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소산, 오토바이, 그녀 1-7
* 지난 이야기
: 영혼을 첨부파일 보내듯 인터넷으로 전송하고, 다른 사람의 몸이나 기계에 넣을 수도 있게 된 2040년, 주인공 J는 영혼으로만 여행을 떠나기로 하고, 자기 몸을 맡겨둘 병원을 방문합니다.
디파크 사티(Dipak Sati) 박사와의 대담 1.
- '신체 외부에 영혼이 있다'는 박사님의 주장이 사실로 밝혀진 뒤, 결국 과학자들이 신체에서 영혼을 분리하는 법까지 개발했는데요. 여기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 언젠가는 분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는 했었습니다. 다만, 화학물질을 이용해 분리하는 방법이 아니어서 개인적으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전기 자극으로 분리하다니, 역시 사람들의 지혜는 대단하네요.
- 그럼 박사님은 분리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고 계셨습니까?
- 달라이라마나 밀교의 고승처럼 완전히 분리하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약물의 도움을 받으면 양 쪽의 결합을 느슨하게 만드는 정도는 가능합니다. 유명한 예술가들 중에도 그런 경험을 소재로 작품을 만든 분들이 여럿 있으셨죠. 샤를 보들레르, 살바토르 달리, 찰리 파커, 존 콜트레인, 윌리엄 블레이크 등이 유명하죠.
- 아, 마약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 네, 둘 사이의 전기적 결합을 약하게 만드는 약들은 대부분 마약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원리는 이렇습니다. 약물이 뇌 안의 세로토닌과 도파민 수용체 상태를 급격히 바꾸면, 뇌에서 발생하는 전기적 주파수나 강도도 순간적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그때, 단단히 붙어 있던 몸과 영혼 사이에 작은 틈이 생길 수가 있지요. 그러니까 폐차장에서 차를 들어 올릴 때 쓰는 전기자석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합선이 생기거나 차단기가 내려가 자기력이 약해지면 차가 떨어져 나가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 틈새가 벌어지는 감각이 마치 공중에 흩날리는 것처럼 느껴진다'고들' 하더라고요. 가끔은 그 틈 사이로 외부에 있던 다른 전자기장이 끼어 들어와 영향을 주는 일도 생깁니다. 마약을 하면 환각을 겪는 이유입니다. 에, 그리고 비틀스도 1960년대에 유행하던 LSD를 복용한 뒤에 곡을 하나 써낸 걸로 알고 있습니다.
- 비틀스요? 저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인데요. 비틀스라면 렛잇비 라던지 에스터데이와 같은 감미로운 발라드 곡으로 유명한 가수 아니던가요?
- 아마 그 곡을 들으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최초의 사이키델릭 록 작품을 비틀스가 만들었거든요. 70 년도 전에 발표한 곡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으실 겁니다.
- 제목이 뭔가요?
- 비틀스가 영혼이 흩날리는 경험을 하고 난 다음에 만든 곡의 제목은, Tomorrow Never Knows입니다.
Turn off your mind
몸에 힘을 빼고
relax and float downstream
마음을 진정시켜 봐요
It is not dying,
그것은 죽음이 아니에요,
It is not dying,
죽음이 아니에요.
Lay down all thoughts,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surrender to the void
공허함에 몸을 맡겨 봐요.
It is shining.
그것은 빛나고 있어요,
It is shining.
빛나고 있어요.
That you may see the meaning of within
그렇게 하면 그 속에 있는 의미를 보게 될지도 몰라요.
It is being.
그것은 존재하고 있어요,
It is being.
존재하고 있어요.
That love is all
사랑은 모든 것이고,
and love is everyone
사랑이 모든 사람일 때
It is knowing.
그것은 아는 것이예요,
It is knowing.
아는 것이에요.
That ignorance
무지와 증오가
and hate may mourn the dead
죽은 자를 애도하면
It is believing.
그것은 믿음이에요,
It is believing.
믿음이에요.
But listen to the colour of your dream
당신 꿈의 색깔에 귀를 기울여 봐요.
It is not living.
그것은 살아있지 않아요,
It is not living.
살아있지 않아요.
