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시나 Sep 19. 2024

인생은 애드리브

카메라 없어도 액션!

-21-



인생은 즉흥적이다.

즉흥적이면 안 되는 순간까지도.


그리하여

오늘도, 망했다.






"저 선생님들.. 대단히 죄송한데 시간이 되신다면 두 번으로 나누어 진행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네?"

"그게.. 학교 설명회 신청 인원이 예상보다 많아져서 거의 백 명 가까이 되는지라, 지금 특별실에서  학생들을 한 번에 다 수용하기가 어렵습니다.."



학교홍보를 위해 공립중학교로 도착했을 때 우리를 기다린 것은 예상치 못한 희소식이었다. 우리 학교에 관심 있는 중3 여학생이 많다고.. 그나저나 백여 명..?! 완전 큰일 났다.


우리는 많아야 50명이라 생각하고 홍보 물품을 챙겨 왔는데, 아까 여중에서도 생각보다 우리 학교 설명회에 학생들이 많이 온 덕분에 차에 비치해 두었던 여분까지 다 써버린 상황이었다. 게다가 이제 곧 10분 뒤면 설명회가 시작인데 어쩐단 말인가. 조급한 마음에 부장님을 쳐다보자 부장님은 여전히 여유가 넘치셨다.


"네~ 그렇게 하지요~"


부장님 대책 있으십니까.. 정녕..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지금 위치에서 우리 학교까지의 거리를 내비게이션으로 검색해 봤다. 차로 편도 12분, 왕복 24분, 교문에서 교무실까지 가서 짐을 챙기는 걸 생각하면  최소한 30분이었다. 어쩌지, 어쩌지, 어쩌지


"손~"


예?! 내가 상기된 얼굴로 부장님을 바라보자 부장님은 웃으며 내게 비타민 음료를 건네주셨다.


"하던 대로~ 하자~"


부장님.. 지금은 평상시가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이런 상황을 비상상황이라고 하는 겁니다.. 내가 애달픈 마음에 계속 울상을 짓자 이번엔 비타민 음료를 직접 따주시기까지 했다.


"손쌤~ 곧 학년부장 올 거야~ 내가 미리~ 다 부탁해 뒀어~"


아.. 우리 부장님은 다 계획이 있으시구나!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때마침 학년 부장님이 저 멀리서 주차하고 수레에 학교 홍보물품을 챙겨서 나타나셨다. 그 모습은 마치 전쟁터에 나타난 잔다르크 같았다. 나는 구세주의 등판에 감동한 척 짐짓 눈물을 글썽였다.


"내가 손쌤 일이라서 특별히 온 거야, 알지?!"


학년부장님의 윙크에 내 걱정도 사르르 녹아내렸다. 그러자 부장님이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시곤 한걸음 물러서셨다.


"오늘은~ 손이랑~ 학년부장이랑~ 둘이서 설명회 해봐~ 첫 회는 나랑~ 손쌤이랑~ 하고~두 번째는~ 둘이서 만~ 해봐~"


예?! 졸지에 물건만 갖다 드리려다 행사 진행까지 맡게 된 학년부장님은 당황한 얼굴로 부장님을 바라봤다. 그러나 우리 부장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여느 때처럼 웃으며 여유 넘치게 말씀하셨다.


"인생은 애드리브야~ 하던 대로 하면 돼~ 그럼~ 순리대로 다 되게 되어있어~"


아니 부장님 그게 아니라고요.. 학년부장님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쉬셨으나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우리 부장님의 결정은 누구도 못 바꾼다. 번복할 수 없다. 학년부장님은 급히 학교 홍보 리플릿을 펼치시고 학교의 주요 사항을 체크하셨다.


나는 이 상황이 재밌기도 하고, 한 편으론 슬프기도 했다. 우리 부장님은 인수인계를 생각하시는 것이었다. 곧 퇴직이시니 이 일도 누군가가 물려받아야 했다. 는 이번엔 정말 울컥했다. 그제야 나는 내가 우리 부장님의 마지막 업무 파트너고 이제 이 일도 다 끝나간다는 것이 실감이 난 것이다. 어느새 내 눈에  진짜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어?! 손쌤 우는 거야?! 나랑은 하기 싫어서?!"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에요.. 나는 핸드백에서 휴지조각을 뽑아서 단숨에 눈물을 닦았다. 마스카라가 번져 나왔다. 망했다. 설명회 행사 5분 전인데.. 그러나 급하게 휴지로 눈을 닦아내고 그럴수록 내 두 눈은 수도꼭지처럼 터져서 이제는 아주 홍수가 나버린 것이다.


"아이고~ 내가 괜히~ 미리 말해서~ 울렸네~~"


부장님의 머쓱한 인사에 나는 후다닥 화장실로 뛰어가 다시 세수하고 얼굴을 닦았다. 급하게 립스틱만 새로 칠하고 설명회가 시작되는 특별실로 향했다. 다시 입가에 스마일~을 장착하고 말이다. 행사는 예정대로 잘 진행되었다. 별 탈없이 착착.


착잡, 그러나 내 마음은 착잡함 그 자체였다. 부장님의 차를 타고 학교로 돌아오는 내 마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그걸 눈치채셨는지 부장님이 내게 먼저 말을 거셨다.


"손쌤~ 많이 슬프나~ "


예. 나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우리 부장님을 내심 담임 선생님처럼, 진짜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의지해온 면이 컸다. 그런데 그런 부장님이 학교를 떠나신다니.. 여전히 마음이 울컥하는 것이었다. 또다시 눈물이 고이는 내 모습을 부장님은 곁눈질로 보시곤 나를 위로했다.


"손쌤~ 뭐든지 다음에는 더 나은 사람이 오는 거야~ 너무 슬퍼하지 마라~"

"더 나은 사람이고 덜나은 사람이고 간에 저는  부장님이 떠나시는 게 슬픈 건데요."


나는 괜히 어린아이처럼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부장님의 마지막 업무 기획은 저니까 부장님께 최고의 업무 파트너는 저예요, 부장님 저 까먹으시면 안 돼요."

"암만, 암만, 손쌤이 최고지~"


나는 또다시 터져 나오는 눈가를 손등으로 짓눌렀다. 지난날,  상담할 때마다 그렇게 수시로 우는 여학생들을 바라보며 소녀들은 감수성이 풍부하다 생각했었는데 나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아마도 나는 여전히 상처받은 열일곱의 나를 내 안에 안고 살았나 보다. 그러니 나를 이해해 주는 어른이 떠나는 게 그렇게 슬픈 모양이었다. 의 복잡한 생각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부장님은 담담하게 나를 위로하셨다.


"학교는~사랑을 가르치는 곳이야 그 마음만 안 잃으면 돼~ 그러니까 손쌤은 하던 대로 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나는 눈물 콧물을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된 일일까. 나는 혼란스러웠다.

이상하게도 나는 분명 학교에 불만을 갖고 학교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에 왔는데, 학교에서 너무나도 많은 사랑을 받고 오히려 내가 변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나를 오랫동안 생각에 잠기게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