를 바라보며 김용광이 자신의 종이를 펼치기 시작하였다.      


“저는 지금 결혼 예정인 여자친구와 이 갤러리아 포레에 사는 미래를 생각했습니다. 이왕이면 박사님 이웃으로 하겠습니다. 제가 지금 보고 있는 집의 광경이 저의 미래의 신혼집이 되겠군요. 제 아내와 서울숲을 내려다보면서 석양을 맞이하는 그런 모습을 저는 그려보았습니다. 그런데, 박사님…”     


 머뭇거리는 김용광에게 김 박사가 편하게 질문을 하라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 제가 모은 돈이 그래도 한 일억은 되고, 양가에서 좀 보태준다고 쳐도요, 이 집을 사려면 대출을 한 …. 아 생각도 하기 싫습니다. 대출이 그 정도로 나올지도 모르겠고요, 나온다고 해도 월급을 다 때려 부어도 이자만 갚기도 한참 모자랄 텐데 진짜 제가 여기서 살 수 있을까요?”    


 김박사는 김용광을 쳐다보면서 말하였다.     


용광 씨, 용광 씨는 지금 ‘부정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정의 늪, 제가 쓰는 표현입니다만, 이 늪에 빠져 있어요. 마지막 정현 씨까지 듣고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만 여기서 먼저 이야기하고 가도 될 것 같아요. 


 보세요. 여러분. ‘나는 이것을 갖고 싶다’라고 할 때 말이지요, 여러분은 자신에게 긍정의 확신을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무의식에 부정적 인식을 아로새기는 것입니다. ‘갖고 싶다’는 것은 결국 여러분이 현재 ‘갖고 있지 않다’는 것과 같은 말이거든요? 그래서 결국은 여러분이 갖고 싶다고 하면 끊임없이 여러분은 현재 결여된 상태임을 인식시키는 거예요. 


 이건 실제 해외에서 발간된 여러 자기 계발서에도 나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갖고 싶다. 음, 나는 포르셰를 갖고 싶다, 이 문장을 영어로 어떻게 하지요? I want a Porsche. 이겁니다. 그런데 이 영어의 want라는 말은요, 뭔가를 부족하다는 것을 뜻하는 거예요. 그래서 for want of 하면 무슨 뜻입니까? 무엇 무엇이 없다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아무리 여러분이 I want a Porsche라고 반복해서 자기에게 말을 해도, 여러분은 나는 실제로는 포르셰가 없다는 현실을 계속 인식시키고 있는 것이지요.     


 김용광을 포함한 네 명은 모두 갑자기 찬 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자각이 들었다. 어, 그래서 내가 원하는 대로 잘 안되었구나! 나는 매일매일 간절히 바랐는데 실은 거꾸로 나를 부정의 늪에 빠뜨리고 있었던 것이구나! 아, 뭔가 서광이 비치는 것 같다. 그럼, 이제는 원한다, 하고 싶다고 하지 말아야지. 그럼, 뭐라고 하면 되는 것이지?     


김박사는 모두의 내면의 외침을 들은 듯 크게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제가 지금 보니, 이제 여러분은 부정의 늪에서 나올 준비가 모두 되셨습니다. 자, 이 늪에서 빠져나가 여러분이 기억하는 미래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 기억하는 미래는 뭐예요. 실제로 일어난 일을 기억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앞으로 여러분은 “나는 이미 포르셰가 있다!” 이런 말을 해야 하는 것이랍니다. 아시겠죠? 자, 이제 마지막으로 정현 씨의 미래를 기억해 봅시다!     


 의기충천해서 정현은 자기도 모르게 에이포 종이를 활짝 펼쳤다. 뭐든지 다 이룰 것 같은 고양감, 긍정의 에너지로 충만한 느낌, 굳은 의지가 자신의 내면에 자리 잡았다.     


“예, 박사님, 저도 사실 뭐 하고 싶다 이렇게 썼는데요, 여기서 읽으면서 다르게 표현하겠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미래는 먼저 지금 제가 대리인데 과장으로 진급하고 싶, 아니 저는 이미 과장입니다. 그리고 제 옆에는 과장이 된 저를 축하해 주는 해외팀 한 과장님이 있어요. 우리는 결혼을 할 사이랍니다!”     


 김경열 박사는 힘껏 박수를 쳤다. 다들 처음에는 휘둥그레 눈을 떴지만, 계속되는 김 박사의 박수에 맞추어 하나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모두 삼분 간 열렬하게 박수쳤다. 박수를 치니 더 힘이 났다. 내가 기억하는 미래를 향해 가자!      


 김박사는 모두의 고양감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여러분, 여러분이 왜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이 자리에 오셨는지 알겠습니다. 여러분은 선택된 자들입니다. 여러분의 엄청난 긍정의 에너지가 저에게도 느껴집니다. 자, 이제부터 여러분이 미래에 한 발짝 더 다가가기 위해 다음 이주 간 하실 미션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김박사는 커다란 오동나무 책상으로 가더니 고급스러운 양장지를 꺼내 왔다. 에메랄드 빛깔이었다.     


여러분, 앞으로 여기에 매일 세 번씩 고정된 시간에 숨을 고르고 명상을 한 다음 여러분의 미래를 써나가십시오. 정말 그 미래가 여러분에게 찾아온 것과 같은, 지금 여러분이 느끼시는 그 충만함과 고양감을 다시 불러일으켜서 딱 그 상태에서 쓰셔야 합니다. 매일 세 번, 아시겠지요? 실제 자신이 그 상황에 있는 듯한 그런 마음이어야 합니다. 어떠한 의심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자리 잡아서는 안 됩니다. 그저 믿고, 믿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미래는 한 걸음 더 여러분에게 다가올 것입니다. 아니, 이미 다가왔고 여러분의 기억은 더욱 구체화되는 것입니다!     


 다들 종이를 받아 들고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네 사람은 갈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나만이 드디어 진리를 깨달았다는 느낌, 이 귀한 비밀을 알게 된 선택받은 자라는 느낌에 모두 얼굴이 벌게졌다. 역시 이 자리에 온 것은 정말 잘한 일이야!     


“어떻게, 오늘도 다 바쁘신가 봐요? 호호. 저는 집에 가면 또 해야 할 일투성이라…. 이 시간이 정말 저에게 귀한 시간이거든요. 괜찮으시다면 제가 커피 살게요. 어떠세요들?”     


 이연자의 말에 다들 조금씩은 당황했지만, 커피 한 잔쯤이야 뭐 어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선택받은 공동운명체이니까, 좀 더 친해져도 되지 않을까, 나중에 서로 도움도 되고 좋고…. 서수지의 애교 어린 “네, 그럼 저는 프라푸치노요!”라는 말에 모두 웃으며 커피숍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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