Or play the game of existence to the end
또는 '존재'라는 게임을 끝까지 추구해 봐요.
Of the beginning. Of the beginning.
그것은 시작의 끝. 시작의 끝.
Of the beginning...
시작의 끝...
* 곡해석은 나무위키의 자료입니다. (https://namu.wiki/w/Tomorrow%20Never%20Knows(%EB%85%B8%EB%9E%98)
* Love를 영혼(Ghost)으로 바꾸어서 읽어보시면 더 재밌습니다.
병실 안에는 모서리마다 하나씩 총 네 개의 캡슐형 캐빈이 놓여 있었다.
캐빈은 유선형의 조약돌 모양으로 언뜻 보기에 꼭 1인용 우주선처럼 생겼다. 금속성 재질의 하부 부분에는 굵은 주름관이 연결되어 있고 상부덮개는 투명한 재질로 되어 있어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캐빈은 외부와 철저히 격리되어 밀폐된 상태로, 공기와 영양분은 모두 굵은 주름관을 통해 들어온다. 영혼이 비워진 신체는 다른 영혼과 자석처럼 쉽게 결합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캐빈 내부로 들어오는 물질들은 모두 이온막 필터로 걸러지고 전자기장 차폐 처리를 받아야 한다.
투명한 상부덮개 위엔 탑승객의 현재 상태를 알려주는 여러 가지 숫자들이 표시되어 있었는데, 혈압이나 체온 등 일반적인 항목 외에 캐빈 내부의 전압도 함께 표시되고 있었다. 혹시라도 캐빈 내부로 영혼이 침범할 경우 알람이 울리도록 한 것이다. 영혼이 빈 신체에 들어가는 불상사가 일어나도, 캐빈은 내부에서 열 수 없게 되어 있어 '신체 분실' 등 더 심각한 사태는 방지 가능하다.
신체를 영혼과 분리시키는 것은 기술적으로 매우 어려운 도전이었으나, 다시 결합시키는 것은 매우 쉬웠다. 오히려 원치 않은 영혼과의 결합을 방지하는 데에 더 신경을 쓰고 주의해야 할 작업이었다. 초기에만 해도 이제 막 분리시킨 신체로, 공중에 떠다니던 '아직 흩어지지 않은' 사망한 자의 영혼이 들어와 난리법석을 일으킨 적이 많았다. 비어 있는 신체는 영혼을 불러들이는 블랙홀과도 같아서 생긴 일이었다. 마치 핀볼게임에서 공이 굴러 떨어져 구멍으로 들어가야 할 팔자이듯 영혼은 (설사 원치 않더라도) 몸과 쉽게 결합했다. 빈 신체는 어떻게든 주인을 채우려 드는 성질이 있었다. 영혼 없이 홀로 남지 않으려 했다.
J가 묵을 병실에는 이미 두 명의 환자가 입원해 있었다. 투명한 캐빈 안에서 꼭 깊은 잠이 든 것처럼, 미동도 없이 누운 사람들을 보며 J는 그들의 영혼이 지금 어디에 있을지 궁금했다.
“안녕하세요. J 씨 되시죠. 반갑습니다.”
방의 정중앙에 놓인 스테이션에서 일하던 간호사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일어나 J에게 인사를 했다. 흰색 유니폼 위에 남색 카디건을 걸친 제법 살집이 있는 중년 여성이다.
“48시간 동안 오프라인으로 입원해 계시기로 하셨고, 그사이에 건강검진을 받기로 하셨네요.”
“네 맞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간호사는 네모난 박스를 하나 꺼내며
“혹시 가져오신 소지품이 있다면 여기 사물함에 넣어두시면 됩니다. 캐빈 안에 들어가시고 나면 예약하신 48시간 동안은 원칙적으로 신체엔 접속이 어려우신 것, 알고 계시지요?”
“아 그렇습니까?”
“네, 다른 분들처럼 대기 상태로 여기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검사를 계속 받으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수면 마취 중에 갑자기 깨우기 어려운 걸 생각하시면 이해가 쉬우실 것 같아요.”
