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의 번외 편, 길 위에서 배운 한 가지
"시절인연"이라는 말을 요즘 자주 듣는다. 불교용어 중 하나로 모든 인연에는 그 나름의 때와 시기가 있다는 뜻이다. 유년시절, 학창 시절, 직장 생활을 되돌아보면, 하나의 인연이 끝까지 이어지기 위해선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어떤 이들은 이런 인간관계에서 많이 지치고 힘들어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인연이란, 시기가 맞지 않으면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는 유지하기 어려운 법이다. 성격이 맞는 친구를 찾기도 어려운데, 사는 지역과 환경, 관심사가 맞는 사람과 오래 인연을 유지하는 건 더더욱 힘든 일이다.
그래서일까.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날 인연은 자연스럽게 만나고, 아무리 애써도 만나지 못할 인연은 결국 멀어지기 마련이라는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참 와닿는다. 아무리 애착이 가는 물건조차도 영원하지 않은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그 시기가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이유들로 점점 인간관계에 대해 기대를 하지 않게 된 것 같다. 한 때의 인연. 같은 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인연과 같은 회사를 다녔던 시절의 인연이 많이 지나갔다. 그래서 난, 이 모든 것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생각하며 더 이상 '인연'에 욕심을 두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순례길의 마지막,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그곳에서 새롭게 모여든 낯선 사람들이 적응되지 않았다. 이전에는 작은 마을에서 종종 마주친 친구들이 많았지만, 이곳에서는 이미 앞서 출발하여 마주친 적 없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700km 지점에서 시작하여 걸어온 이들, 혹은 다른 루트에서 출발한 이들이 함께 뒤섞였다.
그러다 보니, 나와 함께 걸었던 친구들이 그리워졌다. 다행히도 그들과 SNS 아이디를 교환해 두었기에, 친구들의 소식을 알 수 있었다.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며 그들이 어디쯤 걸어왔는지, 산티아고에 도착했는지를 알리며 소식을 주고받았다.
친구들보다 조금 먼저 도착한 나는 산티아고에 며칠 머물며 뒤늦게 도착하는 이들을 마중 나갔다. 그토록 바라왔던 종착지에서 친구들의 얼굴을 보는 것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발에 물집이 생겨 고생하거나, 부상을 당해 일정 중간에 버스를 타기도 했던 친구들. 그들의 고생을 알기에, 이곳에서 보는 얼굴은 더욱 반가웠다.
그래서 산티아고에 머물며 있었던 즐거움 중 하나는 '친구들이 도착하는 순간을 맞이하는 일'이었다. 더불어 그곳에서 순례자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광장에 털썩 앉아 순례자들이 대성당 앞에 도착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휠체어를 타고 온 이도 있었고, 90세가 넘은 나이에 완주한 사람도 있었다.
그들과 대화를 해보지 않더라도, 발걸음 속에 있는 많은 의미를 느꼈던 것 같다. 공터에 가만히 앉아 순례자들을 지켜보는 것은 내게 아주 좋은 기억으로 남아, 후에 다른 친구들에게 추천을 하기도 했었다. 아직 가시지 않은 여운과 '마지막'이라는 감정을 털어놓기에 정말 좋은 장소였다.
함께 걸었던 친구들 중 몇 명은 도착하자마자 비행기 일정 때문에 서둘러 떠나야 했다. 순례길에서 나와 아주 친했던, 캘리포니아에 사는 한국인 어머님들이 계셨다. 부모님과 비슷한 연세셨지만, 발걸음의 속도도 그리고 취미가 등산인 것도 나와 잘 맞았다. 손빨래가 서투른 나를 위해 도움도 주셨고, 숙소 예약과 같이 젊은 사람들의 손길이 필요한 부분은 내가 또 도와드렸다.
쉽지 않은 길을 이들과 함께 하였으니 정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곧바로 떠나는 선생님들을 보니 너무 아쉬웠다. 선생님들과의 헤어짐이 유독 슬펐던 건, 아마도 다시는 만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살고 계신 것도 아니고, 너무 먼 곳에 계신 분들이니 실제로 다시 만날 기회는 거의 없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가까워진 이들과 이별한다는 것에 눈물이 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인연'에 더 이상 욕심내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헤어짐은 여전히 마음을 아프게 한다. 30일 동안 순례길에서 여러 친구들과 함께 지내며 정말 가족처럼 지냈다. 서로를 카미노 패밀리라고 부르며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고, 장을 보러 다녔다. 그래서 이 이별이 마치 가족과 헤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일상에서는 사람들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크게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 가령, 등산에서 말동무가 되는 분들도 헤어짐에 크게 아쉬움이 남지 않았다. 언젠가, 인연이 되면 다시 만나겠지. 하지만 이곳에서 만난 친구들은 각기 다른 나라에 사니, 현실로 돌아가면 아마 연락도 닿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순례길이 끝나고 포르토나 바르셀로나에서 순례길 친구들을 많이 만나기도 하였다. 허름한 복장에서 벗어나 조금 멀끔한 모습으로 도시에서 만나니 이건 이대로 좋았다. 그래도 순례길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며, 순례길의 기억을 떠올리며 함께 웃었다. 친구들과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순례길의 추억은 아주 소중했다.
‘시절인연’. 인생에 여러 짧은 인연이 있었지만 순례길은 인생의 시절인연을 함축적으로 보여준 여정이었다. 한국에서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은 친구는 오히려 다시 보지 못했고, 반대로 연락이 끊길 것 같던 친구와는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아직 나는 '헤어짐'에 무디지 않은 사람이다. 만남과 헤어짐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 했지만, 여전히 난 헤어짐에 여린 사람임을 다시 느낀다. 어쩌면 우리는 헤어짐에 결코 무뎌질 수 없는 존재가 아닐까? 혹여 헤어짐에 무뎌진다면, 조금 슬픈 일일지도.
나를 스쳐가는 인연은 붙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헤어지는 것은 언제나 힘든 일임을 다시 느끼게 된다. 길 위에서 얻게 된 배움 중 하나. 우리는 영원히 헤어짐에 강해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 여린 내 모습을 지우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