“아, 그러면 혹시라도 제가 급한 일을 처리해야 할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휴머노이드를 이용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럴 경우를 대비해서 저희 쪽에 여분의 휴머노이드가 항상 준비되어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간호사는 J가 짐을 넣은 사물함 박스를 되돌려 받으며 오프라인용 환자를 위한 별관 건물은 외부 영혼이 접근할 수 없게 구역 자체를 차폐시켜 놓았다고 자랑했다. '페러데이 케이지 구조예요. 그러니까 커다란 전자레인지와도 같아요'라며 설명하는 간호사의 표정이 의기양양했다.
“그리고 저희 쪽에서 연락을 드려야 할 일이 있을 수도 있는데··· 아! 사람을 빌리셔서 여행하시기로 하셨네요.”
“네 그렇습니다. 사람 몸을 빌려 다녀오는 건 처음이라 긴장됩니다.”
“아닙니다. 곧 알게 되시겠지만, 확실히 휴머노이드보다는 사람에 트랜스퍼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운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휴머노이드면 저희가 네트워크로 바로 연락을 드릴 수가 있는데···”
“네, 사람은 그런 것이 없지요?”
“보통은 저희 쪽에서 연락드릴 일은 거의 없어요. 다만 정밀 검사를 추가로 받으셔야 할 일이 생기면 진행하실지 여부를 여쭤볼 수는 있지만··· 어디로 가시지요?”
“아, 일본으로 갈 예정입니다.”
“그러면 일본에 도착하시고 저희 쪽에 연락처를 알려주시면 될 것 같아요."
“네, 2박 3일 여행이라 굳이 핸드폰을 빌리지 않았는데, 가능하면 일본에서 구해 봐야겠네요.”
“그러시면 더 좋지요.”
“제가 없는 동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 잘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J는 간호사가 건네준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간호사와 함께 복도 건너편에 있는 영혼 분리 시술소로 이동했다.
“아참,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메타버스에서 일주일 이상 머무르시면 안 됩니다.”
간호사의 말을 듣고 J가 의아한 표정으로 간호사를 쳐다보았다.
“가끔 메타버스에서 안 나오고 거기에 계시는 분들이 있으셔서요. 한 달 이후에는 영혼이 삭제될 수도 있으니 주의하셔야 합니다.”
그제야, J는 스미스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곤 무슨 말인지 알겠다고 간호사에게 말했다.
분리 시술소엔 40대 남자직원이 한 명 있었다. 밤늦은 시간까지 시술이 이어져서 그런지 그는 다소 지쳐 보였다. J가 이틀 동안 머무를 캐빈이 뚜껑이 열린 채 방의 정중앙에 놓여 있다. 남자직원이 J에게 캐빈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했고 J는 침을 꿀꺽 삼키고 그 안에 몸을 뉘었다. 푹신하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안락한 느낌은 들어 썩 나쁘지 않았다. 남자 직원은 J가 캐빈 안으로 들어간 시간을 클립보드에 달린 종이에다 적고 간호사의 사인을 받았다.
J는 처음 해보는 것도 아니건만 슬슬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받을 때마다 느끼지만 꼭 억지로 유체이탈 당하는 것 같단 말이지.'
남자직원이 버튼을 눌러 조작하자 두꺼운 캐빈 뚜껑이 내려와 피식 소리를 내며 닫혔다. 캐빈이 완전히 밀폐되자 내부에 있던 공기가 밖으로 배출되고, 대신 주름관을 통해 '영혼이 묻지 않은' 것으로 바뀌어 주입되기 시작했다. 잠시 뒤, 캐빈 내부가 충분히 '영혼 오염으로부터' 안전하다는 문구가 표시된다. 간호사와 분리 시술자가 "시술을 시작하겠습니다. 긴장을 푸세요."라고 말했는데, 캐빈 안에 있는 J에게 그들의 말이 꼭 물 밖에서 말하는 것처럼 먹먹하게 들렸다.
Turn off your mind relax and float downstream. It is not dying
슈만 주파수, 7.83Hz의 저주파 전류를 '적절한 전압으로' 발생시키는 장치가 딱 하는 소리를 내며 작동을 시작했다. 이른바, 영혼을 신체에서 분리시키기 위해 필요한 비밀의 주파수다. 다름 아닌 지구의 심장박동으로 알려진 7.83Hz의 전자기파가 사람의 영혼을 벗겨내는 열쇠라는 사실은 미신적인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였다. 곧 미세하고 적절한 전압의 전류가 J의 정수리 부근에 닿으면서 몸과 영혼을 이어주는 '단추’를 자극해 열어준다. 힌두교에서 ‘사하스라라 차크라(Sahasrara Chakra)’라고 불리던 바로 그 부위다.
단추가 열리자 피부 표면에 정전기처럼 붙어 있던 영혼의 전자기 층은 '단추'에서부터 시작해 점점 아래로 내려가며 몸과 벌어져 틈이 생기기 시작한다. '차르륵' 하고 소리라도 나면 어울릴 것 같다. 보이지는 않지만 드라이아이스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듯 구속에서 벗어난 영혼 다발들이 너울대기 시작한다. J의 의식이 분리되기 시작한다. 약간의 어지러움과 두통이 느껴진다. 얼굴 부위가 쩌억 하고 벌려지고 뜯겨 나가는 것 같아 눈을 뜨고 싶지만 가위에 눌린 듯 움직일 수가 없다. 이때 분리된 영혼이 공중에 흩어져 버리지 않도록 광자 압력 장치(Photon Pressure Device)가 작동을 시작한다. 이제 J의 영혼은 레이저 광원에 비쳐 반사되어 마치 일렁이는 연기처럼, 캐빈 밖에 있던 사람들의 눈에도 보이기 시작한다. J의 형태 그대로, 183cm의 키, 53세의 남자의 모습이다. 상상하던 그대로다.
Surrender to the void, It is shining.
그렇게 수 분이 지나 영혼이 피부 표면에서 완전히 벗겨지고 나면 마치 탯줄처럼, 얇은 전류 한가닥만이 배꼽 주변에 남아 신체와 영혼을 잇는 마지막 통신선 역할을 하게 된다. 그곳은 동양에서 단전이라고 부르던 그 부위다. 예전 영화에서 보듯 공중에서 자기 몸을 들여다보는 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 신체와 영혼이 완전히 떨어진 상태라는 또렷한 인지를 ‘몸과 영혼 두 군데 모두에서’ 하는 순간이다.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으나 전자기적 방식으로 캐빈 내부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정보가 영혼에게 전달된다.
It is being
자신도 모르게 ‘와 공중에 떴다.’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는 순간, 즉시 J의 영혼은 안전을 위해 곧바로 관리 서버로 이송되고 기계적 코드로 변환되어 메타버스 내의 한 '존재'로 바뀐다. 순식간이다. 신체에서 분리되어 인공의 전원에 연결된 영혼이 수 밀리 초 전의 값의 '그것'과 같다는 확신은 역설적으로 메타버스 내에서 쉴 새 없이 증식하고 변화하는 영혼의 데이터 값으로써 증명된다. J는 지금 방금 한 번 더 영혼이 분리되는 '기이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 변동은 격렬하다.
That love (ghost) is all and love (ghost) is everyone, It is knowing
J의 영혼이 변조되지 않았고 오염되지 않았음이 검증된 뒤, 그는 비로소 메타버스에서 자각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는다. 뇌의 신경 회로망을 연구하며 사람들이 배우게 된, 그러니까 시냅스를 본떠 만든 새로운 정보 저장 구조 방식은 어마어마한 용량의 디지털 데이터를 마치 노래 한곡을 내려받아 재생하는 수준으로 쉽게 처리하고 저장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병렬 연산 방식으로 작동하는 양자 컴퓨터는 실시간으로 변하는 영혼을 추적하고 순간순간 저장하며, 영혼에서 신체에 내리려던 지시를 대신 받아 즉각 메타버스에 반영시킨다. 이러한 결과로 영혼은 메타버스 안에서 '살아있다'라는 '조작된' 판단을 내리는 데 기꺼이 동조하게 된다.
(가상의) 눈을 뜬 J는 조금 전 그 병실과 똑같이 생긴 곳에 서 있다(고 착각하는 중이다).
“고생하셨습니다. 분리 시술이 완료되었습니다. 불편하신 점은 없으시지요?” 간호사가 눈을 뜬 J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마 밖에서 게임하듯 모니터로 나의 영혼을 보고 있겠지.'라고 J는 생각했다. J는 괜찮다고 대답하며 실재처럼 보이는(보인다고 피드백되는) 자기 몸을 낯선 느낌으로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육체의 예민한 감각을 지닌 채 메타버스로 접속하면 아무리 정교하게 만든 가상현실이라도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지점이 꼭 한두 군데는 있었다. 예를 들자면, 부자연스럽게 앞뒤로 반복해서 움직이는 고양이라던지, 방금 전에 지나갔던 차가 바로 앞에 다시 등장하는 것과 같이 극히 사소하고 미묘한 수준의 일들이다. 그러나 정말 별것 아닌 오류라 할지라도 뇌가 '이곳이 현실이 아니다'라는 걸 깨닫게 만드는 순간, 육체는 가상현실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피로는 누적되었다. 그래서 J는 메타버스가 결코 현실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비교적 둔감한 영혼으로 느끼는 메타버스는 현실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실재감이 느껴졌다. 자신이 현재 신체가 없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차라리 신체의 제한을 벗어나 무엇이든 가능해진 것 같은 가능성이 느껴져(메타버스의 연산이 53년 된 뇌의 정보 처리 능력보다 나은 영역도 일부 있기 때문에) 가슴이 뛰었다. 무한히 발산할 수 있을 것 같은 두근거림이 J의 영혼으로 피드백되고 있었다. 비록 메타버스의 엄격한 규칙 때문에 영혼을 원래의 형태로만 유지해야 했지만 끝없이 늘리거나 끝없이 부풀릴 수 있겠다는 가능성이 은연중에 느껴졌다. 환각제를 먹고 인식과 감각을 확장하자고, 약이라서 내키지 않는다면 감각 차단 탱크 안에 들어가 자기 안으로 한번 침잠해 보라고 설파했던 존 릴리가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던지 짐작이 갈 것 같다.
‘어쩌면 영혼 상태로 메타버스에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걸.’
그러고 보니 간호사가 왜 메타버스에서 일주일 안으로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는지 알 것 같았다. 영혼으로 직접 접속한 '전기와 숫자로 만들어진 세계'는 어색함보다 기묘한 개방감과 강력한 쾌감이 훨씬 우위로 다가왔다. 이곳에 있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개념과 상상이 떠오를 것 같았다. J는 문득 백만장자에게 자기 몸을 빌려줬다가 영혼만 남은 젊은 운동선수도 이곳 어디엔가 있을 거란 사실을 떠올리곤 오랫동안 이곳에서 지내보면 어떤 느낌이 들 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럼 즐거운 여행 되세요. 가셔서 꼭 연락해 주시고요!" 간호사가 인사했다.
J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지금 J는 '현금을 가지고 다녀야' 하는 곳에 '20년 전에 나온 매연을 풀풀 풍기는 오래된 혼다 오토바이를 몰러'가는 거다. 미래가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해서 영혼만 떠나 온 것은 아니었다. 다시 말하지만, 불쑥 찾아온 갱년기를 위로받기 위한 추억을 찾아 떠나는 이른바 숙명의 여행이라는 콘셉트이다.
"좋아, 이제 일본으로 가볼까."
J가 마음을 먹고 발을 내딛자마자 배경이 일본 출입국 사무소로 순식간에 바뀌고, 자리에 앉아있던 일본인 직원이 일어나 반갑게 맞이했다. 너무 중간 과정 없이 갑자기 일본으로 와버리게 된 것 같아 J는 잠시 당황했다. (아, 그래도 메타버스란 놀랍구나)
“곰방와, J 씨 되시지요. 반갑습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7.83Hz는 슈만 주파수 중 하나로, 지구의 전리층과 지표면 사이에서 발생하는 전자기파가 공명하는 파동의 수치입니다. 사람의 얕은 수면, 꿈, 깊은 명상 상태에서 뇌에서 나오는 세타파는 4-8Hz 내에서 측정되어서 슈만 주파수와 우연의 일치가 있습니다.
* 사하스라라 차크라 : 힌두교에서 정수리를 일컫는 말입니다. 7번째 차크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존 커닝햄 릴리 :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872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